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적 악재 거듭해도 ‘우리끼리’ 정치…편가르기 진영 논리만 판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경선 예비후보가 지난 6일 오전 서울 코리아나호텔에서 열린 정권교체국민행동 초청 토론회에 참석,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주간한국 이재형 기자] 당내 경선 과정에서 유력 대권주자로 선두권을 달리는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국민의힘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혹독한 검증국면에서도 굳건한 지지세를 유지하고 있다. 연일 날아드는 굵직한 의혹 보도는 지지율을 흠집 내기는커녕 지지층의 맹목적인 지지를 이끌어내고 있다.
그 과정에서 불리한 팩트는 치명적인 사안임에도 무시하고 넘어가는 ‘묻지마 팬덤’ 현상을 양산하고 있다. 이는 정치적 가치관을 중심으로 결집하기보다는 진영 논리에 근거해 편가르기로 혈안이 된 정치문화가 고착화되는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 결국 이 같은 추세가 계속될 경우 앞으로 대선 정국이 정치의 후진성과 저질화로 점철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지난 21대 총선 이후 강력한 캐스팅 보터로 등장한 중도층의 민심을 얻기 위한 혁신과 개혁은 이미 뒷전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
짧은 팬덤정치 업은 이재명과 윤석열, 누가 먼저 무너질까
‘대장동 게이트’와 ‘고발 사주’ 의혹이 연일 정치권을 뒤흔들고 있지만 이 지사와 윤 전 총장은 건재했다. 지난 3~4일 케이스탯리서치가 경향신문 의뢰로 실시한 ‘차기 대통령 적합도’ 조사에서 이 지사와 윤 전 총장은 각각 31.1%와 19.6% 지지율로 1·2위를 기록했다.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14.1%)과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10.1%)를 오차 범위 밖에서 앞섰다. (전국 만 18세 이상 1012명 대상,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P.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 지사는 오는 10일 마지막 ‘슈퍼위크’에서 17만 표만 더 확보하면 대선 본선 진출도 확정된다. 국회의원 경험이 전무한 중앙 정치권 출신이 아닌 후보로 여당의 최종 대선후보로 선출되는 이정표를 기록하게 된다.
윤 전 총장도 정치권에 갓 발을 들인 정치신인이다. 공직자 출신이라는 한계에도 지금까지는 야권의선두주자 자리를 양보하지 않고 선전을 거듭하고 있다. 19대 대선에서 검증 공세를 이기지 못하고 후보에서 사퇴했던 반기문 전 유엔(UN) 사무총장이나 TV토론에서 자책골을 넣고 3위로 밀려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등 사례와 비교하면 든든한 지지율을 업고가는 정치적 맷집이 탄탄하다.
당초 정계에서는 대형 의혹에 직면한 두 후보의 지지율 하락을 예상한 여론이 많았다. 이 지사가 성남시장이던 2016년, 화천대유를 비롯한 민간사업자들이 경기도 성남시 대장동 개발에서 4000여억 원의 개발 이익을 가져간 사실이 추석 명절 연휴에 언론 보도로 알려져 대형 악재로 이어졌다. 특히 대장동 개발 의혹의 핵심 관계자이자 측근으로 알려진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이 뇌물수수와 배임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돼 이 지사는 최대 위기 국면을 맞았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지난 7일 오후 경기도 화성시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에서 열린 '미래형 스마트벨트 1차 전략발표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 지사 또한 비판 여론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였지만 뜻밖에도 이 지사를 향한 지지층의 결집효과로 이어졌다. 지지자들은 언론보도를 후보에 대한 공격으로 인식하고 무시하거나 음해로 해석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지사의 페이스북에서 한 지지자는 댓글로 “조.중.동, 국민의힘, 이낙연 덕분에 이재명이 예전보다 더 커보인다”고 썼다. 또 “노무현, 김대중을 키워준 건 항상 수구당과 조, 중, 동 이었다. 마찬가지로 저들과 싸우면서 이재명은 계속 성장하고, 대표선수로 인식되는 것 같다”고도 했다.
윤 전 총장 역시 대장동 게이트의 핵심인물과 부동산 다운계약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하지만 열성 지지자들은 “정부와 진보 진영이 핍박할수록 윤석열은 무쇠처럼 강해질 뿐이다”라며 지지 의사를 나타냈다.
