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과 시공사 마찰로 입주예정자 등 ‘망연자실’

둔촌주공 아파트 재건축 현장. (사진=둔촌주공 시공사업단 제공)
[주간한국 이재형 기자] 현재 공정률 52%까지 진척된 둔촌주공 아파트 재건축 사업에 빨간불이 켜졌다. 분양일정과 공사비를 놓고 대립해온 조합과 시공사가 법적대응과 공사중단을 불사하고 나섰다. 경제적 이해를 놓고 양측 입장이 팽팽히 맞서면서 분양과 입주 일정도 무기한 연기될 전망이다. 분쟁이 장기화할 경우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정비사업으로 불린 둔촌주공은 가건물 형태로 방치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분담금 부담 늘자 2년 전 정한 공사비 불복 나선 조합

둔촌주공 재건축사업은 서울 강동구 둔촌동에 위치한 5930세대 규모의 둔촌주공 아파트를 지하 3층~지상 최고 35층 85개 동, 1만2032세대(일반분양 4786세대) 규모의 '둔촌 올림픽파크 에비뉴프레'로 다시 짓는 사업이다. 종전 국내 최대 재건축 사업으로 알려졌던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9510세대)를 제치고 역대 최대 규모로 손꼽힌다.

내년 8월 완공 예정이었던 둔촌주공 재건축이 돌연 공사 중단의 위기에 놓인 건 공사비를 놓고 조합과 시공사간 입장차 때문이다. 현대건설과 대우건설, 롯데건설, HDC현대산업개발로 구성된 둔촌주공 시공사업단은 공사비 3조2000억원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2020년 6월 조합 총회에서 해당 금액의 공사비가 통과됐다는 이유다.

하지만 조합측은 해당 의결을 무효라고 보고 4년 앞선 2016년 총회에서 의결했던 공사비 2조6000억원을 고수하고 있다. 양측은 지금껏 협상을 벌여왔지만 약 5600억원 규모의 공사비 의견차를 좁히지 못했다.

시공사업단은 2020년 의결에서 기존 1만1106가구였던 세대수를 1만2032세대로 늘리면서 설계가 변경됐고, 이에 따라 자재비 등 추가 비용이 반영돼 증액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조합원은 이를 인정할 경우 재건축 분담금 부담이 늘어나다 보니 서로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공사 중단 강수에 입주예정자·예비청약자 ‘망연자실’

최근 조합이 공사비를 놓고 소송을 제기하면서 결국 둔촌주공 사업은 기약 없이 발이 묶이게 됐다. 지난달 21일 조합은 서울동부지법에 2020년 체결한 공사비 증액 변경 계약을 무효로 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또한 조합은 내달 16일 열릴 총회에 '공사계약 변경의 건에 대한 의결취소'를 안건으로 올렸다.

시공사업단 역시 ‘공사중단’ 카드를 꺼내 강수를 뒀다. 지난달 14일 시공사업단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서울북부지사에 ‘둔촌주공 재건축 조합 사업 추진 지연에 따른 공사 중단 예고 안내’ 공문을 전달했다. 또한 내달 총회를 앞두고 조합원 여론을 환기하기 위해 지난달 19일부터 관련 설명회를 열고 있다.

조합과 시공사업단이 극한 대치하면서 내년 입주를 고대하고 있던 둔촌주공 입주예정자들(조합원)과 일반분양 청약을 노리던 예비청약자들은 돌연 악재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조합원들은 지난 2017년부터 둔촌주공에서 이주해 전세나 월세로 타지에서 머물고 있다. 시공사업단에서 지원해온 이주비는 공사비 분쟁이 불거진 이후인 지난 2월부터 끊기면서 조합원들은 해당 비용을 각자 부담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예정됐던 일반분양은 공사가 멈추면서 연내 청약 가능성조차 불투명해졌다. 일반분양은 준공일자를 기준으로 이뤄지는데, 공사가 기약 없이 중단되면 분양 역시 무기한 연기되기 때문이다.

현재 조합과 시공사업단 양측은 협상이 결렬될 경우 시공계약 해지도 가능하다고 서로 엄포를 놓은 상태다. 이처럼 사업이 ‘시계제로’에 놓이면서 둔촌주공에 몰렸던 매입수요가 서울 주택 시장 곳곳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가점 60점 이상, 7억원 이상 실탄을 보유한 청약 대기수요자들은 약 5만명으로 추산된다.

수익성 악화로 불거진 분양가 분쟁 ‘앙금’ 터져

조합은 2020년 공사비 증액 의결과 관련해 절차적 정당성이 결여됐다고 문제 삼고 있다. 공사비 의결 이후 조합 내부서 내홍이 발생해 그해 그 해 8월 조합 집행부가 해임됐고 2021년부터 새로운 집행부가 공사비 책정에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당시 의결에서 ▲허위 무상지분율로 조합원을 기망해 결의를 편취 ▲확정지분제를 변동지분제로 변경하는 것에 대한 설명 누락 ▲한국감정원 공사비 검증절차 누락 ▲무권대리 및 기타사유 등으로 인해 무효라는 것이 현 조합 측의 주장이다.

갈등의 골이 깊어진 주된 원인에는 수익성 문제가 걸려있다. 둔촌주공은 선분양 시 필수 절차인 HUG보증과 관련해 HUG가 3.3㎡ 당 분양가를 3000만원 이하로 책정했고, 3500만원 이상 분양가를 기대했던 조합은 수익성 악화를 우려해 분양을 미루고 있다. 2020년 착공한 이래로 분양 대금을 일절 못 받고 있는 시공사업단은 막대한 공사비용을 일단 자체사업비로 조달하고 있어 불만이 적지 않다.

시공사업단은 “2020년 2월 실착공 후 약 2년 이상 1원 한 푼 받지 못하고 약 1조6000억원의 천문학적인 금액의 외상공사를 하고 있다”며 “현재 조합은 사업추진 불확실성에 더해 마감재 고급화라는 명분하에 일반적인 설계변경 요구, 마감재 승인 거부, 특정자재 선정요구 등에 따른 추가 공사지연이 불가피한 심각한 상황까지 이르렀다”고 밝혔다.

앙금이 쌓인 건 조합도 마찬가지다. 2020년 6월 당시 조합 내부에서는 HUG의 분양가 제한을 회피할 수 있는 후분양을 적용할 경우 3.3㎡ 당 4000만원까지 분양가를 높일 수 있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그해 7월 말부터 분양가상한제가 시행되는 점도 후분양을 주장하는 목소리에 힘을 실었었다.

하지만 분양 일정이 늦춰질 경우 막대한 금융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시공사업단 입장에선 후분양이 반가울리 없었다. 당시 시공사업단은 이번 사태처럼 “선분양을 하지 않을 경우 공사를 중단하겠다”고 경고했고 결국 선분양으로 결정됐다.

한편 최근 강동구는 한국부동산원 요청에 따라 둔촌주공의 ㎡당 택지비 감정평가금액을 재산정한 결과 종전 책정액수인 2020만원에서 160만원 가량 낮은 1860만원으로 통보했다. 이에 따라 분양가가 이전 예상에서 더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더 좋은 분양가를 기대하고 분양을 미루고 있는 조합과 시공사업단간의 갈등에도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재형 기자



이재형 기자 silentroc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