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4일 서울 영등포 지하상가를 방문해 상인들의 고충을 메모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치권에서 새해 벽두부터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 논의가 화두로 떠올랐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불을 지폈다.

이 대표는 새해 첫날 공개된 언론 인터뷰에서 신년 국정과제로 ‘국민통합’을 강조하며 “적절한 시기에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올해는 문 대통령이 일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해로, 이 문제를 적절한 때에 풀어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라며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이) 국민통합을 위한 큰 열쇠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런데 이 대표는 당내 강경파, 대선 경쟁자, 야당, 민심으로부터 공격을 받으면서 사면초가에 빠졌다. 민주당 안에서는 대표직에서 물러나라는 말까지 나왔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4선의 우상호 민주당 의원은 “박근혜 국정농단의 핵심은 권력의 사유화와 남용”이라며 “이명박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면서 “진솔한 반성과 사과에 기초한 국민적 동의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사면이 추진되는 것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5선의 안민석 의원은 “사면을 찬성하는 이유가 ‘국민통합’이라고 하는데 그게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사람도 없다. 반면 사면을 반대하는 이유는 수도 없이 많고 구체적이며 정당하다”라고 했다.

민주당 안팎의 비판이 고조되자 이 대표는 최고위원 간담회를 통해 “‘당사자 반성’과 ‘국민적 공감’이 우선”이라고 정리하며 한발 물러섰다. 작년 12월 15일 두 전직 대통령의 과오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한 바 있는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처음 듣는 얘기”라는 입장을 보였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전 국민적인 공감대가 중요하다”며 “사면을 선거에 이용하려는 시도가 있다면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민심도 호의적이지 않다. 리얼미터·오마이뉴스 조사(1월 5일)에서 사면 반대가 76.6%로 압도적이었다. 한국갤럽의 1월 1주(5-8일) 조사에서도,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해 ‘현 정부에서 사면해야 한다’는 응답은 37%, ‘현 정부에서 사면해서는 안 된다’는 응답은 54%로 나타났다. 더구나 리얼미터· YTN이 두 전직 대통령 사면의 국민 통합 기여도를 조사(1월8일)가 한 결과, ‘기여 못할 것이다’는 응답은 56.1%인 반면, ‘기여할 것’이라는 응답은 38.8%에 그쳤다.

이 대표의 ‘사면건의론’은 다양한 전략적 포석을 깔고 있다. 우선, 사면으로 통합 이슈를 선점하고 차기 지도자로서의 존재감을 부각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문 대통령에게 쏠린 정치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차원으로도 보인다. 표의 확장성을 키우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새해에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이 대표는 15% 안팎의 지지율을 기록한 반면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최대 20%대 중반까지 나왔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으로 1997년 대선 직후 김대중 전 대통령이 김영삼 대통령과 상의해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사면하면서 ‘화해’와 ‘국민 통합’을 이룩했던 것을 벤치마킹한 것 같다.

둘째, 이슈 주도권을 잡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이 대표는 작년 12월 26일 문 대통령을 독대한 자리에서 ‘새해에는 각계 지도자들을 만나 (현안에 대한) 설명도 해드리는 게 어떻겠냐’라는 제안을 했다. 지난달 30일에는 김종인 위원장에게 문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을 요청하기도 했다. 그 이후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 메시지를 주도하면서 지기만의 색깔을 찾으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그동안 이 대표는 집권당 대표로서의 역할과 대권 후보로서의 행보를 동시에 수행하는 위치에 있었지만 전자에 치중한 면이 강했다. 당내 기반이 약한 이 대표로서는 그동안 친문(친문재인) 세력의 지지를 얻기 위해 문 대통령과 일체화하는 전략을 펼쳤다. 이 대표는 인식·기조·인물 등 세 가지를 모두 전환하지 않으면 위기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판단 속에서 문 대통령 지지도와 이 대표 지지도가 동반 하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사면론을 꺼낸 것 같다.

