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후 지방선거 승리도 장담 못 해…’친문’ vs ‘이재명’ 갈등 재현?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대표직 사퇴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날 민주당 지도부는 대선 패배에 책임을 지고 총사퇴를 하기로 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주간한국 이재형 기자]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패한 더불어민주당은 어떤 쇄신을 꾀할까. 촛불혁명의 열망에 힘입어문재인 정권을 창출한 민주당은 이번 대선에서 득표율 0.7%포인트 대의 근소한 차로 패배의 쓴맛을 보았다. 그동안 보수와 진보 진영의 권력 교체가 ‘10년 주기설’로 움직였지만 민주당은 불과 5년 만에 정권을 빼앗겼다. 선거 패배의 여파로 당 안팎에서는 대대적 ‘쇄신’이 뒤따라야 한다는 반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총선을 통해 172석이라는 거대한 원내 1당을 꿰찼지만 지난해 4.7 재보궐 선거 참패에 이어 비록 근소한 차이지만 대선마저 실패하자 민주당 지지자들의 허탈감은 끝 모를 곳으로 추락했다.

이런 가운데 오는 6월 1일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단체장을 선출하는 전국동시지방선거가 곧 기다리고 있다. 윤석열 당선인의 대선 승리로 인한 컨벤션 효과가 이어질 경우 민주당은 자칫 3연패의 나락으로 떨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민주당에게 남은 시간은 불과 3개월여뿐이다.

172석 거대야당인 민주당의 위기, 차기 당내 권력 지형은?

민주당은 20대 대선 다음날 선거대책위원회 지도부 위원들이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했다. 민주당은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20대 대선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서 송영길 대표를 포함한 지도부 총사퇴 결정을 밝혔다. 민주당은 즉시 윤호중 원내대표가 이끄는 비대위 체제로 전환했다. 다음 날인 11일 오후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열고 비대위 체제 전환과 차기 원내대표 선거를 조기에 실시하는 안을 보고하고 추인 절차를 밟았다.

당초 신임 원내대표 선거는 5월로 예정돼 있었으나 윤 원내대표가 비대위 업무까지 도맡기는 어렵다고 판단하고 이달 25일 이전으로 앞당겼다. 이번주 중앙위원회 추인을 거쳐 출범할 예정 비대위는 현 최고위 수준인 8∼9명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비대위원 구성 시 주안점은 당내 계파에 골고루 인사를 안배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0일 고용진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윤 원내대표는 (비대위원장직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는 입장"이라며 "지도부가 총사퇴한 지금 갑자기 새롭게 선임하는 것은 혼란과 분열의 소지가 있을 것이라는 점을 수용해서 결정했다"며 "윤 원내대표가 위원장으로서 비대위원 구성을 고민하고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지방선거를 치른 뒤 다음 전당대회까지 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은 윤 원내대표가 조속한 새 정부와의 협의와 민주당의 미결 입법 처리를 할 수 있도록 오는 5월에 예정된 원내대표 선거도 3월 25일 전으로 앞당기는 방안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원내대표 출마 후보군으로는 안규백(4선), 박광온(3선), 박홍근(3선), 홍익표(3선) 의원 등이 거론되고 있다. 안 의원은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정세균 전 국무총리 캠프의 좌장을 맡는 등 ‘정세균계’로 분류된다. ‘범친문’(친문재인)으로 분류되는 박광온 의원은 대선 경선 당시 이낙연 전 대표 측에 섰다가 선대위 구성 이후 공보단장을 맡았다. 박홍근 의원은 옛 박원순계 인사로, 최근에는 대선 경선에서 이 후보 캠프 비서실장을 맡아 ‘친명(친이재명)’ 인사로 거론되고 있다. 홍 의원은 경선 때 이 전 대표 캠프에 몸담은 바 있어 범친문 인사로 분류된다.

