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부는 부양책, 연준은 금리인상 경고…효율적 재정이 관건

시국이 수상하니 변이가 대세이다. 1년 넘게 지긋지긋하게 지구촌을 괴롭히던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은 급기야 델타 변이로 진화하며 4차 대유행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 또한 감염학자들은 남미에서 이미 2차 변이를 탐측하여 이를 람다(lambda) 변이로 명명하고 특성분석에 들어가는 등 경계경보를 올리고 있다. 인간이 만든 백신에 바이러스가 변이를 거듭하며 생존을 위한 투쟁을 선포한 느낌이다.

글로벌 금융시장도 예외가 아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취임 후 첫 예산안으로 6조 달러(약 6700조원) 규모의 울트라-슈퍼 재정패키지를 발표했다. 반면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매파들은 연일 인플레이션 가능성을 경고하며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이 임박했음을 경고하고 있다. 전대미문의 규모인 슈퍼재정은 시중에 유동성을 엄청나게 푼다는 의미인데 비해, 연준의 테이퍼링 내지 금리인상은 시중에 있는 유동성을 축소하겠다는 말이다. 방향에서 두 정책이 크게 상충하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통상 유동성을 기준으로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은 동일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상례였다. 유동성의 공급이라면 재정도 풀고 통화량도 푸는 것으로 조화를 이루고 유동성의 회수라면 재정도 줄이고 통화량도 흡수하는 것으로 조화를 이뤘다.

그 반례로 꼽히는 것이 일본의 ‘아베노믹스’다. 초기에 매우 성공적이었던 아베노믹스(Abenomics)는 갑작스런 소득세 인상을 기점으로 엇박자를 보이며 고꾸라졌던 것이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한때 재미를 봤던 ‘세자루 화살’은 내각의 재정정책이 일본은행(BOJ) 통화정책의 엄호사격을 받으며 펼친 경기부양책을 말한다. ‘기동적 재정정책’ ‘과감한 양적 완화’ ‘구조개혁을 통한 성장’이 핵심 축이다. 그와 같은 유동성 공급정책이 몇 차례에 걸친 소득세 인상과 논리적으로 충돌을 일으키며 급기야 아베노믹스도 빛을 잃어갔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자본주의 금융시장의 맏형인 미국이 엇박자를 보이고 있다. 재정은 풀겠다는데, 연준은 유동성을 조인다는 모습은 일감으로 정책혼선이라 해석된다. 그런데도 시장은 말이 없다. 시장의 침묵 내지 동조가 단순히 바이든 정권의 허니문 기간에 주어지는 면책특권일 가능성도 없다. 시장은 그저 ‘바이든-옐런-파월‘로 이어지는 삼각 리더십에 경청하고 따르는 모습이다. 시국이 너무도 수상하니 정부와 중앙은행이 시전하는 변이적 엇박자가 또 다른 묘수일 것이라는 깊은 기대를 가지고 있음이다.

특히 돌이켜 보면 변이적 정책의 효시는 미국이 세계 최초로 들고나온 양적완화(QE)이다. 더불어 신용파생상품의 독성에 거의 죽어가던 월스트리트와 글로벌 금융시장을 ‘통화스왑’이라는 국가간 파생상품을 통해 구해낸 리더십도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2008년 이래 시행된 QE는 제 1탄(QE1)에서 시작하여 현재 바이든 정부의 제 4탄(QE4)까지 이어지고 있다. 파생상품으로 난 불을 파생상품으로 제압하였다고 하여 이독제독(以毒制毒)으로 불리던 국가간 통화스왑도 아직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한국은행(BOK)도 연준과 600억달러 한도의 통화스왑을 유지해 오고 그중 일부는 외화대출을 통해 국내 금융기관의 달러유동성 파이프라인으로 활용 중이다.금번 미국이 선도하는 정책 엇박자는 어쩌면 전환기에 가장 최적화되도록 설계된 ‘뉴 노멀’이라는 기대를 품게 한다.

