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출마 선언 이후 윤석열의 행보는 반대를 위한 반대·퇴행적 '우클릭' 일색
-2022년 대선 의제는 단연코 '실사구시'...정권교체 넘어서는 '대안정치' 보여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장모 최모씨가 지난 2일 의정부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야권의 선두 대선 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장모 최모씨가 1심에서 징역 3년 선고를 받고 법정 구속되는 일이 벌어졌다. 재판을 받아왔던 최씨는 의료기관 개설 자격이 없음에도 2012년 동업자들과 의료재단을 설립해 요양병원을 개설하고 운영에 관여한 혐의를 받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요양급여 22억9000만원을 불법 수령한 혐의도 받았다. 1심 재판부는 이들 혐의를 유죄로 인정한 것이다.

물론 상급심의 재판 결과를 더 지켜봐야 할 일이고, 윤석열은 "그간 누누이 강조해왔듯 법 적용에는 누구나 예외가 없다는 것이 제 소신"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대한민국에서 연좌제는 성립하지 않기에 장모가 감옥에 갔다고 해서 대선 후보의 자격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2002년 민주당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국민경선 때 노무현 후보는 상대 후보가 제기한 장인의 좌익활동 전력 문제에 대해 “이런 아내를 제가 버려야합니까?”라고 맞받아치며 정면돌파 했다. 그래서 장인이 좌익활동을 했다가 옥사(獄死)했던 대한민국 대통령이 탄생하기도 했다.

문제는 윤석열의 ‘처가 리스크’가 이 정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당분간 두고 두고 계속된다는 점이다. 장모 최씨가 성남시 도촌동에 있는 땅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통장에 347억 원이 있는 것처럼 잔액 증명서를 위조하고 차명으로 계약한 혐의를 받는 사건은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그런가 하면 서울중앙지검 반부패o강력수사2부는 윤석열의 부인 김건희씨의 코바나콘텐츠 협찬 의혹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및 도이치파이낸셜 주식 매매 특혜 관여 의혹을 수사 중이다. 더구나 사건을 지휘하고 있는 이정수 서울중앙지검장은 박범계 법무부장관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기도 한 박범계의 측근인 이정수가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수사가 어디로 갈지 예측을 불허한다.

또한 윤석열 본인은 옵티머스 자산운용 초기 부실수사 의혹과 한명숙 전 국무총리 모해위증교사 수사 방해 의혹과 관련하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의해 입건되어 수사 대상이 된 상태다. 윤대진 법무연수원 기획부장의 형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 뇌물수수 사건 무마 의혹도 아직 불씨가 살아있다.

최근 방송에 출연한 조응천 민주당 의원은 윤우진 의혹 사건과 관련하여 "이상하게 유야무야되고 사건이 덮였다. 매끄럽지 못하다"며 "제대로 파헤쳐지면 문제가 될 가능성이 꽤 있다고 본다"고 말하기도 했다.

여기에다가 최근 대검찰청은 윤석열 장모 최씨의 모해위증 혐의 부분에 대한 재기수사를 명령했다. 재기수사 명령이란 대검이나 상급 검찰청이 항고나 재항고를 받아 검토한 뒤 수사가 미진하다고 판단할 경우 재수사를 지시하는 것인데, 하필 이 시점에 그런 결정이 내려진 부분에 대한 의문이 불거지고 있다.

이 결정은 이미 2006년 대법원이 관련 사건에 연루된 정대택씨에 대해 유죄를 확정한 판결에 반하는 내용이다. 또한 친정부 성향으로 알려진 이성윤 서울고검장이 서울중앙지검장 시절에 불기소 결정을 내렸던 사안이라, 문제가 되는 내용이었다면 그ㄸㅒ 문제가 되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래서 윤석열 측에서는 “정씨의 4회에 걸친 형사처벌 확정 판결에서 각 법원의 재판부는 모두 최씨의 증언을 신빙성 있는 것으로 판단해 정씨에 대한 유죄의 증거로 인정했다”고 강조하며 반발하고 있다. 윤석열 일가가 거의 정신을 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그들을 겨냥한 수사의 압박은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이렇게 많은 동시다발적 수사가 과연 우연의 일치일 수 있겠느냐는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수사의 칼날은 갈수록 예리해지는 모습이다.