셋째, ‘진보적 실용주의자’를 표방하며 중도층과 합리적 보수 세력까지 껴안을 수 있는 진보 진영 지도자라는 점을 부각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최근 문 대통령 핵심 지지층이었던 40대가 무너지기 시작하고 있다. 물론 우군도 있었다. 문재인 정부 초대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박수현 민주당 홍보소통위원장은 지난 3일 페이스북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은 어떤 선택을 해도 내외의 극심한 찬반논쟁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면서 “토론과 논쟁과 합의를 거칠 수 없는 결단의 문제고, 결단에 따른 정치적 책임도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사면을 하든 안 하든, (문 대통령) 임기 내든, 다음 정권으로 넘기든, 임기 내면 올해든 내년이든, 올해면 보궐선거 전(前)이든 후(後)든, 모두가· 문재인 대통령의 선택에 달린 ‘정치적 운명’”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대표의 정치 실험은 역풍이 불고 있다. 사면론 제시 이후 대선 경쟁에서 이 대표는 이 지사에게 크게 밀리는 양상이다. 한길리서치·쿠키뉴스 정기 조사(9~11일) 결과, 이 지사는 25.5%, 윤 총장은 23.8%, 이 대표는 14.1%의 지지율을 얻었다. 1, 2위를 차지한 이 지사와 윤 총장은 1.7%포인트 차의 박빙이었지만 이 대표는 크게 뒤처진 3위를 차지했다. 이 대표는 텃밭이던 호남권에서 29.7%의 지지를 받아 25.3%를 기록한 이 지사에게 4.4%포인트 차로 추격을 허용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상고심 선고 공판이 열린 14일 서울 서초역 인근서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국정 농단’ 사건과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상납 사건’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박 전 대통령에게 대법원은 지난 14일 징역 20년형을 최종 확정했다. 2017년 4월 구속기소된 지 3년 9개월 만에, 2016년 10월 최서원(최순실)의 태블릿PC 공개로 국정농단 사건이 촉발된 지 4년 3개월 만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전직 대통령이 복역하게 된 불행한 사건을 역사적 교훈으로 삼아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국민의 촛불혁명, 국회의 탄핵에 이어 법원의 사법적 판단으로 국정농단 사건이 마무리된 것”이라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 정신이 구현된 것이며, 한국 민주주의 성숙과 발전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러나 두 전직 대통령 사면에 대해서는 언급을 자제했다. 대법원 선고가 나오자마자 사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2019년 5월 취임 2주년을 맞아 가진 ‘KBS 특집 대담에서 박 전 대통령의 사면 문제에 대해 “재판이 확정되기 이전에 사면을 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제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왔기 때문에 정치권에서 사면 논의가 재점화 될 가능성이 크다. 당장 친박(친박근혜)계와 대척점에 섰던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입장문을 통해 “사법적 결정을 넘어서 더 큰 대의가 있을 때 대통령은 사면이라는 고도의 정치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며 “’당사자의 반성’을 요구하는 여권과 지지자들의 협량에 대통령은 휘둘리지 않기를 바란다”고 요구했다.

한편 정의당은 “청와대와 집권여당은 사면 논란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아무리 사면권이 대통령 고유권한이라지만, 국정농단 사건은 그 이름 그대로 대한민국 민주주의 근간을 흔든 범죄”라며 “한때 최고의 권력자라도 법 앞에 평등할 때만이 국민 통합이 이루어질 수 있다. 박근혜 씨에 대한 사면, 더 이상 논하지 말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문 대통령은 대선 기간에 뇌물·알선수재·수뢰·배임·횡령 등 부패 범죄에는 사면권을 제한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박 전 대통령과 이 전 대통령 모두 5대 사면배제 대상인 뇌물죄로 유죄를 선고받았다는 점에서 사면론은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전직 대통령 사면과 관련해 그동안 전략적(?) 침묵을 지키던 여권의 유력 대권 후보인 이 지사는 지난 12일 “본인들이 잘못한 바 없다고 하는데 용서해주면 ‘권력이 있으면 다 봐주는구나’ 할 수 있다. 예방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면서 “형벌을 가할 나쁜 일을 했다면 상응하는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나도 돈 많으면 봐주겠네’ 하면 이 사회가 어떻게 되겠느냐”며 “다른 면으로 절도범도 징역을 살게 하는데 그 사람들은 왜 살아야 하느냐. 형평성도 고려해야 하고 응징의 효과도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재성 청와대 정무수석은 지난 13일 사면론에 대해 “국민의 입장에서, 국민 눈높이에서 해야 되지 않겠냐. 정치적 공방을 할 필요도 없고 해서는 안 될 사안”이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청와대가 사면에 부정적인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최근 문 대통령이 여론에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행보에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 변수다. 단적으로 문 대통령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윤석열 검찰총장 찍어내기’ 국면에서 세 차례나 사과했다. 문 대통령은 “죄송한 마음”(지난해 12월 7일), “매우 송구”(같은 달 16일), “사과 말씀”(같은 달 25일) 등 사과 수위도 매번 끌어올렸다. 문 대통령은 그동안 “국면 전환용 인위적 인사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추 장관을 비롯해 김종호 청와대 민정수석을 ‘추미애-윤석열’ 갈등 국면에서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사실상 경질했다. ‘검찰 출신은 안 된다’는 그동안의 인사 원칙을 깨고 검찰 출신인 신현수 민정수석을 임명했다. 부동산 정책의 책임의 물어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을 경질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구의역 김 군’과 관련한 발언은 충분히 비판받을 만했다”고 질책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7일 각계 신년인사회에서 “새해는 ‘회복의 해’입니다. ‘통합의 해’입니다. ‘도약의 해’입니다.”라고 했다. 부동산 정책과 관련 공급 중심 대책도 발표했다. 문 대통령의 최근 행보가 국정운영과 정책 기조의 변화인지는 더 두고 봐야 한다. 아무튼 과거와 비교해 상당히 유연해진 것은 사실이다.

