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치 않은 남과 북의 행보

정의용 외교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제공)
남과 북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북한은 연일 새로운 미사일을 시험 발사하며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고 우리 정부는 현상을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며 미국 측에 적극적인 행동을 요구하는 모양새다. 문재인 대통령이 또다시 제안한 종전선언에 대해 북한이 관심을 표명하는 모습도 예사롭지 않다.

정세연 전 통일부 장관은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은 미국이 대화에 나서라는 신호라는 점을 강조해 왔다. 마침 북한은 연이어 미사일을 발사하더니 문 대통령이 유엔(UN) 총회에서 종전선언을 제기한 후에는 흥미롭다며 유화적 제스처를 내놓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북 군 통신선 재개를 공언했지만 미사일 발사는 이어갔다.

이런 상황에 대한 우리 정부의 태도는 정의용 외교부 장관의 발언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정 장관은 유엔총회를 계기로 뉴욕을 방문해 북한 비핵화와 관련해 미국의 현상 유지(Status Quo) 정책에 대한 문제점을 거듭 강조했다.

정 장관은 워싱턴포스트 인터뷰, 뉴욕 특파원들과의 간담회 등을 통해 더 이상 북한을 방조했다가는 큰 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경고를 내놓았다. 또한 현상 유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미국이 제재완화, 인도적 지원 등 적극적인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힘주어 강조했다.

정 장관은 그러면서도 북한의 산발적 반응에 대해서는 아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했다. 정 장관의 입장은 김 위원장이나 그의 동생 김여정이 아닌 이들의 발언에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는 설명으로 들렸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행보는 북한 문제 해결을 통해 자신의 입지를 과시하려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는 분명히 다르다. 정 장관은 한미간에 인식이 같다고 주장했지만 우리 쪽에 비해 미국의 입장은 느긋해 보인다.

미국 백악관과 국무부는 북한과의 대화에 열려있다는 신호만 보내고 있을 뿐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지 않고 있다.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가 전략적 인내라는 정책으로 일관하다 북한의 핵무장을 방관한 상황이 되살아날 것이라는 우려는 아직 두드러지지 않고 있다.

정 장관의 입장은 이런 상황을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계기로 돌파해 가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더 상황을 방치했다가는 북미 관계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널 수 있다는 경계심이다. 김성 유엔주재 북한 대사가 한미 연합훈련의 영원한 중단을 요구한 것과 같은 행보에는 신경 쓰지 않겠다는 의지로도 읽혔다.

문제는 미국의 관심이 북한이 아니라 중국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 장관은 미국 외교협회(CFR)대담에서 북한 비핵화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말하고 싶어했지만 대담자와 참석자들의 질문은 중국, 쿼드(미국·일본·호주·인도 4자 협의체), 일본과의 관계에 집중됐다. 정 장관이 북한 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해야 했을 정도다.

북한의 도발은 미국의 관심을 끌고 내고 있다. 북한은 유인이 금지한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는 물론, 순항미사일, 극초음속 미사일, 신형 지대지미사일 등 신형 무기들을 연이어 공개하며 미사일 기술 발전을 과시했다. 미국 언론들과 대북 전문가들은 북한 미사일의 대미 위협 가능성에 주목했다. 미군 당국도 자국에 대한 위협을 평가하는 등 경계심을 드러냈다.

안킷 판다 카네기국제평화기금 선임연구원은 “김정은이 예고한 신무기들을 연이어 시험하고 있다”면서 “다탄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고체 추진연료 ICBM도 그 목록에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우려했다. 판다 연구원의 분석은 미국이 대화에 나오지 않으면 결국 북한이 ‘레드라인’을 넘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북한의 도발이 유엔 제재 위반이라고 평가하면서도 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토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은 “지금 우리는 국제사회가 매우 심각한 행동을 취할 필요가 있는 유엔 안보리 결의에 대한 반복된 위반을 목격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성김 대북 특별대표가 한일 대북 수석대표와 만나고 있는 것을 상기하고 “우리는 그들과 앞으로 나가는 길에 있어 매우 적극적인 대화에 관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갈수록 높아지는 미사일 시위에 우려는 하고 있지만, 대화의 문을 열어두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북한의 태도 변화를 기대한 셈이다. 미국 내에서는 향후 벌어질 대화의 형식에 대한 경계심도 느껴진다.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고 연이어 북미정상회담이 열리는 상황이 벌어지면 실무협상이 또 생략될 수 있다는 우려다.

김두연 뉴아메리칸센터 연구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처럼 북미 대표가 실무 협상을 하지 못하는 상황은 매우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시계를 약 3년 전으로 돌려보자. 2018년 1월 1일. 김 위원장의 말 한마디가 한반도를 뒤흔들었다. 김 위원장은 평창동계올림픽에 참가하겠으며 남북대화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핵실험, ICBM 발사를 통해 미국과의 갈등이 극대화되던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남북이 소통하자 남북 정상회담이 전격적으로 열렸다. 이어 우리 측의 중재로 북미정상회담이 성사됐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 실험을 중단하는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며 미국과 비핵화 협상에 나섰지만, 결과는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의 결렬이었다.

남북관계의 개선은 환영할 일이지만 남북만의 변화로는 안 된다. 스콧 스나이더 미국 외교협회 한미정책국장은 북한의 전술이 바이든 정부 들어서는 남북 대화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이 종전선언보다는 어떤 형태로든 남북 경제 협력 관계 복원을 원한다는 게 스나이더 국장의 예상이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려면 미국도 변해야 한다.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 대북 특사는 “북한을 대화로 이끌기 위해 보상해 주자는 것이 아니라, 일부 제재 중지 등 부분적 조치를 고려해보자"라고 제안했다. 미국이 변해야 바이든 정부가 새롭게 출발한다는 신호를 북한에 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백종민 아시아경제 뉴욕특파원



백종민 아시아경제 뉴욕특파원 cinqange@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