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진구의 한 음식점이 점심시간임에도 한산하다. TV화면에는 코로나19 관련 뉴스가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올해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도 3년차에 접어든다. 우리에게 전례 없는 상황을 맞이하게 한 이 질병의 터널에는 아직 빛이 보이지 않지만 언젠가는 끝이 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위기는 언제든지 다시 반복될 수 있다. 고도로 세계화된 현대에는 어느 한 곳에서 일어난 충격이 순식간에 전 세계로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우리의 생활을 통째로 흔들었지만, 나쁜 일만 일어난 것은 아니다. 그것은 평상시에는 좀처럼 인식할 수 없었던 우리 사회의 문제점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역할도 했다. 따라서 우리는 그로부터 중요한 교훈을 얻고 미래에 대한 대비책을 세울 수 있다. 가장 먼저 지적할 점은 우리나라의 공공의료 부문이 매우 취약하다는 것이다.

평상시에는 잘 작동하는 것처럼 보였던 의료체계가 감염병 유행과 같은 특수한 상황이 닥치자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모든 부담이 공공병원으로 쏠리면서 병상수와 의료진이 부족해졌으나, 민간병원에서는 오히려 남아도는 불균형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전체 병원 중 공공병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5.4%에 불과한데, 지난해 1~7월 코로나19 입원환자의 68.1%를 감당했다.

병상수로 따져도 공공병원 비중은 10%에 불과하고 대부분의 공공병원이 소규모인데다 인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평상시에는 민간병원이 대부분의 의료를 담당하고 공공병원은 빈곤층에게 최소한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식으로 역할을 분담했으나, 감염병은 이러한 구조가 불공정할 뿐만 아니라 불균형하다는 사실을 폭로한 것이다.

우리보다 민간의료 비중이 훨씬 높은 미국의 경우 전염병 확산에 속수무책이었다. 가장 의료기술이 발전한 나라에서 가장 많은 감염자와 사망자가 발생했고 지금도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미국은 2018년 기준으로 인구의 8.8%가 의료보험 미가입자이지만 저소득층의 경우에는 25%에 이른다. 보험이 없는 사람은 입원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고통을 참으면서 직장에서 일할 수밖에 없는데, 그 와중에 감염병을 퍼뜨리는 고약한 상황이 나타난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수도권과 지방의 의료서비스가 매우 불균형하다는 문제점도 있다. 따라서 지방권역별 거점에 공공병원을 설치하고 의료정원을 확대하는 것이 시급하다. 감염병에 대비해 각 권역별로 감염병 전문병원을 설립하고 상호간 협업할 수 있는 체계도 구축돼야 한다. 이처럼 공공의료체계가 대폭 강화돼야 또 다시 올 수 있는 감염병 유행에 대비할 수 있다.

또 하나 절실하게 느낀 것은 자영업자의 어려운 처지다. 우리나라는 사회적 거리두기 등 강력한 조치를 통해 성공적으로 감염병을 통제했지만, 이는 자영업자에게 엄청난 희생을 강요함으로써 가능했다.

한국자영업자협의회에 따르면 코로나19 발생 이후 지난해 6월까지 자영업자들은 66조원 이상의 빚을 졌고, 45만3000개 이상의 매장이 폐업했으며 22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러나 정부의 손실보상은 매우 미흡했을 뿐만 아니라 저리대출 등 금융지원에 치중했다.