문 대통령의 이런 변화에 민심도 반응을 보였다. 리얼미터·YTN 신년 조사(11-13일) 결과,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3주 연속 내림세를 마감하며 상승세로 반전했다. 문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이 지난주 대비 3.1%포인트 오른 38.6%로 나타난 반면, ‘국정수행을 잘못하고 있다’라는 부정평가는 4.5%포인트 내린 56.4%로 50%선으로 떨어졌다[그림1].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자신의 핵심 지지층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이 올해 신년사에서 밝힌 ‘포용의 해’를 만들고, ‘추풍 낙연’을 막기 위해서라도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전향적으로 검토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와중에 야권은 오는 4월 서울 시장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후보 단일화 논쟁에 빠져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작년 12월 20일 차기 대통령 선거 대신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로 방향을 틀어 정치적 승부수를 던졌다. 다만 제1야당과 논의 없이 “야권단일후보로 나서 정권의 폭주를 멈추는 견인차 역할을 하겠다”고 언급해 논쟁을 촉발시켰다.

출마선언 직후 안 대표는 국민의힘과의 통합 경선 가능성에 대해 “유불리를 따지지 않겠다. 공정경쟁만 된다면 어떤 방식도 좋다”며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안 대표는 신년 각종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면서 야권 후보단일화에 대한 구체적인 방식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야권후보 단일화 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축약된다. 첫째, 정권교체를 희망하는 모든 후보들이 오픈 플랫폼에 모여 원샷 경선을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제3지대에 통합 원샷 경선 위원회가 구성돼야 한다. 100% 시민이 참여해 투표하는 방식이 추진될 것이다. 안 대표가 국민의힘에 입당해서 경선을 치르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 방식이 거론됐다.

둘째, 당 대 당 통합이다. 정진석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은 한 언론인터뷰를 통해 “국민의당과 통합 전당대회를 통해 새로운 둥지를 출범시키자”고 제안했다. 또한 그는 페이스북에 “실사구시란 무엇인가. 까마귀가 꿩을 잡아도 꿩 잡는 게 매다”고 말하기도 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15일 서울광장에 마련된 임시 선별검사소에서 의료 자원봉사에 나서 검체를 채취하고 있다.[연합뉴스]

셋째, 국민의힘 최종 후보와 안 대표의 단일화다. 이는 2011년 서울시장 재보선에서 박영선 민주당 후보와 박원순 무소속 후보간의 단일화 사례를 모델로 하고 있다. 2011년 10월 3일 민주당의 박영선, 민주노동당의 최규엽, 무소속의 박원순 등 세 후보는 단일화 후보 경선을 치렀다. 3만명의 선거인단 중 60%라는 투표율을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박원순 후보는 이날 경선에서 박영선 후보와 접전 끝에 패했다. 그러나 TV토론 배심원단 조사, 일반 시민여론조사를 포함해 이날 실시된 선거인단 투표 결과를 집계한 결과 52.2%를 차지해, 45.6%를 얻은 박영선 후보를 이겼다. 한편 최 후보는 2.3%를 얻었다.

김종인 위원장은 지난 6일 안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3월 초 단일화’나 ‘입당’ 중 하나를 결심하라고 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이런 발언은 결국 김 위원장이 ‘당 대 당’ 통합은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김 위원장은 1995년 초대 서울 시장 선거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 당시 선거에서 여당인 민주자유당은 국무총리 출신인 정원식 후보를, 제1야당인 민주당은 한국은행 총재 출신인 조순 후보를 내세웠다. 제3후보는 변호사 출신 무소속 박찬종 후보였다. 선거 초반엔 박 후보가 기선을 잡았다. 그러나 최종 승자는 조 후보(42.4%)였다. 2위는 박 후보(33.5%), 3위는 정 후보(20.7%)였다.