이렇게 윤석열은 말 그대로 지뢰밭 속에 들어가 있는 상황이다. 한 두가지도 아니고 언제 어디서 폭탄이 터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물론 야권의 최유력 대선주자에 대한 공수처의 수사는 매우 조심스럽게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윤석열이 본인의 문제로 기소될 가능성은 희박하겠지만 가족의 문제로 인해 불똥이 튀는 정치적 내상을 입을 가능성은 상존한다.

물론 검찰의 수사가 막상 윤석열의 대선 가도에 타격을 주는 방향으로 작용할지 여부는 속단하기 어렵다. 검찰이나 공수처의 수사로 윤석열 일가의 위법 사실이 드러날 경우 윤석열의 도의적 책임을 추궁하는 여론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동시다발적인 수사를 윤석열에 대한 탄압으로 보는 여론도 많을 테니, 어느 방향으로 여론이 움직일지는 매우 유동적이다. 집권세력의 희망과는 달리 윤석열이 치명상을 입지 않는 한 오히려 동정여론을 등에 업을 수도 있다. 여권세력에게도, 윤석열에게도, 윤석열 일가에 대한 수사는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

아직까지는 장모 최씨의 구속에도 불구하고 윤석열의 지지율은 별 영향없이 건재한 것으로 나타난다. 리얼미터가 JTBC 의뢰로 지난 3~4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1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대선후보 지지율 조사의 다자대결에서 윤석열 전 총장은 33.9%로, 26.3%를 기록한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7.6%포인트 앞섰다. 이는 같은 기관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2주 전 발표한 지난달 19~20일 조사보다 격차가 더 벌어진 것이다. 2주 전 조사에서 윤석열은 32%, 이재명은 29.3%로 오차범위 내의 박빙이었다. 이번 조사에서는 그 뒤로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가 12.5%를 기록하며 3위에 자리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6.4%,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이 4.7%로 뒤를 이었다. 다만 가상 양자대결에서는 윤 전 총장 43.6%, 이 지사 39.4%로 오차범위 내 박빙이었다. 이는 2주 전 조사 때와 별다른 변화가 없는 수치였다.[표1]

장모의 구속 사태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본인의 책임을 묻지 않는 분위기가 여론조사를 통해 나타난다. 하지만 앞으로 계속 이어질 가족들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도 높은 지지율이 지켜질 수 있을지는 더 지켜볼 일이다. 만약 여러 내상에도 불구하고 윤석열이 높은 지지율을 지켜내는데 성공한다면 그의 경쟁력은 한 단계 상승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

하지만 수사기관이나 법원에 의한 사법적 검증 보다 중요한 것은 윤석열 자신의 정치가 국민에게 어떠한 평가를 받느냐 하는 것이다. 자신의 일가에 대한 사법적 처리의 결과가 어떠하든, 본인이 직접 책임져야 할 새로운 사실이 확인되지 않는다면 윤석열은 높은 지지율로 상황을 돌파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윤석열 본인의 정치가 국민 혹은 지지층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그는 조그마한 충격에도 속절없이 무너지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검증은 장모도 부인도 아니요, ‘윤석열 정치’에 대한 검증이며, 거기서 살아남느냐가 윤석열의 대선 가도를 좌우하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았을 때 지금까지 보여준 윤석열의 정치는 아직 많이 불안하고 부족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윤석열은 출마선언에서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며 많은 격정의 말들을 쏟아냈다. 그러나 평소 국민의힘이 하던 정권 비판 얘기들과 무엇이 다른 가를 알기는 어려웠다.

“이 정권이 저지른 무도한 행태는 일일이 나열하기도 어렵습니다.”, “도저히 이들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런 부패하고 무능한 세력의 집권 연장과 국민 약탈을 막아야 합니다.”