“자기 지지자만 감싸는 트럼프식 대선 전략 두드러져”
이 같은 현상을 두고 지지자들이 특정 후보에 대해 매우 강한 애착을 보이는 ‘팬덤정치’로 해석이 모아진다. 다만 과거 한국 팬덤정치에선 볼 수 없었던 양상도 보인다.
과거 팬덤은 특정 정치인이 오랜기간 논쟁과 경험을 통해 정치적 입지를 넓혀가면서 장기간 형성해나가는 것이었다. 지지자들은 정치인의 행보를 지켜보며 같은 가치관을 공유했다.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는 노무현 전 대통령 개인이 갖는 정치철학적 가치관을,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단체인 ‘박사모’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산업화 세대에 대한 상징성과 정통성을 따라갔다. 이런 가치들은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더라도 팬덤과 지지율이 유지되는 기반이 됐다.
하지만 이재명, 윤석열의 팬덤은 후보를 알아갈 기회가 상대적으로 짧은 상황이다. 이 지사는 주민발의를 주도해 성남시의료원을 건립하는 등 특유의 추진력이 강점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도덕성을 둘러싼 논란이 지금도 발목을 잡고 있다. 지난 19대 대선 경선 때 그를 괴롭혔던 친형 정신병원 강제 입원 논란이나 형수를 향한 막말, 배우 김부선 씨와의 불륜 의혹 등 사생활과 관련한 도덕성 문제가 거머리처럼 따라붙었다.
윤 전 총장은 총장 재임 시절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비롯해 문재인 정권의 압박을 받고 그 반사효과로 현 정권에 반발하는 여론의 지지를 등에 업었다. 그러나 ‘1일 1망언’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잇따른 설화를 자초하면서 주요 현안에 대한 몰이해를 드러내고 국가 비전을 보여주지 못했다. 장모와 부인 등 처가와 관련한 여러 가지 의혹들은 현재진행형이다. 총장 시절 핵심 측근으로 분류되는 손준성 검사가 개입한 정황을 둘러싼 고발 사주 의혹이 터져 나오면서 최대 위기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후보의 가치관이 불분명한 가운데 지지자들이 공유할 만한 가치는 정치적 성향 정도에 주로 머물러 있다. 그럼에도 지지층이 결집한 것은 특정 쟁점에 대해 객관적인 관점에서 내용을 파악하기 보다는 진영의 유불리로 해석하는 경향이 강화된 탓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대세론에 올라탄 후보에 지지를 몰아줘야 정권을 재연장하거나 탈환할 수 있다는 기대감과 위기감이 결집 동력으로 작용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과거 팬덤은 지지자들이 적어도 4~5년 이상 정치인을 따라다니면서 형성하는 것인데 윤 전 총장의 경우 기껏 6개월만에 팬덤이 형성된 것이라 과거에 비해 유래가 매우 얕다”며 “여야의 지지자들이 정권 유지나 정권 교체를 목적으로 따라다니는 모습이다. 한편 정치인들은 자기 지지층만 바라보고 거기에 편승해 중도층을 껴안으려는 정치는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백인 남성의 지지로 정권을 잡은 미국의 도날드 트럼프 전 대통령처럼 일부 지지만 확보하는 전략이 이번 경선에서 두드러져 보인다”라며 “본선에서도 지지층끼리 뭉치는 정치 문화가 계속된다면 양 극단 모두 선호하는 후보가 없는 중도층은 투표율 하락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유튜브 중심의 미디어 환경은 좌우로 분열된 진영 논리를 더욱 부추겼다. 기존 언론과 달리 ‘게이트 키퍼’ 기능이 없는 유튜브는 구독 중심으로 콘텐츠를 유통한다. 유튜브 체제에서 대중들은 각자 자기 진영에 우호적인 미디어만 선택적으로 시청한다. 전문가들은 이런 미디어 환경에서 대중들의 정치문화는 사회 현상을 공동선의 관점으로 이해하기 보단 특정 정파 입장의 편향된 관점에 치우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김위근 퍼블리시 최고연구책임자는 “알고리즘을 통한 뉴스와 정보 노출 방식이 최근 문제가 되고 있다. 이용자 취향을 기반으로 콘텐츠를 공급하는 포털과 유튜브 등 플랫폼의 알고리즘은 정치 정보나 뉴스를 공급할 땐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며 “정치 콘텐츠는 사회의 방향성에 영향을 미친다. 이용자들은 미디어를 통해 다른 의견과 중요 이슈를 충분히 접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형 기자



이재형 기자 silentroc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