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2주째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3일(현지시간) 오후 워싱턴 D.C.에서 미국 상무부 돈 그레이브스 부장관과 면담을 갖고 ‘한-미간 대 러시아 수출통제 공조,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 철강 232조 등 양국간 주요 현안’에 대해 논의했다. (사진=산업통상자원부 제공)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전 세계의 외교안보 지형이 급속히 달라지고 있다. 미국과 유럽 중심인 서방과 러시아로 대표되는 동구권, 중국, 중립국 등으로 분류할 수 있던 국제 사회는 이제 러시아와 중국이 핵심인 전체주의 국가와 민주진영으로 급속히 개편되는 모습이다. 러시아에 이어 중국도 같은 경로를 걸을 것이라는 경계심도 확산 중이다.

민주진영이 전면적인 전쟁보다는 경제적인 압박에 나서면서 중국과의 경제 교류가 많은 한국도 선택의 기로에 놓일 수 있다. 한반도 주변 4강 국가를 고려한 ‘전략적 모호성’ 외교에 주력해온 한국 정부에게도 중대한 과제로 남을 전망이다.

긴 잠에서 깨어난 중립국과 독일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전 세계 각국의 대응 중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중립국들의 입장 변화다. 스위스는 영세중립국 지위를 인정받으면서 2차 세계대전의 포화를 피한 경험이 있다. 스위스는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때에도 미국이 주도한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이냐치오 카시스 스위스 대통령이 직접 유럽연합(EU) 차원의 대 러시아 제재 동참을 발표했다. 은행의 비밀 금고로 유명한 스위스는 러시아 인사들이 자국내에 보유한 자산 약 104억스위스프랑(약 13조5000억원)을 동결했다.

러시아에 인접한 중립국인 스웨덴, 핀란드 역시 같은 결정을 내렸다. 러시아의 위협에 직면한 이들 국가는 전쟁에 참가하지 않는다는 정책을 뒤집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고 나섰다. 두 나라는 러시아와 국경을 접했거나 인근에 위치해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러시아의 확장 전략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2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독일의 달라진 모습도 두드러진 변화다. 독일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해외에 무기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깼다. 독일은 우크라이나에 미국산 대공미사일을 제공했다. 2차 세계대전 패전국이라는 오명 속에 숨죽여 왔던 독일의 결정은 러시아의 행보에 대한 유럽의 위기감을 보여주는 예다.

독일은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유럽으로 공급하는 노르트스트림2 송유관 사업을 추진하며 미국과 충돌했었지만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러시아 손절에 나섰다. 쿠릴열도 섬 반환 문제로 러시아와의 갈등을 피해왔던 일본 역시 미국의 입장에 발맞춰 신속하게 제재 대열에 섰다.

미국은 이미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에 나서며 동맹 결집을 주도했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와의 관계에 공을 들였던 국가들이 대거 이탈했다. 자국 이익을 위해 미국의 뜻과 달리 대러 관계 개선을 시도했지만 러시아의 침공 사태가 상황을 뒤집은 것이다. 타국 영토를 무력으로 침공한 국가와의 결별에 주저하지 않는 단호한 모습들이 나타났다는 점에서 국제질서의 새로운 재편에 날개를 달아 줄 계기가 될 것인지 관심이 가는 대목이다.

반러 이어 반중 연대 확산 가능성도 커져

러시아와 서방진영의 갈등은 반중 정서로 확산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스토롱맨’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전 세계 평화를 위협할 수 있는 인물이다. 두 사람은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출범 후 반미 대열에 발을 맞춰왔다. 다음은 중국 차례라는 우려가 커지는 배경이다.

미 정책 제언 단체인 ‘마라톤 이니셔티브’의 엘브리지 콜비 전 미 국방부 부차관보는 시사주간 타임 기고에서 미국과 동맹을 위협하는 국가로 러시아에 이어 중국을 지목했다. 그는 중국이 아시아 패권을 추구한 데 이어 세계 패권을 노릴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선제적인 대응을 촉구했다.

콜비 부차관보는 “미국의 동맹 관계가 강력하지만 맹점이 있다”고 했다. 러시아, 중국에 맞설 군사력이 부족하다는 진단이다. 그러면서 독일과 일본, 대만의 재래식 군사력 확대를 지원하자고 주장했다.

한국은 중국과 러시아에 가장 인접한 국가다. 북한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겪으며 전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러시아 지지세력으로 남았다. 이미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이들 3개국의 밀착 관계가 더욱 강해질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한반도 전문가인 마키노 요시히로 일본 아사히 신문 기자는 자유아시아방송(RFA)과 인터뷰에서 “중국을 중심으로 3국의 협력이 공고해 질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중국도 러시아의 편에 섰고 북한 역시 우크라이나 사태의 원인이 미국과 서방의 패권주의라고 주장했다. 북한은 우크라이나 사태 중에도 미사일 시험 발사를 지속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에 다시 나설 수 있다는 압박을 이어갔다. 푸틴 대통령이 핵을 거론한 데 이어 북한마저 핵으로 미국과 전 세계를 상대로 도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북한은 과거 우크라이나 출신 과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핵과 미사일 개발에 나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은 우크라이나가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를 통해 옛 소련 해체 후 자국에 남겨진 1800기의 핵무기를 포기했음에도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사실을 지켜봤다. 미국과 러시아의 갈등이 극대화된 현 시점은 오히려 북한이 도발을 하고 대미 강경자세를 강화하기에 충분한 배경을 제공한다.

현 세계 정세상 미국을 중심으로 한 민주주의 서방진영과 중국, 러시아가 주축이 된 전체주의 국가의 대결은 쉽게 사라지기 힘들다. 시 주석이 3 연임을 확정한 후에는 대결 구도가 더욱 선명해질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이럴 때일수록 정부의 정확한 방향 설정이 중요하다. 혼선은 이미 대러 제재 과정에서 드러났다. 6·25를 경험한 한국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지 못한 것은 서방 국가들의 태도와 대비됐다.

중립국마저 입장을 바꾼 상황에서 한국이 미국과 중국 및 러시아 사이에서 국익외교를 한다는 것은 동맹국의 이해를 얻기 어렵다. 주요 7개국(G7) 급으로 달라진 국격에도 맞지 않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첫 국정연설에서 한국의 대러 제재 참여를 거론한 것도 미국의 의도가 어디에 있음을 잘 보여준다. 신냉전 시대는 이미 시작됐다.

백종민 아시아경제 오피니언 부장



백종민 아시아경제 오피니언 부장 cinqange@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