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방지법’은 n번방을 방지할까?
이재형 기자 silentrock@hankooki.com 기사입력 2021-12-17 16:36:50
n번방 사건 진원지 텔레그램은 ‘사적대화방’이라 빠져나가
  •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GIF 사진을 첨부했더니 디지털 특징정보를 확인하고 있다는 메시지가 뜬 모습.
[주간한국 이재형 기자] 지난 10일 시행된 ‘n번방 방지법’(전기통신사업법 및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정부의 국민 메신저 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개입을 우려하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디지털성범죄 영상의 유통을 근절하기 위해 마련된 이 제도는 이용자가 오픈된 채팅방에 불법촬영물 등 영상이나 사진을 올릴 경우 정부 지침에 따라 카카오톡 등 부가통신사업자들이 차단하는 등 ‘기술적·관리적 조치’를 할 수 있게 했다. 이를 놓고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국민 검열’이라며 법 재개정을 시사했다. 반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사전검열’이 아니라고 맞서는 등 정치권에서도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기술적·관리적’ 조치의 법적 근거는? 전기통신사업법 제22조의 5는 웹하드사업자 또는 일정규모 이상의 부가통신사업자는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등 불법촬영물의 유통을 방지하기 위한 기술적·관리적 조치를 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검열’ 논란이 불거진 삭제 기능은 동법 시행령 제30조의6의 ‘이용자 게재 정보의 특징을 분석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가 심의의결한 불법촬영물등에 해당하는지 비교·식별 후 그 정보의 게재를 제한’하는 규정이다.

필터링은 어떻게? SNS에 올라간 영상이 불법촬영물에 해당하는지 판별할 때는 ‘디지털 특징정보’를 이용한다. 디지털 특징정보란 동영상 속 이미지를 기계적으로 읽은 데이터다. 디지털 특징정보는 영상 속 ‘주파수 성분’을 바탕으로 추출한다. 영상 화면에서 화소의 밝기가 자주 변하는 면적은 ‘고주파’ 성분으로, 줄곧 어둡거나 밋밋한 부분은 ‘저주파’ 성분으로 분류하는 식이다. 화면에서 고주파인 면적과 저주파인 면적이 대비돼 ‘경계선’을 형성한다. 가령 하얀 배경에 사람이 서있는 장면에서 사람이 나온 면과 배경 면의 접점에서 생긴 윤곽을 경계선이라고 할 수 있다. 시스템은 영상 속 경계선이 움직이는 내용을 숫자 데이터(코드)로 추출한다. 데이터베이스(DB)에 있는 영상의 코드(기준)와 채팅방에 올라온 영상의 코드를 추출한 후 서로 일치하면 차단한다.

딥러닝 활용해 변형된 영상도 적발 채팅방에 올라온 영상이 원본 영상에서 일부 잘리거나, 흐릿하게 화질이 떨어지는 등 변형이 발생할 수 있다. 딥러닝은 기준 영상과 채팅방에 올라온 영상이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더라도 서로 비슷하면 차단할 수 있도록 학습시키기 위해 사용된다. 그럴 경우에도 경계선 등 핵심 정보가 일치하면 적발할 수 있도록 딥러닝으로 영상이 변형된 경우를 학습한다. 각종 보안에 활용되는 지문인식 기술과 유사하다고 생각하면 쉽다. 지문인식도 처음 DB에 입력할 때는 지문 전체의 문양을 정확하게 찍어야 하지만 이후 출입할 때는 지문의 일부만 찍혀도 판별이 가능한 것과 같은 이치다. 이 기술은 음란 영상 속에 드러난 성기 등 이미지를 학습한 후 별개의 새로운 영상에도 적용하는 식의 응용력은 없다. 전문가들은 “시스템이 영상의 ‘의미’를 파악하지는 않는다”고 표현한다. 단순 두 영상의 일치 여부만 하기 때문에 인공지능(AI) 기술이 쓰이지 않았다.

엉뚱한 영상을 차단하는 건 왜? 전문가들은 앞으로 단순히 고양이가 등장하는 영상처럼 불법촬영물과 상관없는 자료가 차단되는 오류가 발생한다면 시스템보다는 DB가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가령 DB에 수록된 1개의 기준 영상에서 9분은 실제로 불법 촬영 장면이고 1분은 단순히 벽면을 찍은 경우를 가정해볼 수 있다. 채팅방에 올라온 영상의 디지털 특징정보를 추출한 결과 앞서 9분과는 무관하고 1분짜리 벽 영상과 구도와 이미지와 유사하다면 차단될 수 있다. 벽면 1분과 같은 불필요한 정보를 삭제하는 데이터 정제 작업을 통해 이 같은 오류를 줄일 수 있다.

기준이 되는 DB는 어떻게 만드나? 민간기구인 방심위가 문제 영상을 접수한 후 위원회 심의를 거쳐 불법촬영물로 규정하면 방통위에서 해당 영상 속 디지털 특징정보를 추출해 DB에 추가한다. 지난 9월까지 ‘디지털성범죄 등 공공 DNA DB’에 수록된 디지털 성범죄 영상은 총 2만9486건이며 이중 불법 음란물이 2만2777건,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이 1284건, 불법촬영물 등은 5425건이다.

검열 대상 텔레그램이 빠졌는데... 방통위는 불법촬영물에 대한 기술적?관리적 조치의 대상을 1대1톡, 단체톡 등 사적 대화방이 아닌 그룹오픈채팅방 또는 공개게시판으로 규정하고 있다. 일반에 공개된 ‘불특정 다수가 접근 가능한 SNS 채팅방’을 대상으로 한다.

대화방 중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만 외부에서 자유스럽게 검색하고 입장할 수 있도록 대화방이 나열돼있다. 정부는 그런 성격을 감안해 오픈 채팅방만 사적 대화방과 구분되는 ‘일반에 공개된 커뮤니티’적용 대상으로 삼고 있다.

다만 암호가 있는 채팅방이더라도 온라인 카페 등에 입장코드를 명시하거나 일반적인 온라인 공간에 홍보하고 채팅방 안에서 익명성이 보장되는 등 조건이 충족되면 ‘불특정 공개성’의 요건이 성립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n번방 사건이 발생한 텔레그램이 기술적?관리적 조치에서 빠졌다는 지적에 대해 사적대화방이라 적용대상이 아니라는 게 방통위의 설명이다. 그러나 텔레그램도 외부에 초대 링크를 게시한 오픈채팅방이 존재해 방통위 설명을 수긍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방통위는 개별 채팅방에 따라 성격이 천차만별이므로 일괄적인 기준으로 재단하기는 어렵다고 보고 앞으로 6개월 계도기간 동안 민관이 점검과 모니터링을 통해 공개성 등 요건을 검토할 계획이다.

방통위 이용자정책국 관계자는 “해외 사업자도 물론 기술적·관리적 조치가 적용되지만 텔레그램은 해외 사업자 중에서도 서버가 어디에 있는지 공식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특수성이 있긴 하다”고 했다.

silentrock@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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