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아진 북미 대화 성사 가능성

북한이 시험 발사한 극초음속 미사일. (사진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제공)
북한의 극초음속 미사일 시험 발사가 종전선언과 북미 대화 성사 희망 가능성을 급격히 위축시키고 있다.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모라토리엄 선언을 무색하게 만든 북한의 군사력 도발이 미국에 새로운 위협이 될 것이라는 불안 심리가 작용하는 모습이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은 북한이 극초음속 미사일 시험발사에 성공했다고 발표한 다음 날일 6일(현지시간) “북한이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으로 지속적인 위협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화를 촉구하기보다는 북한의 도발에 대한 우려가 읽히는 발언이다.

블링컨 장관은 화상으로 열린 미일 외교·국방장관(2+2) 회담 모두 발언에서 “북한의 불법적인 핵·미사일 프로그램은 지속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다”며 “우리는 이번 주에 가장 최근의 발사를 통해 다시 그것을 봤다”고 언급했다.

블링컨 장관은 이어 “이런 진화하는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우리 동맹은 보유한 도구를 강화할 뿐 아니라 새 도구들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러시아 중국에 이어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하자 자국과 동맹을 위협할 수 있다는 미국의 우려를 분명하게 보여준 발언이다.

미 국방부의 입장도 비슷하다. 국방부는 북한이 주장한 극초음속 미사일의 구체적인 성격을 평가하면서 “어떤 새로운 능력도 심각하게 받아들인다”고 언급했다.

북한은 지난해 9월에 이어 두 번째로 극초음속 미사일 시험 발사에 나섰다. 북한 주장대로라면 당시에 비해 미사일 사거리가 200㎞에서 700㎞로 확연히 증가했다.

미국은 북한의 극초음속 미사일 주장을 경계하면서도 즉각 확인하지 않고 있다.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은 북한의 주장에 대한 논평 요청에 “탄도 미사일 발사를 규탄한다”고만 답했다.

극초음속 미사일을 부각시키지 않으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미국 측 인력이나 영토, 동맹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진 않는다는 군의 발표를 부연 했지만 경계심이 느껴진다.

이번 극초음속 미사일 발사와 관련한 미국의 평가에서 두드러진 변화는 북한과의 외교적 접근에 전념하고 있다는 언급이 빠진 점이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북한과의 대화에 노력한다는 입장만 밝히고 있지만 북한을 대화로 이끌기 위한 행보는 주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대화를 풀어갈 해법을 당분간 찾기 어렵다는 진단도 나온다.

브루스 클링너 해리티지 재단 선임연구원은 뉴욕 소재 ‘코리아소사이어티’가 개최한 토론회에서 “북한이 극초음속 미사일을 발사한 것은 지속적인 미사일 개발 신호를 미국에 던진 것”이라고 진단했다.

클링너 선임연구원은 “미국은 북한이 도발했을 때만 대응하는 듯하다”면서 다른 의제에 밀려 북한 문제가 매번 뒷전이 되는 상황을 지적했다.

클링너 선임연구원은 “제재와 외교 중 하나만으로는 북핵 문제 해법을 도출할 수 없다”면서 제재 완화와 외교 개입을 동시에 추진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는 “북한이 비핵화를 추구하는 단계를 밟는다면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프랭크 엄 미국 평화연구소(USIP) 선임연구원도 “북한과의 대화 진전을 위해서는 미국이 북핵 문제를 중요한 의제로 인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나서서 북한 문제를 중요시 해야 진전이 있을 수 있다는 진단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추진했던 ‘톱다운식’ 정상외교까지는 아니더라도 실무선 접촉을 통한 해법은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판단이다.

엄 선임연구원은 “보다 적극적이고 파격적이며 위험을 감수하는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미국 정부는 여전히 이런 조언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된 모습이다.

‘아시안 차르’로 불리는 커트 캠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 조정관은 국무부와 국방부가 북한의 극초음속 미사일 발사를 규탄한 것과 달리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과의 관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캠벨 조정관은 미·중 간의 대북 대응 협력에 대해 추가적인 설명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북한의 극초음속 미사일 시험 발사 주장 후 긴장감이 확대하는 상황에서 중국의 역할을 강조한 것이어서 눈길을 끌었다.

캠벨 조정관은 미국과 중국이 상호 이해 관계가 걸린 지역 현안에 긴밀한 협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미·중 갈등도 해법을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휘발성이 강한 북한 핵 문제를 논의하기는 쉽지 않다.

이는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지난 연말 “중국과 러시아가 협력을 강화하면 미국의 패권주의가 승리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을 상기하면 미국의 입장은 단순한 ‘희망사항’에 가깝다.

캠벨 조정관은 중국에 북한 문제 협조를 요청하면서도 미국·영국·호주가 지난해 결성한 안보동맹 ‘오커스’와 미국·일본·인도·호주 간 비공식협력체 ‘쿼드’를 한껏 치켜세웠다. 중국과의 경쟁을 위한 동맹 규합을 자랑하면서 중국에 협조를 요청하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에 중국의 협조를 기대하는 어려워 보인다.

최근 바이든 정부의 상황은 북핵 문제를 최우선에 두기 어렵다. 이란 핵합의를 마무리해야 하는 데다 러시아와의 갈등은 좀처럼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베이징 동계 올림픽이 임박하면서 올림픽 보이콧에 따른 외교 갈등도 격화할 수 있다. 미얀마 사태, 카자흐스탄 사태 등 해결해야 할 사안들이 즐비하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추진하는 종전선언은 동력을 잃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신년사에서 종전선언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은 정부의 인식 변화로 읽힌다.

미국 정가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미국 행정부는 물론 여야 모두 종전선언에 대한 관심이 없다”고 단언했다. 한반도의 종전선언 시침은 이미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백종민 아시아경제 뉴욕특파원



백종민 아시아경제 뉴욕특파원 cinqange@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