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가 ‘초연결 사회(Hyper-connected Society)’임을 최근 요소수 대란을 겪으면서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한국의 물류산업이 요소(분자식 CH4N2O)라는 인공화합물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는 취약성도 새삼스럽다. 특히, 요소의 원료인 암모니아의 한국 공급을 거의 독점하고 있는 중국이 한반도를 향해 색다른 칼자루를 쥐고 있다는 점도 스산하게 느껴진다. 언론은 요소수 대란에 요란한 듯하나 한국 증시에서 외국인 급매도 현상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마트 진열대 생필품도 그대로 쌓여있다. 물류대란이 임박했다면 생필품 사재기로 대형마트는 북새통이 될 수도 있지만 한국은 차분하다. 하지만 국제 원자재 시장은 들썩이고 있다. 요소의 원료인 암모니아 가격이 4배 이상 폭등하였고, 한국에서 요소수 소매가가 연초 대비 10배를 넘어섰다는 점은 향후 원자재 가격의 급등락을 전조하고 있다.

[표. 국제 암모니아 가격추이]

한편, 요소수 대란과 국제원자재가격의 변동성은 ‘키코’(Knock-In Knock-Out)의 변곡점에서 나타나는 시장움직임과 소스라치게 닮아있다.

현 요소수 사태의 단면은 위 그래프와 같이 X축을 요소수 공급으로, Y축을 사회적 효익으로 설정한 요소수 KIKO 그래프로써 설명된다. 요소수 공급이 수평선 상의 리스크 고조(공급단절)구간으로 이행되는 시나리오에서는 더 큰 긴장상태가 촉발된다. 평상시에 해당하는 수평선 상의 미분값, 즉 기울기는 0 이다. 따라서 이에 해당하는 사재기나 국제 원자재 ‘패닉 바잉’도 없다. 하지만 요소수 공급이 ‘녹인’(Knock-in) 포인트로 접근하기 시작하면 내재기울기가 급격히 꺾여 급기야 90도가 되는 절벽 구간에 진입하게 된다. 이 지점에서는 이론상 미분값이 무한대로 발산하게 된다.

요소수 품귀가 물류전쟁으로 번지게 되면 국제 원자재인 요소나 암모니아 가격이 단기 폭등하게 되는 메커니즘이 이와 같은 상황에서 발생한다. 전시에 태환통화인 미 달러화나 금으로 단기수요가 급속히 몰리는 것과 근본적으로 동기는 같다. 반대의 논리로, 이 같은 위기는 발생한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소멸될 수 있다. 절벽에서 무한대로 발산하는 기울기가 상황이 안정되어 수평고도를 되찾게 되면 매우 빠른 속도로 다시 0으로 수렴하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기 수급을 안정화하여 상황을 절벽에서 가급적 멀어지게 하는 응급조치가 요소수 사태의 해결을 위한 급선무가 된다. 가령, 제3 세계 국가의 외환위기 양태를 보면 위기국가에 속한 기업체들이 환투기 세력의 주력이 되어 반역의 선봉에 서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음을 알 수 있다. 시장접근성을 빌미로 태환통화인 달러화나 유로화를 무역 실수요 증빙이라는 미명 하에 사재기 하는 일이 비일비재 했다. 이익에 굶주린 기업은 생존과 수익을 위해 실수요 증빙을 부풀리거나 조작하는 방법으로 희소자원을 거래처에 파킹하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요소수 대란에도 이 같은 외환위기 대응 매뉴얼을 응용해 볼 만하다. 원자재에 대한 접근성을 가진 기업이나 중간상 등이 위기의 증폭기 역할을 할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루블 사태에 이르러 이 같은 환투기 세력을 총으로 다스렸고, 남미는 방치했으며 한국은 금 모으기 같은 헌신으로 국민정서에 호소를 한 바가 있다. 국가의 주인이 누구인가와 누가 운전석에 앉아 있느냐를 나타내는 처방전이 아닐 수 없다.

인플레이션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

최근의 요소수 사태는 비료 값 급등과 양의 상관관계를 보이고 있고, 혹자는 이른바 애그플레이션(농산물값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으로 확전될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게다가 기후위기를 대처하고자 설계된 탄소배출권 억제의무에 따라 요소수 부족은 물류대란으로 더 크게 확장되고, 물류비 상승을 부추겨 인플레이션을 가속화하는 추가적 변수로 등장할 가능성을 지적한다. 유념할 일임에 틀림없다.

한편, 이 같은 시나리오들과는 별도로 인플레이션이 끼치는 해악은 국가별로 빈익빈 부익부를 심화하게 될 가능성도 높다. 가령, 지난 10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기 대비 6.2% 상승해 무려 3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였음에도, 미국 국채금리는 겨우 몇 bps 정도 오르는데 그쳤다. 십 수년 전 쯤이라면 이같은 충격적 시장지표는 국채시장의 사망선고와 다름이 없었을 텐데 말이다.

