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1> 애플 주가 추이(단위:달러)
뜨거워진 인플레이션 논쟁

미국의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동월 대비 무려 4.2%나 수직상승 했다. 시장의 예상치를 크게 뛰어넘은 것임은 물론 2008년 금융위기 이래 가장 높은 월간 수치이다. 지난 6개월 동안 테크 주식의 대장격인 애플사의 주가는 구간 최고치 대비 12% 가량 하락하며 넉넉히 봐줘도 보합수준에 불과했다. 반면 인플레이션과 상관관계가 높은 목재는 선물 가격이 무려 230% 가량 폭등했다.(참조: 표1. 표2).

<표2>목재 선물 가격 추이(단위:달러)
같은 시기에 사과(Apple)를 팔고, 나무(Lumber)를 매입한 투자자가 있었다면 가상화폐 못지않은 수익을 냈을 가능성도 있다. 목재선물 시장의 마진 거래라도 활용했다면 수익률은 손쉽게 4~5배에 달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편 계절적 수급에 민감한 목재 같은 특수 원자재를 특정하지 않더라도, 가령 범용원자재 가격의 척도로서 국제 원자재 및 선물 조사회사인 CRB(Commodity Research Bureau)가 발표하는 CRB 지수(참조: 표 3)만 살펴봐도 인플레이션의 징후는 심상치 않다. 지난 6개월간 범용원자재 평균 물가 지수도 약 40% 가량 급등했기 때문이다. 즉, 원자재 가격 상승 트렌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주택 개보수 특수에 환호하고 있는 목재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표3>CRB 지수 추이
금번 CPI에 대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고위직들은 동 수치가 의도치 않게 왜곡되었을 가능성을 지적하며, 마치 지나가는 비와 같다고 주석을 달고 있다. 미국 국채 10년물의 금리가 CPI 발표일 전후 3일간 1.625%에서 1.642%로 불과 약 0.017%포인트(1.7bps) 상승에 그쳤다는 점도 이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기저효과가 가져온 착시에 중고차 시세 급등 등의 계절적 변수가 겹쳤다는 설명이 전달된 듯하다.

인플레이션의 뇌관이 점화된 것 아니냐며 일부 비관론자들이 심판의 날처럼 떠드는 말에 동조하기는 다소 이른 감이 있다. 하지만, 백 번 양보해도 인플레이션의 개봉박두가 임박한 것 아니냐는 걱정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마치 큰 지진에는 통상 전진(前震)이 있기 마련인 데, 이번 물가지수를 포함하여 시장이 움직이는 행태를 꼼꼼히 살필 일이다. 예컨대 2011년 3월 11일에 들이닥친 동일본 대지진(리히터 지진계 기준 9.1)에서도 3월 9일과 3월 10일에 각각 리히터 지진계 7.3 및 6.4의 무시할 수 없는 크기의 전진이 있었다는 점에서 계속 유념해야 할 일이다.

머스크(Musk)의 입에 꺾인 가상화폐의 하이퍼 인플레이션

가상자산이 ‘상투’라는 주장과 아직 더 간다는 논쟁은 적어도 지난 3년간은 맹렬히 지속되었던 것 같다. 과거 증권 전문가들은 의외의 곳에서 상투의 그림자를 엿보곤 했다. 10년 전만 해도 장바구니를 든 가정주부가 증권사 객장에 몰려들면 끝물이라고 판단해 ‘팔자’ 주문을 내곤 하였다. HTS 시대인 지금은 이 같은 징후가 실체적으로 감지되지 않는다.

지칠 줄 모르던 가상자산의 하이퍼 인플레이션은 엉뚱하게도 테슬라의 증권 범죄에 가까운 비트코인 결제중단 발표에 의해 다소 냉각될 태세이다. 단순하게 본다면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비트코인을 전량 매각하겠다는 변명을 색깔을 달리하여 뱉어냈기 때문이다. 특히, 머스크가 보인 행동을 시계열로 따라 가보면 ‘죄질’이 나빠 일시적 스캔들로 그칠 것 같지 않다. 머스크는 금년 2월초 15억달러(약 1조.67000억원) 규모의 비트코인 매수 발표를 시작으로 지난 3월에는 비트코인을 결제 자산으로 편입해 실제 전기차 매매가 가능하게 만든 장본인이다.

뜬구름 거래인 가상화폐시장에 전기차라는 실물이 연동되자 가상자산 시장은 환호했다. 특히 테슬라 그룹의 최고재무책임자(CFO)의 명함에 ‘코인 마스터’라는 직함을 병기하기로 한 것도 쇼맨십 이상의 어떤 시그널로 비쳐졌다. 코인을 ‘3C’로 상징되는 CEO(사장), CFO(재무총괄), COO(운영총괄) 반열에 올리며 신개념 4C를 창조했기 때문이다.

이상징후는 느닷없이 왔다. 지난 4월 테슬라가 비트코인의 상당액을 매도해 미화 2억7200만 달러(약 3000억원)의 단기 시세차익을 챙겼음을 공시한 것이 일단 수상했다. 미국의 증권법에서 범죄시 되는 단기시세조종에 해당될 가능성이 농후했기 때문이다. 압권은 테슬라가 이 같은 불건전한 이익을 실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지난 5월 12일 급기야 비트코인을 결제 자산에서 퇴출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180도 바뀐 머스크의 말에 비트코인 가격은 15% 급락했다. 하지만 머스크의 세 치 혀가 언제든 재번복을 부끄러워하지 않기에 시장은 여전히 그의 입만 바라보고 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가격이 몇 시간 만에 10~20% 급락하는 등 같은 날 급등락이 반복될 요량이다. 가상화폐가 아직 증권으로 분류되지 않은 바람에 증권법상 시세조종 행위 금지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유권해석도 머스크의 구역질 나는 천재성을 더욱 빛나게 한다.

