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신 연세대 정보대학원 교수 칼럼

지난 12일 폐회한 제26차 유엔기후협약 당사국 총회(COP26)의 주된 의제는 각국이 언제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고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얼마나 줄일지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COP26에서 500여 개 글로벌 금융기관들은 자신들의 130조 달러 자산을 파리협정의 1.5도 상승 목표 달성을 위해 운용하기로 합의했다. 참고로 130조 달러는 전 세계 금융자산의 약 40%에 달한다.

몇 년 전부터 투자자들은 기업들의 탄소감축을 적극적으로 독려·압박하고 있는데, 이것이 국가 간 협정이나 정부규제보다 더 유효한 수단이라고 여겨지기 시작했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투자자들이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더 많은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것이다.

사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는 투자자의 변화로부터 촉발됐다. 투자자들은 지구 온난화와 자본주의의 위기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장기적으로 투자 수익률을 올리기 위해서는 인류가 직면한 환경·사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ESG 생태계에서 금융기관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투자자에게는 ESG 투자를 통해 장기적으로 높은 투자 수익을 올려주고, 기업들의 ESG 경영을 독려함으로써 글로벌 ESG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 플레이어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금융기관들은 이런 도전적 과제를 맞아 이를 해결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금융 ESG 생태계는 금융기관을 중심으로 투자자, 기업, 규제기관, 표준화 및 평가기관들이 다양한 상호 작용을 하고 있다. 이러한 상호 작용의 주요 현황과 이슈에 대해 우리나라와 주요국 사례를 비교해 정리해 본다.

먼저 투자자 동향을 살펴보면, 글로벌 ESG 투자액은 지난해 35조 3000억 달러(약 4경 원)로 전체 운용자산의 36%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 공적연금의 사회책임투자액은 지난해 말 기준, 국민연금 101조 원 등 총 102조 원으로 전체 금융자산에 비하면 아주 작은 비중이다.

한편 글로벌 ESG 펀드 규모는 올해 2분기 말 기준 2조 2000억 달러(약 2400조 원)에 달하는데 비해, 국내 ESG 펀드는 7조 5570억 원에 불과하다. 그나마 대부분의 국내 ESG 펀드는 그 구성이 일반 펀드와 매우 유사하고, ESG 펀드에 편입된 기업들의 ESG 등급 또한 일반 펀드와 비교해 차이가 나지 않아 ‘그린워싱’(친환경으로 위장한 상품과 서비스) 우려가 크다.

둘째, 주요국 금융기관과 투자자들은 주주제안, 의결권 행사 등 주주관여(engagement)를 통해 적극적으로 기업들의 ESG 경영을 유도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투자자 연합체인 ‘기후행동 100+’는 전 세계 산업체 탄소 배출량의 80%를 차지하는 167개 기업을 선정해 ‘감시’하고 있다. 블랙록을 위시한 대규모 기관투자자들 또한 여러 ESG 이슈에 대해 주주관여 활동을 크게 늘리고 있다.

주요 연기금들도 지난해 3월 ‘지속가능한 자본시장을 위한 우리의 연대’ 선언을 통해 연금의 장기적 수익성을 위해 장기적 비전을 추구하는 기업들을 지지하며, ESG 요소를 투자 전 과정에 통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글로벌 4위 규모인 국민연금이나 국내 자산운용사들은 투자자 연합체 결성 등 세계적인 흐름에 거의 참여하고 있지 않다. 물론 국민연금도 2018년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이후 보다 적극적으로 주주관여에 나서기 시작했고, 스튜어드십 코드 가입 기관 또한 최근 171개사로 늘어나고 있으나 주주관여 활동은 아직 미미한 형편이다.

셋째,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한 주요국들은 거의 모든 상장기업들에게 상세한 ESG 관련 정보 공개를 의무화하고 있다. 기업들의 ESG 정보는 기업의 ESG 성과 평가와 투자 결정에 가장 중요한 기초자료이기 때문이다.

EU는 특히 금융기관에 대해 ‘지속가능금융 공시 규제’(SFDR)와 ‘EU 분류체계’를 시행함으로써 회사 자체는 물론 금융상품별로 지속가능성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 ESG 기여도를 공시하도록 하고 있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2025년부터 2030년까지 순차적으로 상장기업들의 ESG 정보공개를 의무화할 예정으로, 세계적인 흐름에서 크게 뒤지고 있다.

한편 ESG 정보공개 표준을 정하려는 움직임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국제회계기준(IFRS) 재단은 이번 COP26에서 국제 지속가능성 기준 위원회(ISSB)를 공식 출범시켰고 여러 관련 기관들과 협업해 내년 하반기에 ESG 공시 표준안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논의를 바탕으로 ESG 활성화 전략과 정책 방향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금융기관은 시장조성자로서 ESG 금융상품 개발 등 ESG 투자 활성화에 핵심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ESG 전환 트렌드를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로 인식해, 예컨대 청정 에너지, 저탄소 공정 등의 부문에서 프로젝트 및 상품을 개발하고, 전기차 구매, 건물 에너지 효율화를 위한 소매 금융상품도 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정부규제와 상관없이 금융회사 특성을 반영한 ESG 정보를 선제적으로 공시할 필요도 있다. 이때 EU가 SFDR에서 제시한 기준들을 감안해 금융상품을 출시하면 상품에 대한 신뢰도가 올라가서 ESG 투자가 증가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정부가 제시한 2030년 공시 의무화 계획과 무관하게 기업들의 ESG 공시 강화를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금융기관은 당연히 기업들의 ESG 성과를 평가할 권리와 의무가 있고, 또한 ESG 공시가 기업들에게도 유리하다는 점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둘째, 투자자로서의 금융기관은 주요국에서 보듯이 주주관여를 강화함으로써 ESG 문제 개선에 앞장서야 한다. 기업들의 ESG 성과가 좋아질수록 장기적 투자 수익률 또한 올라간다는 실증분석 결과를 감안하면 금융기관의 주주관여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 당연한 의무다.

같은 맥락에서 국민연금 또한 스튜어드십 코드를 바탕으로 ESG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물론 국민연금이 민간기업 경영에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은 경영권 침해라는 우려의 소리도 있지만, 이는 국민연금기금의 지배구조가 정부로부터 독립되지 못한 부분에서 기인한다.

따라서 국민연금이 적극적인 주주관여에 나서기 전에 정부 영향력 아래에 있는 기금운용위원회의 인적 구성과 의사결정 구조를 바꾸는 것은 선행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ESG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드는데 정부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선은 ESG 공시 의무화 시기를 획기적으로 앞당기고, 금융상품별 ESG 정보 공개를 제도화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조신 연세대 교수

● 조신 연세대 정보대학원 교수 프로필

대통령 비서실 미래전략수석, SK브로드밴드 대표, 산업통상자원 R&D전략기획단 MD,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을 역임했다. 파리협정(2015) 체결 시 정책결정에 참여한 인연을 계기로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기업 지배구조 관련 연구도 계속하고 있다. 저서로는 <넥스트 자본주의, ESG> 등이 있다.



조신 연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