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트레이드마크 '기본소득' 두고 여야 공방전...'가성비 검증' 필요

이재명 경기도지사 (사진=연합뉴스)

여권 대선주자 선두를 달리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기본소득론을 둘러싼 공방전이 최근 뜨겁게 펼쳐졌다. 발단은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이 그의 기본소득론을 저격하고 나선 것. “이 지사의 기본소득은 성장도 아니고 복지도 아닌 사기성 포퓰리즘일 뿐”이라는 유 전 의원의 공격에 가만있을 이재명이 아니었다. 반격을 위해 이재명은 2019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베너지 MIT교수를 소환한다. “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베너지 교수와 사기성 포퓰리즘이라는 유승민 의원 모두 경제학자라는데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까요? 베너지 교수는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세계적 석학이고, 유승민 의원님은 뭘 하셨는지는 몰라도 아주 오래 국민의 선택을 받으신 다선 중진 국회의원이심을 판단에 참고하겠습니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교수가 기본소득이 필요하다고 했으니 잘 모르는 정치인 유승민은 입닫고 있으라는 얘기로 들렸다. 베너지 교수는 이 지사가 인용하고 싶어할만한 대표적인 기본소득론자이다. 빈곤의 실상을 탐구하고 저개발국의 빈곤 퇴치를 위한 정책을 강조해온 공로로 부인 듀플로 교수와 함께 노벨경제학상까지 받았으니, 그의 견해라면 권위가 실릴만도 하다. 이 지사의 경기도는 지난 4월에 열린 기본소득박람회 국제콘퍼런스에 베너지를 영상 기조연설자로 초청하기도 했다. 다만 베너지는 기본소득을 주장하면서도 한국에서의 적합성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니 베너지에 대한 해석을 놓고 논쟁이 촉발된 것이다. 유승민과 같이 국민의힘 소속인 윤희숙 의원은 <이재명 지사님, 알면서 치는 사기입니까? 책은 읽어 보셨나요? 아전인수도 정도껏 하십시오>라는 페이스북 글을 통해 “존경받는 개발경제학자 베너지-듀플로 교수는 선진국의 기본소득에 대해 이재명 지사와 정반대 입장”임을 주장하고 나섰다. 실제로 국내에서도 번역되어 판매 중인 베너지-듀플로 부부의 책에는 이에 관한 설명이 나온다.

“부유한 나라와 달리 가난한 나라는 보편기본소득이 유용할 수 있다. 개발도상국은 복잡한 프로그램을 운용할 행정역량이 부족하고 농촌기반 사회라 소득파악도 어렵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과 같은) 선진국은 돈이 필요해서만이 아니라, 일 자체가 목적의식, 소속감, 성취감, 존엄성, 자아계발 등 삶의 의미를 가꾸는 주축이다. 선진국 사회가 현재 당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보편기본소득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일자리를 만들고 지키는 것, 근로자의 이동을 돕는 것이 핵심이다." (베너지-듀플로,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

민주당의 김병욱 의원은 윤 의원이 "일부 한 문단만 가지고 과잉반응을 하셨다고 본다"고 말했지만, 이 부분은 베너지의 생각을 잘 압축하고 있는 내용의 것이다. 베너지는 대상을 선별하는 과정에서의 현실적 어려움 때문에 보편적 기본소득이 효과적이라고 하는 것이지, 대상 선정을 위한 데이터가 잘 구축이 되어 있는 나라에서까지 지고지선의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윤 의원에 이어 유 전 의원, 이한상 교수 등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의 말까지 왜곡했다는 비판을 가하자, 이 지사는 다음 날 ‘복지후진국’이라는 조어를 앞세우며 다시 반격에 나선다.

“대한민국은 전체적으로 선진국이 맞지만, 복지만큼은 규모나 질에서 후진국을 면치 못합니다. 국민에게 유난히 인색한 정책을 고쳐 대한민국도 이제 복지까지 선진국이어야 합니다. 기본소득 도입은 복지선진국일수록 더 어렵고, 우리 같은 복지후진국이 더 쉽습니다.”