미 행정부와 연준, 둘 중의 하나는 늑대소년

지난 주 ‘유로 2020’을 우승한 축구강국 이탈리아는 ‘조상팔아 먹고 산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여행업 강국이기도 하다. 코로나19 이전에 해외관광객 방문객이 매년 약 1억명 전후를 기록하였던 것이 작년에는 그 수치가 4천만 명까지 약 60%가량 급락하였다. 올해는 코로나19가 잠잠해지리라는 기대로 관광객 숫자를 연말 기준으로 년간 약 5천만명 이상 회복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 코로나19 델타 변이가 다시 퍼지고 람다 변이의 돌발출현에 이탈리아의 여행업계는 다시금 날벼락을 맞은 꼴이 되고 말았다. 또한 불같이 타오르던 목재선물 가격도 지난 5월을 기점으로 급락하며, 주택 레노베이션 열풍에 기인하였던 일시적 공급난이 해소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변동성이 극심한 목재값이 경기선행지표로 적합하지 않다 해도, 최소한 과열우려를 보였던 주택경기가 한숨 돌리는 모습임에는 분명하다.

이처럼 글로벌 경기회복이 사실상 어렵다면 당연히 중앙은행은 이자율을 초저금리로 유지하여야 맞다. 그럼에도 중앙은행가들은 잊을만 하면 구두개입을 통해 조만간 유동성 축소를 위한 테이퍼링과 금리인상 가능성을 되뇌고 있다. 2008년 리만사태 이후 지난 10 여년 간 테이퍼링 가능성을 보여오던 중앙은행이 이번에도 말뿐인 늑대소년이 될 것인지, 아니면 진짜 늑대가 나타난 것인지 판단하기가 어지럽다.


전년 동월 대비 4.2%를 기록하였던 미국의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 6월에도 전년 대비 5.4% 폭등하면서 2008년 금융위기 이래 가장 높은 수치를 연이어 파죽지세로 돌파하고 있다. 중고차 값이 급상승한 것이 CPI상승의 큰 비중을 차지하였고 차량용 반도체의 공급부족이 불러온 일시적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래도 통상 연준의 목표물가지수가 2% 선 이라는 점에서 그 두배가 넘는 CPI의 액면은 경기과열 내지는 인플레이션이 개시된 것으로 진단하기에 충분하다.

이 같은 패턴이 이미 시작된 보복소비와 결합할 때 미국 행정부가 선도하고 있는 막대한 재정투입은 ’불 난데 부채질’하는 격으로 확전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정정책을 총괄하는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상하원을 장악하고 있는 집권당의 지원에 힘입어 재정의 실질집행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만일 미국경제에 낙수효과가 없었다는 옐런의 진단이 오류였다면 글로벌 경제는 남용된 확장재정으로 인해 인플레이션이라는 진짜 늑대와 조우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렇듯 긴축기조의 통화정책 선회라는 으름장을 놓고 있는 미 연준이 늑대소년이 될지, 아니면 전대미문의 확장재정을 추진하는 미 행정부가 늑대 소년이 될지 시장은 가슴졸이며 이들이 보이는 엇박자에 당혹해 하는 형국이다.

재정 집행의 건전성 중요…실패한 일본 사례 주목해야

확장적 재정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재정 집행의 건전성에 있다는 점은 ’잃어버린 30년’에 접어든 일본이 범세계적으로 증명하는 바이다.

