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지.

지난 1월 27일. 대한축구협회는 3선 임기를 시작한 정몽규 제54대 대한축구협회장을 보좌할 임원진을 선임했다. 회장 바로 다음가는 직책인 부회장에는 6명이 새롭게 선임됐고 그 중 김병지(51)의 이름이 가장 눈에 띄었다. 김병지는 생활축구와 저변확대 부문 부회장이 됐다.

은퇴 후 방송, 유튜브, 해설, 문화진흥재단, 축구교실 등 다양한 활동과 운영을 하던 김병지의 부회장 선임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도 잇따르지만 ‘스타플레이어와 행정은 별개’라며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김병지가 ‘꽁병지tv’에 조현우(울산 현대)를 초대했다.꽁병지tv 캡처

하지만 김병지 신임 부회장은 “은퇴 후 수많은 활동과 재단-유튜브 운영 등이 얼마나 쉽지 않다는 걸 모르고 하는 소리”라며 행정가가 되기 위해 많은 시간과 현장 경험을 쌓았다고 강조했다.

은퇴 6년…산전수전 다 겪어

일반적으로 현역에서 은퇴하면 지도자를 한다. 프로팀뿐만 아니라 대학-고등학교 등 학원축구 지도자가 되어 프로 감독을 목표로 한다. 또는 자기의 이름을 걸고 축구교실을 운영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김병지는 달랐다. 1992년 울산 현대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해 2015년 은퇴까지 무려 24년간 누구보다 화려한 프로생활을 마친 후 택한 것은 ‘멀티잡(Multi-Job)’이었다.

스포츠문화진흥원을 설립해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물론 당시만해도 신세계였던 유튜브를 시작해 지금은 41만명이 넘는 구독자를 가진 스포츠계 최고 유튜버로 거듭났다.

또한 꾸준히 방송에 출연해 대중들에게 호감 이미지를 쌓는 것은 물론 축구교실과 풋살장 대관 등에도 사업을 확정했다.

서울시축구협회장 선거에 나갔을 정도로 그의 표현을 빌리면 “선수 때보다 더 바쁜 은퇴 후 5년”이었다.

“선수시절에도 머리는 늘 세상을 읽고 있었다. 선수 때 ‘은퇴하면 공익적인 일부터 시작하자’고 생각했고 은퇴 후 곧바로 문화진흥원을 설립했다. 예전에는 유튜브는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방송보다 오히려 유튜브를 많이 볼 정도로 대세가 되지 않았나. 그 흐름을 빨리 파악해 유튜브도 시작했다. 축구교실도 내 아이들이 축구를 하며 느낀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건립하고 기부도 하며 유소년축구장 시설비를 냈다. 선수 때 재테크를 잘 해놓지 않았다면 엄두도 못 냈을 일들이다.”

직접 사업체 운영, 발로 뛰며 얻은 산 경험

문화진흥원은 물론 축구교실, 유튜브 채널은 김병지 혼자 할 수 없다. 자연스레 직원을 채용하고 직원을 채용하면 사무실도 있어야 하고 그들에게 월급도 꼬박꼬박 지급해야 한다. 크진 않아도 사업체를 직접 여러 개 운영한 셈이다.

“직접 직원을 뽑아 능력을 확인하고, 또 떠나보내는 일을 겪으며 사업체 운영이 쉽지 않다는 걸 느껴왔다”고 말하는 김병지는 유튜브에서 학교나 다수의 인원이 있는 곳을 찾아가거나 모집해 프로젝트성 촬영을 하며 겪은 고충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한두 명도 아닌 사람을 모집하고 관리하는데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하다. 게다가 사비만 투입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스폰서를 유치해야하는데 아무 기업에 가서 ‘나 김병지는 후원해 주시오’라고 한다고 되지 않는다. 기업을 설득해야 하고 후원을 받으면 확실하게 홍보효과도 느끼게 해줘야 한다. 그걸 직접 발로 뛰며 ‘영업’을 뛰었다.”

가뜩이나 부탁하는 입장인 ‘영업’은 쉽지 않은데 전 국민이 아는 유명인이기에 더욱 꺼려질 수 있다. 하지만 김병지는 “내가 나서서 후원을 끌어내고 그걸 통해 많은 이들에게 좋은 경험을 쌓게 해줄 수 있다면 더한 일도 할 수 있다”고 거침없이 말했다.

“지금도 후원 업체 10개 중 아홉은 직접 찾아가 수락을 받아낸 곳이다. 이렇게 발로 뛰며 바닥부터 다지다보니 그간 몰랐던 사회가 보이기 시작하더라. 어떻게 사회가 움직이고, 진짜 ‘행정’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견뎌내는 법을 배웠다. 누구는 위에서 내려주는 예산으로 조그만 일을 하고 생색내지만 직접 발로 뛰어보면 정말 다르다.”.

부회장으로 맡은 생활축구와 저변확대, “지켜봐 달라”

“그동안 스스로 사업체를 운영하며 영업도 해보며 기다렸다”는 김병지에게 제대로 행정가로서의 기회가 주어졌다. 한국 체육 협회 중 가장 많은 예산(2021년 예산-수입 928억원, 지출 998억원)을 쓰는 대한축구협회의 부회장직에 오른 것. 사실 그동안 김병지는 프로축구연맹, 대한축구협회의 인사가 있을 때마다 항상 하마평에 올라있었다. 그만큼 축구계에서는 김병지의 선수생활에 대한 인정은 당연하고 은퇴 후 그의 활동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가 이어졌던 것. 몇몇 구단은 단장, 사장 등의 직책을 제안하기도 했다.

“돈은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명분이 필요하고 정말 한국축구 발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제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일이 필요했다. 축구협회가 제안한 생활축구와 저변확대 부문 부회장은 제가 은퇴 후 현장에서 동호인들을 만나며 뼈저리게 느껴왔고 제가 하던 사업들 모두 연관되어 있기에 의미 있는 일이라 봤다.”

김병지 신임 부회장은 “예전처럼 11대 11 축구만 하던 시대가 지났다. 동호인들은 ‘풋살’이라며 사실상 작은 5대5 축구를 하고 있지만 협회에서 그동안 지켜보지 않았다. 이런 동네 동호인들을 위한 교육, 함께하는 축구를 위해 사업을 구상하고 다가갈 예정이다”라며 “축구의 전통과 역사를 이어가고 존중하되 새로운 트렌드와 접목시켜 저변을 확대할 것이다. 엘리트 축구뿐만 아니라 아마추어, 동호인 축구도 함께 ‘축구인’이라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챙기겠다”며 대한축구협회에서의 자신의 활동을 지켜봐줄 것을 당부했다.



남양주=이재호 스포츠한국 기자 jay12@sportshan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