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대신 ‘갈등과 혐오’ 조장하는 진흙탕 대선
김동선 기자 matthew@hankooki.com 기사입력 2022-01-14 11:46:03
멸공, 젠더, 이재명 의혹 관련자 죽음, 김건희 7시간 통화 녹취록 공개 예고
꼬리에 꼬리 무는 ‘말초적 이슈’에 대선판 다시 요동
[주간한국 김동선 기자] 젠더 이슈와 색깔론에 후보 및 배우자 리스크가 50여일 앞으로 다가온 대선판을 다시 흔들고 있다.

여성가족부 폐지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젠더 이슈가 첨예해지고,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으로부터 시작된 '멸공'(공산당을 멸한다) 챌린지가 때아닌 색깔론을 부추기며 진흙탕 싸움으로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당 내부 갈등이 봉합된 직후 두 이슈를 제기하면서 흔들렸던 '이대남'(20대 남성) 표심을 다잡고 보수층을 중심으로 한 '집토끼'를 잡겠다는 포석으로 해석된다. 선대위 해체와 대표-후보간 갈등 등 내부 잡음에 쏠려있던 민심을 희석시키는 효과도 노린 것으로 감지된다.

하지만 젠더와 색깔론은 2030세대를 중심으로 한 대중과 한국 정치사에 민감한 주제다. 대중들의 극명한 의견차가 있는 만큼 '국민 갈라치기'와 국론 분열이라는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에 더해 이른바 '이재명 변호사비 대납 의혹' 제보자의 의문의 죽음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아내 김건희씨와 관련된 7시간 통화기록 공개가 예고되면서 정책 공약 대결로 정상화를 찾는 듯 했던 대선전이 다시 갈등과 혐오를 조장하는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가 꺼내 놓은 단 일곱 글자짜리 공약 '여성가족부 폐지'에 연일 대선판이 뜨거워지고 있다. 사진은 1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17층 여성가족부 모습. (사진=연합뉴스)
뜨거운 감자 '여가부'...젠더 이슈 급부상

'여성가족부 폐지'. 이 짧은 일곱 글자가 대선전의 핫이슈로 떠올랐다. 윤석열 후보는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한 줄 공약을 올리며 젠더 이슈에 불을 지폈다. 윤 후보는 대선 경선 과정에서 여가부를 양성평등가족부로 개편하겠다고 했으나 한발 더 나아가 여가부 폐지로 선회한 것이다.

윤 후보는 지난 11일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여가부는 기대했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많은 국민들이 판단하고 있다"며 "조금 더 큰 관점에서 우리의 사회문제를 폭넓게 보고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윤 후보의 한 줄 공약이 나온 직후 정책본부와 사전 교감이 없었다던 원희룡 정책본부장은 이후 "권력형 성범죄를 정치 진영에 따라 편들고 젠더 갈등을 부추기는 세력은 해체하는 게 맞다"라면서 "충치를 뽑고 임플란트를 하자는 것"이라고 힘을 실었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는 윤 후보의 한 줄 공약이 나온 직후 '여성가족부 강화'라고 되받으며 강하게 반발했다. 심 후보는 지난 10일 MBC에 출연해 "청년들을 성별로 갈라치기를 해서 차별과 혐오를 조장해 득표 활동을 하는 것은 대통령 후보로서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윤 후보를 직격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분열 조장"이라고 비판하면서도 젠더 논쟁에서 관망하는 모양새다. 박용진 민주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은 "분열 정치는 망국 정치이고 윤 후보도 폭망의 길로 가게 될 것"이라며 "국민의힘에서 과격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분열과 자극의 정치, 젠더 갈등 증폭으로 이익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11일 한 강연 일정에서 "누구는 한쪽으로 쏠리는 입장을 갖고 득표 활동에 나서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며 "일부 정치인들이 남녀 청년 갈등에 편승해 오히려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고 윤 후보를 겨냥했다.

이 후보는 대선 후보 확정 후 지난해 11월 여성가족부를 평등가족부 또는 성평등가족부로 바꾸고 일부 기능을 조정하자는 방안을 제안한 바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는 윤 후보의 여가부 폐지 주장에 반대하면서도 양성 평등 차원에서 여가부 개편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사진=연합뉴스)
정용진이 쏜 '멸공', 이념대립에 ‘보이콧-바이콧’으로 격화

대선 전선에 '멸공'이 화제에 오른 것도 이번 대선이 언제라도 진흙탕 싸움으로 번질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다.

