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영역’ vs ‘인간 존엄성 훼손’ 통관 불허 반대·수입 금지 국민청원 각각 진행

[주간한국 장서윤 기자] “사적 영역의 성기구 vs 여성 존엄성 훼손하는 성상품화”

성인용 여성 전신 인형인 리얼돌 수입을 놓고 다시금 논란이 불붙고 있다. 지난달 25일 법원이 리얼돌의 수입통관을 보류한 세관의 처분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내렸지만 관세청이 항소 방침을 밝히면서 리얼돌 수입을 놓고 갑론을박이 계속되고 있다.

앞서 대법원은 2019년 6월 리얼돌이 풍속을 저해하는 음란물이 아닌 사적인 영역의 성기구라며 수입 허용 판결을 확정지었다. 그러나 세관은 여전히 ‘국민정서에 반하는 풍속을 해치는 물품’이라며 수입통관 보류 방침을 굽히지 않고 있어 ‘리얼돌 논란’이 2라운드에 접어든 모양새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지난달 27일 ‘헌법과 사법부를 무시하고 리얼돌 통관을 무조건 불허하는 관세청을 막아달라’는 내용의 국민청원이 올라와 2000여명이 참여했다. 반대로 2019년 7월에는 리얼돌 수입 및 판매를 금지하라는 국민청원에 20만 명 이상이 동의하기도 했다. 불붙고 있는 논란을 의식한 듯 여성가족부는 최근 아동·청소년의 신체를 형상화한 리얼돌을 제작하거나 수입, 판매, 대여하는 것을 금지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법원 “리얼돌 사용은 개인의 자유에 해당” 세관 처분 취소 판결

리얼돌은 외형을 사람처럼 정교하게 제작한 인형으로 성기 등 신체 특정 부위를 재현해 성인 용품으로 분류된다. 최근 몇 년 사이 리얼돌 수입 허용 여부가 화제가 되면서 이를 둘러싼 사회적 논쟁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리얼돌은 개인의 자유를 보장받는 사적인 영역의 성기구라는 주장과 단순 성기구가 아닌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물품이라는 주장이 맞서고 있는 것이다.

우선 사법부는 성기구인 리얼돌 사용이 개인의 자유에 해당하며 풍속을 해치는 물품이 아니라는 수입업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달 25일 리얼돌 업체의 통관 보류 처분 취소소송에 대한 법원의 판결문은 “이 물품은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왜곡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성적 부위나 행위를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이라 볼 순 없다”라고 적시했다. 특히 “성기구는 매우 사적인 공간에서 이용된다”며 “은밀한 영역의 개인 활동에는 국가가 되도록 간섭하지 않는 것이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실현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물품이 지나치게 정교하다’는 피고의 주장도 “특수한 상황이 아닌 이상 실제 사람과 혼동할 여지도 거의 없고 여성 모습을 한 전신 인형에 불과하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리얼돌 통관 불허 반대’를 주장한 청와대 국민청원 청원인도 “리얼돌 통관을 불허하는 행위는 명백히 국가가 정당한 사유 없이 개인의 행복을 침해하는 행위”라며 “헌법이 부여한 성적 자기결정권을 위반하고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여성단체 등 “인간의 존엄성 훼손하고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도구”

그러나 여성단체 등 반대 진영에서는 리얼돌이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고 극단적으로 성적 대상화·상품화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특히 일부 판매업체에서 여성의 ‘질막(처녀막)’까지 리얼돌에 만들어 판매하면서 여성단체 등은 “여성에 대한 완벽한 성적 대상화”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리얼돌이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을 지배하려는 욕구를 표출하는 수단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건국대 부설 몸문화연구소 윤지영 교수는 ‘리얼돌, 지배의 에로티시즘’ 논문에서 “남성들의 치료와 성욕 해소를 위한 도구적 존재로 여성 신체가 형상화되는 일이 여성들에게 어떤 인격침해나 심리적·신체적 훼손을 유발하는지, 어떤 측면에서 트라우마적 요소가 될 수 있는지는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또, 아동이나 청소년을 본뜬 리얼돌이 제작되고 있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실제로 과거 한 업체는 120cm 크기의 리얼돌을 판매하다 “초등생과 유사하다”는 항의를 받고 판매를 중지한 바 있다.

현행법상 리얼돌에 대한 규제 없어… “대중적 논의 필요”

현행법상 리얼돌에 대한 규제는 없다. 이에 여가부는 최소한 아동·청소년을 연상시키는 리얼돌에 대한 제작 및 유통을 금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지난 1월 초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관련 내용을 담은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아동·청소년 형상 성기구를 제작·수입 또는 수출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리얼돌과 관련한 논란은 최근 연이어 이슈화되고 있다. 지난해 5월에는 무관중으로 열린 프로축구 K리그 경기장 관중석에 FC서울이 배치한 마네킹 중 일부가 리얼돌인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불거졌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이 사건과 관련해 FC서울에 제재금 1억원을 부과했다. 또 지난해 말에는 국립현대미술관이 매년 가장 주목하는 작가들을 소개하는 ‘2020 올해의 작가상’에 리얼돌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가 후보로 올랐다. 오는 2월 수상작 발표를 앞두고 여전히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정치권에서도 규제 입법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박성민 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해 11월 국정감사에서 “‘리얼돌 체험방’이란 이름으로 불법 오피스텔 성매매와 유사한 형태 업소가 전국에서 86개가량 운영되는 문제가 국감에서도 지적됐다”라며 “(리얼돌 문제가) 보다 다각도에서 검토되고 고민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라고 지적했다. 이제 리얼돌 문제는 정치권에서도 대응할 만큼 사회적 논란이 커지는 데다 법의 사각지대를 규제하기 위한 대응책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장서윤 기자 ciel@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