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창] 독도로 틀어진 한일 관계에 발목 잡힌 종전선언
백종민 아시아경제 뉴욕특파원 cinqange@asiae.co.kr 기사입력 2021-11-19 16:04:54
한·미·일 삼각 공조 위기
  • 최종건 외교부 제1차관(왼쪽)이 지난 17일 오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소재 국무부에서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부장관(가운데), 모리 다케오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이 참석한 제9차 한미일 외교차관 협의회 기념촬영에 응하고 있다. (사진=외교부 제공)
미국에 있어 한일 관계 개선과 종전 선언 중 무엇이 우선일까. 최근 만난 미국의 한 정가 소식통이 전해 준 워싱턴의 기류는 이에 대한 힌트를 줬다.

조 바이든 미국 정부에게 한국이 추진하는 종전선언보다 한일 관계 개선이 더 급선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는 것을 핵심 외교 관계 인사들이 공공연하게 말한다는 것이었다.

바이든 정부 들어 동맹관계 복원, 중국과 북한 문제에 대해 동맹과의 연합 전선 구축을 계속 강조하면서 예상됐던 상황이 현실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일 외교 차관 회의 후 예정됐던 브리핑에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만 참석하고 한일 외교 차관은 불참했다. 미국의 심장부에서 전례가 없는 외교 참사가 벌어진 것이다.

셔먼 부장관은 당시 상황에 “한동안 그랬듯이 일본과 한국 사이에 계속 해결되고 있는 일부 양자 간 이견이 있었다”고 말했다. 셔먼 부장관이 누구인가. 그는 과거 한일 위안부 합의를 주도했던 인사다. 미국이 한일 관계의 간극을 좁히겠다는 노력을 기울이는 상황에서 한국보다는 일본 측 입장을 두둔할 가능성이 크다.

셔먼 부장관이 회담 결과는 건설적이었다고 강조했지만 세 나라가 함께 발표할 수 없는 합의에 무게가 실리기 어렵다. 일본의 동의 없이 미국이 종전선언을 추진하기 어렵다는 현실만 확인한 셈이다. 미국의 전문가들도 종전 선언보다는 한미일 삼각 공조가 위기에 처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스콧 스나이더 미 외교협회 한미 정책국장은 “한미일 삼각 공조가 직면한 도전을 상징하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스나이더 국장은 또 한일 간 이견이 북한 비핵화 공조에도 “간접적인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친한 인사로 꼽히는 스티븐 노퍼 코리아 소사이어티 선임국장 겸 컬럼비아대 교수도 미국의소리 방송(VOA)과의 인터뷰에서 “한일 간 갈등 때문에 한미일 협력과 공조가 줄어드는 것은 실망스럽다”고 우려했다.

노퍼 국장은 “미국이 매우 어려운 입장에 처해 있다”며 “미국은 분명히 한국, 일본과의 각각의 동맹관계는 물론 세 나라 관계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한일 관계가 개선되지 않는 한 북한 비핵화에 대한 일본의 협조를 기대할 수 없고 한국이 희망하는 종전선언도 순조롭게 이뤄지지 않을 것임을 예견한 분석이다.

한미일 차관 협의에 대한 셔먼 부장관의 브리핑도 종선 선언에 대한 논의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셔먼 장관은 종전선언 협의에 매우 만족한다면서도 여전히 한미간에 종전선언에 대한 결론, 선언 시점에 대해 협의가 계속될 것이라고만 답했다.

국무부의 입장은 좀 더 명확했다. 외교부는 최종건 1차관과 셔먼 부장관이 현재 진행 중인 종전 선언 관련 협의에 대해 만족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국무부의 발표문에는 한반도의 비핵화에 대한 부분만 거론했다.

심지어 미일 차관 회담에 대한 발표문에는 두 사람이 북한과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공동의 약속에 대해 논의했으며 21세기 세계적인 도전 과제들에 맞서기 위한 한미일 3국 협력의 중요성을 재확인했다고 언급했다. 미국이 언급한 도전과제가 중국과 북한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결정적인 패착은 전 세계 언론이 이번 공동 기자회견 불발 사태가 독도 문제에서 비롯됐다고 보도하고 나선 것이다. 일본은 북한 비핵화와 종전선언에 대한 이슈를 독도 문제로 반전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번 상황을 보도한 대부분의 외신들이 독도가 한국이 지배하고 있지만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독도 영유권에 대한 일본의 주장을 주요 외신들이 일제히 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 진 것이다. 우리 정부 입장에서는 종전선언이라는 민감한 이슈에 드라이브를 거는 상황에서 일본의 반발이 예상되는 상황을 사전에 방지하지 못한 것은 분명 패착이다.

미국의 우선순위는 대사 임명에서도 견주어 볼 수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8월 니콜라스 번스 중국 대사 내정자와 람 임마누엘 일본 대사 내정자를 발표했다. 한미간의 경제 관계 강화를 강조하는 상황에서도 미국은 중국과 일본 대사 내정 후 3개월이 지나도록 주한 대사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

주한 대사가 공석인 상황에 대해 해리 해리스 전 주한 미 대사는 “한국의 친구들로부터 주한 미 대사 공석 상황에 대해 우려하는 전화와 이메일을 자주 받고 있다. 실망스러운 일”이라고 경계했다.

종전선언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전 주한 대사와 전 한미연합사령관의 입에서도 나왔다. 한미일 차관회의 결과 발표가 파행으로 이어지던 시점에 뉴욕에서 코리아소사이어티 주최로 열린 ‘2021년 한국에서의 미국의 외교와 안보’라는 주제의 세미나에 참석한 해리스 전 대사는 “종전선언에 서명이 되면 그 다음날 무엇이 달라지는지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미 ‘정전협정’이라는 이름으로 종전선언은 이뤄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로버트 에이버럼스 전 한미연합사령관은 “(북한에) 주기만 하는 것은 종전선언에 대한 바른 접근 방식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는 종전선언이 상징적인 것에 불과하고 법적 의미가 없을 것이라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인도태평양 사령관 출신인 해리스 전 대사는 “북한과의 대화와 군사적 대비 태세는 동시에 유지해야 하는 것”이라면서 “이상주의는 현실주의에 바탕을 둬야 한다”고 강조하며 북한과의 대화를 유지하기 위한 한미 합동훈련 유보에도 유감을 드러냈다.

백종민 아시아경제 뉴욕특파원 cinq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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