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부재가 원인…교육청 “전문가 참여 늘릴 것”

[주간한국 주현웅 기자] 스포츠스타 등 유명인들의 학교폭력 논란이 연일 이어지면서, 이를 바라보는 학부모들은 착잡한 심경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관련 문제가 어제오늘 불거진 일은 아니지만 최근 발생하는 학폭은 이전보다 교묘하고 대처가 어렵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한 번 당하기 시작하면 물리적 폭력은 물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의 ‘사이버폭력’까지 이어지는 현상이 최근 학폭의 심각한 실태다.
문제는 이 같은 상황에서 학폭 피해 학생과 학부모들은 마땅히 기댈만한 곳을 못 찾고 있다는 점이다. 피해자들 중에서 학교나 해당 교육청 등에 문제 해결을 기대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해당 기관의 갈등 조정 능력을 불신하는 시각이 많다. 이제 막 새 학기가 시작된 시점에 교육청 내 ‘학교폭력 대책 심의기구’의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되는 이유다.
학폭 상담하자…
“학교·교육청 말고 경찰 가라” 조언
영화'소녀괴담'의 한 장면.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경기 화성시의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한 학부모는 최근 자녀의 휴대폰을 본 뒤 심장이 멈추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채팅방이 아이를 향한 욕설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차마 입에 담기 힘들 정도의 거친 말을 내뱉은 학생들은 한 두 명이 아니었다. 남녀 학생 6~7명이 무리를 지어 자신의 아이는 물론 할머니를 포함해 가족 전체를 성희롱 대상으로 삼는 발언들을 무차별로 쏟아 붓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학부모는 학교와 교육청에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기로 했다. 그 대신 곧장 변호사를 찾아갈 예정이다. 이후에 경찰에 고발하는 등 법적 조치까지 염두에 두겠다는 의향을 내비쳤다. 그는 “주변 학부모들에게 조언을 구한 결과”라며 “학폭 문제 해결을 학교나 교육청에 맡기면 더 상처받는다는 말을 이전부터 들어는 왔다”고 전했다.
올해 새 학기는 유명인들의 학교폭력 논란과 함께 시작했다. 이에 학부모들이 주로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도 자녀들의 학폭 피해를 호소하며 마땅한 대응 방식을 구하는 글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학폭 피해자는 물론 조언해주는 측에서도 학교나 교육청에 대한 불신을 감추지 않아 주목을 끌었다.
주변 학부모들의 조언은 크게 4가지로 구분된다. 그 행동방침은 ▲학교·교육청에는 신고를 늦추거나 하지 말 것 ▲가해 학생의 학부모에게 섣불리 문제를 알리지 말 것 ▲자녀가 폭력에 지속적으로 노출돼 왔다는 증거를 차곡차곡 쌓아둘 것 ▲변호사 등 법 전문가들의 상담을 적극 받아볼 것 등이다.
어째서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적잖은 학부모들은 학교·교육청의 갈등조정 절차 및 결과가 대부분 합리적으로 이뤄지지 못한 것이 원인이라고 말한다. 학교는 문제가 커질 것을 꺼려해 피해를 축소하거나 감추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또한 교육청이 장기간 심의 과정을 거쳐도 결국 솜방망이처벌에 그친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이 같은 우려가 괜히 나오는 것은 아니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의원이 2년 전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9년 6월까지 학교폭력을 은폐·축소해 징계를 받은 교원은 총 65명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적인 통념보다 많은 관계자들이 징계를 받은 것이다. 이는 표면상에 드러난 수치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교육 현장에서는 여전히 적발되지 않은 사례가 더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교사들이 자칫 가해자에 대한 과잉처벌을 우려하는 현실이 이 같은 현상을 부추기는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수도권의 한 중학교 교사 이모씨(남·30대)는 “교사들이 (가해자에 대한 과잉처벌과 같은) 다른 이유를 회피하기 위해 학폭 피해를 축소하는 사례가 사실 꽤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무리 가해자라 한들, 어린 학생을 재판 전문가도 아닌 교직원이 혹시 잘못된 판단으로 과잉 처벌하는 일은 몹시 커다란 부담”이라며 “교사들 사이에서도 학폭 관련 업무를 폭탄 돌리기로 여겨 안 맡으려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교수·의사·변호사 등 전문가 '0' 경우도
(사진=픽사베이)
이처럼 학교 내 일선 현장의 문제가 계속 지적되자 교육부는 지난해부터 전국 교육청 산하 교육지원청에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를 설치하도록 했다. 학교에서 풀기 힘든 학교폭력 문제에 대해서는 교육청이 직접 나서 보다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조정에 돌입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여기에는 교육자뿐만 아니라 법 전문가와 청소년상담가 등 외부 전문가들도 심의위원으로 합류한다.