몸 낮춘 이재명, 당내 ‘비토’세력 해결이 여전히 숙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선대위 해단식을 마치고 당직자들의 배웅을 받으며 떠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6월 지방선거 출마 등 변수가 있어 하마평에 오르내리는 의원들 중 실제 출마까지 이뤄질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 당권과 공천권을 놓고 민주당 계파별로 다양한 변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단 대선 경선에 참여했던 인사들은 일단 당무 일선에서 물러난 모양새다. 이재명 전 민주당 대선 후보는 실권이 없는 상임고문으로 위촉됐다. 고 수석대변인은 “송 대표가 이 후보에게 전화해 상임고문으로서 향후 당에 여러 기여를 해 달라 부탁했고 이 후보가 수락해 상임고문으로 위촉됐다”고 설명했다. 당초 원내대표 자리에는 이 전 대표와 정 전 총리가 거론됐지만 실현되지는 않았다. 특히 이 전 대표는 6월 이후 미국으로 떠나 1년여 동안 국제정치, 특히 남북관계와 평화를 주제로 연구활동에 매진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상임고문 측은 일단 선거에서 패배한 책임을 지고 연신 몸을 낮추고 있다. 이 상임고문은 지난 10일 해단식에서 “이재명이 부족한 0.7%를 못 채워서 진 것이다. 선대위, 민주당 당원, 지지자 여러분은 지지 않았다”라며 “모든 책임은 저 이재명에게 있다. 제 부족함을 탓하시되 이분(선대위와 민주당 의원)들에 대해서는 격려해주고 칭찬해달라. 그게 진심”이라고 말했다.

이 후보를 전폭 지원했던 송 전 대표 역시 당대표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저는 앞으로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반구제기’(反求諸己, 화살이 적중하지 않았을 때 자기에게서 원인을 찾는다는 의미의 사자성어)의 시간을 갖겠다”며 당무에서 한발 물러났다.

이 전 대표는 "아주 고통스러운 시간을 겪고 계실 것"이라며 이 상임고문을 위로했다. 이어 "정치 환경은 급변했다. 국민의 정치적 요구도 많이 변하고 다양해졌다는 것을 이번에 확인했다. 이제부터 민주당은 지혜와 결단을 요구 받는 일이 늘어날 것"이라며 "동지 여러분의 혜안과 용기로 잘 대처해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친명(친이재명) 계열이 몸을 낮춘 가운데 친문계로 거론되는 윤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으로 나서면서 당권의 향방이 어느 쪽으로 형성될지 관심이 집중된다. 두 계열은 이번 대선에서 극한으로 대립했다. 경선 과정에서 무효표를 전체 투표자 모수에서 제거하면서 이 상임고문의 득표율이 높게 산정됐던 이른바 ‘사사오입’ 논란이 벌어졌다. 이 전 대표 지지자를 중심으로 경선 불복 움직임이 형성됐고 그 결과 이 상임고문은 대선 후보로 선출된 이후에도 컨벤션 효과를 누리지 못했다.

이 전 대표의 측근 인사인 정운현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은 선거를 불과 보름여 앞둔 지난달 21일 돌연 페이스북에 “도덕성과 개혁성을 겸비한 진보 진영의 내로라하는 명망가들이 '전과4범-패륜-대장동-거짓말'로 상징되는, 즉 지도자로서 치명적인 결함을 가진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는 행태를 저는 납득하기 어렵다”라며 이 상임고문을 직격하고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지지 선언을 했다. 또 이낙연 지지 민주당원들이 주축인 ‘문꿀오소리’ 1만6175명은 지난 3일 윤 당선자에 대한 지지 선언을 했다.

역대 민주당 후보 중 최다득표…지방선거 앞두고 ‘역할론’ 나올 수도

윤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을 맡으면서 3개월여 뒤 치러지는 전국동시지방선거의 공천을 놓고 친문계열에 비교적 유리한 지형이 형성됐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국민의힘이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민주당에 불리한 지형이 형성된 데다 지방선거일까지 3개월여밖에 기간이 남지 않은 점은 또 다른 딜레마다. 20대 대선과 함께 치러진 5곳의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도 국민의힘 후보가 4곳(▲서울 종로 최재형 ▲서울 서초 조은희 ▲충북 청주상당 정우택 ▲경기 안성 김학용)에서 모두 당선됐다. 남은 한 곳인 대구 중·남구도 국민의힘에서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한 임병헌 후보가 당선돼 사실상 국민의힘이 ‘싹쓸이’에 성공했다.

