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 칼럼]점증하는 차이나 리스크와 요원한 붉은 자본가의 재림
기사입력 2021-10-08 14:02:29
‘선부론’(先富論)과 ‘공부론’(共富論)의 충돌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불거진 차이나 리스크는 통상적으로 거론되던 중국의 과도한 부채, 구조적 성장둔화(일정기간 정체돼 학습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고원현상‘), 저임금 우위 소멸 및 고령화사회 진입 등의 설명과는 결을 달리하는 듯하다. 특히, 4차산업의 총아로 중국 정부가 스스로 자랑스러워 했던 IT 플랫폼 산업에 대한 중국 정부의 전방위 압박은 차이나 디스카운트를 매우 다른 각도에서의 분석해야 함을 강요하고 있다. 중국식 규제 리스크의 대표적 희생물이 된 마윈 회장의 알리바바는 지난 1년간 50%가 넘는 주가하락을 경험했다. 이를 단순히 글로벌 금융시장의 하향조정 또는 개별회사가 처해있는 성장통으로 치부하기에는 지나치게 가혹하다.
오히려, 알리바바를 위시로 한 중국 빅테크가 겪고 있는 가파른 주가 하락은 이른바 ’중국식 사회주의 모델‘을 둘러싼 근원적 이념 충돌에 기인한다는 의심을 짙게 한다. 즉, 덩샤오핑 주석이 개혁개방을 창도할 당시 골수 자본주의자인 롱이렌을 경제부주석로 깜짝 임명하면서 정책의 기준점이 되었던 ’우선 부자가 되자‘는 ‘선부론’(先富論)의 깃발이 흔들리고 있다는 의심이다.

이 같이 선부론이 40여 년 만에 흔들리고 있음에는 부쩍 미디어상에 노출이 빈번한 ‘공동부유론’ (共同富裕論)이 선부론 공격의 선봉에 서있는 것으로, 두 가지의 상이한 가치가 충돌한 채 어떤 수정과 타협을 할지 손을 놓은 채 불확실성만 점증하고 있다.

선부론은 ’쥐 잡는데 백묘(白猫)와 흑묘(黑猫)를 가릴 필요 없다‘는 실용주의 노선에 기반으로 하는 반면, 공부론은 ’이제 같이 잘살자‘는 분배주의 노선을 뿌리로 하고 있다. 창업 몇 년만에 수 조원 내지 수십 조원의 부를 이룬 IT 플랫폼산업과 그 오너들을 향해, 분배주의자들이 ’플랫폼은 공공재‘라는 프레임을 씌워 준국유화까지 압박하고 있는 것은 IT플랫폼과 예컨대 전력플랫폼에 큰 차이가 있을 수 없다는 비교논리에 기인한다.

생각이 더 좌클릭 된 이들은 모든 플랫폼 산업이 공공재적 성격으로 운용되어야 한다는 포괄적 당위론까지 끌어들인다. 이들은 신기술 IT 플랫폼이라 하여 특정집단에 막대한 부를 할애하는 것이 타당하려면 플랫폼의 치명성 측면에서는 오히려 전력회사나 가스회사 같은 곳에는 더 큰 부를 몰아줘야 하고, 유사한 논리로 경제의 가장 기본요소의 공급자들인 상하수도, 통신망 및 도로망 사업자들에게도 똑같은 특혜를 허용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따라서 이 같은 공부론은 IT 플랫폼에 대한 과도한 사회적 기여의 강요 내지는 심지어 온라인 교육업체의 실질적 준국유화 조치를 이끌어 낸 이론적 배경이 되고 있다는 점이 새롭게 불거진 차이나 리스크의 현실이다. 성공한 중국계 상장기업의 가장 큰 우발채무는 ’가늠할 수 없는 수준의 강요된 사회적 부채‘라는 자조적 분석이 맞다면 중국 주식을 통칭하는 레드칩의 가격 상승폭은 보이지 않는 천정에 갇힌 운명이 되고 만다.

요원한 붉은 자본가(紅色資本家)의 재림

뼛속까지 자본주의자인 롱이렌 부주석이 주도한 개혁개방의 골자는 ’공기업 민영화‘를 통해 중국기업의 체질개선을 꾀하되, 크던 작던 외국자본을 핵심적 촉매제로 사용하자는 것이었다. 영입된 외자와 외국인 주주가 기존의 중국 조직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소위 ‘메기효과’(Catfish Effect)를 가져올 것을 계산에 넣은 것이다. 그 결과 만성 저생산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중국 기업은 놀라운 혁신을 거쳐 재탄생이 가능했다.

롱이렌 모델은 자신의 혁신실험을 거쳐 생존한 민영화 모범사례를 산업별로 발굴, 막대한 금융지원을 추가한 후 공동체 전체의 성장지렛대로 삼았던 것이 골자이다. 한편으로 그가 한국의 새마을 운동과 근대화 사례 등을 불철주야 연구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기도 하다.