문재인 정권을 규탄하고 정권교체의 의지를 다지는 격한 말들은 많았지만, 정작 윤석열의 정치는 발견하기 어려웠다. 미래에 대한 비전 보다는 과거에 대한 분노에 치우친 그의 출마선언은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더라도 다시 번갈아가면서 분노와 보복의 통치를 반복할지 모른다는 의구심을 낳을 수 있었다. 만약 윤석열이 출마선언을 통해 문재인 정부에서 가장 심각했던 진영의 정치를 종식시키겠다는 의지 같은 것을 천명했다면, 아마 민심은 그로부터 상당한 기대를 걸었을 법하다.

얼마 전에 있었던 이재명과의 ‘점령군’ 논쟁만 해도 그렇다. 물론 “대한민국은 친일 세력과 미 점령군의 합작 지배로 깨끗하게 출발하지 못했다”는 이재명의 표현은 여러 논란의 소지가 있었다. 미군 스스로가 ‘점령군’이라고 밝힌 것은 역사적 사실이지만 대한민국의 출발이 전적으로 친일세력과 미군의 결탁에 의해 이루진 것 같은 뉘앙스를 줄 수 있었다.

‘해방전후사의 인식’이 풍미하던 1980년대 학생운동권의 언어들을 접하는 느낌이었다. 정치인이라면, 더욱이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정치인이라면 국민의 다양한 생각들을 감안하며 보다 조심스러운 표현들을 사용하는 것이 옳았다. 세밀한 사실관계 이상의 전체를 볼 줄 아는 정무적 성숙함 또한 필요한 것이 큰 정치인의 책임이기도 하다. 이재명이 잘못된 역사관으로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을 훼손했다며 보수야당이 비판에 나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윤석열도 이재명 비판의 선봉에 섰다. 아직 윤석열의 역사관을 접한 적이 없었던 사람들은 그의 생각이 예상보다 훨씬 이념적으로 오른 쪽으로 가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윤석열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이렇게 질문했다. “6.25 전쟁 당시 희생된 수 만 명의 미군과 유엔(UN)군은 점령지를 지키기 위해 불의한 전쟁에 동원된 사람들입니까? 죽고 다친 수많은 국군장병과 일반국민들은 친일파와 미국의 이익을 위해 싸웠습니까?” 그러면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역사의 단편만을 부각해 맥락을 무시하는 세력은 국민들의 성취에 기생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라며 현집권세력의 실정들을 열거했다.

이재명이 말한 것만 비판해도 충분한데 왜 갑자기 6.25 전쟁 얘기까지 나오는지, 지나친 비약이다. 이재명이 6.25 전쟁을 갖고 뭐라고 한 것은 아니었다. 윤석열은 “이념에 취해 국민의식을 갈라치고 고통을 주는 것에 반대합니다”라고 말하며 이재명을 비판했지만, 그 자신 또한 과도한 이념적 지향을 드러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웠다. 누가 먼저 촉발시킨 것인가에 대한 의견은 다를 수 있겠지만 윤석열 또한 단순한 비판이 아니라 이념성이 다분한 역사전쟁을 확전시키려 했다는 시선을 받게 되었다.

역사해석의 문제를 굳이 이념적 문제로 확장시킨 윤석열의 방식 또한 과거 보수 정치의 방식을 답습했을 뿐 전혀 새롭지 못했다. 그런 얘기들은 그냥 국민의힘의 홍준표나 황교안이 하면 되는 것인데, 윤석열까지 그러고 나선 것은 그들과의 차이가 무엇인지에 대한 의구심을 낳는 광경이었다.

2022년을 앞두고 대선정국을 이끌고 있는 ‘빅2’ 사이의 논쟁으로는 너무도 수준이 낮고, 언어는 거칠었으며, 내용은 빈곤했다. 이런 좌-우 간 역사전쟁의 재현은 대단히 퇴행적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소모적인 이념 논쟁이 아니라 코로나 시대 한국사회가 해결해야 할 산적한 의제들에 대한 실사구시적인 토론이다. 국민들이 절박하게 원하는 것은 먹고 사는 문제의 해결이다. 윤석열이 자신의 ‘우파성’을 과도하게 드러내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도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언제나 대선 승부의 열쇠를 쥔 것은 중도층이다. 윤석열이 작심하고 이재명을 비판하려 했다면, '1호 비판'은 기본소득에 대한 무원칙한 입장 변경이라든가 주택관리매입공사를 설립해 국가가 직접 주택을 사고 팔아 가격통제를 하겠다는 발상에 관한 것이 훨씬 나았을 것이다.

