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수출 큰 타격 우려…에너지·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수입 부담도 불가피

지난 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에 있는 방공기지가 러시아군 소행이 확실시되는 폭격으로 연기가 치솟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이 공급망 병목 현상과 인플레이션 급등으로 위기가 고조하고 있는 전세계 경제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러시아의 도발은 에너지, 식품 값의 추가 상승을 자극할 요인이면서 산업에 필요한 물자에 대한 공급을 제한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을 중심으로 서방국가들이 강경한 대러 제재에 나서면서 대응책 마련을 모색하는 이유다. 한국 경제 역시 이번 위기의 직접적인 영향이 예상되는 만큼 현 정부는 물론 대통령 선거 이후 구성될 차기 정부 역시 큰 부담을 안을 가능성이 커졌다.

정부, 러시아 제재 동참…경제 악영향 최소화 행보

우리 정부는 미국이 동맹과 함께 러시아 제재를 준비하는 상황에서도 조심스러운 접근을 해왔지만 전면 침공을 계기로 상황이 달라졌다. 정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제재 동참 의사를 밝혔다. 직접 제재는 없더라도 국제적인 제재 행보에 합류하겠다는 의미이다. 정부의 결정은 러시아와의 직접적인 갈등을 최대한 자제하면서 서방 중심의 제재에는 동참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려는 행보로 볼 수 있다.

러시아는 지난해 기준 우리 수출의 약 1.6%, 수입의 2.8% 비중을 차지하는 10위 교역대상국이다. 우리는 러시아에서 석유, 천연가스, 석탄 등 에너지 중심의 원자재를 수입하고 자동차·부품(40.6%), 철구조물(4.9%), 합성수지(4.8%) 등을 수출한다.

미국의 제재로 대러 수출이나 러시아산 원자재 수입의 제한이 불가피해졌다. 미국의 대러 경제 제재가 한국이 우위에 있는 산업을 중심으로 이뤄진다는 점은 특히 경계해야 할 요인이다.

미국 상무부가 공개한 반도체, 컴퓨터, 통신장비의 대러 수출 통제안은 미국산이 아니더라도 미국산 장비나 소프트웨어를 이용했을 경우 대러 수출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산업별로는 반도체 분야에 대한 우려가 크다. 반도체 업계는 러시아에서 들여오던 필수 소재 수입 제한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식각과 노광 등 반도체 제조과정에서 꼭 필요한 네온(Ne)과 크립톤(Kr) 가스 핵심 공급선이다. 팔라듐 가스 역시 러시아가 핵심 수출국이다.

반도체 제조 특성상 일부 재료만 부족해도 공정 전체가 영향을 받게 된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네온, 크립톤 가스 재고가 충분하지만 가격 상승으로 반도체 값 상승을 자극할 수 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TSMC,인텔, 마이크론테크 등 미국, 대만 반도체 업체들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각 업체들은 즉각적인 영향은 없다고 밝히고 있지만 차량용 반도체 부족 현상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문제가 더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 정부도 반도체 업체에 대응을 주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반도체 업계가 앞서 한일 관계 악화를 계기로 촉발된 공급망 위기를 돌파했던 경험이 있는 만큼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도 있다.

대러 수출 비중이 큰 자동차 분야 역시 사태를 예의 주시하는 중이다. 현대차는 연간 23만대를 러시아 현지에서 생산한다. 미국이 자국산 반도체나 반도체 기술이 포함된 차량 수출을 제한할 경우 대응이 쉽지 않다. 러시아산 유연탄과 알루미늄 의존도가 큰 시멘트 업계와 배터리 업계 역시 영향권이다.

미국 포함 전세계 금리 인상 늦추나

우크라이나 사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상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전세계 경제에 피해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당초 예정대로 금리를 올리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연준은 급격히 치솟은 인플레이션을 차단하기 위해 3월부터 금리 인상에 나설 것이 확실하다. 다만 첫 인상부터 0.5%포인트나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어왔지만 우크라이나 사태라는 변수 탓에 변화 가능성도 제기된다.

금리 인상을 선호하는 로레타 메스터 클리블랜드 지방 연방은행 총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인터뷰에서 "3월 금리 인상이 적절하지만 이번 사태가 미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관찰하면서 금리인상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고 말했다.

골드만삭스도 연준이 예정대로 3월에 금리를 인상하겠지만 인상 폭은 0.5%포인트가 아닌 0.25%포인트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금리 인상을 저울질 중인 유럽중앙은행(ECB) 인사들도 우크라이나 상황을 매우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고 언급하는 중이다.

지정학적 불안요인이 금리 인상 속도를 늦출 수 있지만 에너지와 원자재 가격 상승 압력 요인으로 작용하는 점은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러시아의 행동 직후 이미 북해산 원유 가격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하는 등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경제전문가들은 1970년대의 인플레이션이 석유 공급 부족에 기반했다는 점을 상기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유가가 배럴당 120달러까지 상승할 경우 미국 물가가 9%나 상승할 수 있다고 진단 중이다.

이런 상황은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은행은 올해 인플레이션 전망치를 10년만에 3.1%까지 높였지만 우크라이나 사태가 악화할 경우 추가 상승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유가 상승은 경제 성장에도 타격을 준다. 골드만삭스는 유가가 배럴당 10달러 상승하면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0.1%포인트 하락 할 것으로 추정했다. 물가는 오르고 성장은 둔화하는 스태크플레이션 우려가 더욱 커질 것이라는 예상인 셈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도 지난 24일 금리를 동결하며 “원자재 가격 등이 크게 올라 물가에 상방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고 경제 제재 수위를 상당히 높이면 글로벌 교역이 위축되면서 국내 생산과 수출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백종민 아시아경제 오피니언 부장



백종민 아시아경제 오피니언 부장 cinqange@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