김 위원장은 당시 기억을 떠올리며 “지금 국민의힘도 (참패했던) 지난 4ㆍ15 총선 때와는 당이 달라졌다”며 “지금 변화의 바탕을 깔고서 4월 7일까지 가면 우리가 이긴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맥락에서 김 위원장은 안 대표가 제안한 야권후보단일화에 대해 거듭 부정적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1일 “기회주의”, “콩가루 집안” 같은 격한 표현까지 써 가며 안 대표와의 단일화에 거부감을 표했다. 당의 비공개 회의에서 “우리 당에서 후보를 내는 데 집중해야지 왜 안 대표를 염두에 두느냐”고 강하게 질타했다. 이어 “자기 후보를 내기도 전에 밖에서 찾는 게 기회주의가 아니냐. 이건 콩가루 집안”이라며 “나는 이번에 무조건 이길 것이라고 보기 때문에 우리 힘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최근 안 대표의 입당·합당을 전제로 ‘조건부 출마 선언’을 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에 대해서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오 전 시장은 안 대표가 입당하거나 국민의당과 국민의힘이 합당하지 않는다면 출마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출마하면 하는 것이고 안 하면 안 하는 것이지, 무슨 조건이 있느냐”고 강하게 비판했다. 당 대 당 통합을 강조하는 정진석 위원장에 대해서도 “왜 자꾸 안 대표를 끌어들이려는지 알 수 없다”며 강한 불만을 피력했다.

이에 대해 안 대표는 김 위원장의 ‘3자구도’ 발언에 대해 “야권 지지자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은 야권 단일후보가 서울시장에서 승리하는 것 아니겠냐”며 “제 간절함과 야권 지지자의 절실함이 만나면 결국 야권 단일 후보가 (성사)되고 서울시장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했다. 그는 또 “유권자들의 요구를 무시하거나 거부한다면 야권 지지자들이 등을 돌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경원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13일 “독한 결심과 섬세한 정책으로 서울을 재건축하겠다”며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다. 나 전 의원은 서울 전역에 백신접종 셔틀버스운행, 중증환자 병상과 의료인력 추가 확보, 서울형 기본소득제 도입, 6조원 규모의 ‘민생 긴급 구조기금’ 설치, 코로나19 위기대응 특별채용 실시 등을 약속했다.

그런데 나 전 의원은 안 대표를 겨냥해 “쉽게 물러서고 유·불리를 따지는 사람에겐 이런 중대한 선거를 맡길 수 없다. 중요한 정치 변곡점마다 결국 이 정권에 도움을 준 사람이 어떻게 야권을 대표할 수 있다는 말인가”라고 목청을 높였다. 이어 “문재인 정권 실정과 오만에 가장 앞장서서 맞서 싸운 소신 정치인, 뚝심 있는 나경원이 정권심판의 적임자”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안 대표는 “개인이나 특정 정당의 이해타산에 의해 결정되면 안된다는 원칙을 모두 공유하면 좋겠다”며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저와 정치를 함께 하지도 않았고, 저를 잘 알지 못하는 분들까지 나서서, 저에 대한 근거 없는 비판을 한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여러분의 비판이 향해야 할 곳은 저 안철수가 아니라, 무도하고 폭압적인 문재인 정권”이라며,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재기를 위해 그러는 것”이라고 했다.

현재 야권은 후보 단일화를 둘러싼 논쟁이 다소 무질서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 이면에는 재보선 승리에 대한 지나친 낙관론이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한국갤럽 1월 1주 조사에서 4월 재보궐선거와 관련해 어느 쪽 주장에 더 동의하는지 물은 결과, ‘현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여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가 37%, ‘현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야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가 52%로 나타났다.

‘여당 승리(정부 지원론)’ 의견은 민주당 지지층(76%), 성향 진보층(69%), 광주·전라 지역(56%), 40대(53%) 등에서 상대적으로 많았다. ‘야당 승리(정부 견제론)’는 국민의힘 지지층(98%), 성향 보수층(80%), 대구·경북 지역(68%), 60대 이상(66%)에서 높게 나타났다. 중도층과 서울 등에서는 정부 견제론(58%) 쪽으로 기울었다.

