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담수비의 달인’ 안양 백동규

안양 백동규. FC안양 제공

‘최영일 앞의 미우라’. ‘전담수비의 달인(일대일 수비)’ 최영일 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이 일본의 에이스 미우라 가즈요시를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알 수 있는 표현이다. 90년대 축구계에서 이 표현을 모르는 이가 없었고 최영일은 ‘미우라의 그림자’라고 불릴 정도로 한·일전만 열리면 미우라를 꽁꽁 묶었다.

바로 그 최영일에게 전담수비가 무엇인지를 배운 적자(嫡子)가 바로 FC안양의 부주장 백동규(30)다. 예산을 적게 쓰는 시민구단임에도 안양이 K리그2 선두권 경쟁을 하고 있는 데 백동규의 지분은 상당하다.

안양종합운동장에서 백동규를 만나 그의 축구 인생과 무명에서 K리그가 주목하는 수비수가 된 비결, 그리고 전담수비의 달인으로 불리게 된 이야기를 들어봤다.

하루 운동 4탕 뛰던 악바리

1991년생인 백동규에게도 2002 한·일월드컵의 기억은 강렬했다. 2002 월드컵 이후 ‘월드컵 영웅’ 김태영과 김남일이 속해 있던 전남 드래곤즈의 홈구장 광양축구전용구장을 부모님의 손을 잡고 따라다녔다는 백동규는 자연스레 축구 선수의 꿈을 키웠다. 스피드는 있었지만 특출나진 못했다. 그래서 원하던 중·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주전이긴 하지만 특출나진 않은 선수’. 백동규 스스로가 기억하는 학창시절이었다.

“고등학교 때 ‘이런 식으로 해서는 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키는 컸지만 몸싸움에 힘이 부쳤다. 그래서 정말 체력훈련을 많이 했다. 오전 6시에 일어나 2시간 동안 언덕을 뛰고, 아침 먹고 웨이트 훈련, 오후에는 팀훈련, 그리고 저녁에는 튜브를 매달고 허리힘과 스피드를 키우는 훈련 이렇게 하루에 4탕씩 훈련을 했다.”

이렇게 훈련하자 피지컬이 확실히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아무래도 공을 가지고 하는 훈련은 많지 않다 보니 주변에서는 ‘그렇게 많이 훈련해도 안 되면 포기해야 되는 거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백동규는 “내가 그 시간에 공을 가지고 훈련했다면 기술 좋은 선수가 됐겠지만 대신 피지컬을 연마했고 지금도 피지컬은 저의 최대 강점이다”라고 딱 잘라 말했다.

키(186cm)가 크면 자연스레 움직임이 민첩하지 못하다. 키 큰 수비수들의 단점이지만 백동규가 키도 크며 빠른 비결은 바로 고등학교 때부터 다져놓은 피지컬 훈련에 있었다.

최영일에게 배운 ‘한놈만 걸려라’

동아대로 진학한 백동규는 그곳에서 1998 프랑스 월드컵 주장을 역임한 ‘전담수비의 달인’ 최영일 감독(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을 만난다. 최 감독은 제자 백동규에게 전담수비에 대한 모든 것을 전수했다.

“수비수에 대한 개념을 배웠다. 감독님이 선수 하나를 정해 주고 ‘오늘 쟤한테만 골 먹히지 마’라고 주문하시면 절대 그 선수에게 골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항상 ‘오늘 10번이 에이스다. 백동규, 너가 맡아’라고 하시면 그냥 죽을 각오로 막았다. 정말 골 먹으면 죽는다 생각했고 공과 상관없이 그 선수만 맡았다. 선수를 막는다기보다 ‘감독님이 시키는 걸 무조건 해낸다’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어느새 실력이 확 늘더라.”

현역시절 최영일하면 ‘깡다구’와 ‘악바리’로도 유명했다. 뛰어난 신체조건이 아님에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하는 모습에 국민들은 감동했고 그 비결까지 백동규는 배웠다.

“안양에 입단하고 당시 대전 시티즌에서 득점왕까지 했던 브라질 공격수 아드리아노와 상대한 적이 있어요. 그때 아드리아노를 전담수비했는데 결국 실점하지 않고 0-0으로 비겼어요. 그때 생애 처음으로 라운드 MVP까지 받았죠. 공격포인트를 기록한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죠. 다음에 또 아드리아노를 만났는데 경기 전에 악수할 때 아드리아노가 한숨만 쉬며 고개만 절레절레하고 가더라고요. 하하.”

제주, 상무 거쳐 다시 친정 안양으로

안양에서 대인마크로 두각을 드러내자 기업구단 제주가 눈독을 들였다. 2015년 여름 제주로 이적하게 됐고 제주에서 리그 준우승과 2017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K리그팀 유일의 16강 등을 이뤄내며 전성기를 누렸다. 상무를 통해 군문제를 해결했다. 지난시즌에는 강등된 제주의 K리그1 승격에 공을 세우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올시즌을 앞두고 친정팀 안양으로 돌아왔다. 안양 이우형 감독과는 안양 초창기 때부터 함께 했던 사제지간. 이우형 감독은 “백동규는 내가 아니어도 영입 1순위였다”고 털어놓을 정도로 백동규에 대한 신뢰가 크다.

“아직도 생생해요. K리그 데뷔전 때 감독님께서 후반교체로 기회를 주셨는데 정말 앞에서 미친 듯이 뛰었고 그러다 제가 뺏은 공으로 골을 넣어 이겼어요. 경기 다음날 리뷰를 하는데 제가 뛰는 장면을 보여주시면서 ‘이런 플레이가 있어 이길 수 있었다’고 하시더라고요. 개인적인 칭찬이 아닌 팀원 전체를 두고 무심한 듯 제 플레이를 칭찬해주시는데 정말 손이 떨리더라고요. 그때의 칭찬이 지금까지 절 뛰게 하고 있죠.”

K리그1과 K리그2 22개팀을 통틀어 ‘4월의 감독상’에 안양 이우형 감독이 선정됐다. 백동규는 “내가 상을 받는 것보다 기뻤다. 감독님께서 ‘너희들 덕분에 부족한 감독이 상을 받았다’고 하셨는데 충분히 받을 만하니까 받으신 거다”라며 “다시 안양으로 불러주셨을 때 거절한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백동규는 지난 4월 헤딩골을 넣으며 프로 8년차만에 K리그 데뷔골을 신고했다. 어느덧 만 30세를 맞은 백동규는 “가족들이 모두 경기장을 찾은 경기에서 프로 첫 골을 넣었다. 정말 감격스러웠고 아버지도 ‘골은 네가 넣었는데 왜 내가 지인들에게 돈을 쓰냐’며 기뻐하시더라”며 환하게 웃었다.

“진심으로 K리그2 36경기에서 0점대 실점(35실점 이하)을 기록하는게 저의 올해 최고 목표예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안양의 승격에도 가까워질 거라 믿어요. 제 강점인 피지컬과 대인마크를 이우형 감독님과 안양을 위해 불싸지르겠습니다.”



이재호 스포츠한국 기자 jay12@sportshan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