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같은 집안끼리도 ‘폭탄돌리기’식 저격으로 내홍

국민의힘 대권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오른쪽)과 홍준표 의원이 지난 7일 서울 강서구 ASSA빌딩 방송스튜디오에서 열린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 '체인지 대한민국, 3대 약속' 발표회에서 행사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주간한국 이재형 기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정조준 했던 이른바 ‘검찰 고발 사주 의혹’이 잇따라 추가 의혹이 불거지면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내년 대선을 불과 6개월 앞두고 여야 대권주자들이 경선 경쟁후보를 향해 뚜렷한 증거 없이 상대 진영으로 묻지마 의혹을 터뜨리며 ‘폭탄 넘기기’ 식 말잔치가 계속되고 있다.

고발 사주 의혹이 제기된 배경에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연관된 정황이 드러나자 윤 전 총장이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 캠프의 인사도 연루됐다는 취지로 함께 고발하면서 양 캠프간 갈등이 불거졌다. 한편 더불어민주당의 경선 토론회에서는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이 손준성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전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에 대한 청와대의 인사청탁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새로운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제보자인 조성은 씨가 수사에서 핵심 증거물인 텔레그램의 대화방이 존재하지 않아 증거능력의 부실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도 여야 예비후보들은 실체적 진실과는 무관하게 주변적 정황만 꺼내 같은 당 경쟁자끼리 흠집을 내는 양상으로 변질되고 있다.

‘윤석열 게이트’와 ‘박지원 게이트’ 충돌…홍준표까지 튄 불똥

‘윤석열 게이트’로 굳어졌던 고발 청탁 의혹이 180도 뒤집힌 건 전 의혹을 처음 제보한 조 씨의 입에서 비롯됐다. 뉴스버스 보도에 대해 조 씨가 방송에 나와 자신의 제보 사실을 직접 밝히는 과정에서 박 원장과의 공모 가능성을 시사해 국정원장의 대선 개입 가능성이 처음 제기됐다. 조 씨는 지난해 4월 당시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으로 일했던 손 검사가 21대 총선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후보였던 김웅 의원에게 범여권 인사에 관한 고발장을 전달했다는 내용의 뉴스버스 ‘청탁 고발’ 의혹 보도의 제보자다.

조 씨는 뉴스버스 제보 당시 박 원장과 상의한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었고, 이에 지난 12일 SBS뉴스 인터뷰에 출연해 한 발언이 발단이 됐다. 그는 “처음에 이 인터넷 언론사(뉴스버스)랑 얘기를 한 시점과 알려진 시점 사이에 박지원 원장과의 만남이 있어서 그런 추측이 나오는 것 같다”는 앵커의 질문에 조씨는 “날짜와 기간 때문에 저에게 어떤 프레임 씌우기 공격을 하시는데 사실 9월 2일이라는 날짜는 우리 원장님이나 제가 원했던 거나 제가 배려 받아서 상의했던 날짜가 아니거든요”라고 했다.

해당 발언은 뉴스버스 보도 시점을 맞추지 않았으므로 조 씨와 박 원장이 만난 시점과 개연성이 없다는 게 조 씨의 취지였다. 그러나 두 사람이 다른 보도 날짜를 고려하는 등 공모가 있었다는 취지로 들리면서 의혹이 불거졌고, 윤 전 총장에 대해 국정원이 직접 개입하려한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았다. 이에 윤 전 총장 측은 하루 뒤인 13일 박 원장과 제보자 조 씨, 그리고 성명불상자 1인을 국가정보원법 및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발했다. 지난달 이 세 사람이 자신에 대한 정치공작을 모의했다는 이유다.

그런데 윤 전 총장 측이 함께 고발한 성명불상자가 홍준표 캠프의 인사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번엔 박 원장과 홍 의원이 결탁해 윤 전 총장을 축출하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으로 번졌다.