승리를 위해 이 상임고문의 존재감이 필요하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정권 교체 여론이 더 높은 어려운 구도에서 이 상임고문이 득표력을 입증했다며 높이 평가한 인사들이 이에 해당한다. 지난 2일 리얼미터가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야권에 의한 정권 교체'가 52.9%로, '집권 여당의 정권 재창출'의 41.8% 보다 10%포인트 가량 더 높았다.

이번 선거에서 이 상임고문이 47.83%, 윤 당선인이 48.56%로 득표율 격차가 0.73%포인트에 불과했다는 점도 정치인 이재명의 입지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선거 막판에 윤 당선인과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단일화가 성사되면서 5%포인트 대 격차로 패할 것이라는 전망도 우세했다. 하지만 실제 격차는 ‘초박빙’으로 좁혀졌다는 점도 지지자들의 아쉬움을 불러일으키는 지점이다.

특히 이 상임고문은 1614만7738표를 얻었다. 이는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의 1469만2632표를 넘어 역대 민주당 출신 후보가 득표한 최다 기록이다. 선거에서 석패를 한 점보다 민주당 대선 후보 중 가장 많은 득표를 했다는 점이 앞으로 더 부각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지방선거에서 후보 유세를 돕는 등 이 고문의 역할론을 암시하는 발언이 당 안팎에서 벌써부터 거론되고 있다.

이광재 “이재명 상임고문 6월 지방선거에서 역할 해야”

이광재 민주당 의원은 지난 11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이재명 상임고문이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이재명 후보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있다고 본다. 결국은 27만 표 차이지 않나”라며 “지방선거까지 역할을 하고 휴식을 할 수 있다고 보는데, 전적으로 이 후보 개인이 결정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586 운동권 세대의 용퇴론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586 주류 민주당 정치인들이 퇴장해야 하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이 의원은 “그렇지는 않다. 나이가 적다고 혁신적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며 “진보, 보수 안에 있는 이 기득권을 우리가 벗어나고 새로운 많은 수혈이 있어야만 이 낡은 정치권이 깨져버릴 거라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여의도가 폭파돼야 된다는 게 내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상민 민주당 의원은 지난 10일 KBS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대선 패인이 후보의 문제가 아닌 문재인 정부에서 누적된 불만이 표출된 결과로 해석했다. 이 의원은 “누적돼 온, 민심에서 멀어진 또 민심에 어긋난 부분들이 정부나 또는 민주당에서 있었다”며 “현실적으로는 그 연장선상으로 정권 심판이라는 커다란 장벽이 굉장히 높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것이 이제 작년 4.7재보궐 선거에 국민들로부터 호된 꾸지람을 들었는데 노력은 했습니다만 국민의 기대에 맞는 그런 민심에 부응하는 그런 노력이 성과가 없었다고 평가를 받았다고 생각된다”며 “또 이재명 후보가 본인으로서는 억울하다고 하지만 어쨌든 국민들께서 갖고 계신 대장동 의혹 건 등에 대한 부분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했는데 이런 것들이 이번 대선의 패인의 하나 아닌가 싶다”고 설명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위기에 처한 민주당은 선거를 이기기 위해선 당연히 이 상임고문을 등용해 힘을 빌려야 한다. 그러나 지금 주류를 잡은 친문계 민주당 인사들 입장에서는 이 고문이 선거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할 경우, 또 주류 교체가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 “그게 현재 주류 측 입장에선 고민이 될 수 있어 보인다”라고 했다.

이재형 기자



이재형 기자 silentroc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