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전기차 친환경성에 물음표
┃제조 단계부터 살피면 탄소 등↑
[주간한국 주현웅 기자] 업종을 불문하고 모든 산업계가 공유하는 궁극적 목표가 하나 있다. 제품의 생산과 판매 및 소비자 이용 전 단계에서 탄소배출을 제로(0)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현재 이 과업에 가장 도전적이며 빠른 발전상을 보이는 분야는 자동차다. 석유나 가스를 동력 삼아 매연을 내뿜고 달리는 내연기관차 대신, 수소·전기를 충전시켜 질주하는 소위 ‘친환경차’의 상용화가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수소·전기차가 그 자체로도 정말 친환경적일까. 여기에 부정적 진단을 내놓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전기차와 수소차 모두 생산 과정에서는 상당량의 탄소배출이 불가피한 까닭에서다. 또 전기차의 경우 완성된 후에도 타이어 마모에 따른 미세먼지 발생이 더 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자동차뿐만 아니라 탄소포집 등 여러 분야의 환경기술 개발이 요구되는 배경이다.
종이컵과 플라스틱컵
수소·전기차와 내연기관
퀴즈다. 종이컵과 플라스틱컵 중 무엇이 더 친환경적일까? 언뜻 보면 거의 평생 썩지 않는 플라스틱보단 종이컵이 더 환경 친화적일 것 같다. 하지만 두 제품이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전부 살피면 답을 내놓기가 어려워진다. 종이컵을 만들려면 나무가 필요하므로 벌채 등으로 산림훼손이 따르고, 제조과정에서도 여러 에너지가 소모된다. 플라스틱컵은 석유나 가스 등을 에너지원으로 생산되는데 다 만들어지고 나면 종이컵보다 여러 번 쓸 수 있다. 물론 폐기될 때는 그 방식에 따라 저마다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다르다.
이는 대학의 ‘환경경제학 개론서’(권오상 서울대 자원경제학 교수 지음) 초반부에 소개된 내용이다. 환경부하량 계산에 쓰이는 방법론을 설명하며 등장하는 예시인데, 오늘날 기후위기 대응과 글로벌 그린뉴딜 및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등 전 분야에 걸친 친환경 가치를 살펴볼 때에도 유의미한 대목이다. 참고로 개론서에 따르면 종이컵과 플라스틱컵의 친환경성 대결은 플라스틱컵을 얼마나 많이, 오래 사용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엇갈린다고 한다.
최근 불거지는 수소·전기차에 관한 친환경성 논의가 이와 비슷하다. 자동차 기업들이 ‘궁극의 친환경차’라고 소개하는 이들 차량이 정말 내연기관차보다 압도적이라고 볼 수 있을까. 이 역시 제조와 생산 전 단계를 살펴보면 답이 명쾌하지 않다. 주행 시에는 석유와 가스로 굴러가는 것보다 수소와 전기로 달리는 게 나은 듯해 보인다. 하지만 제조 단계에서는 수소·전기차 역시 다량의 탄소배출이 불가피한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수소·전기차 운행에 필요한 전력량이 늘면서 더 많은 에너지 소모가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화석연료로 수소 생산
전력 늘어 탄소 배출↑
(사진=픽사베이)
먼저 수소차의 경우다. 통상적으로 수소의 생산기술은 4가지로 분류된다. 이는 ▲물(水)을 전기분해해 생산하는 ‘수전해 방식’ ▲석탄,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의 구조를 변화시켜 만드는 ‘화석연료 개질 방식’ ▲석유화학공업의 부산물로 발생하는 수소가스를 활용하는 ‘부생수소 방식’ ▲미생물의 다양한 매커니즘에 따라 여러 가지 기술을 활용하는 ‘생물학적 수소생산 방식’ 등이다. 이들 가운데 국내외 대부분의 수소차 충전에너지는 가장 얻기 쉬운 자원인 석탄, 천연가스 등을 활용한 화석연료 개질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화석연료 개질 방식에서 탄소 발생은 필연적이다. 이 방식으로 생산되는 수소는 통상 ‘그레이(grey·회색) 수소’로 일컬어진다. 이 같은 원리를 토대로 수소차 상용화 시 발생되는 탄소의 양을 추산하는 것은 전문가들에게도 어려운 작업이다. 다만 전기차보다는 탄소 배출량이 많을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한 편이다. 예컨대 2015년 일본의 도요타는 자사가 만든 수소차 미라이의 탄소 등 온실가스 배출량을 독일의 시험ㆍ인증기관인 ‘TUV 라인란드’에 의뢰한 결과, 수소차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가솔린 기반 하이브리드 차량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전기차가 훨씬 친환경적이란 뜻도 아니다. 역시 동력 에너지인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탄소배출을 피할 수 없는 까닭에서다. 이와 관련해서는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2017년 작성한 ‘대기오염을 유발하는 전기차의 역설’ 보고서에 자세히 드러나 있다. 