항간에는 가상화폐 가격 하락이 5천400만명의 트위터 추종자를 거느린 머스크의 혀 때문이 아니라는 주장이 있다. 실제 매도창구는 송유관업체 콜로니얼 파이프라인을 해킹해 시스템을 볼모로 잡은 해커 다크사이드라는 소문이 돌았다. 이들이 디지털 몸값으로 받은 수량 미상의 막대한 가상화폐를 시장에 내다 팔았다는 말이 루머의 줄거리이다. 매도 출회의 실제 원인이 무엇이건 가상자산의 하이퍼 인플레이션은 시련기에 접어들고 있다. 신뢰성에 금이 간다면 그나마 긍정적으로 수용되던 블록폴리오(Blockfolio)의 희망은 한순간에 블랙폴리오(Blackfolio)로 전락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 헷지(Hedge) 전략

인플레이션이 도래하고 상당기간 지속된다면 계속 사과를 매도하고 나무를 사 모아야 할지도 모른다. 나무가 인플레이션 헷지 자산이기 때문이다. 금을 인플레이션 헷지 자산으로 꼽는 이도 있으나, 안전자산으로 분류함이 더 적확하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실질금리의 상승 시나리오에서 투자의 요체는 금리 상승기에 훼손될 소지가 있는 자산가치를 어떤 방법으로 방어할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가상자산은 일단 열외로 하고 전통자산에서 전례를 찾자면 인플레이션 헷지 투자에 생명보험사 투자가 자주 언급된다. 생명보험사의 자산-부채구조가 이른바 만기불일치에 따른 채권매도 포지션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금리 상승기에는 생명보험사의 자산부채관리(ALM) 특성이 막대한 평가차익을 자동으로 생성시키는 구조이다. 즉 생명보험사 포트폴리오는 인수분해하면 자산가치와 부채가치가 갖는 금리 민감도 간에 구조적으로 극복 불가능한 차이가 내재해 있다. 이러한 업계의 특성은 세계적으로도 거의 같다. 다시 말해 생명보험 부채는 가입시점을 기준으로 50년 가까운 만기구조를 가진 반면에, 시장에서 가용한 장기채권은 30년물 정도가 최장이라는 현실이 그러하다.

한국 같은 시장은 운용자산의 만기구조가 더 짧아 3~5년물이 주류이고 10년물 넘는 만기의 투자를 본격적으로 집행한 이력도 일천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현재 기준으로 매 1% 금리 상승시 통상 자산규모의 10~15%만큼 자본이득이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다. 예컨대, 10조원 자산을 굴리는 생명보험사는 1% 금리가 오르면 1조~1조5000억원만큼 순자산 가치가 상승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규모를 보면 50조원이 넘는 생명보험사는 흔하고, 자산가치 규모가 300조원을 넘는 경우도 전세계적으로 부지기수이다. 연금형 시장이 발달한 선진국으로 갈수록 생명보험사의 자산규모는 눈덩이 커지듯 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투자 시각에서는 여전히 난관이 숨어있다. 보험회계의 특수성과 투자 진입 타이밍이 그것이다. 반대로 말해 지난 10여년 간의 금리 하락기에 이들 생명보험업계가 겪었을 천문학적 평가손실을 나라별로 어떻게 기준을 잡아 처리해 왔는지가 변수이다. 제로금리가 지속된 일본계 생명보험사는 가히 껍데기만 남은 채, 십 수년간 인고의 세월을 겨우 견뎌온 것이 사실이다. 자산이 클수록 고통도 크고 반대로 희열도 더 크다.

금리인상의 징후는 이와 같은 생명보험사들에게는 구원의 빛이 아닐 수 없다. 생명보험사 경영진이라면 매일 정한수를 떠 놓고 인플레이션이 하루 속히 재림하기를 희구해야 하는 처지이다. 따라서, 최적의 투자진입 타이밍은 이 같은 그림자 손실이 상쇄되어 진정한 손익이 현출되는 시점을 찾는 것이다. 수많은 헷지펀드가 때만 되면 금리상승에 베팅하며 중소형 생명보험사 헌팅에 나섰던 것도 같은 이유이다.

기울기가 완만할지, 가파를 것인지는 별도로 하더라도 인플레이션은 언제든 도래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금과 같이 실질금리가 제로에 가까운 상황은 때가 되면 바뀔 것이기 때문이다. 금리상승의 폭, 깊이와 속도를 쉽게 예단할 수는 없어도 부단히 시장을 살피고, 시나리오별로 모니터링을 하는 자에게는 고진감래의 열매가 쥐어질 것이다. 가상화폐로 밤잠을 못 이룰 정도의 열정이면 그 같은 기회는 능히 포착하고도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 김문수 Aktis Capital(Hong-kong) 최고 투자책임자(CIO)

1995년 골드만삭스(홍콩)에 입사한 이래로 20여년간 홍콩기반 아시아 전문 투자업에 종사하고 있다.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후 산업은행 딜링룸에서 국제금융을 익히고 씨티은행, 메릴린치 등 유수 투자은행에서 국제채권, 외환, 파생상품 및 M&A등을 경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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