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대회의실에서 ‘택배, 배달, 퀵서비스 노동자가 함께하는 기자간담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플랫폼 노동에 대한 법제화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플랫폼 종사자 보호방안’을 발표해 그동안 사각지대에 있었던 플랫폼 노동자를 제도권으로 끌어오기 위한 첫 번째 행동에 나섰다.

플랫폼 노동자 하면 처음 떠오르는 사람들은 요즘 ‘라이더’라고 부르는 배달노동자다. 그러나 이들은 현행 법에 따르면 ‘계약 사업자’로서 사장님 신분이며 근로기준법에 의해 보호받는 노동자가 아니다.

플랫폼 노동자는 흔히 특수고용노동자와 헷갈리기도 한다. 특수고용노동자도 실제로는 사용자의 지휘감독을 받으며 일하지만 형식적으로는 사업자 간 계약을 맺고 있다는 점에서 플랫폼 노동자와 흡사하기 때문이다. 이들도 법적 신분은 개인 사업자다. 택배노동자, 학습지 교사, 보험설계사가 대표적이다.

플랫폼은 원래 기차역 플랫폼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람들이 기차에 타고 내리며, 짐을 싣고 나르고, 상품을 사고파는 행위가 일어나는 곳이다. 그러나 IT가 대세가 된 오늘날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사람들이 만나고 거래행위를 하는 가상의 공간으로 변질됐다. 플랫폼을 운영하는 사업자는 거래가 일어나도록 판을 깔아주거나 중개행위를 한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사용자와 노동자가 만나서 상업적 거래를 한다.

플랫폼 종사자도 다시 세분화할 수 있다. 플랫폼을 매개로 노무를 제공하는 넓은 의미의 플랫폼 종사자가 있고 배달기사와 같이 업무 배정까지 플랫폼으로 받는 좁은 의미의 플랫폼 종사자가 있는 것이다. 정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넓은 의미의 플랫폼 종사자는 약 179만 명으로 추정됐는데 이는 국내 취업자의 7.4%에 달한다. 좁은 의미의 플랫폼 종사자는 약 22만 명으로 파악됐다.

인권위원회도 지난 1월에 실태조사를 발표했는데, 이에 따르면 조사 대상 중 64.2%가 전업으로 플랫폼 노동을 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여기에 정기적인 일감 없이 프리랜서를 병행하는 사람이 13.7%에 달해 약 78%가 플랫폼 노동이 주 수입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플랫폼 노동자 월평균소득은 약 152만 원으로 통상 근로자 평균 급여인 303만 원에 비해 크게 낮았으나 평균적으로 주당 5.2일, 하루 평균 8.22시간 근무해 노동시간이 통상 근로자에 비해 적지 않았다.

열악한 근로조건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제도적으로 보호하기 어렵다. 현행 노동법은 고용주와 피고용인 관계를 전제로 설계돼 있기 때문에 그 조항을 플랫폼 노동에 적용하기 쉽지 않은 것이다. 실질적으로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형식적으로 개인사업자로 분류되는 것이 그 첫째로 이를 ‘오분류의 문제점’이라고 부른다.

또한 최저임금이나 법정 수당 등은 노동시간에 근거해 설정되지만 플랫폼 노동의 경우 노동시간과 소득이 극단적으로 유연화돼 있어 그 계산 자체가 복잡해지는 문제도 발생한다. 노동법 틀 하에서 개별적으로 이를 규제하기가 무척 어려워지는 것이다. 플랫폼 노동이 갈수록 늘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노동법 자체의 틀을 다시 짜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플랫폼 노동이 전 세계적인 추세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논쟁은 미국과 유럽에서도 뜨겁게 이뤄지고 있다. 2018년 캘리포니아 주 대법원이 내놓은 판결은 이 분야에서 중요한 주춧돌을 놓았다고 할만하다.

