[김문수 칼럼]기형적 시장환경 독해법
기사입력 2021-04-26 08:54:52
‘김치 프리미엄’과 시장의 도박성

하룻밤 사이에 20% 가까이 폭락했다가 반나절만에 다시 급반등하는 가상화폐의 움직임은 그 자체로 기형적이다. 이 와중에도 ‘김치 프리미엄’으로 불리는 가상화폐의 역내외 가격차가 여전히 20% 가까이 지속되는 현상은 더 큰 기형이다.

전자의 가상화폐시장 폭락을 촉발한 것은 미국 재무성의 돈세탁 수사 루머에 따른 것이다. 가상화폐가 국제 돈세탁과 관련이 없다면 폭락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시장은 일단 급격히 움츠러 들었다. 그 같은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것을 시장참가자들이 인정한다는 것이기에 가상화폐의 규제 리스크는 한국의 외환시장을 휩쓸었던 키코(KIKO) 사태와 성격적으로 같다. ‘불행의 어느 순간 문 두드림’(KI : Knock-In)이라는 옵션과 ‘행복의 어느 순간 사라짐’(KO : Knock-Out)이라는 옵션이 결합된 것이 KIKO이기 때문이다.

만일 전세계 규제당국이 연합하여 가상화폐를 불법으로 확정한다면 가상화폐는 신기루가 되고, 기업공개(IPO) 이후 시가총액이 100조원을 넘나드는 미국의 가상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도 KIKO의 녹인(Kock-In)을 면치 못한다. 만일 KIKO가 기형적 상품이라면, 가상화폐 역시 동일하게 분류돼야 맞는 것이고, KIKO와 마찬가지로 원칙적으로 특수한 자격을 갖춘 참가자에게 한정해 허가돼야 규제의 올바른 방향일 것이다.

한편 김치 프리미엄은 한국에서 거래되는 가상화폐 시세가 해외 시세에 비해 얼마나 높은 지를 나타내는 말이다. 시장에서는 이를 줄여서 ‘김프’(KimP)라고 부르는 바, 다소 자조적이고 경멸적 표현이기도 하다. 과거 통신주에 대한 외국인 투자 한도가 있었을 때, 국내 원주대비 주식예탁증서(ADR)에 붙어있던 프리미엄과는 방향이 반대이다. 당시 ADR 프리미엄은 외국인들이 외국거래소에서 지불하는 프리미엄이었던 것이다. 반면 김프는 한국 투자자들이 동일 가상화폐에 대하여 외국투자자들보다 20% 가까운 프리미엄을 국내거래소를 통해 기꺼이 더 지불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통상 어느 형태의 프리미엄도 지렛대가 있는 시장에서 형성된다는 것을 전제한다면, 전세계 가상화폐의 시장은 프리미엄부 투자자들이 모인 한국이 간헐적으로 선도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되기도 한다. 모 가상화폐 웹세미나(웨비나) 참가자의 60~70%가 한국계이고 어느 세션에서는 공용어가 아예 한국어였다는 전언이 의구심을 더 짙게 한다. 전세계 시장참가자의 95% 이상이 개미라는 사실로도 이 같은 20%의 초과된 광기를 인수분해할 수 있다.

하지만 김치프리미엄은 국내 투자자들이 해외 가상화폐거래소에 대한 직구가 가능하다면 소멸한다. 가령, 한국의 증권사가 코인베이스와 같은 해외거래소와 연합하는 방법으로 국내투자자에게 해외거래소 내 가상화폐의 직접구매 채널을 생성하는 순간, ’해외에서 떼서 국내에 되파는’ 연쇄 재정거래에 의해 이 같은 프리미엄이 소멸되기 때문이다. 가상화폐가 현재는 자본시장법상의 증권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 증권사의 취급이 불가능한 특별자산이기에 이 같은 해외에 대한 진입장벽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래저래 당분간은 국내외 가상화폐 거래소만 떼돈을 버는 국면이다. 도박도시 마카오에 벼락부자와 벼락거지가 수도 없이 생겼어도, 수십 년간 불이 꺼지지 않는 유일한 실체는 도박장이라는 점에서 가상화폐 거래소의 꽃놀이패는 자산시장의 후진성과 더불어 상당 기간 지속될 태세이다.

