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화 6조 달러로 가능한 일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취임 후 첫 예산안으로 무려 6조 달러(약 6700조원) 규모의 슈퍼 재정패키지를 발표하였다. ‘6조 달러’는 ‘600만 달러’를 “100만 개”만큼을 모아놓아야 만들어지는 규모이다. 일반인들에게 쉽사리 감이 오지 않는 규모로서 비교하자면, 현재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한국은행 외환보유고(2021년 5월말 기준)인 미화 4560억 달러의 약 13배에 달하는 크기이다. 무역규모 10위권의 경제강국인 한국 정도 국가의 외환창고 13개를 모두 털어내야 조달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더 쉬운 비유로는 ‘70~’80년대 미국드라마 중 가공할 인간병기로 유명세를 떨쳤던 ‘600만불의 사나이’ 100만명으로 만든 초능력 군단을 창설할 만한 돈이다. 동 드라마는 우주선 추락 사고로 생사기로에 빠진 우주비행사 스티브 오스틴 대령을 생체공학을 이용해 사이보그로 재탄생시켜 특수임무를 수행하게 하는 내용이다.

초능력을 갖춘 사이보그의 탄생을 위해 팔, 다리, 눈에 첨단과학장치를 접목시키는데 그 비용이 미화 600만 달러가 들었다는 설정이다. 악당들에 의해 위기에 빠지는 미국과 지구를 지키는 일을 단 한명의 ’600만불의 사나이‘가 척척 해낸다. 그런데 바이든은 1명으로도 족한 수퍼히어로 100만명을 호출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의 가공할만한 예산안이 제출된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의 종식이 예견되어 세계도처에 보복소비의 기미와 인플레이션의 경종이 도처에서 울리고 있다고들 하는데, 이 같은 막대한 재정투입은 혹시 ‘불 난데 부채질’ 하는 격은 아닐까.

그 답은 어쩌면 그동안의 재정정책 수준만으로는 진정한 의미의 낙수효과가 작동되지 않고 있다는 미국 정부의 고백이라는 각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일단 세계 경제라는 환자가 만일 의심할 바 없이 완치의 길에 접어들었다면 병원비로 이 같이 막대한 돈을 책정해 둘 이유가 없는 것임은 자명하다. 특히 현재 바이든 새 행정부의 제 1기 재무부 장관으로서 동 예산안을 기획총괄 한 이가 대학 최우등졸업자 클럽인 ‘파이 베이타 카파(Phi Beta Kappa)’ 출신의 재닛 옐런 전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라는 점에서 오진의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노동경제학자로서 완전고용을 중시하는 그녀의 눈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에 대기업과 부유층의 부를 증진시켜준 것이 중소기업, 자영업자 및 일반 서민들에게도 부양책 효과로 이어진 바가 없다는 결론에 기반한 낙수효과 부재론을 신봉하는 지 모른다. 잘사는 이들의 아랫목은 몰라도, 없는 이들의 윗목에는 온기가 없거나 미미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바이든-옐런’ 팀은 신정부의 경제정책 기조에 ’분수효과’를 중심 이데올로기로 삼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중산층 이하의 가처분소득을 두텁게 하여 국가 전체적으로 소비, 생산 및 투자의 선순환을 이루게 한다는 것이 이 이론의 골자다. 낙수효과를 기반한 정책이 위로부터의 부양책이라면 분수효과는 반대로 아래로부터의 부양책이라 할 수 있다.

결국 부자를 대변하였던 트럼프 행정부와 달리, 바이든 행정부 무게의 추는 중산층 이하, 특히 저소득층에 대한 선택적 분배확대 및 부유층과 대기업에 대한 선택적 증세(법인세 인상을 포함)로 표출될 것이 외길 수순으로 읽힌다. 왜냐하면 아무리 세계 제1의 기축통화국가인 미국이라 할지라도 가공할만한 6조 달러의 조달은 조폐공사의 윤전기만 돌려서는 가히 역부족일 것이기 때문이다.

6조 달러 부양책은 ‘오버킬’이자 ‘올인’ 정책

바이든-옐런 팀은 이번에 전쟁을 끝내고자 하는 듯하다. 코로나19로 인한 실질적 불황과 아직도 아른거리는 2008년 금융위기의 그림자까지 포함하여 모든 경제위기를 한방에 종식하고자 한다. 하지만 전쟁을 반드시 이기기 위해서는 ‘오버킬’이 필요한 법이고, 어느 순간에는 모든 것을 거는 ‘올인’을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한다.