홍 의원은 낭설이라고 일축하며 윤 전 총장에 날을 세웠다. 그는 지난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고발사주' 사건에 마치 우리 측 캠프 인사가 관여된 듯이 거짓 소문이나 퍼트리고 특정해 보라고 하니 기자들에게 취재해 보라고 역공작이나 하고"라고 썼다. 윤 전 총장이 홍 의원 캠프의 인사를 고발한 것을 두고 당내 경선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고의로 루머를 퍼뜨린 것으로 일축한 것이다. 의혹을 받았던 당사자인 홍준표 캠프의 이형필 씨는 해당 날짜의 동선, 영수증, CCTV 화면 등을 내세워 동석 사실을 부인했고 그 후 윤석열 캠프에서는 입을 다물고 있는 상황이다.

‘손준성 임명’ 책임 따지자 秋, 청와대 인사 개입 폭탄발언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가 지난 1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에서 100분 토론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한편 민주당 경선 토론회에선 추 전 장관이 경선 토론회에서 손 검사의 인사에 당청이 관련됐다는 취지의 발언을 흘리면서 새로운 의혹을 일으켰다. 추 전 장관은 지난 14일 MBC ‘100분 토론’ 주관 8차 대선경선 TV 토론회에서 이낙연 전 대표와 손 검사 인사를 둘러싼 책임론 공방을 벌였다,

손 검사는 지난해 2월 추 전 장관에 의해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에 임명됐고 7월까지 윤 전 총장의 곁을 지키다 8월 유임됐다. 그는 지난해 4월 여권 정치인에 대한 '청부 고발장'을 김웅 의원에게 건넨 의혹을 받고 있다. 이 전 대표는 이런 사실을 두고 유임될 당시 인사권자였던 추 전 장관에 대한 책임론으로 공세를 펼쳤다.

이 전 대표는 “고발 사주의 시발점이 된 분이 손준성 전 대검 수사정책관이다. 그런 사람을 왜 임명했나. 그때 장관이지 않았나”라며 따져 물었다. 이에 추 후보는 "나는 몰랐다. 그 자리에 유임을 고집하는 로비가 있었고, 지금 보면 바로 이런 엄청난 일을 꾸미고 있었던 것"이라고 밝혔다.

이 전 대표가 다시 "윤석열 전 총장의 로비였느냐"고 추궁하자 추 전 장관은 "윤 전 총장의 로비도 있었고 당에서도 엄호한 사람이 있었다. 청와대 안에서도 있었다"라며 대뜸 여권에서도 인사 청탁이 있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당내 경선 2~3위 대결구도가 치열한 상황에서 이 전 대표가 추 전 장관을 향해 공세에 나서자 추 전 장관이 오히려 되받으면서 청와대까지 끌어들인 것이다.

추 전 장관의 폭로에 예기치 못하게 엮인 청와대는 "답변할 사항이 아니다"라며 말을 아꼈다. 이튿날인 15일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YTN 라디오 '황보선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 추 전 장관의 전날 발언에 대한 질문을 받고 "정치는 정치권에서 논의해야 될 문제로 청와대가 왈가왈부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며 선을 그었다.

박 수석은 또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정치의 계절이 왔다고 해서 대통령과 청와대를 정치권으로 끌어들이려는, 유불리에 따라 이용하려는 것에 청와대는 휘말리지 않을 것"이라며 덧붙였다. 청와대의 자체 조사나 감찰 여부에 대해서도 "아직까지 그럴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반면 같은 날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KBS라디오 '주진우 라이브'에 출연, 추 전 장관의 발언에 대해 "인사 과정에 대해 마치 비호세력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인사 방식 절차를 무시한, 원칙을 위배한 것"이라며 "그러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검찰 인사는 법무부 장관이 총장과 협의해서 대통령한테 제청하도록 돼 있다"며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의 관계는 로비를 하거나, 압박을 하거나 이런 대상이 아니다 "라고 설명했다.