도쿄전력(TEPCO)에 지워진 기형적 멍에

금융시장의 새로운 화두는 환경ㆍ사회ㆍ지배구조(ESG) 경영에 있다. 기업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경영전반에 사회윤리적 가치를 연동시키는 것을 말한다. 이 같은 ESG 경영기업의 주가가 상승하는 이유는 비단 물과 자원을 아끼고, 쓰레기를 줄이는 에코 패키지로 기업인지도를 높인 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역으로 공동체의 이익을 무시하는 기업들은 언젠가 막대한 소송의 위험에 직면하거나, 또는 시장의 체계적 외면을 받을 것을 두려워 하기에 ESG경영 기업을 선호하는 것이다.

예컨대 보도 블럭에 늘어붙은 1천원짜리 껌의 사회적 제거비용이 1만원이라면, 10년 전에는 그냥 눈감아 줬을지 모른다. 그러나 머지않은 장래에는 이를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어떤 형태로든 제제와 과금이 뒤따를 리스크로 민감하게 인지시키는 것과 같은 이유이다. 만일 합당한 제제와 과금이 없다면, 사회적 제거비용에 공동체의 공금이 투입되는 것에 비해 생산효익과 소비효익을 누리는 자들은 특별한 면책을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ESG 리스크에 따른 중장기 비용이 더 커질 것을 우려하여, 이윤이 주목적인 기업, 금융기관들이 ESG 경영에 선제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하물며 기업들도 이 같은 ESG 경영을 강조하며 공동체의 지속성장을 위해 노력하는데 일본은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를 해양에 투기하겠다고 공언했다. 지구환경은 고사하고 주변국에 대한 존중은 물론 자국민에 대한 고려도 심도 있게 고민한 흔적이 없다. 한때 대표적 일본의 초우량기업 도쿄전력(TEPCO)이 자사의 후쿠시마 원전에서 발생한 오염수를 최초에는 방사능 폐기물로 분류했다가 최근에 와서 희석된 삼중수소(일명 처리수)로 분류했다는 것 따위는 그 자체로 의미가 없다.

현재 방사능 오염수가 약 123만톤에 달하는 절대량을 감추기 위해 희석여부와 단위당 독성을 앞단에 내세운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123만톤이라는 무게는 1톤 트럭 123만대분의 폐기물을 바다에 빠뜨리는 규모와 같다. 과도하게 단순화하여 폐기량 전체를 10배로 희석한다면 1톤 트럭 1,230만대에 달하고, 일본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40배까지 희석한다면 최대 1톤트럭 4,920만대의 분량에 달한다. 이 같은 위험의 총량을 무시한 채, 비이커 한 컵 정도에 희석된 오염수를 손에 들고 음용수에 가깝다던 일본 관료의 강변은 독성총량을 은폐하기 위한 억지에 불과하다. 이 같은 일본 관료에 중국 외교부 자오리젠 대변인은 “그렇게 안전하면 당신들이 먼저 마시고, 밥짓고, 농사 지어라”고 희롱성 논평을 내면서 중국 정관계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슈퍼스타로 급부상했다.

한때 채권시장의 황태자였던 도쿄전력의 자금조달 환경 또한 임계점을 넘길지 주목된다. 일본의 국가신용등급이 AA에서 A로 하락했다. 반면 도호쿠 대지진으로 엄청난 타격을 입었음에도 도쿄전력은 장기채 시장에서 미국 달러화 표시이든 자국 엔화 표시이든 꾸준히 명맥을 이어왔다. 일본소비자들의 전기료 미납이 극히 드물고, 일본 산업이 지닌 장기적 안정성을 반영하기에 자금조달에 대한 의구심이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대한 우발채무의 발생은 신용도에 있어서 사뭇 의미가 다르다. 후쿠시마 앞 바다에서 수도권인 도쿄도를 남으로 경유하는 약 1,800km 길이의 혼슈 동해안에 사는 주민들이 제기할 수 있는 민원과 소송위험으로부터 무탈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과거 ‘담배연기는 공기 중에 산화되기 때문에 무해하다’는 주장을 폈던 미국계 담배회사들이 흡연이 폐암 유발의 제1 원인으로 판명된 후 수십 년간 막대한 배상금을 떠안아야 했던 사례와 흡사하기 때문이다. 수 년 뒤 방사능오염수의 해양투기가 개시된다면, 판로를 잃어 피해를 입은 농어민과 건강 이상이 발생한 보통 일본인들이 먼저 문제 제기를 하고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현 국면을 고수한다면 도쿄전력의 채권시장에 부과되는 가산금리 역시 급증하게 될 것이다. 현재 국내 신용등급으로 A를 유지하고 있다지만 S&P 등급은 BB+에 불과해 역내외 신용도 괴리가 크다. 또한, 도쿄전력 주가의 지난 15년간의 최고치와 최저치는 도호쿠 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전이 파괴되기 전후로 각각 4,330엔(2007년 3월)과 128엔(2012년 10월)을 기록한 바 있다. 최고치와 최저치의 차이는 무려 97%에 달한다. 연기금 등의 장기투자처로서 안정적 배당주였던 도쿄전력의 주가가 97%의 손실에 처한 적도 있음을 의미한다. 도쿄전력과 일본정책당국은 일본 초고령 연금수혜자의 주머니를 두 번 턴 꼴이 되고 말았다. 일본전력의 옆모습엔 가라앉고 있는 난파선의 실루엣이 보이는 이유이다.