'멸공' 논란은 정용진 부회장이 지난 6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면서 시작됐다. 이 게시글에는 '멸공', '방공승첩', '승공통일' 등의 해시태그가 함께 달렸다. 논란이 확산되자 정 부회장은 해당 게시물을 삭제하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사진을 올리며 대상이 중국이 아닌 북한이라고 해명했다.

70만명이 넘는 팔로워를 가진 인플루언서 정 부회장은 지난해 11월에도 '멸공' 게시물을 올린 적이 있지만 이번에 논란이 커진 것은 정치권에서 '멸공 챌린지'에 동참하면서다. 지난 8일 윤 후보는 신세계 계열인 이마트에서 멸치와 콩을 사는 사진을 올려 논란이 시작됐다. 게시글에는 '#달걀 #파 #멸치 #콩' 등의 해시태그가 달렸는데 이 앞글자 '달파멸콩'이 '달파’(문재인 타파)와 '멸공’(공산당 멸종)을 연상시킨 때문이다. 이후 나경원 전 원내대표, 최재형 전 감사원장, 김진태 전 의원 등이 멸치와 콩 사진을 올려 동참하면서 논란이 커졌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구시대적 색깔론"이라고 강력 비판했다. 윤 후보는 이후 "가까운 마트에서 필요한 물건을 산 것일 뿐"이라고 해명하면서 '표현의 자유'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멸공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념 대립과 함께 신세계 '보이콧'과 이에 맞서는 '바이콧'으로 확전되는 양상이다. 여당 지지 성향의 소비자들은 '보이콧 정용진, 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는 포스터나 이마트 회원카드를 가위로 자른 인증샷 등을 올리는 등 보이콧 운동을 펼쳤다. 일부 여당 정치인들도 이에 동참했다. 반면 보수 성향의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정 부회장의 발언에 '1일 1스타벅스 인증' 등 '바이콧'으로 응수했다.

소비자들의 눈총이 따가워지자 한국노총 전국이마트노동조합은 지난 12일 '기업인 용진이형은 멸공도 좋지만 본인이 해온 사업을 먼저 돌아보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내고 정 부회장을 향해 "'핵인싸'가 하고 싶은 것이라면 경영에서 손을 떼야 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13일 오전 서울 노원구 더숲에서 열린 타운홀 미팅 정책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또 의문의 죽음...국민의힘 "이재명 데스노트" 공세

젠더 이슈, 색깔론과 함께 유력 후보를 둘러싼 리스크들도 여전히 불씨를 키우며 선거판을 혼탁하게 하고 있다.

이 후보의 경우 변호사비 대납 의혹 제보자가 숨진 채 발견되면서 다시 후보 리스크에 직면했다. 사망한 이씨는 지난 2018년 이 후보가 공직선거법 위반 등 사건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모 변호사에게 수임료로 현금과 주식 등 20억원을 줬다며 관련 녹취록을 친문 성향 단체 '깨어있는시민연대당'에 제보한 인물이다.

이씨의 죽음은 대장동 개발 의혹과 관련 검찰 조사를 받던 유한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사업본부장, 김문기 개발1처장에 이어 이 후보와 관련된 사건 인물의 세 번째 죽음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심장질환(대동맥 박리·파열)이 사인인 것으로 밝혀졌지만 공익 제보자의 죽음을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민주당은 "이재명 후보는 고인과 무관하다"며 "정확한 사인이 밝혀지기 전까지 그 어떤 정치적 공세도 자제해줄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서는 이 후보 관련 인물의 잇따른 죽음에 의문을 제기하며 이 후보를 압박하고 있다.