이 보고서는 “전기차가 진정으로 대기질을 개선시킬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며 “전력생산을 위해 배출되는 초미세먼지(PM2.5)의 양이 석유를 이용하던 차량의 배기가스에서 배출되는 양보다 클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물론 전기차 운행을 위해 필요한 전력량은 전기차 보급 시나리오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유럽을 제외한 다수의 국가들은 장기간 화력발전을 통한 전력 생산에 의존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국내 전원별 발전량은 탄소를 배출하는 석탄이 40.4%, 액화천연가스(LNG)가 25.6%로 전체의 65%를 넘는다. 신재생 에너지 확대를 지속 추진한다는 방침이 현 정부 기조지만 당장 가시화될 수는 없다는 점이 엄연한 현실이다. 지난해 12월 발표된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명시된 목표치도 오는 2034년까지도 석탄(29.9%), LNG(23.3%)가 50%를 넘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안상진 KISTEP 연구원은 “정부의 전력수급계획이 2년마다 갱신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기차 시장의 확대로 야기되는 문제를 미리 준비할 시간은 있다”면서도 “하지만 10년 이내에 구축이 가능한 발전설비는 주로 화력발전에 집중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전력당국은 향후 전기차 운행을 위한 전력을 공급하기 위하여 아이러니하게도 PM2.5를 배출하는 전원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라며 “2030년 이전에 우리나라에서 전기차 시장이 확대됨에 따라 PM2.5 배출이 증가하게 되는 역설적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전기차는 주행 시에도 타이어 마모가 미세먼지를 유발할 수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운전 중 브레이크를 밟을 때 특히 두드러지는 타이어 마모는 이전부터도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꼽혀 왔다. 전기차의 경우 배터리 때문에 무게가 내연기관차보다 약 20% 더 나가는데, 그로 인해 타이어 마모 정도가 더 심각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에서 전기차 시대에 걸맞게 타이어 또한 훨씬 뛰어난 내구성을 갖춰 개발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일론 머스크가 염원하는 기술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진정한 친환경차의 길은 어디에 있을까.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선두로 우뚝 선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는 그 답을 한 가지로 제시했다. 다름 아닌 ‘탄소포집저장활용’(CCUS) 기술이다. 세간에는 익숙지 않은 개념이지만, 실은 일론 머스크를 비롯한 글로벌 산업계 모두가 염원하는 기술이기도 하다. CCUS는 대기에 배출된 이산화탄소를 포집(Carbon Capture)하고, 자원으로 다시 활용(Utilization)하며 또 저장(Storage)이 가능케 하는 기술이다.
머스크는 오는 4월 상금 1억 달러(한화 약 1107억 원)를 내걸고 이 기술의 경연대회를 열기로 했다. 미국 CNBC 방송 등 외신에 따르면 머스크는 지난 8일(현지시간) “10억톤가량의 탄소를 포집할 수 있는 팀을 원한다”며 “이번 대회는 이론적인 경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현실에 적용 가능한 기술력 확보가 목표인 만큼 대회는 장기간 이어진다. 세계 지구의 날인 4월22일 막을 올린 뒤 4년 간 이어진다. 1위 팀 상금은 5000만 달러(560억5000만 원)이며 2위는 2000만 달러(224억2000만 원), 3위는 1000 만 달러(112억1000만 원)를 받는다.
국내에서도 CCUS 기술개발은 당면과제로 떠올랐다. 여러 기관이 관련 행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탄소배출량이 클 수밖에 없는 에너지·발전사들을 중심으로 연구개발 협력이 주를 이룬다. 지역난방공사가 고려대학교 산학협력단과 관련 협약을 맺었고, 한국남동발전과 한국서부발전도 각각 울산TP에너지기술단,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등과 손을 잡았다.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CCUS를 포함한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연구개발(R&D) 예산에 2719억 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앞으로도 꾸준히 지원을 확대해 2030년에 CCUS를 상용화하는 것이 목표다.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