주가와 자금조달 환경을 보면, 고비용의 일본전력은 전기료 전격 상승과 같은 특단의 조치가 없는 한, 이미 국유화의 길로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리히터 지진계로 진도 9.4에 달했던 도호쿠 대지진에 이어 방사능 오염수 해상투기 결정은 이와 같은 국유화의 운명을 가속화 할 것으로 보인다. 전자는 천재지변이었고, 후자는 이기적 판단착오, 즉 인재에 가깝다. 중국의 비난과 러시아의 압박, 한국의 거친 항의를 비난하기 이전에 자국의 앞마당을 먼저 살피는 지혜가 없다면 도쿄전력으로 투영되는 일본식 의사결정의 기형성은 더욱 어그러질 것이다. 이 같은 형국에 도쿄전력이 환경보호를 주목적으로 한 채권인 이른바 그린본드를 발행하는 것은 코미디에 가깝다. 수백만~수천만톤의 가미카제식 오염수 투기로 해양환경을 해치는 기업이 그린본드를 운운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2차 세계대전 전범국 일본의 재무장이 동북아의 평화를 강고하게 할 것이라는 주장과 모순되는 것이 닮았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긴축은 아직은 먼 이야기

국제금융시장의 현재진행형 화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의 추이이다. 이는 1백만달러짜리 질문이기도 하다. 왜냐면, 코로나19의 추이가 글로벌 통화당국이 언제 부양책을 줄여나가고 통화증발을 해소할 것인지의 질문과 동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9년 최초로 발병한 이래, 이 특별한 바이러스로 인해 지금까지 전세계 3백만명이 넘게 사망했다. 비관적 전망으로 동수치의 최소한 두배가 사망자 통계로 집계될 것이라는 견해는 긴축이라는 질문에 대한 가장 심플한 답이다. 설사 일부 국가의 집단면역 징후 등 코로나19의 경착륙 조짐이 보였어도 전면적 긴축의 감행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여전히 코로나19가 만연한 지금 주요국의 긴축정책 전환 시그널은 아직은 멀고도 미약하다.

개발도상국가의 사례는 좀 다르다. 터키의 술탄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 3월 하순에 나치 아그발 터키중앙은행(TCMB) 총재를 분노에 가득 차 해임했다. 가치가 폭락하는 터키 리라화와 외환시장의 안정을 위해 금리 인상을 단행하려 했던 아그발 총재는 원칙적으로 무죄다. 중앙은행 수장이면 응당 해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다. 하지만 이 같은 중앙은행장을 선제적으로 내쫓은 에르도안 대통령을 유죄라고 부르기는 더 힘들다. 정치인에게 외환시장의 불안정성과 긴축돌입이라는 충돌하는 가치를 선택한다면 외환시장 카드는 쉽게 버릴 수 있는 패이기 때문이다.

터키 리라가 태환통화도 아니니 국제적 의무도 매우 적다. 러시아 루블화가 거의 불태환통화로 전락한 지도 오래인 것을 보면, 터키가 특별히 더 창피할 일도 아니다. 중앙은행 총재가 강제 해임된 날, 터키 리라화는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화 대비 13%의 폭락을 감수했고, 이스탄불의 모든 5성급 호텔은 미국 달러화로만 숙박비를 결제하는 정책을 시행했다고 한다.