즉, 미국 역내 인플레이션 지표는 야생마처럼 변해가는데 비해, 미국 국채금리는 횡보장에 길들여져 있는 것에 주목하여야 한다. 잠깐 주춤하던 증시도 곧바로 회복세를 되찾고 있으니 전통적 거시경제이론과 엇박자를 나타내고 있다.

거시통계상 지난 10여년간 미국 금융시스템에 엄청난 통화증발이 일어났지만 인플레이션은 발생하지 않았다. 향후 인플레이션 지표는 눈의 띄는 등락을 보일지라도 역내 유동성 총량은 상당기간 위협적으로 감소하지 않을 것임을 시장참여자들이 지지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상은 미 달러화가 가진 기축통화의 마법에서 비롯한다. 미국에 돈이 풀려도 인플레이션은 발생하지 않았듯이, 향후 상당기간에 인플레이션 징후가 있어도 역내 유동성은 줄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또한 마르지 않는 유동성의 샘이 채권시장과 주식시장을 오아시스처럼 보호할 것이라는 논리이다. 국제결제통화인 미 달러화의 역내 잉여는 이미 해외금융기관을 상대로 한 대출형태로 많이 풀려나가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메커니즘이 미국에서의 양적완화가 실제로 글로벌 양적완화로 되고 만 이유이다. 결제통화라는 말은 단지 무역결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신용시장의 예금과 대출의 기본통화로 개시되고 지불되며 저장되는 것을 말한다. 이 같은 방식을 통한 신용잉여의 역외수출은 잠재 인플레이션의 수출과 동일한 메커니즘으로 지난 10 여 년간 미국시장의 안팎에서 진화해 왔다.

이제 반대의 경우로, 미국 역내에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해 금리가 일정폭 상승하고 이에 따라 유동성 흡수가 일어나면 1차적으로 역외로 풀려나간 잉여 유동성이 소환되어 축소될 것이다. 이에 따라 뜻하지 않게 미국 양적완화로 혜택을 봤던 제 3세계 국가에게는 이 같은 미국의 긴축이 큰 위협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제3세계를 유동성 저수지로 활용하고 있는 미국은 이들을 완충제로 삼으면 그뿐이다.

문제는 자국의 잉여 유동성을 역외로 이관하기가 불능하였던 하위국가에서는 인플레이션의 피해가 유동성의 축소라는 악몽과 더불어 발현하게 된다. 브라질은 벌써부터 두 자리 수 인플레이션을 넘나들고 있고, 기타 남미권의 취약국은 100% 이상의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겪은 지 오래다. 신용도가 낮은 가난한 자는 금리인하 및 금리인상에서 이중고를 겪듯이, 빈국 역시 금리인하 및 금리인상에서 이중고를 겪는 빈익빈 부익부의 심화가 우려되고 있다. 예컨대 터키는 이미 미니 외환위기에 접어들고 있기도 하다.

요소수 사태를 비롯한 글로벌 공급망의 오작동에 정치적 색안경을 끼면 해법이 읽혀지지 않는다. 요소수 사태는 수급 사태로 정의를 내려 풀어나가야 한다. 복잡하게 얽힌 인플레이션에 대한 방정식은 역내 및 역외시각과 미국을 정점으로 한 글로벌 자금흐름 시각까지 감안해 치열하게 모니터링하며 대처할 일이다. 요소수 사태는 헤프님으로 끝날 개연성이 높지만 한국이 국제 공급망의 사슬에 엮여 있음을 겸허히 인정해 안으로는 리더십으로, 밖으로는 스킨십으로 현재의 난국을 헤쳐 나가는 수밖에 없다.

암모니아는 약 100년 전 인류가 직면했던 식량난의 구원자로 등장한 바 있다. 산업혁명에 따른 인구 급등의 이면에 식량위기가 다가올 무렵, 독일의 화학자인 프리츠 하버와 칼 보슈가 공기 중의 질소로 암모니아를 합성하는 ‘하버-보슈 공법’을 창안함으로써, 화학비료의 신기원을 이뤄 인류를 굶주림에서 해방시킨 바 있기 때문이다.

100년이 지난 지금에 암모니아는 청정에너지의 중심매개체로 기후위기에서 인류를 다시 한번 구원할 유력한 화합물로 대두되고 있어 그 용도가 수평-수직으로 확장되는 상황이다. 상황이 이러하다면, 한국도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폐쇄한 암모니아 생산기지를 신속히 재가동하는 ‘리쇼어링’ 방법을 동원하는 것도 중장기적으로는 간명한 해법이 될 것이다. 또한 최근 공급절벽의 위기를 한국이 ‘그린 암모니아‘라는 소재강국으로 재탄생될 계기로 삼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

● 김문수 Aktis Capital(Hong-kong) 최고 투자책임자(CIO)

1995년 골드만삭스(홍콩)에 입사한 이래로 20여년간 홍콩기반 아시아 전문 투자업에 종사하고 있다.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후 산업은행 딜링룸에서 국제금융을 익히고 씨티은행, 메릴린치 등 유수 투자은행에서 국제채권, 외환, 파생상품 및 M&A등을 경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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