결국 추 전 장관도 진화에 나섰다. 그는 지난 16일 페이스북에서 “윤석열이 검찰총장으로서 조직을 사유화해 정치에 노골적으로 개입한 ‘윤석열의 난’에 그 하수 손준성을 누가 임명했느냐 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라며 “손준성으로 어그로를 끌어 자신의 죄를 회피하려는 것이 윤석열의 잔꾀인데 민주당 대선 후보가 동조하는 것은 대단히 어리석은 일”이라고 짚고 넘어갔다.

그러면서 “마치 강도를 잡았는데 수사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그 강도를 누가 낳았느냐를 캐묻는 것과 같이 한심한 질문”이라며 손 전 검사 임명 책임을 물었던 앞선 이 전 대표의 발언을 꼬집었다.

尹 관여 정황과 최초 작성자 색출은 아직도 오리무중

국민의힘 대권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고발사주 의혹 관련 고발장 작성자로 거론되는 손준성 전 대검 수사정보정책관(현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이 16일 오전 대구고검으로 출근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제공)
논란의 중심에 선 손 검사는 관련 의혹을 부인한 채 굳게 입을 닫고 있다. 손 검사는 자신을 향한 의혹이 불거지자 지난 3일부터 연가를 냈다가 최근 출근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손 검사는 범여권 인사에 관한 고발장을 전달했다는 의혹에 대해 “고발장을 작성하거나 전달한 바가 없다”며 의혹 자체를 완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지난 6일 출입기자단에 낸 입장문을 통해 “제가 고발장을 작성하거나 첨부자료를 김웅 의원에게 송부하였다는 의혹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근거 없는 의혹제기와 이로 인한 명예훼손 등 위법행위에 대하여는 강력한 법적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했다.

손 검사에 대해 곧 소환 조사가 진행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에 앞서 대검찰청 감찰부는 수사정보담당관실 직원들을 상대로 고발장 목격 등에 대한 조사를 벌였지만 의미 있는 진술이나 특별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가 '제보자' 조 씨와 김 의원의 텔레그램 대화방 원본은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텔레그램의 증거능력이 도마 위에 올랐다. 조씨가 공수처에 제출한 휴대전화에는 김 의원과의 텔레그램 대화방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가 윤 전 총장을 입건했던 만큼 만일 증거가 부실할 경우 역풍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와 관련해 조 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텔레그램 대화 소스를 디지털 원본 그대로 가지고 있고, 그것을 수사기관에 모두 제출했다"며 "이 부분은 '손준성 보냄'의 고발장 송부 대화록과 김웅 국회의원의 '확인하시면 방 폭파', 하는 부분도 모두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아직 분명한 실체적 진실이 없는 상태에서 여야에선 손 검사를 놓고 ‘니편 내편’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지난 16일 국회 본회의에서 열린 대정부질문에서 ‘손 검사가 윤 전 총장의 측근이냐’는 물음에 제보자인 조 씨 인터뷰, 그리고 대검과 공수처 진술 내용, 텔레그램 메신저 등을 이유로 “손 검사는 윤 전 총장의 측근 중의 측근”이라고 답했다. 국민의힘은 “일반 독자보다 못한 추리력”이라며 반발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손 검사가 윤 전 검찰총장 재임 당시 추 전 장관을 비판한 성명서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거론하며 공세를 펼쳤다. 조 전 장관은 지난 16일 페이스북에 지난해 11월 추 전 장관이 윤 전 총장에 대해 징계를 청구하고 직무배제 명령을 내렸을 때 대검 중간간부 27명이 참여한 성명서를 올리고 “윤석열을 옹호하고 추미애를 비판했던 대검 중간간부 성명서”라며 “손준성 이름이 맨 앞에 있다”고 강조했다. 조 전 장관의 게시물은 손 검사가 추 전 장관과 가까웠다고 주장한 윤 전 총장 측 입장을 반박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재형 기자



이재형 기자 silentroc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