여야 ‘빅2’ 대선주자 사이의 논쟁은 국민들이 먹고 사는 문제와 관련된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했다. 서로 간의 이념공방으로 치닫을 수밖에 없는 해방정국의 역사해석에 관한 논쟁은 사실 워낙 해묵은 것이라서, 다수의 국민들은 별 관심이 없는 구태의연한 것이었다.

윤석열은 ‘보수와 중도는 물론 정부o여당에 실망한 진보세력까지 모두 담아야 압도적인 정권교체가 가능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의힘과 정치철학이 같다”면서도 그가 국민의힘 조기 입당을 미루고 있는 이유도 그러한 생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과 힘을 하나로 합해 정권교체를 이루겠다는 입장은 분명하지만 일단은 입당 에 관한 결론을 내리지 않고 독자적인 행보를 하는 것이 중도층과 합리적 진보층의 지지까지 얻을 수 있는 확장 노선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에 관한 윤석열의 판단은 현실에 부합된다. 국민의힘에 대한 비호감의 정서도 줄어들고 당 지지율도 전에 비할 바 없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은 중도층과 진보층 내에서는 국민의힘에 대한 비호감의 정서가 여전히 존재한다. 이런 현실에서 윤석열이 덜컥 입당을 결정하는 순간 이제까지 그를 지지했던 층이 어떻게 반응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특히 윤석열이 전략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호남지역에서는 지지율의 상승을 차단하는 결과를 낳게 될 가능성이 크다.

윤석열로서는 나중에 국민의힘 입당을 선택 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그것은 지지층의 충분한 이해와 동의를 구한 뒤에 이루어져야 할 일이다. 윤석열이 지금보다 더 높은 지지율을 보이는 강세가 가능하다면 아예 국민의힘 입당이 아니라 국민의힘과의 야권 후보단일화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국민의힘 입당이 갖는 단점은 정권을 잡게 되더라도 국민의힘 국회 의석만 갖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식물 대통령이 되는 현실 때문이다. 윤석열이 국민의힘에 들어가버리고 나면 집권하더라도 민주당 의원들이 이동하여 합류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반대로 국민의힘에 입당하지 않고 후보단일화를 거쳐 무소속 대통령으로 집권할 경우에는 헤쳐모여를 통한 새로운 집권여당의 출현도 기대해 볼 법 하다. 무소속 윤석열과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후보단일화에 합의하면서 집권 후 새 집권여당의 창당에 합의한다면 대선 이후 새로운 판짜기의 가능성을 내다볼 수도 있을 것이다. 윤석열도 그렇게 판단하고 있는 듯 하지만 단지 보수층의 지지만 받아가지고는 집권하더라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대통령 신세가 될 수밖에 없다. 국회 의석 수의 절대적 열세라는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은 오직 국민의 압도적 지지로부터 나올 수 있으며, 중도층과 합리적 진보층의 지지까지도 얻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러나 윤석열이 드러내고 있는 문제는 그러한 생각은 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중도층와 합리적 진보층이 기대하는 새로운 것들을 보여주지 못하는 ‘생각 따로 행동 따로’의 모습에 있다. 중도층와 합리적 진보층의 지지를 얻는 일이 머리 속으로만 생각하거나, 그렇게 하겠다고 말만 해서 되는 일은 아니다. 그들이 원하는 정치를 하고 그들이 기다리는 의제들을 선도하는 모습을 보일 때 비로소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들로 하여금 지지할 명분을 주지않는다면 윤석열에게 중도확장성은 희망사항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짧은 기간이지만 윤석열의 행보를 지켜본 사람들 가운데는 생각보다 “보수적 색채가 강하더라”는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수 쪽의 정치인들이나 언론들조차도 윤석열의 예상을 뛰어넘는 보수성에 내심 놀라는 모습이다.