복지에 있어서는 한국이 후진국이니까 기본소득의 도입이 쉽다는 것인데, 베너지의 말을 왜곡 인용했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직접 언급하지 않고 돌려서 재반격한 셈이다. 몇 차례 주고받은 말로 논쟁이 결말을 맺기에는 한국의 복지 수준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컸다. 이 지사는 ‘복지지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절반 수준’ 등을 열거하며 한국이 복지후진국임을 강조했지만, 유승민 등 비판자들은 "올해 복지예산이 200조 원이고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며 그의 주장을 반박했다.

일단 이 지사가 ‘한국의 복지지출이 OECD 평균의 절반 수준’이라고 말한 것은 사실에 부합된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올해 2월에 펴낸 ‘OECD 주요국의 공공사회복지지출 현황’ 보고서에서 “한국은 국민부담률 26.7%,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사회복지지출 비율 10.8%로 OECD 평균 이하의 저부담-저복지 국가에 해당한다”고 분석했다. 다만 국회예산정책처는 “(한국은) 공공사회복지지출이 급격하게 확대됨에 따라 현행 제도를 유지하더라도 2050년대 중후반쯤 고부담-고복지 국가군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이렇게 한국의 복지 수준은 아직 미흡하지만 빠르게 향상되고 있다. 그래서 현재 한국이 ‘저복지’ 수준이니 베너지가 말하는 기본소득이 필요한 저개발국에 해당하는지는 별개의 논쟁이 필요한 부분이다. 기본소득이 필요한 국가 여부를 판단하는 데는 복지의 수준보다는 국민소득의 구조, 지급 대상을 효율적으로 선정할 수 있는 데이터의 축적 수준 등이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지난 20여년간 의료보험제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각종 연금제도 등이 발전하면서 국민 소득과 재산에 관한 데이터들이 잘 구축되어 왔다. 거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한 데이터 구축, 문재인 정부 들어 부동산 임대소득에 대한 파악까지도 강화된지라 선별 지원을 위한 데이터들이 잘 갖추어져 있는 편이다. 그래도 놓칠 수 있는 사각지대가 있다면 그것은 보완적 장치 마련으로 해결할 일이지, 빈대잡기 위해 초가삼간에 불을 놓을지를 고민할 일은 아니라는 반론이 가능하다.

이 지사가 베너지의 말을 왜곡했다는 비판은 야당 뿐 아니라 민주당 대선주자인 정세균 전 국무총리에게서도 나왔다. 그는 “주장을 펼치기 위한 근거로 인용한 학자들의 주장마저도 왜곡됐다"며 "최소한 토론의 기본은 갖춰야 하지 않겠냐"고 이 지사에게 직격을 가했다. 기본소득 문제에 관한한 이 지사는 야당 뿐 아니라 여당 주자들에게서까지 공격당하는 포위당한 위치가 되고 있다. 그런데 기본소득에 대한 평가와 판단은 워낙 중대하고 민감한 의제이기에 이렇게 몇 번 공방전 벌이고 넘어갈 일은 아니다. 앞으로 대선정국에서 두고두고 토론이 따라야 할 사안이고, 실제로 그렇게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베너지 교수의 견해가 성경처럼 받들어지고 그의 문구에 대한 해석이 논쟁의 준거가 될 일은 아니다. 이번에는 이 지사가 베너지의 말을 왜곡 인용했다는 것이 쟁점이 되긴 했지만, 그것은 토론의 윤리에 관한 문제이고 사안의 본질은 아니다. 본질적인 것은 우리 현실에서 이재명표 기본소득이 효과적일 것이냐 하는 점이며, 토론의 초점은 여기에 맞추어져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이재명표 기본소득을 둘러싼 쟁점 가운데 핵심은 ‘소득’이라고 하기에는 턱없이 적은 액수, 반면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지급했을 때 소요되는 천문학적인 예산을 비교할 때 과연 가성비 좋은 정책이 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 지사가 설명하고 있는 내용은 이렇게 요약된다. “단기에는 예산절감으로 25조원(인당 50만원)을 확보해 25만원씩 연 2회 지급으로 기본소득 효과를 증명하고, 중기로는 기본소득의 국민공감을 전제하여 조세감면(연 50~60조원) 축소로 25조원을 더 확보하여 분기별 지급하며, 장기로는 국민의 기본소득용 증세 동의를 전제로 탄소세, 데이터세, 로봇세, 토지세 등 각종 기본소득목적세를 점진적으로 도입 확대해가면 됩니다.”

