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사태로 곡물, 원자재 가격 상승 이어질까 우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기 1년 전인 2019년 전 세계 정치 경제를 위협한 요인은 미·중 무역 갈등이었다. 미·중 무역분쟁은 약 1년 여 만에 그나마 합의점을 찾아가 비교적 빠르게 해소되는 과정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새해 전세계 정치 경제를 뒤흔들고 있는 우크라이나 사태의 상황은 다르다. 근본적으로 미국과 러시아의 대결이면서도 유럽 자체의 문제를 포함한 만큼 봉합도 그만큼 어려울 수밖에 없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본질은 유럽을 둘러싼 미국과 러시아의 패권 경쟁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취임 후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의 반중 정책을 계승했다. 중국의 인권과 독재주의를 비판하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각을 세웠다. 그러나 경제적으로는 중국과의 경제 갈등을 확대하기보다는 미국 자신의 경쟁력을 개선하는 데 주력했다. 시 주석도 바이든 대통령과 직접적으로 부딪치는 상황은 애써 피했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미국 관점에서 중국이 새로운 경쟁국이라면 러시아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냉전 시대를 거치면서 옛 소련 시절부터 주적의 대상이었다. 자유민주 진영의 결집을 원하는 바이든 대통령의 행보는 과거 옛 소련에 소속됐던 국가들을 유럽 동맹국으로 끌어들였고 이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갈등은 우크라이나를 계기로 표출됐다.

푸틴의 행보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세력이 러시아 주변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는 강력한 의지로 풀이된다. 이는 유럽 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옛소련 영향권에 있던 국가들을 받아들이면서 예고된 갈등이다. 푸틴의 입장에서는 NATO에 맞서던 바르샤바 조약기구 회원국들이 대거 NATO에 가입하는 상황이 불만이다. 폴란드, 체코, 헝가리를 시작으로 발트 3국(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이 연쇄적으로 NATO에 가입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가 NATO 가입을 언급하면서 푸틴의 인내심을 자극했다. 현재 NATO 회원국 30개국 중 14개국이 옛 소련 바르샤바 조약기구 회원이다. 옛 소련 연방에서 중요성이 컸던 우크라이나가 NATO와 손을 잡는 것을 푸틴은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푸틴 대통령의 입장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드러났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NATO에 가입하면 유럽에서 전쟁이 발발할 것이며 승자는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민주주의 회복과 연대를 강조해 온 바이든 대통령도 쉽게 물러날 수 없다. 푸틴 대통령과의 맞대결에서 밀리면 시 주석과의 경쟁에서도 앞선다는 장담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미 푸틴 대통령과 시 주석은 밀착 관계를 과시 중이다. 미국이 외교적으로 보이콧한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도 두 정상은 찰떡궁합을 과시했다.

푸틴 대통령과 시 주석의 연합은 미국 주도의 세계 경제를 흔들 수 있는 충분한 힘이 있다. 러시아는 석유와 천연가스를 앞세워 전 세계 에너지 시장을 뒤흔들 여지가 충분하다. 러시아는 이미 세계 경제 회복세와 미국의 친환경 정책에 힘입은 유가 급등으로 큰 수혜를 입었다. 중국은 첨단 제품에 주로 쓰이는 희토류를 쥐고 있다. 중국은 전 세계 공급망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이에 맞서는 미국은 인도, 일본, 호주, 영국 등과 힘을 합해 ‘쿼드’, ‘오커스’ 등 연합체를 구성하며 맞서고 있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카드에 대응하기 위한 뚜렷한 해법이 없다. 바이든 대통령은 강력한 대러 경제 제재를 예고했지만 효과를 장담하기는 어렵다.

상황이 악화하면서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의 정상들도 중재에 나섰다. 그러나 성과는 미미하다. 마크롱 대통령은 러시아로 날아가 푸틴 대통령과 해법 모색을 위한 회담을 했지만 두 정상이 5m 길이의 테이블에서 마주 보는 모습이 오히려 화제가 됐다. 양측이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음을 시사하는 방증으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집권 이전부터 우크라이나와 악연이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아들 헌터의 우크라이나 스캔들은 대통령 선거 기간 내내 바이든 대통령의 발목을 잡았다. 결국 바이든 대통령 집권 1년도 지나기 전에 우크라이나 사태가 다시금 바이든의 운명을 뒤흔들 수 있는 아킬레스건이 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곡물과 에너지 가격을 자극할 경우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추가로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집권 초반기부터 지지율이 흔들리는 바이든 정부의 약점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예상하고 제재를 압박했지만, 미국도 외교 해법을 찾기 위한 행보를 멈추지 않는 이유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쿼드’ 외교장관 회의 참석차 호주를 방문해 “우크라이나 사태를 해결할 최선의 방법은 외교”라고 주장했다. 블링컨 장관은 “외교를 통한 해결과 강한 억지력 구축 중 외교적 해법이 훨씬 더 선호되는 방안”이라고 부연하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도 마크롱 대통령과의 회담 후 “마크롱 대통령과 긴장 완화를 위한 협상의 기반이 될 생각을 논의했다”고 말하며 외교적 해법 도출에 대한 여지를 남겼다.

결국 해법은 바이든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간의 담판에서 나올 가능성이 커 보인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크렘린궁 대변인은 지난 10일(현지시간) 관영 타스통신을 통해 “두 정상의 전화 통화가 현재로서는 계획되어 있지 않지만 언제든 가능하다”고 밝혔다. 대변인은 “아직 구체적인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매우 빠르게 (통화가) 이뤄질 수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바이든과 푸틴은 이미 여러 차례 통화와 회담을 해왔다. 지난해 6월에는 스위스에서 첫 회담을 했고 지난해 말에는 전화 통화와 화상 회담을 하며 우크라이나 문제에 대한 공방을 벌였다. 앞서 공방이 이어졌던 만큼 추가 통화가 이뤄지면 외교적 해법 도출을 위한 상호 양보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다.

양국은 이미 1962년 3차 세계 대전으로 번질 뻔한 쿠바 미사일 위기를 해소했던 경험이 있다. 인류의 존망이 걸린 핵전쟁 위기 속에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과 니키타 흐루시쵸프 전 소련 서기장이 내린 결단은 60년이 지난 현대의 지도자들에게도 충분한 교훈을 남기고 있다.

백종민 아시아경제 뉴욕특파원



백종민 아시아경제 뉴욕특파원 cinqange@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