그는 얼마되지 않는 짧은 기간에 ‘천안함’을 몇 차례나 앞세우는 모습을 보였다. 출마선언 이전에는 현충일을 맞아 정준영 천안함 생존자 예비역 전우회 회장을 만나 천안함 생존자들을 위로하는 모습을 보였다. “천안함 청년 전준영은 분노하고 있었습니다”라던 출마선언문 도입 부분도 천안함의 분노를 말하고 있었다. 얼마전 대전에 갔을 때도 국립 대전현충원이 있는 천안함46용사 묘역을 찾아 참배했다. 안보에 대한 자신의 확고한 결의를 나타내는 듯한 천안함 기억하기 행보는 일단은 보수층의 신뢰를 얻는 모습일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안보와 보훈을 강조하는 행보를 하는 것 자체를 뭐라 할 일은 아니다. 다만 오른 쪽을 향한 행보는 반복되지만, 가운데 혹은 왼쪽의 것도 함께 말하며 양 날개의 균형을 잡아가는 모습이 아직은 보이지 않는다. 그는 대전 현충원을 방문했을 때 ‘대선출마 이후 행보가 보수에 편중되어 있다는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저는 보수, 진보 이런 이념지향을 따지지 않고 제가 늘 말씀드린 대로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을 위해서 필요한 일이라면 뭐든지 할 생각이다"라고 대답했다. 윤석열은 자신이 특별히 어느 한쪽에 서 있다고 의식하지 않고, 자기의 소신대로 말하고 행동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은 자기가 움직이는 곳의 전후좌우 (前後左右)를 항상 살피지 않으면 자신의 위치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어렵게 된다. 자기중심적으로, 주관적으로 자신의 위치를 판단하게 된다는 얘기이다.

윤석열이 ‘보수 우파’의 전통적 레퍼토리를 넘어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는 탈이념적인 가치와 의제들에 다가갈 수 있을지는 아직 지켜볼 일이다. 2022년의 대선은 단연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가 최고의 의제가 될 수밖에 없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안보 대통령’이 아니라 ‘경제 대통령’이 되기 쉽다. 코로나 시대가 낳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하면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가 함께 생존하며 이 위기를 넘어설 수 있을지는 모든 국민의 절박한 관심사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이 시대에 화석화된 이념을 부여잡고 있을 것이 아니라 성장과 복지의 병행 전략, 기후위기와 환경, 에너지, 젠더, 세대, 포스트 코로나 사회의 과제에 이르는 새로운 의제들을 소화해내는 리더십을 국민들은 요구하고 있다. 윤석열은 그러한 요구에 화답할 수 있을까.

애당초 윤석열이 보수층 이외의 중도층이나 합리적 진보층까지 아우르는 넓은 정치를 할 생각이 없다면 국민의힘 입당을 미루고 있을 이유가 없다. 그가 국민의힘 입당에 대한 결론을 유보하고 시간을 갖고 있는 것은 일단 확장된 지지 기반을 구축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을 갖는다 해도 중도층과 합리적 진보층이 기대하는 새로운 정치적 콘텐츠들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별 의미없는 시간이 되고 말 것이다.

이제 윤석열은 자기만의 얘기를 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 때리기만 하는 정치로는 결국에는 국민으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 분노의 정치는 정권교체를 원하는 사람들을 대변하는 일면일 수 있겠지만 그것만 말하는 정치인은 분노의 정치를 되풀이 하는 악순환에 갇힐 수 있다.

윤석열은 이제 분노의 정치 이상의 것을 말함으로써 또 다른 진영 정치에 자신을 가두지 않아야 한다. 내가 만들려는 세상은 어떤 것인가, 나는 왜 정권교체를 하려 하는가, 내가 하려는 것은 어떤 정권교체인가, 그 정권교체는 어째서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는 것인가를 자신의 언어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에게 수사기관의 검증 보다 더 무서운 것은 ‘윤석열의 정치’란 게 과연 있느냐는 국민들의 질문이 될 것이다. 정권교체 너머에 있는 자신의 정치적 소명이 무엇인가를 스스로 읽어내야 윤석열의 앞길이 열릴 수 있을 것이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test@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