문제는 이 지사의 구상대로 하면 1인당 받게 되는 기본소득이 월 4만여원 정도가 되는데, 이 정도 액수를 갖고 ‘소득’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하는 점이다. 이재명은 “대다수 서민에겐 목숨처럼 큰 돈”이라고 말하지만, 월 4만원을 목숨처럼 생각하는 국민의 비율이 얼마나 될지, 그리고 그들을 위해 어째서 모든 국민에게 그 돈을 줘야 하는지는 논란거리로 남을 수밖에 없다.

나는 집도 있고 직장에 다니며 월급도 잘 나오고 있어서 먹고 사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고 가정해 보자. 그런 나에게 매달 4만원씩 주면 국가의 과감한 복지혜택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라도 갖게 될까. 아마도 나 같은 필부들은 ‘그까짓 4만원’ 하고 나가서 누구 밥 한번 사주고 말 것 같다. 그렇게 의미 없이 사라지는 돈이 당장 25조원 가운데 10조원이 될지 15조원이 될지 알 수 없다면 얼마나 허망한 일이 되겠는가. 물론 이 지사는 그만큼 경기부양 효과가 있다고 하겠지만, 경기부양을 위해 현금 지급을 항상적으로 제도화하는 것이 정상적인 정책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게다가 4만원 받은 나는 필경 언젠가는 아마 5~6만원 정도는 세금으로 더 내게 될 지 모른다. 기본소득 목적세라도 신설되면 그 세금 부담은 ‘그까짓 4만원’으로 여겼던 층이 지게 되기 쉽다. 그러니 받은 것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야할 가능성이 농후하고, 그 때는 사기당한 기분이 들지 모른다. “줬다가 뺐을 거면 차라리 주지나 말지”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 4만원을 절박하지 않은 국민 50%를 제외하고 나머지 50% 국민들에게만 지급하면 월 8만원 씩 줄 수 있다. 국민의 3분의 2 정도를 제외하면 월 12만원, 4분의 3 정도를 제외하면 월 16만원 정도 줄 수 있다. 지급 대상을 5분의 1, 6분의 1, 혹은 그보다 더 줄이면 그때 비로소 기본소득 지급액은 이 지사의 표현대로 “서민에겐 목숨처럼 큰 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상식에 부합된다는 반론을 이 지사가 피해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경쟁 주자들의 집요한 비판이 계속될 것이다. 엄청난 천문학적인 예산을 사용하면서 막상 돈 받는 개인들에게는 별 의미가 없는, 나라에 부담만 키우고 효과는 알 길 없는 방식이라는 비판적 여론에 대해 이 지사가 설득력 있는 대답을 마련해야 할 일이다.

또 하나 생각해야 할 문제는 기존의 복지제도들을 축소.조정하지 않고서도 기본소득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기본소득론자들의 경우도 이에 대해서는 입장이 갈라진다. 보다 급진적인 좌파 기본소득론자들 경우에는 기존 복지제도들을 건드리지 않고 유지하며 기본소득을 추가하는 내용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 지사의 기본소득 경우는 기존의 복지제도들을 축소한다는 얘기는 아직껏 없다. 물론 그랬을 경우 현실적으로 부딪히는 문제는, 기존 복지예산을 줄이지 않고서도 보편적 기본소득의 막대한 비용을 감당하는 일이 가능할 것이냐는 점이 된다. 기본소득을 위해 결국에는 기존의 복지제도를 축소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결국 그것이 복지 수준의 개선인가 개악인가는 매우 논쟁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