이런 조사 결과는 작년 4월 총선 때와는 사뭇 다르다. 하지만 야당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1995년 6·27 지방선거 때와 작금의 선거 환경은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다. 가장 큰 차이는 현재 여권은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 등 네 차레 선거에서 연속 승리했다[그림2].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민주당은 2018년 서울 지역 기초 단체장 선거에서 25개 구청장 중 24곳을 석권했다. 전통적인 보수 아성이라고 불리던 강남과 송파 구청장 선거에서도 승리했다. 더구나 서울 광역 의회 선거의 경우, 민주당은 110석 중 102석을 차지했다. 2020년 총선에서 민주당은 서울 지역 49 곳 중 41곳을 석권했다.

이런 선거 결과들이 주는 함의는 집권 여당이 야당보다는 견고한 조직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재ㆍ보궐 선거는 일반 정규 선거와는 달리 조직 표에 의해 결정된다. 투표율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4년 이후 실시된 광역단체장 재ㆍ보궐 선거의 경우, 2012년 12월 대통령 선거와 동시에 실시된 경남도지사 선거를 제외하고 대부분 투표율이 50%대 미만이었다. 이명박(MB) 집권 3년 2개월 시점인 2011년 4월 27일에 실시된 강원 도지사 재보선의 투표율은 47.5%였다.

한편 MB 정부 집권 3년 8개월 만에 치러진 대선 전초전 같았던 2011년 10월 26일 서울시장 재보선의 투표율은 48.6%였다. 당시 범야권의 박원순 무소속 후보의 득표율은 53.4%였고, 여당인 새누리당의 나경원 후보는 46.2%를 얻었다. 2011년 4월 강원도지사 재ㆍ보궐 선거에서도 승자인 야당의 최문순 후보(51.1%)와 패자인 여당의 엄기영 후보(46.6%)간에 득표율에서 큰 차이가 없었다. 통상 선거가 양자 대결 구도로 치러지면 ‘52% 대 48%’ 구도가 만들어지는데 이런 패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이 확인됐다. 현재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여당이 야당 후보에게 뒤지는 것으로 나오지만 투표율이 50% 정도가 되고 양자 대결 구도가 만들어지면 조직력이 있는 여당이 결코 만만치 않다.

따라서 서울시장 재ㆍ보선의 경우, 3자 대결구도로 치러지면 야당이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실제로 이런 흐름은 여론조사에서도 확인됐다. 시사저널·조원씨앤아이가 작년 연말(12월 26~27일)에 실시한 조사 결과, 오는 4월 서울시장 보선에서 민주당이 서울시장 후보로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내세우고, 야권에서는 나 전 의원과 안 대표가 각자 출마하는 ‘3자 구도’가 된다면 여권 후보가 승리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박 장관은 35.5%로 오차범위를 벗어난 1위로 나왔고, 안 대표는 26.0%, 나 전 의원은 19.4%를 각각 기록했다.

한편 야권이 나 전 의원으로 후보 단일화를 이루고 범여권의 박 장관과 맞대결을 펼칠 경우, 박 장관(37.5%)이 나 전 의원(32.9%)을 근소하게나마 앞서는 것으로 조사됐다. 야권 단일후보로 안 대표가 나서는 경우에는 42.1%의 지지를 얻어 36.8%의 지지율을 기록한 박 장관을 오차범위 내에서 근소하게 앞섰다.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는 당초 예비경선(100% 시민여론조사), 본경선(20% 당원+80% 시민) 룰을 서로 맞바꾸었다. 후보 단일화에 대비한 사전 작업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의 당 대 당 단일화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고 선거전 막판 단일화를 통해 여론의 주목도를 높이려고 한다면 그 과정이 질서 있고 정교하게 진행돼야 한다.

단언컨대, 안 대표와 국민의힘 간 후보 단일화 샅바 싸움이 계속되고 각종 시나리오만 분분한 상황이 지속되면 서울 시민들은 피로감을 느끼면서 야권 지지에서 이탈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야권 단일화의 키는 안 대표가 쥐고 있다. 야권 연대의 극적인 효과와 야권의 절박함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의 지적을 새겨들을 만하다.

김 전 대표는 “국민의힘은 안 대표를 유리 그릇처럼 조심히 다뤄야 한다”며 “안 대표를 저격하고 비판하는 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결국, 서울시장 선거 판세는 야권이 ‘모이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로 정리된다.

● 김형준 명지대 교수

▶아이오와대 정치학 박사 ▶한국선거학회 전 회장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치개혁위원회 위원 ▶한국국제정치학회 이사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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