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5년 9월 미국을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당시 부통령으로 재직 중이던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이 메릴랜드주 앤드류스 공군기지에서 만난 모습.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출범한 지 열흘이 지났다. 바이든 대통령에 이어 로이드 오스틴 국방부 장관, 토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이 속속 취임했다. 이미 백악관에 자리 잡은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과 함께 미국의 외교·안보를 책임질 진용이 완성됐다.

대중 공격 태세를 마련한 바이든 정부는 아직 본격적인 칼을 꺼내 들지는 않고 있지만, 동맹을 동원한 대중 압박 방침은 확실히 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미국이 달라져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새로 출범했지만 미중 간의 평행선이 4년간 더 이어질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백악관 “전략적 인내”vs시진핑, “다자주의 실천 안 하면 美 실패”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우리는 중국과 심각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안보와 번영, 가치에 도전하고 있고 우리는 일정한 전략적 인내를 가지고 접근하기를 원한다”라고 밝혔다.

이는 바이든 행정부 취임 후 미 정부에서 나온 첫 대중 메시지이다. 외교가에서는 전략적 인내라는 단어가 나온 데 대해 깜짝 놀라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전략적 인내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에 대해 내세웠던 전략이다. 동맹과 함께 장기적으로 경제 외교 등에서 포위·압박을 하겠다는 의미이다.

사키 대변인은 트럼프 정부가 했던 대중 무역 협상, 중국 기술 기업들의 미국 이해 침해 방지를 위한 조치도 이어갈 뜻을 밝혔다.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실(OFAC)은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규정한 투자금지 블랙리스트에 오른 중국기업에 대한 투자금지 시행 시점을 오는 3월 27일까지 두 달 연기한다고 밝혔다. 이 역시 새 정부에 부담이 되는 양국 관계 악화를 피하면서 점진적인 압박에 나설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임기 막판 중국에 대한 공세를 이어가며 마련한 조치를 뒤집겠다는 의지는 보이지 않으면서 장기적인 압박을 시사한 것이다.

백악관의 반응은 미국을 겨냥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공세에 대한 반격이었다. 시 주석은 세계경제포럼(WEF) 다보스 어젠다 화상회의 기조연설에서 “새로운 냉전은 세상을 분열로 몰아넣을 뿐”이라며 미국을 겨냥해 다자주의를 강조한 바 있다. 시 주석은 기후변화, 자유무역, 기술혁신 등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서도 사키 대변인은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가 중국의 불공정하고 불법적인 관행에 책임을 묻고 미국의 기술이 중국의 군사력 증강을 촉진하지 않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맞섰다. 국무부도 성명을 통해 “기술적 우위를 확보하려는 중국의 시도에 맞서 미국은 더 나은 방어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시 주석의 발언에 대한 입장에 대해 국무부 관계자는 “우리는 중국의 악랄한 행동과 국제 질서를 위반하는 시도에 맞설 동맹을 지원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대중 압박에 나선 건 외교안보라인만이 아니다. 재닛 옐런 재무부 장관은 인준 청문회에서 “중국은 분명히 우리의 가장 중요한 전략적 경쟁자”라고 규정했다. 지나 러만도 상무부 장관 지명자도 “중국의 간섭으로부터 미국의 통신망을 보호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라고 선언했다. 이런 상황은 바이든 행정부 내에 반중 정서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로 읽힌다.

직접 대결보다는 동맹 통한 세대결 가능성

동맹 우선주의를 내세운 바이든 행정부는 연일 동맹과의 협의를 통한 대중 압박을 강조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와의 첫 통화에서 인도·태평양 지역 내 미일 동맹의 중요성을 부각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스가 총리에게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센가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 대한 일본의 권리를 인정하며 확장적 억지력 제공을 약속하기도 했다. 블링컨 국무부 장관은 출근 첫날 중국이 민감해 하는 신장지구 이슬람 위구르족에 대한 탄압에 관해서도 “미 정부의 판단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트럼프 정부가 임기 막판의 정책 대못 박기 차원에서 중국 신장지구에서 벌어진 소수민족 탄압을 대량 학살(genocide)로 규정한 것에 대해 뒤집을 생각이 없다는 의사를 재천명한 것으로 해석됐다.

블링컨 장관은 테오스로 록신 필리핀 외무부 장관과 전화 통화하면서는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을 일축했다 . 바이든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루스벨트 항모전단을 남중국해에 보내 ‘항행의 자유’ 작전도 수행했다. 이에 맞서 중국은 폭격기와 전투기들을 대만 방공식별 구역에 진입시켜 미국의 압박에서 물러서지 않겠다는 결의를 보였다.

시 주석도 한미 정상 간 통화에 앞서 문재인 대통령과 통화하며 지지 세력 확보에 나선 모양새다. 시 주석은 다자주의를 강조한 WEF 연설 이후 문 대통령과 통화했다. 청와대 측은 시 주석의 요청으로 통화가 성사됐다고 밝혔지만, 한미 정상 간의 첫 통화에 앞서 한중 정상이 통화한 것은 예사롭지 않다. 홍콩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는 “시 주석의 의도는 한국을 반중 민주국가 동맹에 포함하려는 바이든 행정부의 계획을 무산시키려는 시도”라고 평했다.

미국내 최고의 중국 전문가로 꼽히며 미중 관계 전국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데이비드 램프턴 존스홉킨스대 수석 연구원은 “바이든 정부는 강경하지만 도발적이지 않은 대중 정책을 이어갈 것”이라면서도 “미중 양측은 상대방이 먼저 움직이길 기대하며 장기적인 대치를 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그는 또 “중국이 미국 내부의 상황을 이용하려 하면 상황이 더욱 악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백종민 아시아경제 뉴욕특파원 cinqange@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