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당 두부 식당.

바다향 비껴가는 강릉 초당마을은 세월의 맛을 간직한 곳이다. 초당동 두부마을에는 대를 이어 순두부집을 이어오는 식당 등이 20곳 가까이 들어서 있다. 등 굽은 할머니들이 가마솥에서 순두부를 끓여내는 모습은 강릉의 훈훈한 새벽풍경을 만들어낸다.

초당 두부마을의 일과는 이른 새벽부터 시작된다. 여명조차 깃들지 않은 골목 어귀에는 가마솥 틈을 비집고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 오른다. 옛 방식을 고수하는 순두부마을의 식당들은 새벽 5시부터 불을 피우며 두부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아침 손님을 받기 위해 새벽녘에 아궁이에 불을 지핀 것은 수십 년 넘게 이어온 이들 식당들의 고집이다.

불린 콩을 갈고 면포에 내리면 투박한 가루들은 비지가 되고, 맑은 콩물 진액들만 가마솥으로 옮겨진다. 솜사탕처럼 몽글몽글한 순두부를 만들려면 뒤엉키지 않게 바닷물인 간수를 바가지로 조금씩 부으며 양을 조절해야 부드러움이 유지된다.

순두부 가마솥.

강릉 바다.

대를 이어 운영하는 두부집들

이들 초당 마을 사람들이 순두부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문헌을 살펴보면 수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허균과 허난설헌의 부친인 허엽이 집 앞 샘물로 콩물을 만들고, 바닷물로 간을 맞췄는데 두부 맛이 좋아 자신의 호인 ‘초당’이란 이름을 붙여 초당두부의 명칭이 시작됐다고 한다. 두부를 만들었던 샘물이 있던 자리가 바로 초당동이다.

굳이 문헌이 아니더라도 솔숲이 우거진 이곳 초당동 마을에서는 대를 이어 식당을 운영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영업은 딸이나 며느리가 하더라도 순두부를 직접 만드는 일은 굽은 등의 할머니가 직접 나선다. 이곳 식당들의 이름에 ‘고부’ 또는 ‘할머니’ 등의 이름이 흔하게 들어가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몸집보다 서너 배나 큰 가마솥 주변을 떠나지 않는 두부 할머니들의 굽은 등을 보면 장인이 빚어낸 정성에 마음이 숙연해진다.

할머니들이 두부를 만들게 된 사연은 오히려 담백하다. 할아버지가 콩 농사를 지었는데 시장에 내다팔면 콩은 별로 남는 게 없었단다. 그래서 콩 대신 두부를 만들어 인근 강릉 시장에 내다 팔았다. 그 두부로 자식들 결혼도 시키고, 초당순두부가 맛있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식당도 차렸다.

초당 순두부.

백설기처럼 몽글몽글한 순두부

국산콩만을 고집하고 바닷물을 간수로 쓴 초당마을 두부는 비릿함 대신 구수한 향기가 나고, 순두부가 엉긴 데 없이 부드럽고 몽글몽글하다. 햅쌀로 잘 쪄낸 백설기처럼 입에 넣으면 녹듯이 목으로 넘어간다. 밥 한 공기는 간단하게 비워내는 밥도둑 역할을 한다. 순두부를 네모란 나무틀에 넣고 무거운 벽돌 몇장 올려 놓은 뒤 두세시간 눌러 놓으면 모두부가 된다. 질 좋은 순두부로 만들어낸 모두부 역시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초당 두부를 먹을 때는 맛을 내는 방식이 제각각이다. 일부 주인장들은 고소한 맛을 제대로 느끼려면 순두부에 간장 등을 넣지 않고 오롯히 순두부만을 맛볼 것을 권한다. 밋밋한 순두부에 맛을 더하려면 콩나물, 묵은 김치 등을 얹어 먹는 게 제격이다. 이곳에서 내놓는 순두부 정식에는 콩나물과 잘 익은 김치 등이 밥상 위에 함께 오른다. 반면에 해물순두부, 짬뽕순두부 등 순두부에 얼큰한 맛을 더해 현대인의 입맛에 맞춘 순두부집들도 인기를 끌고 있다.

강릉 포구마을 풍경.

여행메모

▲교통= 서울~강릉간 KTX가 개통되며 강릉 가는 길이 빨라졌다. 서울에서 강릉역까지는 두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강릉시내에서 초당마을까지 시내버스도 오간다. ▲음식 = 초당순두부 마을에서는 고부순두부, 초당할머니순두부, 동화가든 등이 순두부 맛으로 소문난 곳이다. 고부순두부는 현지인들이 즐겨 찾으며, 동화가든은 짬뽕순두부로 유명하다. ▲기타정보 = 초당마을 뒤편에는 허균, 허난설헌 기념관이 자리해 있다. 홍길동의 저자 허균과 여류시인인 허난설헌의 생가를 방문할 수 있다. 커피거리로 자리매김한 안목해변과 경포 바다도 가깝다.

허난설헌 생가.



글·사진=서 진(여행칼럼니스트) tour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