현재 우리나라 자영업자 비중은 25%에 달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8%를 크게 초과한다. 직장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재취업 기회를 갖지 못하면서 자영업에 뛰어든 결과 엄청난 경쟁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경기변동에 민감하며 자칫하면 빈곤층으로 전락할 수 있는 위험에 시달리고 있으나, 이들에 대한 사회복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자영업자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이와 함께 자영업자로 분류되는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노동권을 강화하는 문제도 부각됐다. 배달원, 퀵서비스, 가사도우미 등 플랫폼 노동자들은 코로나19로 곤궁한 처지에 몰렸으나, 자영업자 신분인 탓에 이렇다 할 보호나 사회복지 혜택을 받지 못했다. 따라서 이들이 법의 울타리에서 보호받을 수 있도록 노동법 개정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우리가 깨닫게 된 것 중 하나는 필수노동자의 중요성이다. 이는 재난 상황에서 국민 안전을 지키고 사회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을 수행하는 노동자를 지칭한다. 의료진은 물론이고 배달 노동자, 돌봄 종사자, 환경 미화원 등이 이에 속한다. 정작 사회를 지탱하는 기둥은 투자은행가가 아니라 이들이었다는 사실을 비상시국이 들춰냈다.

이처럼 중요한 존재가 평시에는 하찮게 여겨지며, 저임금과 장시간 근로, 위험한 환경 등 열악한 근로조건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코로나19는 이들에 대한 대우를 개선하고, 그 수를 늘릴 필요성을 각성시켰다. 예를 들어 양로원에서 돌봄 노동자 당 돌볼 노인의 수를 줄이도록 규제한다면 이는 이들의 고용을 증대시키고 임금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사회복지를 확충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미국의 경우 끊임없이 봉쇄를 해제하라는 시위가 이어졌는데, 이는 사회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는 계층에게 전염병보다 밥을 굶는 상황이 더욱 두려웠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이에 따라 미국 정부가 강력한 방역조치를 취하지 못하면서 감염자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유럽의 경우도 코로나19의 타격이 컸지만 기본적인 생활이 보장되니까 봉쇄에 대한 반발이 크지 않았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사회복지 지출 비율은 2019년 기준으로 12.2%인데, 이는 OECD 평균인 20.0%보다 크게 낮고, OECD 38개 회원국 중 35번째로 낮다. 이런 낮은 복지수준 때문에 코로나19 등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다수가 쉽게 생활의 위협에 빠지며 정부는 강력하고 효율적인 조치를 취하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효율성 기반 위에 구축된 글로벌 공급망의 문제를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그동안 전 세계는 가장 비용이 싼 곳에서 생산해, 가장 효율적인 물류망을 타고 운반하며, 가장 수요가 많은 곳에서 소비한다는 신자유주의 패러다임 하에서 경제활동을 영위했다. 그러나 위기에 직면하자 이러한 얄팍한 공급망은 여러 곳에서 균열을 일으키며 마비상태에 빠졌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반도체 공급부족으로 자동차 생산에 커다란 타격을 받았고, 평소에 흔하던 요소수 공급이 줄어들자 화물운송이 줄줄이 지연되는 사태를 맞이했다. 이는 효율성에만 기준을 두고 공급망을 운영해오던 방식에 문제점을 드러낸 것이다.

마침 공교롭게도 미·중간 갈등으로 인해 글로벌 공급망은 재편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이러한 흐름에 올라타되 지역적으로 다변화함으로써 효율성뿐만 아니라 안정성에도 방점을 찍는 방향의 개선이 필요하다.

개인도 시련을 통해 단련되는 것처럼 사회도 고난을 통해 도약을 이룰 수 있다. 무려 3년에 걸쳐 유행하고 있는 코로나19는 우리 사회에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줬지만, 우리의 현재와 과거를 돌아볼 기회를 줬다. 효율성 일변도의 경제주의에서 벗어나 사회공동체 전체의 안정과 번영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방향으로 정책의 운전대를 돌려야 할 시점을 맞이한 것이다.

정인호 객원기자

● 정인호 객원기자 프로필

▲캘리포니아 주립대 데이비스 캠퍼스 경제학 박사 ▲KT경제경영연구소 IT정책연구담당(상무보) ▲KT그룹컨설팅지원실 이사 ▲건국대 경제학과 겸임교수 등을 지낸 경제 및 IT정책 전문가



정인호 객원기자 yourinh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