행정부와 중앙은행과의 유사한 갈등은 인도의 경우 더 드라마틱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측한 것으로 유명했던 라구람 라잔 인도중앙은행총재를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임기 내내 괴롭혔고, 연임을 승인하지 않는 방식으로 내쫓았다. 라잔 총재가 촉망받던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 출신이었다는 이력도 모디 총리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친정부 인사인 우지리트 파텔 후임 총재는 임명되자마자 전임자의 금리인상안을 철회하고 역으로 금리인하를 단행하면서 모디 행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에 앞장서 총대를 맸다. 그러나 파텔 총재도 과잉 부양책이 모디 총리의 선거용이라는 의혹을 제기하다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자리에서 쫓겨났다. 모디의 대의명분은 인도경제가 여전히 부양책을 필요로 할 정도로 매우 취약하다는 판단에 있다.

모디 총리나 에르도완 대통령이 옳은지 그른지는 장기적으로 불분명하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 톱 레벨 의사결정권자 사이에도 미국 10년물 국채의 수익률이 설득력 있는 인플레이션의 시금석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이 지닌 매뉴얼에는 동 수익률 기준 1.5%를 1차 경보 시그널, 2%는 경계경보, 3%에는 공습경보로 적어놓은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코로나19가 알려지지 않았던 2018년도에 미국 10년물 국채는 3% 전후를 움직였고, 코로나19가 발발한 무렵의 2019년 4분기에는 2% 상한으로 오르내렸다. 만일 동 수치가 2%를 상향 돌파해 3%를 향해간다면 이는 코로나19 이전의 상황으로 글로벌 경제가 본격적으로 정상화 되는 것임을 시사한다. 대략 2.5% 선상에서는 정책당국의 입장에서는 긴축의 칼날을 새롭게 갈아야 하는 시점이 도래한 것이라고 읽힌다.

한편 10년물 미국 재무성 채권의 시장대표성은 남다르다. 우선 거래량이 다른 만기의 현물 채권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선물 거래량까지 합하면 그 차이는 더 크다. 통상 4대 벤치마크 채권(2년물, 5년물, 10년물, 30년물) 가운데 최고 에이스 트레이더가 10년물 거래를 전담한다. 이들은 복수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감시 채널을 가동하고 있다. 제롬 파월 연준의장의 단어 선택 하나하나를 밤새워 분석하고, 재닛 옐런 재무장관의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세운다. 학자들도 은밀히 초대해 견해를 듣고, 행정부에 라인을 통해 집행계획을 모니터링한다. 따라서 시장정보의 대표성이라는 각도에서 10년물 금리를 능가하는 벤치마크는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몇몇 상업은행이 수년간 조작한 것으로 드러난 은행간 단기금리인 리보는 신뢰성을 상실한 지 오래다. 2년물은 큰손들의 진출입에 따라 시장과 유리되어 거래되기 일쑤이고, 30년물은 발행량 및 거래량 자체가 너무 적으며, 5년물은 금리에 대한 가격탄력성 측면에서 매력적이지 않다. 이에 남는 선택지는 10년물 국채 밖에 없는 것이다.

이르든 늦든 금융리더들은 포스트 코로나를 준비해야 한다. 경제 정상화를 위한 정책을 시나리오별로 입안해 매뉴얼을 보강하고, 자본을 최적으로 배분하며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문제는 집행시점이라는 어려운 수읽기가 이들에게 놓여있다는 점이다. ‘골디락스’(Goldilocks. 인플레이션 없는 고성장)라는 흔치 않은 선물이 문 밖에 와 있는지도 모르고, 반대로 남은 21세기의 상당기간을 악성 인플레이션과 대결을 펼치며 과잉 처방된 유동성을 힘겹게 회수해야 하는 장기전에 직면할 수도 있다. 이제는 코로나19 출구 전략을 단계별 시나리오에 맞추어 준비해 둬야 한다. 기형이 정상인 환경은 오래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중차대한 시점에 10년물 미국 국채 수익률의 모니터링이 더욱 강조되어야 함은 더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 김문수 Aktis Capital(Hong-kong) 최고 투자책임자(CIO)

1995년 골드만삭스(홍콩)에 입사한 이래로 20여년간 홍콩기반 아시아 전문 투자업에 종사하고 있다.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후 산업은행 딜리룸에서 국제금융을 익히고 씨티은행, 메릴린치 등 유수 투자은행에서 국제채권, 외환, 파생상품 및 M&A등을 경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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