하지만 교육청에 대한 신뢰가 뒤따르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지난해 자녀의 학폭 피해로 학폭위에 여러 번 출석해본 A씨가 직접 <주간한국>에 밝힌 핵심 문제는 ‘전문성의 부재’였다. A씨는 “교육청 학폭위도 최대 문제점이 전문성 미흡”이라며 “피해자에 대한 공감도 부족했다”고 전했다. 그는 다른 학폭피해 학부모에게 온라인 상담을 제공하고, 학폭 관련 책을 내는 등 전문가에 버금가는 현장 경험자이기도 하다.
A씨는 “교육청 학폭위의 가해자측에 대한 최종 처분은 어떻게 결정된 것인지조차 드러나지 않는다”며 “이를 누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재판의 경우 구체적 법 조항과 판례 등으로 판결의 근거가 충분히 설명되지만, 학폭위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라며 “가끔씩은 상식과 괴리되는 결정을 내놓기도 한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가해자의 입장을 필요 이상으로 고려한다는 점도 문제라고 진단했다. A씨는 “가령 가해자들은 자신들의 폭행 이유를 설명하곤 하는데, 이후 심의위원들은 피해자에게 ‘왜 그랬냐’는 식으로 추궁하는 일이 적지 않다”면서 “가해 당사자와 그의 학부모가 사과를 하지도 않았는데, 피해자에게 화해가 가능하겠냐며 합의를 종용하는 사례도 있다”고 강조했다.
학폭위 전문성에 대한 지적은 통계자료에서도 뒷받침된다. 강득구 민주당 의원(교육위원회)이 지난해 교육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전국 177개 교육지원청의 학폭심의위원들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들은 학부모(37.6%)였다. 이어 전·현직 교원 19%, 경찰공무원 12.6%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외부전문가 격인 청소년보호활동가(6.3%)와 교수 등 청소년 관련 지식을 갖춘 전문가(1.2%) 등은 극히 일부였다. 지역별로 보면 전남 강진, 충남 당진·서천은 학부모의 비율이 50%를 넘었다. 세종시는 변호사 등 법 전문가가 1명에 그쳤다. 인천과 대전, 광주, 충남에서는 상담 경험을 가진 의사 출신이 한 명도 없었고 울산 등은 교수 등 학계 전문가가 전무했다.
교육부도 이 같은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학폭위에 외부 전문가의 참여를 계속 늘릴 계획이지만 현실적인 한계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지역이 작고 외진 곳에서는 청소년 관련 교수와 변호사 등 전문가를 구하기가 힘든 것이 현실”이라며 “학폭위에서 2~3건만 심의해도 (오가는데) 장시간이 소요돼 몇 안 되는 전문가들이 적극 참여하기도 쉽지가 않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하지만 학폭위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은 지속적으로 강구하고 있다”며 “심의위원들의 임기는 2년인데 지난해 위촉된 분들이 올해까지 활동을 이어가기 때문에 내년부터는 각 교육지원청에서 외부 전문가를 영입하는 데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