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내 밥그릇 챙기기...얕은 술책”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연합
지난해 12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언급한 ‘서울시 연립정부론’이 2개월 만에 힘을 받고 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선 오세훈 전 시장과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3일 일제히 연립정부 제안에 화답했다. 오 전 시장은 “서울시를 힘을 모아 공동 운영하기로 합의해 그런 형태의 단일화가 된다면 유권자 입장에서 기대해볼 만 할 것”이라고 했고, 같은 날 나 전 의원도 “성공적인 단일화로 선거에서 승리하면 서울시 공동 운영은 당연히 실천할 과제”라고 밝혔다. 다만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연립정부의 실현가능성에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 3명의 후보들은 아직 뚜렷한 해법을 내놓지 않은 채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2개월 허송세월 보낸 국민의힘 위기감 고조
안 대표는 지난해 12월 "다음 서울시 집행부는 '범야권 연립 지방정부'가 돼야 한다"며 "범야권이 힘을 합친다면 못 할 것이 없다. 힘을 합쳐서 새롭고 혁신적인 시정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당선되면) 범야권의 건강한 정치인과 전문 인재들을 널리 등용하겠다"며 "연립 서울시 정부를 통해 정권교체의 교두보를 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선거 출마를 검토 중이었던 오 전 시장과 나 전 의원은 안 대표가 던진 연립정부 구성안에 대해 어떠한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김 위원장만이 부정적 견해를 드러냈을 뿐이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연합
오 전 시장과 나 전 의원이 갑작스럽게 안 대표의 연립정부론에 호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야권 후보 단일화 무용론 때문이다. 야권에선 후보 단일화를 해도 더불어민주당 소속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의 양자 대결에서 패배할 수 있다는 위기 의식이 나오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박 전 장관은 오 전 시장과 나 전 의원 모두를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단지 안 대표만이 박 전 장관과 오차범위 내에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이에 범야권은 선거 승리를 위해 연립정부를 전제하는 후보 단일화를 강조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이 연립정부를 목표로 단일화하면 표의 확장성을 보장한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2개월 전만 해도 서울시장 보궐선거 승리를 장담했던 범야권은 이제는 자칫 패배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갖고 있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관계자는 “박원순 성추행 의혹으로 잠깐 올라갔던 자신감이 제자리를 찾았을 뿐”이라며 “아무런 전략 없이 2개월을 보내다가 이제 와서 서둘러 연립정부를 운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연합
후보들의 연립정부론은 아직 큰 그림만 그려졌을 뿐 디테일한 측면은 논의되지 않고 있다. 김 위원장이 줄곧 실현가능성을 언급하지만 후보들 모두 이에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5일 비대위 회의가 끝난 뒤 "나는 연립정부라는 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서울시에 연립정부라는 게 어떻게 형성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와 관련해 다음날 안 대표는 '국민의힘 후보들과 연립시정을 구체화하기 위해 따로 논의할 계획이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개별 후보간 아직 얘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닌 것 같다"고 답했다.

안 대표는 구체적인 방법론보다 연립정부라는 목적에 방점을 뒀다. 안 대표는 "야권 단일후보가 되면 널리 범야권 인재를 골고루 등용해 힘을 합하겠다는 것이고, 저는 그런 취지라면 김 위원장도 반대할 전혀 다른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아마 취지에 대해 오해가 있으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관계자는 “김 위원장도 취지를 모르지 않을 것”이라며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후보가 각기 다른 연립정부를 구상하고 있을 경우엔 선거 막바지에 단일화가 무산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강선우 민주당 대변인은 “1년 남짓한 임기 동안 연정을 어떻게 하겠다는 뜻인지 알 수가 없다”며 “실체 없는 공동 운영 제안은 결국 ‘내 밥그릇 챙기기’라는 얕은 술책에 지나지 않는다”고 논평했다.

남경필의 경기도 연정 벤치마킹?
정치권 일각에서는 야권이 구상하는 서울시 연립정부가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연정과 유사하리라는 관측이 나온다. 광역시도 차원에서 남 지사의 연정은 우리나라 최초의 연정이다. 2014년 남 지사는 민주당 소속 인사를 부지사로 등용했다. 또한 명목상 부지사 자리를 민주당 측에 내어 준 것이 아니라 인사·정책 등의 권한을 공유하면서 실질적인 연합정부를 시행했다.

이 같은 배경에는 경기도의회 다수당이었던 민주당의 협조가 없으면 도정 운영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당시 남 지사는 독일의 대연정 사례를 연구하는 등 연정 구성 및 운영에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3년 정도 이어진 경기도의 연정은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막을 내렸다.

한편 1997년 대선 당시 탄생한 DJP(김대중-김종필)연합을 최초의 연정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당시 새정치국민회의와 자유민주연합은 국무총리, 장관, 공공기관장 등 일부 자리를 나누어 공동정부를 구성했다. 하지만 법적으로 담보된 공동정부가 아니라는 한계가 있어 남 지사의 경기도 연정을 최초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노유선 기자



노유선기자 yoursun@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