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적 실천계획 너무 늦거나 모호해 실행 의지 의문

0대 기업 총수들의 얼굴이 그려진 가면을 쓴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10대 그룹 기후위기 대응 성적 발표 기자회견에서 성적표를 들어보이고 있다. 그린피스는 10대 그룹 대부분은 총수들이 직접 나서 탄소중립이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내세우며 기후위기 대응 의지를 강조했지만 이들 주요 그룹 계열사들이 온실가스 감축 노력이 뒤떨어진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주간한국 장서윤 기자]올해 기업 경영과 관련해 가장 많이 거론되는 단어는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이다. ESG는 기업이 비재무적 요소를 고려해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구하는 경영활동을 말한다. 친환경 정책을 추진 중인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를 비롯한 전세계는 물론 한국 정부도 그린 뉴딜 정책에 주력하면서 기업들의 ESG 경영 전략은 올해의 핵심 키워드로 자리매김했다.

실제로 올 초부터 대부분의 기업 홍보 자료에는 ‘ESG 경영’이라는 단어가 약속이라도 한 듯 주요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이같은 ESG 경영이 환경 등 사회 각 부문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일까. 아직까지는 ‘아니’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특히 기업들이 가장 먼저 발벗고 나섰던 환경 분야에서도 대부분 실망스러운 성적표를 받고 있다. 기업들이 대대적인 광고를 통해 친환경 이미지를 쌓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정작 기업 내부 정책은 ‘빈수레가 요란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국내 10대 그룹 절반 이상 기후위기 대응 리더십 ‘낙제점’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가 지난 8일 발표한 ‘10대 그룹 기후위기 대응 리더십 성적표’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10대 그룹 중 절반 이상인 6개 그룹(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농협, GS, 한화, 롯데)의 계열사가 낙제점을 받았다. LG와 포스코 그룹은 D학점, 삼성과 SK그룹은 C학점으로 ‘선방’했다.

이 조사는 그린피스가 기후위기 대응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조직인 기후미디어허브와 함께 지난 4월 12일부터 5월 7일까지 진행했다. 10대 그룹의 100개 계열사를 대상으로 △재생에너지 사용 현황 △사용 전력의 100% 재생에너지 조달 계획 △구체적인 이행방안 등을 묻는 설문을 진행, 계열사 별로 응답을 취합해 A 학점부터 F학점까지 점수를 매겼다. 각 그룹 및 총수가 대외적으로 밝혀온 기후 대응 의지의 실천 내용이 기업 내부에서 준비가 돼있는지, 실제로 실행을 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조사였다.

결과는 큰 아쉬움을 자아냈다. SK와 삼성의 각 10개 계열사들은 100% 재생에너지 전환 계획이 있다고 답했지만 SK는 2050년을 목표로 해 매우 늦고, 삼성은 일부 계열사가 목표연도를 2030년으로 제시했지만 절반 이상은 목표연도를 제시하지 못했다. LG와 포스코는 100% 재생에너지 조달 목표연도 뿐만 아니라, 이행계획도 없는 계열사들이 많아 D를 받았다. 롯데, 농협, 한화, 현대자동차, GS, 현대중공업은 계열사 한두 곳만 응답하거나, 논의 중이라는 이유로 설문에 응하지 않아 F를 받았다.

‘100% 재생에너지 조달’은 30년 후에나?

구체적인 이행 연도를 밝힌 25개 기업의 평균 목표 연도는 2048년으로 집계됐는데 전 세계 RE100(Renewable Energy, 사용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기업)에 가입한 약 300여 개 기업의 평균 이행연도인 2028년보다 20년이나 뒤처진다.

그러나 국내 10대 기업 100개 계열사가 2020년 한 해 동안 사용한 전력량은 89TWh로, 국내 2000만 가구 전체가 사용하는 전력량 76TWh 보다 약 1.2 배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응답기업의 83%는 ‘기후위기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한다’고 답변했으나 실제 노력과 실천 사이에는 큰 간극이 확인된 결과다. 또 응답기업의 86%는 정부의 재생에너지 설비확대 목표 상향 및 지원 강화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린피스는 “국내 전체 가정보다 더 많은 전력을 기업활동에 사용하며 막대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국내 주요 그룹은 책임감을 가지고 온실가스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가장 빠르고 안전하고 경제적인 수단인 재생에너지로 전력을 조달해야 한다”라고 제언했다. 구체적으로 “기업이 전력소비량과 온실가스 배출량, 재생에너지 100% 전환 목표 연도에 맞춘 연도별 재생에너지 조달 방안과 비율을 지속가능경영보고서나 홈페이지 등을 통해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며 실질적인 행동에 나설 것을 당부했다.

한편 지난 4월 산업통상자원부는 ESG 평가 표준화지표라며 ‘K-ESG 지표’를 발표, 포스코가 최상위 단계인 A등급을 받았다고 밝혀 빈축을 사기도 했다. 포스코는 연간 8000만톤의 온실가스를 배출, 국내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12%를 차지하는 데다 지난 5년간 산재 관련 법 위반 사항이 7000여건, 산재 관련 사망자 수 43명으로 지난해 시민단체와 노동계에서 ‘산재 1위 기업’으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이에 ESG 경영과 관련해 기업의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면밀하게 들여다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한 환경단체 관계자는 “모 기업은 사업 확장을 위해 기존 숲을 없애고 있으면서 앞에서는 ‘숲 조성’을 위해 새로 나무심기를 하는 것을 홍보하는 사례도 봤다. ‘ESG 경영’이 실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실천으로 이어지고 있는지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한 때”라고 꼬집었다.



장서윤 기자 ciel@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