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제위원에 전직 국세청 공무원 참여 등 정황에 정부 감사 착수

산업인력공단 청사 앞에 채점 기준 공개를 촉구하는 근조 화환이 설치돼 있다. (사진=세무사시험제도개선연대 제공)
[주간한국 이재형 기자] 일반 수험생의 합격 비중을 떨어트리고 공무원 출신을 대거 합격시켜 불거진 세무사 자격 시험 논란의 화살이 국세청으로 향할 전망이다. 산업인력공단(산인공)이 시험을 주관하지만, 전직 국세청 공무원이 출제위원으로 참여하는 등 불공정 개입을 의심할 정황이 속속 드러나서다. 세무 공무원들에게 자격증을 넘기기 위해 출제에 관여했다는 이른바 ‘전관예우’ 논란으로 발전하면서 정부도 집중 감사에 착수했다.
역대급 과락률로 일반 수험생 울린 과목, 공무원은 면제
세무사 자격 시험은 1차와 2차에 걸쳐 시행되며 이중 2차 시험은 회계학 1·2부와 세법학 1·2부 총 4개 과목으로 구성된다. 2차 시험에서 4과목 모두 40점 이상, 평균 60점 이상 점수를 얻어야 합격할 수 있다. 다만 10년 이상 경력자이면서 5급 이상 직급으로 5년 이상 재직한 국세 공무원이나 20년 이상 경력의 국세 공무원은 1차 시험 및 2차 시험의 세법학 1·2부 과목을 면제받을 수 있다.
지난해 9월 치러진 제58회 세무사 2차 시험이 논란이 된 건 고연차 공무원은 면제 받는 세법학 1부에서 비정상적인 과락률을 기록하면서 일반 수험생이 지나치게 불리한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응시자 4597명 중 3254명이 세법학 1부에서 40점 미만 점수를 받아 과락률 82.13%를 기록했다 이는 이에 앞서 2016~2020년 시행된 시험의 평균 과락률(38.66%)에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반면 해당 과목을 면제받은 세무공무원 출신 합격자는 급증했다. 전체 합격자 706명 중 세법학 1·2부 면제자는 151명으로, 전체의 21.4%를 차지했다. 앞서 5년간 세무사 시험 합격자 중 면제자 비율은 평균 3.05%에 불과했다.
출제부터 합격까지 국세청 출신이 관여한 의혹
지난달 8일 서울 여의도에서 제58회 세무사 전문자격시험의 불합격 불복 의사를 밝힌 트럭 시위가 열리고 있다. (사진=이재형 기자)
이처럼 특정 과목의 유불리가 시험 전체의 당락을 좌우한 점을 들어 고연차 세무 공무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불공정 경쟁’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에 더해 세무 공무원에게 유리한 정황이 언론보도 등을 통해 잇따라 드러나면서 단순 유불리를 넘어 은퇴 공무원이 세무사 자격증을 획득하기 쉽도록 국세청이 영향력을 행사한 것 아니냐는 전관예우 의혹마저 힘을 받고 있다.
우선 세법학 1·2부를 면제 받은 공무원 합격자 중 절대 다수가 국세청 출신 세무 공무원이었다. 산인공이 김성원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세무사 합격자 면제 유형별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6~2021년 동안 세무공무원 출신 응시자 총 487명이 세법학 1·2부를 면제받고 합격했다. 이중 중앙국세청 또는 지방국세청의 세무공무원 출신인 ‘국세경력자’가 절대 다수를 차지했고 그 외 기관의 공무원은 해당 기간 동안 합격률이 줄곧 0%에 머물렀다. 면제 제도가 실질적으로 국세청 직원만 활용하고 있는 특혜인 셈이다.
올해 출제 위원 중 국세청 출신 인사가 포함된 점도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김성원 의원실이 산인공으로부터 제출받은 ‘세무사 2차 시험 출제위원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세법학 2부 시험 출제자 12명 중 1명은 A지방국세청 세무공무원 출신인 B세무법인 대표였다. 국세청 출신이 세무사 시험 출제위원에 포함된 건 최근 5년 중 작년 시험 뿐이다.
산인공이 시험 검토위원을 없애고 출제위원을 줄이는 등의 조치로 운영의 부실화 및 세법학 1부의 대거 과락을 초래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세무사 시험은 교수와 공무원, 현직 실무자 등으로 구성된 출제위원이 합숙해 출제를 한 뒤 종합검토를 거쳐 최종 문제가 확정된다.
산인공은 2018~2019년 시험출제를 관리·감독하는 검토위원 제도를 운영하다 이듬해 폐지했다. 출제위원 수 역시 기존 14명에서 2018년부터 12명으로 줄였다. 예산이 부족해 충원이 어려웠다는 게 산인공의 설명이지만 출제위원 한두 명만 자의적 기준을 관철하면 시험 형평성이 무너지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가령 출제위원 2명이 배정된 세법학 1부는 상속증여세 문제(20점 배점)에서 2025명이 0점을 받은 것이 알려지면서 채점 기준이 불공정하다는 목소리마저 나왔다. 해당 문제는 복수의 소문항으로 구성됐는데 집단적으로 부분점수조차 얻지 못한 것은 납득할 수 없다는 이유다. 수험생들은 세법학 채점 기준을 밝히라며 정보공개를 청구했지만 산인공은 일절 비공개로 처리한 상태다.
고용노동부 감사 이어 공익감사청구 나선 안철수
지난 2일 고용노동부 청사 앞에서 세무사 자격 시험 수험생이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세무사시험제도개선연대 제공)
수험생들로 구성된 세무사시험제도개선연대(세시연)는 고용노동부 청사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산업인력공단 서울본부 앞에서 ‘세무사 시험은 죽었다’ ‘채점 기준 공개하라’ 등 문구가 적힌 근조화환을 설치하는 등 시위를 벌였다.
수험생들의 억울한 사연이 알려지면서 정부도 감사에 본격 돌입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20일 산인공이 시행한 세무사 시험 출제·채점과정 등에 대한 특정감사에 착수했다. 국세청의 출제 개입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집중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용부 감사 일정은 이달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고용부는 보도자료에서 “이번 감사에서 적발되는 규정 위반 및 업무소홀 등 비위에 대해 엄중하게 처리할 것”이라며 “감사 결과 확인된 제도 및 운영상 미비점에 대해 향후 개선방안을 마련하고 시정토록 권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는 지난달 27일 감사원에 세무사 시험 불공정 논란과 관련한 공익감사 청구서를 제출했다. 안 후보는 감사를 통해 부정이 밝혀지면 전면 재시험을 실시하는 등 불공정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성토했다.
안 후보는 이날 “이번 세무사 시험 전반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를 요구한다. 세무사 시험 과정에서 세무 공무원에게 특혜를 주는 불공정 요소가 없는지 반드시 밝혀야 한다”며 “그래서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 아니겠나. 그리고 다른 자격시험에 대해서도 유사한 사례가 없는지 반드시 밝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재형 기자



이재형 기자 silentroc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