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넷플릭스 영화 ‘제8일의 밤’ 이성민',“장르영화의 묘한 쾌감 전하고 싶었죠”
조은애 스포츠한국 기자 eun@sportshankook.co.kr 기사입력 2021-07-19 09:00:40
영화 ‘공작’(감독 윤종빈)의 북한 대외경제위 처장 리명운, ‘남산의 부장들’ (감독 우민호)의 박통 등으로 선 굵은 캐릭터를 소화했던 배우 이성민(54)이 이번엔 오컬트 장르에 도전했다. 불교 철학과 오컬트를 접목시킨 넷플릭스 영화 ‘제8일의 밤’(감독 김태형)이다.

  • 이성민.넷플릭스
‘제8일의 밤’은 7개의 징검다리를 건너 세상에 고통으로 가득한 지옥을 불러들일 ‘깨어나서는 안 될 것’의 봉인이 풀리는 것을 막기 위해 벌어지는 8일간의 사투를 그리는 작품이다. 각본과 연출을 맡은 김태형 감독은 6년 전, ‘뒤통수, 머리카락 사이에 숨어 있는 검은 눈알’이라는 짧은 메모를 시작으로, 철학책, 각종 다큐멘터리, 인문학 강의 등 무한한 자료 조사와 탄탄한 고증 과정을 거듭하며 영화 ‘제8일의 밤’의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2500년 전의 이야기는 모두 창작된 것으로 김 감독의 기발한 상상력에서 출발했다.

“시나리오 받을 무렵에 양자역학에 관심이 있었어요. 유튜브에서 어떤 교수님의 양자역학 강의를 우연히 봤는데 불교와 맞닿는 지점이 있단 걸 알게 됐고 알고리즘을 타고가면서 금강경까지 접했죠. 그러던 중 만난 ‘제8일의 밤’ 시나리오에 비슷한 부분이 나와서 흥미롭게 읽었어요. 우리와 다른 눈을 가진,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존재가 있다면 우리가 어떻게 보일까 궁금해지기도 했고요. 제가 보는 게 전부가 아닐 것이란 믿음이 있거든요. 그래서 감독님을 만났고 출연을 결심하게 됐어요.”

이성민이 연기한 진수는 ‘깨어나서는 안 될 것’의 봉인이 풀리지 않도록 지키는 자의 운명을 가진 자로, 저승으로 가지 못한 영혼들을 저승으로 안내해주는 일을 하던 전직 승려다. 타고난 운명을 거역하지 못하고 ‘깨어나서는 안 될 것’의 봉인해제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성민은 진수의 복잡한 내면과 정서를 설득력 있는 연기로 표현했다.

“종로에 있는 조계사 스님을 찾아가서 많은 조언을 얻었어요. 염불도 하고 스님이 축복도 해주시고요. 도끼 액션이나 산스크리트어는 어렵지 않았는데 보이지 않는 것과 연기하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퇴마하는 장면에서 컴퓨터 그래픽이 많이 사용됐는데 직접 보고 연기하는 게 아니라서 당황스러웠죠. 감독님이 계속 그림으로 그려서 상상할 수 있게 도와주셨어요.”

사리함 속 봉인된 ‘깨어나서는 안 될 것’은 누구나의 마음속에 있는 번뇌, 즉 무한한 밤을 사는 현대인의 고민을 상징한다. ‘제8일의 밤’은 낮은 채도의 조명과 오래된 산수화 같은 미장센, 오컬트 미스터리가 주는 영화적 재미를 넘어 인간의 번뇌와 번민을 깨는 깨달음을 통해 삶에 대한 진지한 메시지를 건넨다. 장면 곳곳에 숨겨져 있는 비유적 표현들 역시 여러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제가 종교는 가톨릭인데 ‘제8일의 밤’을 촬영하면서 부처님 말씀이 많이 떠올랐어요. 모든 게 덧없다는 생각도 들고요. 우리 생이 길게는 100년, 짧게는 60년 정도라면 대체 우리의 시간이란 어떤 의미일까. 하루살이의 하루나 나의 100년이나 우주의 시간으로 보면 찰나잖아요. 그런 걸 생각하다보면 많이 겸손해지죠. 덧없음을 인정하고 양보하고 착하게 사는 게 결국 번뇌를 극복하는 방법이지 않을까 싶어요.”

한국적인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로 전 세계에 익숙한 듯 낯선 우리의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를 본격적으로 보여준 영화 ‘제8일의 밤’은 이성민에게도 도전이었다. tvN ‘미생’의 오상식 과장, ‘로봇, 소리’(감독 이호재)의 아버지 해관, ‘보안관’(감독 김형주)의 전직 형사 대호, ‘목격자’(감독 조규장)의 평범한 가장 상훈 등 주로 현실적이고 보편적인 감성을 그려내며 많은 사랑을 받은 그는 ‘제8일의 밤’을 통해 장르적 색채가 강한 캐릭터로 새로운 얼굴을 보여줬다. 이미 수많은 흥행작으로 대중들에게 친숙해진 배우지만 더 많은 변신을 기대케 한다.

“오컬트, 호러 장르의 영화를 잘 못 보는 편이라 연기해보고 싶단 생각은 안 해봤거든요. 근데 일상적이지도 않고 상상이 잘 안 가니까 더 궁금한 게 매력적이더라고요. ‘제8일의 밤’을 만난 이후로 장르 영화에 대한 관심이 많이 생겼어요. 연기하는 입장에서도 판타지에 묘한 쾌감이 있었고 보시는 분들께도 전달하고 싶었죠.”

스트리밍 영상 콘텐츠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지난 2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190여 개국에 공개된 ‘제8일의 밤’은 단숨에 국내 1위에 올랐고 해외에서도 꾸준히 좋은 반응을 모으고 있다. 이성민은 ‘제8일의 밤’에 이어 최근 촬영을 끝낸 ‘소년심판’(감독 홍종찬)으로 다시 한번 넷플릭스로 대중과 만날 예정이다. 팬데믹이 장기화되면서 넷플릭스가 영화계의 새로운 활로로 주목받고 있지만, 이성민은 “영화관에서 관객들과 만나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농사를 지어서 창고에 쌓아두고 있는 실정이에요. 아무도 안 사가니까 계속 농사를 지어야 하나 고민도 돼요. 근데 세상이 바뀌고 있는 것이겠죠. 제가 나이가 든 것이기도 하고요. 넷플릭스에선 개봉이란 말도 안 쓰고 공개라고 하고, 관람이 아니라 시청한다고 표현하더라고요. 대게 영화가 공개되면 흥행 스코어로 얘기하는데 그것도 잘 모르겠고 모든 게 낯설어요. 어떻게 바라봐야할지 모르겠어요. 물론 요즘 같은 시국에 넷플릭스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작품을 소개할 수 있다는 점은 좋지만 영화라는 건 어떻게든 영화관에서 보는 게 가장 영화답다는 생각은 있어요. 모쪼록 빨리 코로나19 상황이 나아져서 많은 관객들과 다시 극장에서 만나길 소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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