오버킬과 올인이 결합되는 경우 투입자산 대비 효율은 높지 않은 대신 이길 확률은 100%로 수렴하기 때문에,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게임에는 미국의 리더들은 오버킬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실전에서 과유불급을 두려워 하기보다는 비용이 들더라도 융단폭격을 애용한 사례는 무수히 많다.

경제 정책에 있어서 금번 6조달러가 상징하는 바이든-옐런 커플의 노림수는 진정으로 오버킬이자 올인에 가까운 융단폭격만큼 강력하다. 아래 표의 통계에서 볼 수 있듯이 미국이 2008년 금융위기이래 약 10여 년 간 시전한 양적완화의 순합만큼의 규모가 금번 재정정책에 동원된 유동성의 규모와 같기 때문이다.

먼저 위의 미국 연준의 ‘자산 규모 추이’는 ‘부채 추이’로 바꿔 독해를 하여야 오독을 피할 수 있다. 왜냐하면 중앙은행의 자산은 곧 부채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무자본 특수법인 까닭에 ‘자산 = 부채 + 자본’이라는 공식에서 ‘자본 = 0’으로 대치하면 ‘자산 = 부채’와 같게 된다. 중앙은행의 역할인 미국 연준은 자본도 약간 있고, 상징적 주주도 있는 형태이지만 외형만 그러할 뿐 무시해도 좋다. 따라서, 미국 연준의 자산규모도 부채규모와 같다고 봐도 무방하다.

상기 도표상 미국 연준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에는 1조 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 부채규모를 가지고 있다가 2021년에 와서는 8조 달러에 육박하는 부채를 기록하고 있다. 그 십수년 동안의 기간 동안 6~7조 달러 규모를 순증하는 양적완화를 한 것이다. 다시 말해 2008년 본격적으로 미국 연준이 금융위기에 연합군으로 참전한 이래, 누적으로 공급한 순유동성이 6~7조 달러라는 말이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바이든-옐런의 금번 재정정책의 총규모가 이같은 십 수년을 합한 금액과 유사한 6조 달러라는 것이다. 이는 지난 십 수년 간 펼쳤던 현란한 양적완화 1기~4기까지 시전한 모든 초식을 금번에 모두 쏟아 붓겠다는 것과 같다. 일부 속도 조절도 있을 것이고 우선순위에 따른 수순 조율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6조 달러라는 ‘한도대출’을 의회로부터 승인을 받는다면, 동태적 배분을 하겠다는 것일 뿐 총량은 모두 집행할 것을 결의한 셈이다.

이 정도의 병력과 물자의 동원은 전쟁을 끝낼 각오가 아니면 나올 수가 없다. 동시에 여러 나라가 연합군에 이심전심으로 참전을 선언하고 있다. 아일랜드가 35억 유로(40억달러)의 재정 정책을 발표하였고 태국은 1,400억 바트(45억달러), 말레이시아는 400억 링기트(96억달러) 규모의 재정투하를 동시다발적으로 발표하였다. 큰 형님이 움직이니 동생들은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대겠다는 형국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잠재적 경기침체를 악당으로 규정하고, 이를 무찌르기 위해 무려 1백만명 규모의 ‘6백만불의 사나이’에 해당하는 재정을 투하하기로 발표하였다. 이제까지 중앙은행 주도로 불특정다수인에 영향을 미치는 유동성 공급정책인 통화정책이 수고하였다면, 재정정책이 운전대를 이어받아서 전쟁종식을 향해 돌진 할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미국 주류경제학자들도 나라 곳간이 텅 빈다는 우려를 삼가면서 새정부와 허니문을 지속하고 있다. 왜냐하면 중앙은행 주도의 통화정책은 공평한 듯 보여도 공평하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넓게 보아 지난 10여 년의 금리인하로 인해 조성된 유동성 풀은 대기업 또는 부자들과 같이 신용등급이 높은 이들의 전유물이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금융시스템은 근원적으로 신용도 높은 이들에게 공동체의 유동성이 더 많이 배분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부유층과 대기업에 시혜된 미필적 낙전 혜택은 불특정 다수인에 영향을 미치는 통화정책에서는 불가피 하기에, 바이든은 이를 보완하고 광명정대한 방향으로 막대한 재정정책을 궤도수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부작용은 일정부분 전술적으로 포기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분수효과를 향한 재정집행을 좌고우면 없이 집행하고 세수조달은 견조하게 추징하되, 미국 연준이 인플레이션이라는 돌발변수의 사후적 관리자로서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이라든지 약간의 금리인상 개입으로 함포사격을 할 가능성만이 리스크로 감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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