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참패 반성은 뒤로 하고 생존 위한 편가르기 답습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인 이낙연 전 대표와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제20대 대선 후보자 '원팀' 협약식을 마치고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주간한국 장서윤 기자]대선 시간표가 점점 속도를 내는 가운데 여야 정치권은 대한민국의 미래 과제보다는 경선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면전 양상을 펼치고 있다.

여당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자들 사이의 해묵은 ‘친문-비문’ 계파 갈등으로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는 상황이다. 반면 야권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국민의힘 입당과 관련해 국민의힘 내부에서 벌써부터 ‘친윤-비윤’이라는 새로운 계파 갈등이 노출되고 있다.

국민의힘은 제21대 국회의원 총선, 더불어민주당은 4.7 재보궐 선거에서 참패한 뒤 국민을 향해 고개를 숙인 교훈을 잊은 듯하다. 여야는 환골탈태 수준의 변화와 뼈를 깎는 쇄신을 약속했지만 공염불에 그친 채 ‘그들만의 난타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민주, ‘원팀’ 강조했지만 ‘이재명-이낙연’ 충돌 여전

‘이재명-이낙연’ 양강 구도가 이어진 민주당의 대선경선 구도는 당이 중재에 나설 정도로 두 진영이 거세게 충돌하고 있다. 특히 선두를 달리는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향한 네거티브전이 가열되면서 이 지사측도 맞대응에 나서기 시작해 혼탁한 양상이 펼쳐지는 중이다.

민주당의 예비경선판을 뒤흔든 이 지사의 ‘바지 발언’이후 ‘영남 역차별’, 백제가 동원된 ‘영남 역차별’ 등의 논란이 이 지사의 공격 메뉴가 됐다. 이에 따라 각 진영은 상대방의 징계를 요구하는 등 전운이 감도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 지사는 지난 26일 문제의 백제 발언이 담긴 인터뷰 녹음파일 전체를 공개한 뒤 이낙연 전 대표를 향해 “지역감정을 누가 조장하느냐”고 반박했다.

이 지사측 캠프 수석대변인인 박찬대 의원은 이날 논평을 통해 이 전 대표를 겨냥하면서 “도둑을 잡았더니 ‘담장이 낮아서 자기 잘못이 아니다’라며 집주인에게 성내는 꼴”이라며 “늦기 전에 이낙연 후보가 직접 나서서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고 역공에 나섰다. 박 의원은 또 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낙연 캠프에서 낸 논평을 취소하지 않으면 우리도 여러 가지 취할 조치가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개인 의견을 전제로 당에 징계를 요청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 것이다.

이 전 대표도 직접 반격에 나섰다. 그는 이날 페이스북에서 “맥락이 무엇이든 그것이 지역주의를 소환하는 것이라면 언급 자체를 말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민주당 정체성의 역린을 건드렸다는 일갈이다. 이 전 대표 캠프측도 당 지도부에 징계 등의 조치를 요구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이 지사는 지난 29일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표결 논란을 들어 이 전 대표를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 전 대표의 탄핵 표결 논란과 관련해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는 게 문제”라며 “똑 같은 상황에서 이중플레이를 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없는 사실을 지어내거나, 있는 사실을 왜곡해 음해학 흑색선전하면 안 된다”며 “친인척, 측근, 가족 등 부정부패는 국민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이 전 대표를 향한 의혹을 내비치기도 했다.

급기야 당 지도부가 나서 지난 28일 6명의 경선 후보들의 ‘원팀 협약식’을 갖고 선의의 경쟁을 촉구했다. ‘이-이’ 두 후보의 충돌이 위험수위에 이르자 네거티브 공방을 지양하고 정책 개발 협력에 뜻을 모으자는 취지를 내세웠다.

하지만 원팀 협약을 가진 같은 날 저녁 MBN과 연합뉴스TV의 경선 첫 토론회에서 이 지사와 이 전 대표의 신경전은 계속 이어졌다. 표현 수위를 애써 조정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상대방에 대한 기존 의혹제기와 논란을 공격 수단으로 삼은 것이다.

윤석열 대선 예비후보가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입당원서를 제출하기 위해 자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윤석열 국민의힘 입당… ‘친윤-비윤’ 갈등 본격화

야권도 편가르기 현상이 진행되면서 갈등 양산이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 중심에는 윤 전 총장이 불씨를 당겼다.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 전직 의원과 전현직 당직자를 대거 캠프에 영입한 것이 발단이다.

국민의힘 입당 후 입지를 다지고 있는 최재형 전 감사원장측이 포문을 열었다. 최 전 원장 캠프에서 상황실장을 맡은 김영우 전 의원은 지난 27일 TBS 라디오에서 “언제 입당할지 알 수 없는 당 밖 주자의 캠프에 당협위원장들이 간 것은 원칙을 어긴 일”이라며 “욕심이 과했다”고 쏘아붙였다. 이는 윤 전 총장이 입당을 지연시킨 채 몸값 올리기에 열중하는 과정에서 당내 인사들의 지원을 받는 모양새가 불공정하다는 문제 의식에 따른 것이다.

최 전 원장을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진 박대출 의원은 “정당 정치의 기본을 훼손하는 행위”라고 윤 전 총장을 비판했다. 대선주자인 하태경 의원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당사자들이 유감 표명과 당직 자진사퇴로 결자해지하고 수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윤 전 총장은 30일 전격적으로 국민의힘 입당을 선언해 사실상 징계 절차를 밟는 것은 무의미해졌다. 문제는 윤 전 총장의 입당 후 당내 대선주자들 진영의 내홍이 더욱 깊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윤 전 총장 캠프에 참여한 일부 인사들이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 당시 같이 일한 점을 지적하면서 ‘김종인 배후설’까지 등장할 정도이다. ‘김종인-윤석열’ 조합으로 당내 다른 대선 주자들을 갈라치기 할 수 있다는 의구심이 그 배경에 깔린 것이다.

국민의힘 내부도 친윤-반윤 구도가 형성됐다. 홍준표 의원과 친분이 깊은 배현진 위원은 최고위원회의에서 “당내 주자들에 대한 형평성 문제나 시비 논란이 없도록 조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승민 전 의원측도 언론 매체 등을 통해 윤 전 총장의 행보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반면 원희룡 제주도지사와 윤희숙 의원은 윤 전 총장을 방어하는 모습을 보였다. 원 지사는 “윤 전 총장을 돕겠다고 나선 사람들을 비판하면 그게 자가당착”이라고 했다. 윤 의원도 “윤 전 총장을 견제하거나, 입당을 압박하거나, 이에 반발해 분열하는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원 지사와 윤 의원은 각각 윤 전 총장과 식사를 같이 한 공통점이 있다.

지난 29일 국민의힘 대선주자 11명이 처음으로 모인 자리에서도 윤 전 총장을 둘러싼 공세가 이어졌다. 당사에서 소집한 ‘대선 경선후보 간담회’에서다.

유 전 의원은 작심한 듯 경선 과정에서 후보자 검증을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때 당에서 검증위원회를 만들어 이명박·박근혜 후보에 대한 검증을 직접 했다”며 “그렇게 치열하게 검증을 하고 나니 본선에서 이기는 게 굉장히 쉬었다”고 말했다.

김태호 전 경남도지사와 안상수 전 인천시장은 윤 전 총장을 겨냥해 계파 정치의 부활을 우려하는 주장을 펼쳤다.



장서윤 기자 ciel@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