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앞서 당내 생존 좌우할 주류와 비주류의 경쟁

10년 동안 더불어민주당의 주류를 차지했던 친문(친문재인) 대 비주류 세력인 비문(비문재인) 갈등이 가시화되면서 대선 가도에 빨간불이 켜졌다. 당장 이틀 앞으로 다가온 대선 예비 경선(컷오프) 이후에도 자칫 두 진영의 극심한 분열과 갈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예비 경선 과정에서도 선두를 달리는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둘러싼 비주류 세력과 이낙연 전 대표, 정세균 전 국무총리를 지지하는 주류 세력의 갈등이 이어졌다. 반(反) 이재명 전선을 구축한 모양새가 이를 대변한다.

4·7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한 민주당으로선 이번 경선이 판을 뒤집을 수 있는 기회였다. 정치 이벤트 직후 지지율이 급등하는 ‘컨벤션 효과’도 기대했다. 하지만 국민적 관심을 집중할 만한 흥행 대신 주류와 비주류의 갈등만 노출된 셈이다. 경선 컷오프 이후 앞으로 민주당이 내홍을 수습해 갈등을 봉합하고 흥행의 불씨를 지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는 이유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5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토론회에 참석,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대깨문’ 직격한 송영길, 열린우리당 실패 책임 ‘노무현’ 꼽아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지난 5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대깨문’(강성 친문 세력을 비하하는 용어)을 언급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 지사를 우회적으로 두둔한다는 비난도 거셌다. 당시 송 대표는 ‘친문 세력이 이 지사를 견제한다는 이야기가 있다’는 질문에 “문재인 대통령을 지키겠다며 ‘대깨문’이라고 떠드는 사람이 ‘누구는 안 된다, 차라리 야당을 뽑겠다’고 안이하게 생각하는 순간 문 대통령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고 일갈했다.

이 발언이 알려지자 송 대표는 친문 세력의 십자포화를 받았다. 이낙연 전 대표는 캠프 대변인을 통해 “하루 종일 ‘원팀’으로 김대중·노무현·문재인 대통령을 만들어낸 당원들은 모욕감을 느꼈고, 당원 게시판은 마비됐다”며 “송 대표는 지금까지 민주당의 가치와 신념을 지켜온 당원께 사과하고 민주당 정신에 맞는 당 대표로서 역할인 공정한 경선 관리를 수행해주기 바란다”고 반발했다. 정세균 전 총리도 “막 경선이 시작된 판에 아예 특정 후보가 다 확정된 것처럼 사실상 지원하는 편파적 발언을 했다니 눈과 귀가 의심스러울 지경”이라며 경선 중립성을 강조했다.

친문 핵심으로 꼽히는 최재성 전 청와대 정무수석도 다음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당대표가 당 최대 리스크 요인이 됐다”며 “문 대통령 지지자를 통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언급했다. 송 대표는 노 대통령의 어려움과 위기, 특히 퇴임 후 절체절명의 시간까지 무엇을 했나”라고 반문했다. 최 전 수석은 “그때 노 대통령이 입맛에 썼던지 뱉어냈던 송 대표”라고 날을 세웠다.

당시 송 대표는 열린우리당에서 "권력(대통령)에 약했던 게 열린우리당 실패의 원인"이라며 노 전 대통령을 비판한 바 있다. 더 나아가 송 대표는 "대통령에게 문제제기를 하면 받아들여지는 게 아니라 대통령이 먼저 강하게 나오니 파국으로 가는 꼴이어서 주저한 경우가 많았다"며 "노무현 대통령은 권위주의를 벗어났다고 하지만 중국 문화혁명 때처럼 의원들을 옥죄었다"고 노 전 대통령을 강도 높게 비난하기도 했다.

‘대깨문’은 촉매제일 뿐... 뿌리 깊은 친문·비문의 대립
참여정부 시절 형성된 친문 대 비문의 대립이 결국 다시 고개를 들었다. 송 대표의 대깨문 발언은 사실상 작심한 발언으로 보인다. 정권 말기에 접어들면서 예전만 못한 문 대통령의 지지율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대선 승리를 위한 중도 확장을 위해 강성 친문 세력에게만 의존할 수 없다는 정무적 판단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친문은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 등 연이은 승리에 힘입어 압도적인 당내 권력을 거머쥘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 4·7 재·보선에서 참패한 데다 문 대통령 지지율이 한때 20%대까지 떨어지면서 친문의 힘도 빠지는 듯한 모습을 연출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4월 27일부터 29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문 대통령의 직무 수행평가를 조사한 결과 긍정평가는 29%, 부정평가는 60%를 기록했다(이하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에 대해 강상호 국민대 교수는 “차기 대선주자가 거론되면 미래권력이 현재권력을 압도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대표적 비주류인 이 지사가 차기 대선주자로 줄곧 선두를 달리자 역시 비주류로 분류됐던 송 대표의 목소리가 커지게 됐다는 설명이다.

또한 일각에서는 비문으로 분류되는 비주류가 당 지도부를 이끌게 되면서 당 쇄신을 시도한 점도 친문의 반발을 야기했다고 주장한다. 송 대표의 ‘조국 사태’ 사과부터 부동산 투기의심 의원 12명 탈당 권고, 종합부동산세 완화 조치 등에 대해 친문 세력이 불만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지난 5월 대통령과 당 지도부 간담회 자리에서 송 대표는 소형모듈원자력발전소(SMR)에 대해 정부 기조와는 다른 의견을 내놓아 눈길을 끌었다. 당시 송 대표는 “중국과 러시아가 지배하는 원전 시장에서 한미 간 전략적 협력을 통해 (중-러를) 견제할 필요가 있다”며 “SMR 분야나 대통령께서 관심을 가지고 계신 원전 폐기 시장 같은 것을 한미 간에 전략적으로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SRM은 ‘2050년 탄소중립’ 목표는 물론 한국 원자력발전 생태계를 부활시키는 핵심 열쇠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기술이다. 대안 원전의 일환인 ‘스마트 원전’으로 불리며 탄소중립 시대 ‘게임체인저’로 부상하고 있다. 송 대표는 SMR을 매개체로 해서 원전 수출 시장에 미국과 협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기존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기조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인 셈이다. 이에 대해 여권 일각에선 “당 대표가 정부에 힘을 실어주기는커녕 정책에 반기를 들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당보다 높은 文 대통령 지지율이 변수 될까
비문이 친문과의 대립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지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최근 문 대통령 지지율이 당 지지율보다 높기 때문에 비문으로선 마냥 친문을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리얼미터는 YTN 의뢰로 실시한 6월5주차(6월28일~7월2일) 주간 집계 결과,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전주보다 1.6%포인트 하락한 38.0%(매우 잘한다 21.4%, 잘하는 편 16.6%)를 기록했다고 지난 5일 밝혔다. 민주당의 지지율은 전주보다 0.1% 내린 29.6%에 그쳤다(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0%포인트. 이하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경선 국면에서 의도하지 않은 레임덕 현상을 우려하는 청와대도 사실상 비문을 겨냥해 경고성 메시지를 남겼다.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은 지난 6일 한 방송에 출연해 “지지율 40%인 문재인 대통령과 척져서는 (여당에서) 누구도 다음 대선을 이길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수석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그 누구도 임기 5년 차에 40% 지지율을 갖고 있지 않았다”며 “(문 대통령 주변에) 측근 비리도 없다. 여야를 대할 때 자신감이 있는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노유선기자 yoursun@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