이처럼 이재명의 기본소득론에는 수많은 쟁점들이 따르고 있다. 그런데 이 지사는 여야를 망라한 숱한 반론과 비판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이렇게 기본소득을 지키는데 매달리는 것일까. 이미 이 지사에게는 기본소득을 시작으로 기본주택-기본대출로 이어지는 ‘기본 시리즈’가 트레이드 마크처럼 되어버렸다. 이 지사는 그동안 ‘기본 시리즈’를 통해 ‘서민의 삶을 우선하는 정책을 가진 새로운 리더십’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냈고, 기존 정치인들과 차별화되는 대선주자로 부상했다. 이 지사에게 ‘기본 시리즈’는 정책이기도 하지만, 최대의 정치적 무기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니 이 지사로서도 기본소득 논쟁에 있어서는 한 발도 뒤로 물러서는 일 없이 배수의 진을 치고 나서는 것이다. 지난 4월에 열린 기본소득박람회에서 베너지 교수의 연설 말미에는 “향후에 경기도에 직접 방문해서 도지사님과 관련 분들과 함께 논의할 기회를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인사말이 나온다. 내가 이재명이라면, 만약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된다면 베너지가 한국에 와서 “한국에도 기본소득제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장면을 만들어내고 싶을 것이다. 이렇게 이 지사 자신도 붐업을 원하고, 비판자들은 비판자들대로 벼르고 있는 것이 기본소득 문제이니 내년 대선을 앞두고 ‘기본소득 대전(大戰)’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지금 이 지사의 기본소득에 대한 비판은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 당장 민주당의 경선 과정에서도 그러하다. "재원 조달 방안이 없다면 허구"(이낙연),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정세균), "위험천만한 이야기"(박용진)라는 다른 주자들의 비판이 이어진다. 만약 이 지사가 민주당 후보가 되어 본선으로 가게 되면 논쟁은 더욱 뜨거워질 것이다. 윤희숙, 유승민 같이 경제학을 전공하고 정치에 들어온 인물들이 이재명 ‘기본 시리즈’에 대한 저격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대선주자들의 주요 정책을 둘러싼 이런 논쟁은 바람직하고 많을수록 좋다. 국민생활과 직결되고 나라의 살림살이를 좌우할 정도의 중대한 정책에 대해서는 국민 앞에서 토론하고 검증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서 SNS를 통해 서로가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지금의 방식이 아니라, 민주당 주자들 간의 토론도 좋고, 이재명- 유승민이나 이재명-윤희숙 같은 여야 간의 토론도 좋다. 언제 우리가 대선에서 정책 갖고 제대로 뜨겁게 토론해 본 적이 있었던가. 이런 토론을 하는 것이 그토록 입만 열면 주문했던 정책선거가 아니겠는가.

다만 토론이 정치적 논쟁에 그쳐 단편적인 형태로 진행되는 것은 이제까지의 기본소득 논쟁이 보여준 한계였다. 이 지사도, 비판하는 사람들도 기본소득의 효과와 문제점에 대한 체계적이고 깊이 있는 내용을 제시하지는 못해 인상 비평의 수준을 넘지 못했다. 기왕이면 정치권의 이해당사자들 뿐 아니라 경제학자들이나 전문가들도 참여해서 토론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그런데 이 지사에게는 토론의 내용과는 또 다른 토론의 ‘태도’에 관한 리스크가 함께 따른다. 그것은 자신을 비판하는 의견을 참고 보지 못하는 것 같은 불 같은 태도에 기인하는 것이다. 그동안 이 지사는 자신의 정치적 의견이나 정책에 대해 누가 비판이라도 하면 격분하여 공격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왔다.

대표적인 사건이 지난해 국책연구기관인 조세재정연구원의 ‘지역화폐의 도입이 지역경제에 미친 영향’이라는 연구 결과물에 대해 격분하여 맹공을 퍼부은 일이었다. 당시 지역화폐 정책의 한계를 지적한 이 보고서에 대해 이 지사는 “정치적 주장에 가까운 얼빠진 연구 결과”라고, 조세연을 향해서는 “근거 없이 정부정책을 때리는 얼빠진 국책연구기관”, “청산해야 할 적폐”라고 비난하며 “엄정한 조사와 문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까지 주장했다.