중앙정부에서 어렵게 예산을 내려보내면, 지방자치단체는 파티로 밤을 지새우는 것이 일본의 지난 20년의 현실이다. 수십년간 자리를 지키고 있던 멀쩡한 공원의 나무를 모두 베어내어 해석하기도 난해한 돌조각으로 치장을 하였다는 사례나, 불요불급의 관급공사를 두세배 뻥튀기 하여 지역호족의 측근들에게 사업권을 잇권으로 나눠주다 일본 검찰의 수사선상에 오른 지자체장은 셀 수 없을 정도이다. 일본인 스스로도 일본의 재정집행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고백을 한다. 금번 도쿄 올림픽도 세계적 행사임을 들먹이며 재정파티를 누리려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엄청나게 큰 장이 열린 셈이다. 코로나19로 가능하지도 않은 관광객 수를 부풀려 예비타당성 조사 등에 조작에 가까운 증거를 첨부하여 일본열도에 개발과 치장의 광풍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정작 대부분의 경기는 무관중 경기로 치러질 것이라 하니 빈 곳간은 누가 메꿀지 파티 후유증이 벌써부터 아른거린다. 봉건적 막후제도의 역사적 유산을 가진 일본에서는 지역예산을 따 오는 ‘오야붕’이 칭송을 받고, 할당된 예산은 소수의 지역 토호 주머니만 배를 불리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각도를 180도 달리하면 야반도주 같은 행태를 보인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는 미국 본토의 재정정책 우선순위를 가늠자로 견줘보면 해석이 용이해진다. 매정하게 보면 미국 본토가 시급한데 변방에 신경 쓸 겨를이 없는 것임을 방증하는 것이고, 동시에 전쟁은 막대한 재정소진이 뒤따른다는 부담을 고백하는 것이기도 하다.

‘진 것도 아니고, 이긴 것은 더욱 아닌’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바이든 정부는 재정우선순위를 앞세워 플러그를 뽑았음이 자명하다. 이를 본다면 미국의 재정은 집행의 건전성에 있어서 일본보다 몇 수 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어쩌면 같은 논리로 미국은 언제든지 해외 동맹국들에 십시일반의 재정분담을 압박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전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식으로 ’재정분담 아니면 철군’ 카드는 아닐지라도 민주당 정권 역시 곳간이 빌 정도의 확대재정 을 지속하면 어디에선가 이를 채워 넣을 재원을 찾아야 한다.

유동성은 공금이다. 이 같은 유동성은 난국에 처하면 정부계정에서 민간에 무차별적으로 공급되기 마련이다. 미국은 리만사태에서 코로나19 대유행에 이르기까지 초저금리를 10여년 간 유지하였고, 양적완화를 정기-비정기적으로 시행하는 등 재정을 풀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러한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이 공조하던 시기는 지났다. 연준은 바야흐로 금리를 올릴 태세이고, 반면에 재무성은 특단의 부양책을 더 크게 풀 태세이다. 한쪽은 조이고 다른 한쪽은 늘린다. 그래서 엇박자로 보인다.

하지만 두 정책은 질적으로 다르다. 이자율을 주요 정책변수로 삼는 통화정책은 불특정 다수인에 대한 유동성 수급을 다스리지만 재정정책은 특정 사업, 특정 계층 등 특정 유동성에 대한 수급을 다스리기 때문이다.

즉, 유동성 공급의 질적 변화가 엇박자로 보여질 뿐이다. 묻지마 유동성 공급을 취약계층 및 비휘발성 성장영역에 대한 공급으로 전환하고 있는 것이다. 옐런이 이끄는 미국의 재정팀은 통화정책의 엇박자에 대해 재정정책의 엇박자로 대응하여, 나라 전체를 정박으로 만들려는 고도의 정책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공짜 점심은 없다. 정책당국이 시장의 과잉 보호자로 나설 것이라는 믿음도 버려야 함 때임을 말하고 있다.

● 김문수 Aktis Capital(Hong-kong) 최고 투자책임자(CIO)

1995년 골드만삭스(홍콩)에 입사한 이래로 20여년간 홍콩기반 아시아 전문 투자업에 종사하고 있다.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후 산업은행 딜링룸에서 국제금융을 익히고 씨티은행, 메릴린치 등 유수 투자은행에서 국제채권, 외환, 파생상품 및 M&A등을 경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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