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물류·호텔 등의 업종과 순환 생태계 구축에 주력

LG화학 대산공장 전경. LG화학이 친환경 제품 생산에 필요한 바이오 원료를 확보하기 위해 바이오디젤 전문기업 단석산업과 손잡고 대산사업장에 국내 첫 차세대 바이오 오일(HVO) 합작공장을 설립한다. (사진=LG화학 제공)
[주간한국 송철호 기자] 화학업계에는 순환 경제를 발전시키는 것이 세계적으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필수라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이에 대부분의 화학기업들이 재활용을 통한 환경보호 정책을 발표했고 이를 통해 환경보호는 물론 엄청난 잠재력과 풍부한 시장 기회가 생길 수 있다는 것에도 이미 동의하고 있다.

특히 버려지는 플라스틱이 심각한 환경 문제로 부각되면서 화학업계는 이를 재활용해 다시 자원화하는 ‘리사이클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화학업계가 타산업과의 협력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유통·물류·호텔 등 국민 생활과 상당히 밀접한 업계와의 협업을 통해 순환 생태계 구축에 주력하고 있는 것이다.

화학과 이커머스 거물의 ‘친환경 프로젝트’ 공개

전 세계 해양쓰레기의 80%로 추정되는 플라스틱 문제는 인류가 하루빨리 해결해야 할 숙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 정부도 해양 플라스틱을 2019년 대비 내년까지 30%, 2030년까지 50% 저감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미 다양한 플라스틱 제품이 생활 전반에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무작정 플라스틱을 감축하는 것은 쉽지 않다.

다행히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화학기업들이 발 벗고 나서고 있다. 물론 플라스틱 문제가 화학업계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플라스틱 소재를 개발하고 생산하는 주체로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좀 더 합리적인 개선책을 마련하겠다는 취지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근에는 이종산업과의 협업체계를 구축하는데 속도를 내고 있다.

일단 화학업계와 이커머스 시장을 주도하는 거물들이 최근 손을 잡았다. LG화학과 쿠팡이 지난 9일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플라스틱 폐기물 회수 및 재활용을 위한 친환경 프로젝트를 선보인 것이다.

이번 협약으로 쿠팡은 전국 물류센터에서 버려지는 연간 3000톤 규모 스트레치 필름(물류 포장용 비닐 랩)을 수거해 LG화학에 전달하고 LG화학은 이를 다시 포장재 등으로 사용 가능한 재활용 소재로 만들어 쿠팡에 공급하기로 했다.

양사의 친환경 프로젝트는 쿠팡 물류센터에서 회수 가능한 플라스틱 자원을 LG화학 PCR(Post-Consumer Recycle) 기술을 통해 폴리에틸렌(PE) 필름 등으로 재활용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PCR은 사용 후 버려진 플라스틱 폐기물을 선별, 분쇄, 세척 등의 재가공을 통해 플라스틱 알갱이(Pellet) 형태의 초기 원료로 변환시키는 재활용 기술이다.

환경단체의 한 관계자는 “화학업계를 비롯해 전반적인 산업에서의 친환경 경영이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유통업계의 친환경 경영은 바로 국민들 인식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며 “앞으로 유통기업들이 소비자를 상대로 출시하는 제품에 업사이클링 등 친환경적 노력이 녹아 있지 않다면 가치소비를 중시하는 요즘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힘들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계 간 협업부터 생분해성 플라스틱 개발까지

‘탄소에서 그린’(Carbon to Green)으로 사업 구조 대전환을 선언한 SK지오센트릭(옛 SK종합화학)과 글로벌 제지기업 APP그룹이 지난 15일 MOU를 체결하고 친환경 종이 포장재 개발을 위한 동행을 시작했다. 양사는 이번 협력에 따라 신규 친환경 포장재 개발을 위한 재활용 제지 등 종이 소재 공급 및 친환경 소재 개발·도입 등의 분야에서 공동으로 협력한다.

기존에 플라스틱 소재가 적용된 종이 포장재는 플라스틱과 종이 소재의 분리가 어려워 재활용하기 쉽지 않았다. 그러나 두 회사가 솔루션을 통해 SK지오센트릭 고기능 친환경 소재를 종이 포장재에 적용하게 되면 재활용이 가능해 환경문제 해결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미 SK지오센트릭은 올해 초 워커힐과 업무협약을 통해 플라스틱 사용량 저감뿐만 아니라 재활용이 가능한 플라스틱 재활용 소재 개발과 활용, 웨이스트(Waste) 플라스틱 수거 등 플라스틱 생태계 조성을 위한 상호 협력을 진행하고 있다. 이를 위해 SK지오센트릭은 워커힐에 기술력 및 관련 인프라를 제공하는 등 효율적인 친환경 호텔로의 전환을 지원 중이다.

물류업계의 친환경 배송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특히 롯데케미칼과 유통·물류기업 한국컨테이너풀(KCP)이 지난 5월부터 재활용 및 재사용이 가능한 ‘발포폴리프로필렌(EPP) 배송용 보냉박스’를 공동으로 개발하고 유통·물류업계에 공급하고 있다.

EPP 배송용 보냉박스는 기존 새벽배송에서 사용하고 있는 종이 박스나 스티로폼 박스보다 보냉 성능이 우수하다. 또 반복 사용이 가능하며 단일 소재로 제작돼 재활용이 용이한 점이 특징이다. 롯데케미칼은 최근 비대면 소비문화가 증가하는 추세에 맞춰 냉동·신선제품 등의 배송에 활용이 가능한 EPP 배송용 보냉박스를 신선식품 배송업체 등에 공급하고 있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화학기업들이 다양한 친환경 신소재와 제품을 개발하고 있지만 국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유통·물류·호텔 등의 업계 도움 없이는 플라스틱 순환경제가 본격화될 수 없다”면서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화학업계는 잘 분해되고 썩는 플라스틱 소재 개발에 더 주력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바이오 플라스틱 상업화가 곧 실현된 것으로 보인다. LG화학이 지난 13일(현지시간) 글로벌 4대 메이저 곡물 가공 기업인 미국 아처 대니얼스 미들랜드(ADM)와 손잡고 합작공장 설립에 나섰기 때문이다. 옥수수를 원료로 한 바이오 플라스틱 상업화가 목적이다.

양사는 내년 1분기에 본 계약 체결을 목표로 2025년까지 미국 현지에 연산 7만 5000톤 규모 생분해성 섬유인 PLA(Poly Lactic Acid) 공장 및 이를 위한 LA(Lactic Acid) 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다. 한국 기업이 원재료부터 제품까지 통합 생산이 가능한 PLA 공장을 짓는 것은 LG화학이 최초다.

PLA는 옥수수에서 추출한 글루코스(포도당)를 발효·정제해 가공한 LA를 원료로 만드는 대표적인 생분해성 플라스틱이다. 100% 바이오 원료로 생산돼 주로 식품포장 용기, 식기류 등에 사용되며 일정 조건에서 미생물 등에 의해 수개월 내 자연 분해되는 친환경 소재다.

화학산업은 이제 환경오염이라는 인류 생존 문제의 가장 중심에 서 있는 산업으로 여겨지고 있다. 안전하고 친환경적 생산 공정을 비롯해 재활용이 용이한 소재, 생분해가 가능한 소재까지 미래 사회가 화학산업에 요구하는 가치는 과거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까다로워지고 있다.



송철호 기자 song@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