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애비규환’서 임산부 토일 역 열연
펑퍼짐한 티셔츠에 청바지, 통통한 볼살, D라인의 부푼 배를 끌어안은 정수정이 스크린을 누빈다. 에프엑스 크리스탈로 음악 방송 무대에 올랐던 화려함은 온데간데없다. 영화 ‘애비규환’ (감독 최하나)으로 스크린 데뷔에 나선 정수정이 영화계를 이끌 차세대 주자로 떠올랐다.
‘애비규환’은 똑 부러진 5개월 차 임산부 토일(정수정)이 15년 전 연락 끊긴 친아빠와 집 나간 예비 아빠를 찾아 나선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우리들’, ‘살아남은 아이’, ‘우리집’ 등을 제작하며 한국 웰메이드 영화의 대표 브랜드로 떠오른 제작사 아토ATO의 여섯 번째 작품이다. 지금껏 아토ATO에서 선보인 영화들과는 다른 결을 지녔지만 신선하고 통통 튀는 신인 감독의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는 점에서는 여전히 아토ATO다운 영화다. 정수정은 22살의 5개월 차 임산부 토일 역을 맡아 연예계 데뷔 12년 만에 첫 스크린 주연으로 나섰다.
“현실감 있는 이야기들을 좋아해요. 그래서 독립영화들을 좋아하죠. ‘파수꾼’, ‘소공녀’, ‘우리들’ 같은 영화를 재밌게 봤어요. 아토의 영화도 많이 봐서 또 좋은 작품을 만들 것이란 생각에 의심은 없었어요.
‘애비규환’은 제 첫 영화인데 처음이란 것에 의미를 부여하진 않았어요. 늘 그래왔듯 열심히 임했고 그게 잘 표현이 된 것 같아요.”
정수정이 맡은 캐릭터는 연하의 남자친구와 연애하다 어느 날 덜컥 임신하게 된 대학생 토일이다. 토일은 똑 부러지는 성격에 비상한 머리, 결단력, 추진력까지 갖춘 인물. 임신 소식을 알리면 당황할 부모님을 위해 출산 후 5개년 계획까지 완벽하게 세우고 화려한 프레젠테이션까지 준비한다. “해볼 만한 것 같다”며 위풍당당하게 결혼을 선언하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처음엔 임산부 역할이라는 말만 듣고는 ‘헉!’ 했어요. 근데 시나리오를 읽은 이후로는 모든 부담과 걱정이 싹 사라졌어요. 원래 시나리오를 한 번에 읽는 타입이 아닌데 그 자리에서 다 읽고 감독님께 전화해서 ‘저 할게요’ 했죠. 책으로도 내자고 할 만큼 대사들이 좋고 센스 있어서 꼭 하고 싶었어요.”
캐릭터의 현실감을 살리기 위해 정수정은 걸그룹 멤버의 숙명이었던 다이어트를 내려놨다. 여기에 민낯에 가까운 얼굴과 편안한 티셔츠 차림으로 스크린 앞에 섰다. 5개월 차 임산부의 부푼 배를 연출하기 위해 촬영 내내 무거운 복대도 착용했다.
“임신을 안 해봐서 모르니까 주변 언니들한테 많이 물어봤어요. 막상 없던 배가 생기니까 자연스럽게 자세가 나오더라고요. 다리가 오므려지지도 않고 앉을 때도 허리를 한 손으로 받치게 되고요. 지난해 여름에 한창 더울 때 촬영해서 땀이 많이 차 힘들었어요. 그래도 캐릭터에 맞게 의상을 준비하는 건 너무 당연한 것이죠. 제일 중요한 작업이고 처음 화면을 봤을 때 인물의 성격을 보여주니까요. 꾸미지 않고 털털한 토일이의 성격을 이미지로도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애비규환’의 토일은 똑 부러지고 당당한 캐릭터라는 점에서 정수정의 평소 이미지와 겹치는 동시에 대중이 기대하는 그의 이미지를 정확히 뒤집는 엉뚱하고 무모한 인물이기도 하다. 정수정은 “실제 나와 60%정도 닮았다”고 말했다.
“토일이가 가족들에게 임신 사실을 5개월이나 숨기고 ‘어떻게 할까’가 아니라 ‘이렇게 할게’라고 통보하는 대목에서 저랑 많이 다르다고 느꼈어요. 저는 주변인도 제 일부이기 때문에 그들의 의견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거든요. 물론 토일이도 나중엔 그걸 깨닫죠. 당차고 책임감 있는 성격은 저랑 비슷해요.”
MBC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 속 정수정의 매력을 눈여겨봤던 최하나 감독은 정수정이야말로 토일 캐릭터에 꼭 맞는 배우라 생각하고 그를 캐스팅했다. 실제로 최 감독의 선택은 탁월했다. 정수정은 어느 때보다 선명하고 당찬 눈빛으로 극을 이끌면서 주연배우로서의 존재감을 입증했다.
“감독님은 촬영 전부터 친구 같았어요. 같은 90년대 생이라 좋아하는 음식, 드라마, 음악도 쉽게 공유했고 취향이 잘 맞아서 진짜 친구가 됐어요. 감독님은 글도 잘 쓰시고 귀여운 센스가 넘치는 분이에요. 서로 편안하게 대화를 많이 한 게 작업하는 데 도움이 됐어요.”
2009년 걸그룹 에프엑스 멤버 크리스탈로 데뷔한 정수정은 2010년 MBC 시트콤 ‘볼수록 애교만점’으로 연기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 SBS ‘상속자들’,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 tvN ‘하백의 신부’, OCN ‘플레이어’ 등을 통해 배우로서 차근차근 성장해왔다. 최근에는 OCN ‘써치’에서 여군 역할로 열연하며 호평 받고 있다. 정수정은 “연기의 매력은 다른 인생을 살아볼 수 있다는 것”이라며 “아이돌의 화려한 무대 메이크업을 지우고 날것의 나를 보여줄 수 있어 좋다”고 연기를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시나리오를 읽으면 본능적으로 끌리는 게 있어요. 다른 사람들이 너무 좋다고 해도 제가 끌리지 않으면 못해서 언제든 제 자신을 믿으려고 해요. 저는 가리는 게 없어요. 다만 매번 새로운 걸 택하죠. 최근에 맡은 캐릭터도 군인, 임산부라 ‘난 왜 특이한 것만 할까?’ 하기도 했어요. 지금 저한테 새로운 건 로맨틱코미디예요. 또 되게 평범한 캐릭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요. 사람마다 취향이 달라서 최 감독님은 ‘하이킥’의 수정이를 좋아하셨지만 어떤 지인은 ‘상속자들’의 보나를 좋아하거든요. 다양하게 보여드릴 예정이니 골라서 보셨으면 좋겠어요. 도전은 두렵진 않아요. 앞으로 배우로서 보여드릴 게 더 많으니까요.”
조은애 스포츠한국 기자 eun@sportshan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