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한 국회입법]①초선까지 가세한 입법경쟁...국회는 ‘각자도생’ 중
노유선기자 yoursun@hankooki.com 기사입력 2021-04-30 16:00:49
21대 국회 역대 최다 법안 발의… 당내 법안 조정 기능 시급
  • 국회의원을 포함한 공직자들이 직무 관련 정보로 사익을 추구하지 못하도록 하는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안이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입법 공장. 21대 국회는 역대 국회 중 최다 법률안을 발의하게 될 전망이다. 임기가 시작된 2020년 5월 30일부터 4월 30일 현재까지 21대 국회가 발의한 법안은 9251건이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19대, 20대 국회는 임기 1년 동안 각각 4598건, 6428건의 법안을 발의했다. 21대 국회 의원들이 제출한 법안이 압도적으로 많은 건수를 기록한 것이다. 21대 국회는 한 달 뒤 임기 1년을 맞게 된다. 그때쯤이면 의원발(發) 법안이 1만 건에 육박할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국회의 적극적인 입법 활동은 중요하다. 김현진 서울대 정치학 박사는 “13대 국회 이래로 매 회기 별 법안 발의 건수는 증가해 왔다”며 “사회 변화에 맞춰 새로운 법안을 제안한다는 긍정적인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국회의 법안 발의 건수는 민주화 시대 전후로 크게 달라졌다.[그림1] 1987년 민주화 이전의 국회(1대~12대)는 법안을 발의하는 데 소극적이었다. 39년간 의원들이 국회에 제출한 법안은 약 2000건. 13대~20대 국회가 총 6만여 건의 법안을 발의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박상훈 국회미래연구원 거버넌스그룹장은 '국가미래전략 Insight' 제4호에서 “민주화 이후 국회의 입법 활동이 활발해진 것은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임기 1년 발의된 9251건 중 미처리 법안 78% 달해
그렇다고 해서 21대 국회의 입법 활동을 마냥 칭찬할 수만은 없다. 법안 발의 건수가 증가했다고 해서 입법 생산성도 높아진 건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이 처리하지 못한 법안은 무려 7235건(정부 제출안 제외)에 달한다.[그림2] 의원들은 자신들이 발의한 법안의 약 78.2%도 처리하지 못한 채 새로운 법안을 구상하기에 바쁘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의원발 법안들은 거의 매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지난해 11월 6일 하루만 70여 개의 법안이 의원실을 통해 제출되기도 했다.

의원들의 ‘입법 경쟁’은 생존의 문제이다. 정치 평론가들은 의원들이 다음 총선을 준비하는 차원에서 법안 발의를 남발한다고 입을 모은다. 여론의 주목을 끌만한 법안을 발의하면 매스컴을 탈뿐더러 실적도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 박사는 “입법 생산성을 고려하지 않은 법안 발의는 향후 공천 심사에 대비해 실적을 쌓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박 그룹장은 “더 많은 입법을 하는 의원보다는, 더 중요한 법안을 충분한 연구ㆍ심의ㆍ토론ㆍ조정을 거쳐 입법하는 의원이 높게 평가 받는 방향으로 변화를 하는 것이 우리 국회의 미래 모습이 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여론 주목 받는 현안에 발의 몰려…’포퓰리즘’ 지적
지난 3월 불거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은 여론 영합적 법안 발의를 야기한 대표적 사례다. 당시 여야 의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관련 법안들을 쏟아냈다. ‘한국토지주택공사법 일부개정법률안’, ‘공공주택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 ‘공직자윤리법 일부개정법률안’ 등은 각 10여개씩 우후죽순 제출됐다. ‘부패재산의 몰수 및 회복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과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까지 합하면 LH사태 관련 법안은 총 40건에 육박한다.

이들 중 몇 건이 가결되었을까. 아직 소관위에 머물러 있는 부패방지법과 부패재산몰수법을 제외하면 위원장이 발의한 3건의 대안만 살아남은 채 그 밖의 법안들은 모두 대안반영폐기됐다. 이 같은 의원들의 ‘묻지마 발의’는 대동소이한 법안들을 양산해내 입법 과정의 비효율성을 야기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발의 이전 단계부터 당내에서 법안 조정 과정을 거친다면 법안의 질적 수준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박 그룹장은 같은 보고서에서 “각 정당도 민주적으로 소중한 입법권이 의원 개개인의 무한 경쟁 속에서 허비되지 않도록 법안 작성과 심사, 의결 과정에서 책임 있는 조율자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 요청된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4·7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일하는 정당’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 경쟁적으로 법안을 발의했다는 분석도 있다. 김 박사는 “21대 국회의 법안 발의 건수가 급증한 것도 내년 대통령 선거 및 지방선거와 무관치 않을 것”이라며 “정당 홍보 효과를 누리기 위해 당 차원에서 (법안 발의를 독촉하는 등) 의원들을 관리할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21대 국회 초선 발의 건수 전체의 50% 달해
한편 국회 의안과에 따르면 21대 국회에 접수된 법안 중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건수가 가장 많다. 이는 174명을 거느린 거대여당이기에 당연한 결과다. 박휘락 국민대 정치학 교수는 “과반 이상의 의석 수를 차지한 민주당은 법안 통과가 아주 용이하다”며 “법안 통과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법안 발의에 부담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초선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이 늘어난 것도 21대 국회의 특징이다. 지난 20대 국회에서 초선이 대표발의한 법안 건수는 전체의 15~20% 밖에 되지 않았지만 21대 국회에선 5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익명을 요구한 국민의힘 의원은 “이번 초선들이 많이 적극적이고 활동적”이라며 “법안 발의에 그 성격이 그대로 반영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박 교수는 “다수의 정치 원로들이 사라진 국회에서 초선의원들이 어떠한 가르침이나 조언 없이 법안을 발의하게 돼 안타깝다”고 말했다.

노유선 기자 yoursun@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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