권영세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장은 지난 13일 "이 후보가 데스노트 있나 할 정도로 또 공익제보자의 생명을 앗아갔다"며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를 설치해 끝까지 진실을 추적하겠다"고 공세를 펼쳤다. 김기현 원내대표는 "희대의 연쇄 사망 사건에 대해 이 후보는 '간접 살인'의 정치적·도의적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며 "즉각 후보직을 사퇴하라"고 날을 세웠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기다렸다는듯 마타도어식 억지주장을 펼치고 있다"고 비난했다. 우상호 민주당 의원은 "병사한 분에 대해 살인이라는 형태의 용어를 쓰는 건 심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정치적 금도를 넘었다"고 밝혔다.
  • MBC가 윤석열 대선 후보 부인 김건희 씨의 7시간 통화 녹음 내용을 보도할 것이라고 예고한 가운데 14일 오전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 등 원내지도부가 MBC를 항의 방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김건희 7시간 통화 공개 예고에 국민의힘 "정치공작"

윤 후보는 부인 김건희씨 관련 의혹들이 여전히 뇌관으로 남아있다. 한 유튜브채널이 김건희씨와의 7시간 통화내용을 공개하겠다고 예고한 가운데 공중파 방송사가 녹음파일을 받아 시사 프로그램에서 방송을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통화 내용에는 현 정부에 대한 비판과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관련된 검찰 수사에 대한 김건희씨의 정제되지 않은 발언이 담긴 것으로 알려져 공개 내용의 수위에 따라 파장이 예상된다.

국민의힘은 이를 '정치 공작'으로 규정하고 즉각 법적 대응에 나섰다. 국민의힘 법률지원단은 지난 13일 유튜브 채널 '서울의소리' A씨를 공직선거법 및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고 MBC를 상대로는 법원에 방송금지가처분을 신청했다.

이양수 국민의힘 선대본부 수석대변인은 "2021년 7월부터 12월 초 사이에 유튜브 채널 '서울의소리'에서 촬영을 담당하는 A씨가 김건희 대표와 인터뷰가 아닌 '사적 통화'를 10∼15회 하고, A씨는 사적 대화를 몰래 녹음한 파일을 모 방송사 B 기자에게 넘긴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 대변인은 이어 "최초에 김 대표에게 '악의적 의혹 제기자에 대한 대응을 도와주겠다'는 거짓말로 접근해 대화를 몰래 녹음한 후 선거 시점에 맞춰 제보 형식을 빌려 터트리는 등 악의적으로 기획된 특정 세력의 '정치공작'으로 판단된다"고 비판했다.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도 "명백히 정치공작이자 몰래 도둑녹음을 해서 상업적으로 유통시키는 도촬 행위에 준하는 범죄행위"라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안민석 민주당 의원은 "필사적으로 방송을 막으려는 윤석열 캠프 측의 반응도 이상하다"며 "떳떳하면 공개하라고 하면 될텐데 국민들의 알권리를 막는 행위는 대단히 바람직하지 못한 행위"이라고 밝혔다.

정책 공약 발표가 말초적 이슈에 다 묻히는 판국

민주당과 국민의힘 선대위는 모두 정책 공약들을 내놓으며 본격적인 선거운동에 돌입했다. 이 후보는 지난 11일 '5대 강국' 진입을 목표로 한 신경제 비전을 제시했고, 윤 후보는 같은 날 '임대료 나눔제', '부모급여' 등의 정책 공약을 내놓았다. 이후에도 지난 13일 두 후보는 현장을 누비며 재개발·재건축 신속협의제 도입(이재명), 전기요금 인상 백지화(윤석열) 공약을 내는 등 경쟁적으로 민생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이재명-윤석열 두 후보간 1대1 TV토론을 설 전에 열기로 합의하는 등 모처럼 정상적인 선거 궤도에 오르나 싶었다.

하지만 극명한 대립각을 갖는 휘발성 이슈와 양당 후보를 둘러싼 자극적인 의혹들이 똬리를 틀면서 다시 난투극으로 번질 가능성이 커졌다.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라는 세간의 평가가 연장되는 셈이다. 이럴 경우 양강 후보의 지지율도 다시 요동칠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국민의힘의 경우 이준석 대표와 윤석열 후보의 극적 화해 이후 바로 여가부 폐지, 사병월급 200만원 공약 등을 통해서 20대 지지가 바로 회복되면서 최근 여론조사에는 이런 내용이 충분히 반영됐다고 본다"며 "다만 김건희씨 관련 방송이 일부 지라시 내용과 같은 수준으로 방송이 된다면 한달 전 경력 부풀리기 사과로 타격을 줬던 것만큼 빠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 교수는 또 "이재명 후보의 경우 의혹 관련자들의 사망보다는 관련된 의혹의 재판 과정에서 이 후보의 입장과 다른 이야기들이 흘러나올 경우 원팀이 되기를 거부해오던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동선 기자 matthew@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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