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폐배터리 규제 시행, 美 재활용 지원 정책 예고

LG에너지솔루션과 제너럴모터스(GM)의 합작법인 얼티엄셀즈 전기차 배터리 팩. 얼티엄셀즈는 북미 최대 배터리 재활용 업체 리-사이클과 배터리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배터리 재활용 계약을 체결했다. (사진=LG에너지솔루션 제공)
[주간한국 송철호 기자] 전기차 시대가 도래하면서 전기차 배터리의 중요성은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다만 전기차가 증가하는 만큼 함께 증가하고 있는 폐배터리 문제가 지속적으로 불거지고 있다는 점이 숙제로 남는다. 친환경성을 이유로 내연기관차를 몰아내고 있는 전기차에서 나오는 환경위협 요소라 자칫 대응이 제대로 되지 않았을 때 파장은 상상 이상일 것으로 보인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2029년 국내 기준 전기차 폐배터리가 약 8만개 배출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 조윤상 KDB미래전략연구소 산업기술리서치센터 연구위원이 발표한 ‘폐리튬 2차전지의 재사용과 리사이클링산업 및 기술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전기차 배터리는 통상 5~10년 사용 후 폐기돼, 폐배터리 문제는 2028년 이후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배터리 재활용 시장, 2030년 20조원 규모 성장

세계 각국은 이미 폐배터리 문제를 예상하고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 문제에 대응하는 것은 환경적인 측면은 물론 산업적인 측면에서도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850만대였던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이 2025년에는 2200만대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글로벌 배터리 재활용 시장도 2019년 기준 15억 달러(1조6500억 원)에서 2030년 181억 달러(약 20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연합(EU)은 2006년부터 ‘배터리 지침’을 발표하며 각국이 폐배터리 재활용 기술 개발을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2월에는 해당 지침의 효과가 미미하자 새로운 규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새로운 규제안에는 수명을 다한 배터리는 재활용하고 배터리 재료의 일정 부분은 재활용 원료를 사용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다수의 외신에 따르면 최근 미국 정부는 조만간 자국 내 전기차 배터리 재활용 관련 지원 정책 일부를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속적으로 친환경 정책을 내놓고 있는 상황에서 폐배터리를 적극적으로 재활용하지 못하면 오히려 환경을 오염시킬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된 데 따른 정책 보완 개념의 후속 조치로 보여 진다.

이는 미국과 중국의 배터리 패권경쟁과도 무관하지 않다. 미국 내부에서는 전기차 배터리 산업의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미국 내 재활용 배터리 산업을 키우기 위해 연구개발(R&D)과 재활용 배터리 공장 건설을 지원하는 등의 다양한 대응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한국과는 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 등의 미국 내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있다.

한국 정부도 올해 폐배터리의 고부가가치 재활용을 위한 기술 및 응용제품 개발을 본격 추진할 계획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전기차 등에서 일정기간 사용한 ‘사용후 배터리’, 즉 폐배터리는 에너지저장시스템(ESS), 가로등 등 다른 분야에 적용해 활용가치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제품화가 어려운 경우에는 니켈, 코발트, 망간 등의 유가금속을 회수해 자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이라며 “다만 다양한 환경에서 오랜 기간 사용된 만큼 성능과 안전성 차이가 클 수 있어 제품 신뢰성 확보를 위해서는 적절한 평가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한국도 규제 청사진 위한 폐배터리 관련 입법 서둘러야

세계 배터리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국내 배터리기업들도 폐배터리 활용에 대한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다. 다만 이 문제는 배터리를 제조하는 기업들의 수익적인 측면을 봤을 때 당장 적극적으로 사업화시킬 필요성이 크지 않았다는 게 관련 업계의 관측이다.

그럼에도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국내를 대표하는 배터리 기업들은 이미 폐배터리 관련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 먼저 LG에너지솔루션과 제너럴모터스(GM)의 합작법인 얼티엄셀즈가 북미 최대 배터리 재활용 업체 리-사이클과 배터리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배터리 재활용 계약을 체결했다.

이를 통해 셀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배터리의 코발트, 니켈, 리튬, 흑연, 구리, 망간, 알루미늄 등 다양한 배터리 원재료를 재활용할 수 있게 된다. 원재료 중 95%가 새로운 배터리 셀 생산이나 관련 산업에 재활용이 가능하다.

삼성SDI도 배터리·전력IT 전문기업 피엠그로우에 전략적 투자를 단행하는 등 폐배터리 관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피엠그로우는 전기버스용 배터리에 대한 리스·관리를 하고 사용기한이 된 배터리를 전기차 충전용 에너지저장장치로 전환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의 경우 배터리 재활용과 관련한 기술 확보에 나서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올해 초 자사 배터리 금속 재활용 기술의 친환경성이 미국 에너지성 산하 국가 지정 연구기관인 아르곤 국립 연구소에서 배터리 생애주기 평가를 통해 검증됐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SK이노베이션을 비롯해 LG에너지솔루션도 전기차 배터리 제조부터 활용, 재사용까지 이어지는 배터리 생애주기 서비스 ‘BaaS’(Battery As A Service)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배터리업계의 한 관계자는 “전기차 시장 규모나 배터리 수명을 고려했을 때 폐배터리 논란은 다소 이르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며 “하지만 주요국에서 배터리 재활용 관련 규제가 등장하는 만큼 국내 업계의 대응 전략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정부 입장에서 최소한 올해 말까지는 관련 법규 등 세부적인 부분들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국내 주요 배터리기업들이 폐배터리 재활용에 대한 대응 방안을 마련하고 있음에도 전반적인 국내 배터리 재활용 산업은 아직 걸음마 단계에 머물고 있다. 이미 해외 상당수 국가에서 전문기업들이 특수 공정을 거쳐 폐배터리에서 리튬, 니켈, 망간 등을 회수하는 것이 보편화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국내에서는 유의미한 행보가 나오지 못하고 있다.

김미송 케이프투자증권 연구원은 “전기차 한 대당 니켈과 코발트만 추출한다고 가정해도 100만 원 정도 가치가 발생한다”며 “전기차 시장 확대가 본격화되면 연간 1조4000억 원의 폐배터리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보여 고수익사업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환경과 미래 먹거리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폐배터리 재활용 사업에 민관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이유다.



송철호 기자 song@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