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학 회계사가 검찰에 넘겨 정·관계 로비 정황 등 드러나

지난달 29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화천대유자산관리 사무실에서 압수수색을 마친 검찰 관계자들이 압수품을 옮기고 있다. 검찰은 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사업의 특혜 의혹을 받는 자산관리회사 화천대유와 관련자들의 사무실·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하며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주간한국 이재형 기자] 천문학적 부동산 개발 이익을 남긴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사건’을 둘러싼 진실이 담긴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사업에 가담한 민간 사업자 화천대유와 관계사 천화동인이 차명계좌를 만들고 개발 수익을 빼돌린 정황이 내부자의 녹취 파일 폭로 등을 통해 흘러나온 것이다.
자본의 향방을 두고 성남도시개발공사의 핵심관계자가 가담했다는 정황도 포착되면서 해당 자본이 정관계 로비에 쓰였을 가능성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이익을 배당 받거나 금품을 받았다는 여야 정치인과 법조 인사들의 명단이 오르내리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지기도 했다. 녹취 파일의 파장이 어느 진영을 향할지 전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차명계좌 존재 및 의혹 핵심인 유동규 대화 내용도 담겨
검찰은 서울중앙지검에 김태훈 4차장검사를 비롯해 총 검사 16명으로 구성된 ‘대장동 개발 의혹 사건 전담수사팀’을 구성하고 지난달 27일부터 수사에 착수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업무상 배임 의혹과 화천대유 고문단의 정·관계 로비 의혹 등을 규명하는 것이 수사팀의 목표다.
이 가운데 이날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한 정영학 회계사(천화동인 5호 소유주)가 자백 진술서와 함께 화천대유 대주주인 김만배 씨와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의 통화 내용이 담긴 녹취 파일 19개를 제출하면서 수사는 급물살을 타고 있다. 법조계와 관련 보도 등에 따르면 녹취 파일에는 그동안 화천대유의 대주주로 알려졌던 김 씨가 유 전 기획본부장과의 대화에서 개발 수익을 빼돌릴 차명계좌가 따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발언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파일에는 10억원대의 자금을 성남도시개발공사 관계자들에게 여러 차례 나눠서 전달했다는 내용과 현금 다발이 찍힌 사진, 이 돈이 개발 사업 관련자에게 전달됐음을 보여주는 정황 자료도 검찰에 제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내용이 밝혀지면서 검찰은 1일 유 전 본부장을 긴급 체포하고 화천대유로부터의 금품 수수 의혹 등을 조사하고 있다. 유 전 본부장은 이날 체포되기 앞서 검찰 소환 조사에 불응하고 자가에 수사관이 들이닥치자 휴대전화를 창밖으로 던지는 등 증거인멸을 시도해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유 본부장은 대장동 개발이 추진 중이던 2016년 당시 성남시장이던 이 지사가 임명한 인물로, 이후 경기관광공사 사장을 거치는 등 이 지사의 대표 측근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 지사는 선거 등 업무에서 협력한 사실은 있지만 측근은 아니라며 거리를 두고 있다. 이 지사는 유 전 본부장의 증거인멸 시도에 대해서도 “유동규의 개인적 일탈이다. 유동규가 죄가 있다면 당시 성남시장이었던 자로서 관리자로서의 책임은 지겠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검찰은 유 전 본부장이 법인 ‘유원홀딩스’를 설립하고 개발 사업 초기부터 개입한 정민용 변호사를 법인의 대표로 세운 내막을 수사하고 있다. 정 변호사는 성남도시개발공사 투자사업팀장을 지낸 인물로 유 전 본부장과는 가까운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유 전 본부장이 이 법인을 차명 회사로 운영하면서 화천대유를 통해 얻은 개발 수익의 우회적 배당 가능성도 수사하고 있다.
수익 배분 방식 둘러싼 갈등과 ‘독박’ 혐의 피하려는 의도로 보여
대장동 게이트는 2015년 성남도시개발공사는 공모를 통해 하나은행 컨소시엄과 성남도시개발공사가 민관 합동으로 시행사 ‘성남의뜰’을 설립하면서 시작됐다. 화천대유는 시행 과정에서 자산관리회사로 선정됐다.
녹취 파일을 검찰에 넘긴 정 회계사는 이중 644억 원을 배당 받아 화천대유(1200억 원), 남욱 변호사(1000억 원)에 이어 세 번째로 배당을 많이 가져간 인물이다. 의혹의 핵심 당사자인 정 회계사가 검찰에 자진해서 비위 행위를 폭로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정 회계사는 대장동 사업에서 성남의뜰의 대주주(50%)인 성남도시개발공사가 배당금 1822억 원을 우선 회수하고 금융기관에 일정 금액을 배당하며 나머지 초과 이익은 보통주에 배당하도록 설계한 인물이다. 화천대유와 천화동인은 성남의뜰 지분을 각각 1%, 6%씩 소액 보유했지만 분양 수입으로 발생한 초과이익 577억 원과 3463억 원의 배당금을 챙기며 ‘대박’이 났다.
이런 정 회계사가 핵심 정보를 모두 푼 것은 관련 혐의를 ’독박‘으로 감당하지 않기 위해 검찰 조사에 협조한 것으로 보인다. 애초 배당금 분배에 불만을 품고 만약의 경우 ’보험용‘으로 녹취했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남 변호사는 이번 의혹이 불거지기 수개월 전 출국해 한국에 없다. 서울중앙지검 전담 수사팀은 남 변호사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해 귀국 시 곧바로 통보해줄 것을 법무부 출입국 당국에 요청했다. 수사팀은 향후 외교부에 남 변호사의 여권 무효화를 요청하는 방안도 검토할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의 귀추는 결국 수익 배당의 갈등이 불거진 배후에 이 지사나 이 지사의 측근이 연루됐는지가 관건이다. 이 지사는 줄곧 대장동 의혹과 자신과의 무관함을 주장해왔다. 이 지사는 “화천대유 선정은 공정했고 화천대유는 투자도 많이 했고 화천대유는 부동산 폭등 때문에 돈을 많이 벌었다”고 강조했다. 예상치 못한 집값 급등이 민간 사업자가 취득한 폭리의 원인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야권에서는 이 지사가 의혹의 몸통이라고 주장하면서 특별검사 수사를 요구하고 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달 30일 국민의힘 최고위원회의에서 “ "이재명 지사가 수천억대 개발이익을 본인의 시장으로서의 행정권한을 활용해 민간의 특수관계인에게 몰아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이 의혹이 사실이라면 애초에 대통령 후보가 될 자격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꼭 정밀하고 엄격하게 검증해야 한다. 특검을 거부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첫번째 의심대상자이자 범인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재형 기자



이재형 기자 silentroc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