당시 조세연의 보고서가 이 지사가 말한 대로 ‘얼빠진’ 보고서라는 소리를 들을 이유는 없었다. 이 보고서는 지역화폐 도입이 유발하는 경제적 효과가 제한적이라고 판단했다. 지역화폐 도입 시 해당 지역 내 소상공인 매출 증가와 함께 대형마트의 매출액이 지역 내 소상공인에게로 이전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특정 지역 내에서만 사용하는 지역화폐는 인접한 다른 지역의 소매업 매출을 감소시키는 역효과를 초래한다는 분석이었다. 결국 모든 지역에서 지역화폐를 발행하게 되면 매출 증가 효과는 줄고 발행 비용만 순효과로 남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역화폐의 발행을 중앙정부가 보조해 주거나 온누리상품권을 사용하는 방안을 이 보고서는 대안으로 제시했다. 최신 데이터가 없어 2018년까지의 데이터만 갖고 분석한 한계는 있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황당무계한 보고서는 아니었다. 지역화폐의 효과에 대한 객관적 평가와 검증을 위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문제들을 분명 담고 있었다. 국가의 여러 정책에 대한 연구와 토론과정에서 충분히 나올 수 있는 국책연구기관의 보고서에 이 지사가 그렇게까지 발끈하며 연일 공격을 가했던 데는, 자신의 대표적 정책이었던 지역화폐에 대한 평판이 훼손될 것에 대한 우려가 컸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직 도지사가 연구의 정치적 배경에 대한 의혹까지 제기하며 성을 내는 모습을 보인 것은 민주적인 토론을 하려는 자세는 분명 아니었다.

이 얘기를 굳이 다시 꺼내는 이유는, 이 지사가 자신의 정책에 대한 비판이나 반대 목소리에 격분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 종종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2차 재난지원금 지급 방식을 놓고 자신이 주장했던 전 국민 지급이 아니라 선별 지급으로 결론이 나자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 대한 원망과 배신감이 불길처럼 퍼져가는 것이 뚜렷이 보인다”고 비판했다. 또한 “적폐세력과 악성 보수언론이 장막 뒤에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권토중래를 노리는 것도 느껴진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2차 재난지원금의 성격을 경기부양으로 보느냐,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른 입장을 취할 수 있는 문제였지만, 이 지사는 선별 지급론을 마치 적폐세력과 보수언론이 노리는 것이라는 식으로 매도했다. 자신의 입장과 다르면 적폐라는 이분법적 주장은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을 국민 전체의 적으로 몰아가는 포퓰리스트적 태도인 것이다. 지역화폐의 한계를 지적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얼빠진 연구 결과’라는 소리를 하고, 선별 지급을 주장한다고 해서 ‘적폐세력’ 소리를 하고, 기본소득론을 비판하는 야당을 향해 “설렁탕집 욕하려면 ‘설렁탕전문’ 간판부터 내리라”고 말하는 이 지사의 모습은 정책에 대한 비판에 정치적 반격으로 대응하곤 한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힘든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준다’는 이유를 말한다. 그런데 한국의 현실에서 기본소득이 힘든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역할을 할지, 반대로 그들에 대한 효과적이고 집중적인 지원을 저해하는 결과를 낳을지는 아직 토론과 검증이 필요한 문제이다. 자본주의에서 기본소득에 관한 논의는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1960년대 보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기본소득과 유사한 효과를 내는 ‘부(負)의 소득세)’를 제안하여 관심을 모았지만, 기본소득에 대한 실험이 진행된 것은 비교적 근래의 일이다.

1980년대 미국 알래스카에서 기본소득을 도입한 이후로 스위스, 핀란드, 캐나다, 아프리카와 인도의 일부 지역에서 제한적으로 기본소득 실험이 이어져온 정도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로 한국에서도 다양한 기본소득 논의가 여야 정치권에서 전개되고 있지만, 막상 그 내용과 결은 다양하다. 국가 차원에서 기본소득을 도입한 나라가 아직 없다는 사실은 한국형 기본소득에 대해 많은 토론을 필요로 함을 말해준다. 이재명표 기본소득에 대한 토론에 이 지사 본인도, 그 비판자들도 준비를 갖추어 적극 나서 보시라. 정책 논쟁이 뜨겁게 펼쳐지는 선거를 오랜만에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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