배송업체 기사들이 제기한 오분류 소송에서 대법원이 이들을 근로자라고 판정했는데, 그 판단기준으로 제시한 ‘ABC 테스트’가 주목받은 것이다. 이는 근로 제공자를 일단 노동자로 추정하고 ABC의 세 가지 요건을 충족시키는 경우에만 독립계약자로 보는 것이다.

ABC 테스트는 일하는 사람이, 회사의 간섭에서 자유롭고, 통상적인 비즈니스 외 업무를 수행하고, 독립적인 고객층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우버 드라이버들은 대부분 근로자로 분류됐고 캘리포니아 정부는 우버를 대상으로 이들에게 근로자에 맞는 처우를 하도록 행정명령을 내렸다.

우버도 만만치 않아서 이에 반대되는 대안을 제시해 주민투표를 발의했다. 그리고 2억 달러가 넘는 돈을 쏟아 부어서 지난해 11월 58.43%의 찬성으로 이를 통과시켰다. 그들이 제시한 논리는 드라이버들이 노동자보다는 독립계약자로 일하는 것이 보다 많은 혜택을 누린다는 것이다. 이 이슈를 두고 장군멍군이 이뤄진 것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플랫폼 노동자를 노동자로 분류하는 것이 대세로 굳어지고 있다. 미국 뉴욕과 시애틀에서는 우버 드라이버들에게 최저임금을 제공토록 명령했는데, 이는 이들을 노동자로 보겠다는 의사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지난달 마틴 월시 미국 노동부장관은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많은 경우 플랫폼 노동자는 직원으로 분류해야 한다고 말해 그러한 입장을 지지했다. 우버 등은 이들을 어떤 경우에는 독립계약자로, 또 어떤 경우에는 노동자로 취급해왔지만 일관적인 기준을 적용해야 하며 일정한 급여, 병가, 의료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또한 영국 대법원에서도 우버 드라이버들을 노동자로서 대우하도록 판결했다.

한국 정부도 ‘플랫폼 종사자 보호 방안’을 발표해 이러한 논의에 참가했다. 그런데 그 기본적인 접근법은 일정한 기준을 통과한 플랫폼 노동자에게만 근로기준법 등 노동법을 적용하고 나머지에 대해서는 별도의 법을 만들어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나머지 플랫폼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제, 주 52시간 근로제, 노동조합을 결성할 권리 등을 보장받지 못하게 된다.

이에 한국노총과 민노총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것은 특수고용노동자를 근로기준법 상 노동자에서 배제함으로써 이들을 장기간 차별받게 한 전례를 반복하는 것으로,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규율의 첫 단추를 잘 못 끼운 것이라는 것이다.

플랫폼 노동자를 현재 노동법 체계로 규율하기 위해서는 노동법 전체를 뜯어 고쳐야 하기 때문에 방대한 논의와 작업이 필요하다. 따라서 당분간 별도 법체계를 만들어 이들을 보호한다는 것은 문제의 시급성이나 편의성에 비춰 적절해 보인다. 다만 노동법 개편을 고려하지 않고 편의적으로 이들 법을 만들어 때우려고 한다면 사회의 큰 변화를 놓치고 다수의 근로자를 적절한 보호에서 배제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동안 문재인 정부는 비정규직 문제에 집중해 이들을 정규직화하는데 노력을 기울였다. 이에 주로 공기업 자회사 설립을 통해 4년 간 약 20만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그러나 민간기업에서 그에 상응하는 변화가 일어나는 모습은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이에 집착하는 사이, 보다 크게 부상한 플랫폼 노동자 문제를 등한히 하는 과오를 범한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다. 보다 큰 시각으로 이 문제를 지켜보며 사회 변화를 놓치지 말아야 할 시점으로 보인다.

정인호 객원기자

● 정인호 객원기자 프로필

정인호 객원기자는 캘리포니아 주립대 데이비스 캠퍼스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KT경제경영연구소 IT정책연구담당(상무보) ▲KT그룹컨설팅지원실 이사 ▲건국대 경제학과 겸임교수 등을 지낸 경제 및 IT정책 전문가이다.



정인호 객원기자 yourinh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