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 (사진=연합뉴스 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본격화된 지 벌써 1년 반이 지나가는데 여전히 경기회복 전망은 불투명하다. 선진국 중앙은행의 양적완화, 정부의 긴급재정 투입으로 충격을 완화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아직 고용지표는 부진하고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는 심각하다.

그런데 최근 미국의 10년 만기 장기국채 이자율이 계속 하락하면서 상황 판단에 혼란을 주고 있다. 그것은 지난 3월 1.75%로 고점을 찍은 이후로 계속 하락해 지난달 27일 현재 1.26%까지 내려가 있다. 그러니까 미국 10년 만기 국채 가격이 계속 올라가고 있고 시장의 돈이 안전자산인 국채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고정된 원리금을 지급하는 국채가 인플레이션에 취약한데도 불구하고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시장은 인플레이션보다 주식 등 위험자산가격이 추락하거나 아니면 장기적으로 불황이 펼쳐질 것을 더욱 우려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실물경기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도 다소 주춤하고 있다. 백신 개발과 접종이 이뤄지면 보복적 소비가 이뤄지고 이어 코로나19 사태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도 시간문제라는 것이 그러한 전망의 근거였다.

하지만 골드만삭스는 최근 올해 3분기와 4분기 미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각각 연율 8.5%와 5%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해 기존보다 각각 1% 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올해 전체 성장률은 6.6%, 그리고 내년 성장률은 1.5~2%로 더욱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기저효과를 감안하면 올해 성장률 6.6%가 충분한 경제회복을 의미하는지도 의심스러우며, 더욱이 내년 성장률 1.5~2%는 성장의 정체 또는 불황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하향조정에는 높은 백신 접종률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가 좀처럼 잡히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깔려 있다.

실제로 미국 백신 접종률이 50%에 육박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루 확진자는 5만 명을 넘어서고 있고 이른바 돌파감염도 늘고 있다. 백신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라는 기대가 어그러지고 있고 이 사태가 상당히 장기화될 것이라는 냉엄한 현실이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공격적인 통화·재정정책에도 불구하고 나타난 결과라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이미 그러한 정책으로 인해 자산가격의 과도한 상승과 인플레이션의 가속화라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지난 6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5.4%로 2008년 8월 이후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연방준비제도(Fed, 연준) 물가목표치인 2%를 훨씬 뛰어넘고 있는 것이다.

종합해보면 현재 상황은 ‘스태그플레이션’이 목전에 다가온 것일 수도 있다. 스태그플레이션은 경기침체를 의미하는 스태그네이션(stagnation)과 물가상승을 의미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이 공존하는 상태를 뜻한다. 이러한 상황은 이미 1970년대에 한번 경험한 바 있다. 따라서 그 때 상황을 한번 돌이켜 보는 것이 대응에 도움이 될 것이다.

미국 경제는 1951년부터 1965년까지 평균 1%대 인플레이션과 4.7%대 실질경제성장률을 이뤄 이른바 황금시대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런데 1965년 당시 린든 B. 존슨 대통령이 베트남 전쟁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한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10년간의 질곡에 빠져든 것이며 이로 인해 미국은 막대한 전비에 시달리게 된다.

더구나 그의 공약이던 복지계획, ‘위대한 사회’ 프로그램에 따라 막대한 재정투입이 동반됐다. 이러한 자금이 상당부분 중앙은행의 돈 찍기에 의해 조달될 수밖에 없던 것도 문제였다. 통화량(M2) 증가율은 1960년대 연평균 7%에서 1970년대 10%로 상승했다. 당연히 물가가 치솟기 시작했다.

인플레이션율은 1969년부터 5%대에 고착화됐고 다음 해인 1970년에는 5.7%의 높은 인플레이션에도 불구하고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본격적인 스태그플레이션이 시작된 것이다. 1973년에 제1차 오일쇼크가 터진 것은 설상가상이었다. 유가가 단숨에 세배가 뛰면서 그 해 인플레이션율은 11%에 이르렀다.

이러한 악성 인플레이션에도 불구하고 재정지출은 줄지 않았다. 민간 소비와 투자가 부족한 상황에서 정부 재정지출마저 줄어들면 불황이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오히려 강압적으로 물가와 임금을 동결시키는 정책까지 동원됐다. 이 와중에도 연준은 경기후퇴를 우려해 금리인상에 소극적이었다.

1979년 이란 사태를 계기로 제2차 오일쇼크가 터졌고 1980년 인플레이션율은 14%에 도달했다. 그 때 등장한 폴 볼커 연준 의장은 마침내 칼을 빼 들어 20%대 금리를 도입했다. 엄청난 희생을 딛고 인플레이션율은 다시 3%대로 떨어졌다. 미국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신자유주의 개혁을 거치고서야 마침내 길고 긴 스태그플레이션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오늘날 연준이 금리인상에 소극적인 모습은 당시 상황을 연상시킨다. 눈앞에 나타나고 있는 인플레이션을 애써 무시하고 일시적인 현상으로 치부하면서 좀처럼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거두려고 하지 않는다.

당시와 다른 점이 있다면 오늘날은 막대한 부채가 경제를 지탱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현저해진 현상인데, 전 세계 GDP 대비 민간과 정부 부채는 2007년 271.4%에서 지난해 2분기 357.3%로 무려 86% 포인트 급증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급격한 금리 인상은 부채위기와 자산가격 폭락 등 경제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 연준이 극도로 신중한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이 고착화되고 가속화될 조짐이 나타난다면 연준은 불황을 무릅쓰고 금리인상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올해 4.0%, 내년 3.0%의 경제성장률을 전망하고 있어 해외 주요국 대비 상황이 양호한 편이다. 하지만 생산자물가지수는 8개월째 상승 중이고 지난 6월 소비자물가지수도 전년 동월 대비 2.4%로 안심할 수 없는 수준이다. 더욱이 대외무역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원자재가격 상승 사이클이 지속되면 인플레이션이 가속화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높은 가계부채 수준과 이에 기반한 부동산가격 거품이 문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지지부진한 백신 접종률과 코로나19 4차 대유행, 그리고 내년 선거 때문에 좀처럼 긴축적인 재정 및 통화정책으로 전환하기가 쉽지 않다.

이처럼 정부와 한국은행은 정책의 선택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가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으로 끌려간다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인플레이션을 잡는 것이 우선됐고, 그 후 구조적 개혁을 통해서 다시 성장 기반을 마련했다.

미국이나 유럽연합(EU)과는 달리 통화정책의 주도권을 갖고 있지 않은 우리나라는 금리 인상을 포함해 선제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그것이 인플레이션을 방지하고 갑작스러운 충격에 따른 경착륙을 막는 방안일 것이다. 그 이후에 산업 및 경제구조를 어떻게 바꾸어나갈 것인지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릴 필요가 있다. 현재 대선국면은 마침 그림을 그리기 위한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고 보인다.

정인호 객원기자

● 정인호 객원기자 프로필

▲캘리포니아 주립대 데이비스 캠퍼스 경제학 박사 ▲KT경제경영연구소 IT정책연구담당(상무보) ▲KT그룹컨설팅지원실 이사 ▲건국대 경제학과 겸임교수 등을 지낸 경제 및 IT정책 전문가



정인호 객원기자 yourinh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