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상현 GS칼텍스 감독을 빼놓고는 2020-2021시즌 여자프로배구를 논할 수 없다. GS칼텍스는 지난 시즌 여자프로배구 사상 첫 트레블 (챔피언결정전·컵대회 우승·정규리그 1위)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차 감독과 선수단은 한국 배구, 더 나아가 프로 스포츠계에 한 획을 그었다. 이제 GS칼텍스는 무거운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


‘최초 트레블’ GS칼텍스, 우승이 목표라기 보단…

리그 2연패 부담감은 당연히 있다. 하지만 차 감독은 부담에서 오는 압박감을 최대한 경계하려고 한다.

우승이 궁극적인 목표인 것은 확실하지만 시즌 초반부터 최정상만을 향해 달려가진 않겠다는 것이다.

경기도 청평 팀 훈련장에서 만난 차 감독은 “우리 팀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졌다. 그 부분이 선수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부담감 때문에 경기를 망치고, 더 나아가 한 시즌을 망치면 창피한 일이다. 지금 잘 준비하고 있는 것을 선수들이 잘 보여주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은 (정규리그) 우승이 목표는 아니다. 우승은 보너스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선수들이 경기를 자신 있게 임했으면 하고, 그 후 봄 배구에 가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지난 8월 29일 막을 내린 컵대회에서 준우승을 한 후 생각이 더 많아졌을 차 감독이다.

지난해 컵대회 우승을 시작으로 정규리그, 챔피언결정전을 제패하며 트레블 달성에 성공한 GS칼텍스는 올해도 컵대회 결승에 올라 3관왕 시동을 거는 듯했다.

하지만 서브 밸런스가 무너지고 세터라인에서 안정감이 다소 떨어지면서 지난 시즌 최하위 팀인 현대건설에 셧아웃 패배를 당했다. 차 감독은 “배구란 바로 이런 것”이라며 “선수들의 부담감을 최대한 덜어주고, 경기에서 지더라도 깨끗하게 인정하고 바로 다음 경기 잘 준비하는 마음가짐을 선수들에게 심어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주축 공격수’ 이소영·러츠와 결별… 차 감독 “이젠 걱정하지 않는다”

역대 최고 성적을 올렸지만 차 감독은 지난 시즌을 마치고 머릿속이 복잡했다. 선수단 구성 때문이다. 차 감독은 트레블 달성 후 다음날 ‘FA(자유계약선수)가 5명인데 어떡하지’라는 생각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고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연봉 1억원 이상의 A그룹에 속한 이소영과 강소휘(이상 레프트), 한수지·김유리(이상 센터), 한다혜(리베로) 등 5명의 핵심 전력 선수들이 FA자격을 획득했었기 때문이다. 트레블의 주역 외국인 선수 러츠는 이미 한국 무대와 작별한 상황.

GS칼텍스는 ‘집토끼’ 단속을 비교적 잘했다. ‘FA 시장의 최대어’ 이소영은 KGC인삼공사로 떠나보냈지만 나머지 4명을 잔류시키는 데 성공했다.

‘러츠-이소영-강소휘’ 역대급 삼각편대 라인은 깨졌지만, GS칼텍스가 데뷔 첫 시즌부터 주축 선수로 활약했던 강소휘를 붙잡은 것은 큰 성과였다. 여기에 GS칼텍스는 KGC인삼공사와 1대1 맞트레이드를 통해 3년 차 레프트 박혜민을 내주고 같은 포지션의 ‘즉시 전력감’ 최은지를 영입했다. 또 이소영의 보상 선수로 리베로 오지영도 품었다.

그래도 전력상 출혈을 겪은 GS칼텍스다. 차 감독은 “솔직히 선수단 변화가 있고 난 후 걱정이 안 됐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지금은 전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이 팀을 이끌고 가야 하는 위치에서 그 이상으로 걱정을 하거나 더 나아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면 선수들이 중심을 잡을 수가 없다. 올 시즌 결과는 아무도 모르지만 저와 선수들은 훈련을 정말 열심히 하고 있다. 좋은 선수들을 많이 보유하는 것보다 배구는 훈련이 전부라고 생각한다. 우리 팀의 훈련은 든든하다. 선수들도 ‘원팀’ 마인드로 훈련 때만은 굉장한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차상현 감독.스포츠코리아

어쩌면 우승보다 더 어려운 ‘꾸준한 성장’… 차 감독의 비결은?

6시즌째 GS칼텍스를 맡고 있는 차 감독은 시즌을 거듭하면서 팀 순위를 한 계단씩 끌어올려 왔다.

2016-2017년 감독 1년 차 때 성적 5위를 시작으로 4위, 3위, 2위를 기록하더니 2020-2021시즌 땐 ‘왕좌’에 올랐다.

꾸준한 순위 상승은 결코 쉽지 않다. 차 감독의 리더십이 팀에 녹아든 결과다. 차 감독은 “어쩌다 보니 순위가 한 계단씩 상승했더라”라고 멋쩍은 듯 웃으며 스스로 자세를 낮춘 뒤 “껍데기뿐인 ‘소통’이 아닌 진실된 ‘소통’을 선수들과 해왔던 기조 때문이지 않을까”하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는 “감독은 선수들과 소통을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우리 팀은 그동안 트레이드가 많았는데 그 선수들이 팀에 잘 적응하고 기존 선수들과 융합되면서 GS칼텍스가 크게 성장했다. 그럴 수 있었던 데에는 갑자기 팀에 합류한 선수들이지만 보이지 않는 벽을 (저와 우리 선수들이) 소통으로 빠르게 허무는 노력에서부터 왔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선수들 개인 기량이 출중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지금 단계에선 리그 우승은 잠시 생각하지 않겠다던 차 감독.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시즌 초반부터 끝날 때까지 꼭 가져가겠다고 했다.

그는 “타 팀들이 우리 팀을 상대하기 전 ‘GS칼텍스를 만나니까 준비를 단단히 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노진주 스포츠한국 기자 jinju217@sportshan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