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은의 드라이버 스윙.연합뉴스

그의 골프 행보는 늘 무지갯빛이었다. 정갈한 스윙, 시선을 빼앗는 외모와 패션에 골프 팬들은 시선을 모았다.

지난 7월 26일(한국시간) LPGA투어 네 번째 메이저인 아문디 에비앙챔피언십 마지막 라운드가 열린 레만 호수의 휴양지 에비앙 레뱅의 에비앙 리조트 골프클럽(파71)엔 이정은6가 뿜어내는 무지개가 드리워져 있었다.

첫 라운드를 5언더파로 순조롭게 출발한 그는 2라운드에서 10언더파를 몰아치며 공작의 날개를 활짝 펼쳤다. 3라운드에서 3언더파로 숨 고르기를 한 그는 마지막 라운드에서 무지개를 완성하는 일만 남은 듯했다.

한국 골프팬으로서 마지막 라운드 챔피언조의 경기를 지켜보는 것은 최고의 행복이었다.

이정은6, 리디아 고(24·뉴질랜드), 노예림(20·미국)은 국적은 다르지만 모두 한국인이다.

이정은6가 5타차 선두, 노예림과 리디아 고가 추격하는 모양새였으나 이정은6라는 무지개를 돋보이게 하는 역할이 주어진 듯했다. 앞 조의 전인지(26), 이민지(27·호주)의 우아한 플레이도 한민족의 자긍심을 일깨웠다. 한때 5위까지 한국인 또는 한국계가 점유하기도 했다.

첫 홀(파4)에서 셋 모두 버디를 하면서 유별난 챔피언조에 대한 박수갈채가 뜨거웠다.

그러나 이정은6가 3, 4, 5번 홀 연속 보기를 범하면서 무지개가 잿빛 구름으로 돌변했다. 이어 8, 9번 홀에서도 보기가 이어졌다. 대신 노예림과 이민지는 타수를 줄여나갔다.

후반에 들어서야 4개의 버디로 출발선으로 돌아간 이정은6는 결국 7타를 줄이며 따라온 이민지와의 연장전에서 두 번째 샷을 물에 빠뜨리면서 버디에 성공한 이민지에게 우승을 내주었다.

이정은의 아이언샷.연합뉴스

이민지는 LPGA투어 통산 6번째 우승이지만 메이저대회에서는 첫 우승이다. 남동생 이민우(23)가 유러피언투어 스코티시오픈에서 우승한 지 2주 만에 남매가 유럽 땅에서 우승하는 진기록도 세웠다. 이정은6로선 울음을 터뜨릴 만했다.

이 대회에서 이미 18홀 최소타 타이(61타)와 36홀 최소타(127타) 기록을 세워 생애 첫 우승(2019년 US여자오픈)과 두 번째 우승을 모두 메이저로 장식하길 기대했던 그로선 시즌 최고 성적인 준우승에 만족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KLPGA투어와 LPGA투어 초기의 화려했던 기억을 계속 이어가고 싶었는데 다 잡은 우승을 놓쳤기 때문이다.

2015년 KLPGA투어에 진입, 2016년 신인왕을 거쳐 2017년 KLPGA투어 4승을 올리면서 대상을 비롯해 상금왕, 다승왕, 최저타수상, 베스트 플레이어상 등을 휩쓴 이정은6의 존재는 실력자들이 즐비한 KLPGA투어에서도 유난히 빛났다.

KLPGA투어에서의 독보적 성적으로 LPGA투어의 메이저대회 출전자격을 얻은 그는 2017년 LPGA투어 6개 대회에 출전, 유의미한 족적을 남겼다.

2017년 US 여자오픈에 참가해 공동 5위에 오르면서 준우승한 최혜진(19)과 함께 화제의 중심에 섰던 그는 LPGA투어 퀄리파잉 토너먼트(Q시리즈)에 도전, 1위로 통과했다.

그리고 2019년 데뷔 첫해에 US여자오픈 우승을 비롯, 25개 대회에 참가해 23개 대회를 컷 통과하며 상금순위 3위에 오르고 올해의 신인상을 거머쥐었다.

2015년 김세영부터 전인지, 박성현 고진영에 이은 5연속 한국인 신인왕의 계보를 이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여파가 심했던 지난 시즌도 참가한 5개 대회 모두 컷 통과에 성공하며 잘 견뎠고 올 시즌 들어 15개 대회에 참가해 단 한 번 컷 통과에 실패했을 뿐 톱10에 세 번이나 이름을 올려 건재를 과시했다.

그에겐 우승이 필요했고 기회도 찾아왔다. 절호의 기회에 기대도 컸던 만큼 압박감 역시 컸을 것이다. 준우승의 아픔을 딛고 다시 한번 무지개를 피우기를 기대한다.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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