이러한 롱이렌 모델의 성공에 따라, 중국은 오늘날 글로벌 공급체인망의 가장 단단한 하부구조를 놀랍도록 단기간에 응축했다. 롱이렌 부주석은 ‘붉은 자본가’로 칭송받았다. 이는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보였던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변증법적으로 결합하는 리더십을 창조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현대 중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쑨원 곁에 현대 중국경제의 아버지로 롱이렌이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이들 선대의 붉은 자본가가 뿌린 씨앗에 힘입어 중국(홍콩 포함)은 2021년 포춘지 선정 500대 글로벌 기업 리스트에 무려 135개 업체가 선정(상위 10위 중 3개 포함) 되기에 이르렀고, 개혁개방 이래 리만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의 약 30년 동안 자본주의 역사상 유래가 없는 연평균 10%가 넘는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구가했던 것이다.
물론, 지난 30~40년간의 중국 모델 상의 공기업 민영화에 초기 뒷돈을 댄 외국자본 역시 엄청난 투자수익을 향유했다. 알리바바의 경우에도 실은 초기 종잣돈으로 참여한 일본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의 미화 2000만 달러에 힘입은 바 크다. 소프트뱅크의 알리바바 투자수익이 한때 투자금 대비 2,000배를 넘어섰다. 이에 따라 40인의 도적들에게서 부를 훔친 ’진정한 알리바바‘는 모험자본가인 외국인 손정의가 아니냐는 유머가 업계에서 회자되기도 했다. 주목할 만한 것은 롱이렌 모델도, 마윈의 성공방정식도 중국적 요소를 밑그림으로 하되 선구안을 지닌 외국자본을 접목시킴으로써 창의성과 혁신성의 꽃을 피웠다는 공통점이 있는 것이다.

복합리스크가 불거진 레드칩(Red Chip)

중국 주식은 어느새 글로벌 증권시장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렇지만 최근 중국 대표주식들의 급락 사태는 글로벌 포트폴리오 내에서 중국물 비중을 키워왔던 유수 펀드매니저들의 아픈 손가락이 됐다.

1980년대 이래, 위로부터의 경제발전을 이끌어 왔던 중국정부가 스스로 닦아온 발전모델을 부정하는 것으로 비치고 있기 때문이다. 해묵은 미중 갈등과 더불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글로벌 유동성 통제 등의 외생변수도 차이나 디스카운트에 마이너스의 골을 더 깊게 하고 있다.

상황이 이와 같은데도, 21세기 중국에 돌출된 공부론에 대응하여 20세기의 선부론을 융합해줄 신진 붉은 자본가의 출현은 요원해 보인다. 작금의 공부론 광풍이 1960~1970년대에 불어닥친 문화대혁명을 연상케 할 만큼 거세기 때문이다.

고위층 앞에서 '입방정'을 떨었다는 마윈 회장이 그 뒤 3개월 여 동안 종적이 묘연했던 것처럼 옛 소련 치하에서 10년간 투옥된 솔제니친과 오버랩 되는 사건이 다시 일어난다면 이 같은 우려는 소름끼치는 현실이 될 것이다.

이 시점에서 만일 붉은 자본가의 재림이 없다면 광범위한 부의 나눔에 대한 담론이 포퓰리즘적 인기를 얻는다 한들 사회적 부의 총량을 급감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것이다. ‘일대일로’(一?一路)로 불리는 시진핑의 신작로 역시 쥐를 잡아주는 백묘와 흑묘 모두를 공포에 떨게 하는 상태로는 개통을 보장할 수 없다.

섣부른 공부론은 종국에 ‘공빈론’(共貧論)으로 변질되기도 쉽고, 한번 끊어진 성장동력은 되살리는데 몇 배의 공력이 든다는 것을 경험한 처절했던 문화혁명의 퇴보와 남겨진 생채기를 반추하며 되새겨야 할 일이다.

우선 중국정책 당국은 ’괘씸죄‘의 심정을 내려놓고 IT플랫폼 업계가 동네북이 된 것과 공부론을 냉정히 절연하여야 한다. 예컨대 1990년대 초반 이동통신사업의 통신료 과금이 전세계 모든 정책당국이 풀어야 할 수수께끼였듯이, 플랫폼 업계에 대한 과금 역시 현재로서는 난제로 보이나 영원한 미스테리는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적 책임이라는 면에서 조정이 필요한 사업군은 별도의 챕터로 갈무리하고, 우선 복잡한 물리학과 로지스틱스 이론까지 접목된 이동통신업계의 과금모델을 살펴봐야 한다. 또한 수익과 비용을 사후에 보정하는 ‘룩백옵션’(Look Back Option)이 내재된 전기료 과금방식의 장단점도 차용할 필요가 있다. 구글이나 아마존, 넷플릭스처럼 국경을 넘나들며 무임승차를 즐기는 다국적 플랫폼업체와 토종 플랫폼 업체간의 형평성 또한 잘 감안해 버무린다면 무언가 합리적 방안이 도출될 수 있을 것이다.

특별히 중국이기에 이 같은 변수들의 분해와 재결합이 다른 어떤 나라보다 빠를 수 있다. 반면에 모든 플랫폼 사업을 공공재로 도치하자는 최면술에 빠져드는 순간 공공이익 환수나 수익 캡(Cap)과 같은 후행적 화두의 덫에서 벗어나올 수 없게 된다. 이 같은 이념적 논리가 광기를 타고 전산업으로 확장되면 중국 MZ세대(밀레니얼+Z세대)에서 돋보이는 ’말랑말랑하고 톡톡튀는 창의적 사고’(Out-of-Box Thinking)는 멸종의 위협을 받게 될 것이다.

'잃어버린 30년'은 일본만 겪는 토속병이 아니다. 색깔을 달리하여 고성장 국가인 중국에게도 얼마든지 도둑처럼 닥칠 수 있다. 만일 중국이 지금의 변곡점에서 창의적 해법과 사회적 합의를 일궈내지 못하면 ‘덩샤오핑-롱이렌’ 이전의 마오쩌둥 시대로 퇴보하는 것도 한순간일 수 있기 때문이다.



● 김문수 Aktis Capital(Hong-kong) 최고 투자책임자(CIO)

1995년 골드만삭스(홍콩)에 입사한 이래로 20여년간 홍콩기반 아시아 전문 투자업에 종사하고 있다.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후 산업은행 딜링룸에서 국제금융을 익히고 씨티은행, 메릴린치 등 유수 투자은행에서 국제채권, 외환, 파생상품 및 M&A등을 경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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