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대선 후보 4명이 지난 3일 1차 TV 토론회에서 연금개혁의 필요성에 합의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누구에게나 중요한 관심사인 국민연금이 마침내 대선판의 도마 위에 올라갔다. 노후생활의 안전판이기는 하지만 과연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유지될 수 있을지를 놓고 국민들은 불안감을 떨치지 못했다. 만시지탄이나 지금이라도 논의의 장을 열게 된 것은 다행스럽다.

저출산·고령화 추세, 지나치게 후하게 설계돼 있는 연금구조를 고려하면 방향은 명확하다. 더 내거나 덜 받거나 아니면 둘 다 하는 것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누구도 선뜻 개혁을 주장하지 못했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금 보험료를 한참 내고 있거나 앞으로 내야할 세대에게는 참을 수 없는 상황으로, 방치하면 언젠가는 폭발할 사안이기도 하다.

국민연금은 1988년에 도입했는데 당시는 경제가 빨리 성장하고 인구도 젊은 층이 늘어나는 시기였다. 장밋빛 전망에 더해 가입을 독려하기 위해 보험료를 월소득의 3% 내면 은퇴 전 소득의 70%(소득대체율)를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이렇게 한번 정해진 틀은 고치기 어려웠다.

그 후 역대 정부에서는 두 차례 연금개혁이 있었다. 1998년 김대중 정부 때 소득대체율을 60%로 10%포인트 낮추고 연금재정상태를 5년마다 점검하는 재정계산제도를 도입했다. 수급연령도 점진적으로 65세로 늘렸다. 2007년 노무현 정부 때 소득대체율을 다시 40%로 20%포인트 삭감했다. 그 후로는 감감무소식이었다.

문재인 정부 때도 연금개혁에 대한 논의는 있었다. 보건복지부는 2018년 네 가지 대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했다. 1안은 현행유지안(보험료율 9%, 소득대체율 40%), 2안은 국민연금을 현행대로 유지하되 기초연금을 2022년부터 30만원에서 40만원으로 올리는 안이다. 3안은 소득대체율을 40%에서 45%로 올리고 보험료율을 9%에서 12%로 단계적으로 인상하는 내용이다. 4안은 소득대체율을 40%에서 50%로, 보험료율을 9%에서 13%로 올리는 것이다.

정리하면 1안과 2안은 국민연금의 내용에 손을 대지 않는 것이고 3안과 4안은 더 내고 더 받는 것이다. 그러나 이 대안들은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않고 흐지부지됐다. 네 가지 대안 모두 연금재정의 근본적인 문제를 건드리지 않은 무늬만의 개혁이었는데도 말이다.

인구구조와 그에 따른 연금재정에 대한 전망을 보면 이 대안들이 얼마나 무책임한지 알 수 있다. 출산율은 2020년 0.84명에 불과한데 통계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2025년 출산율이 0.52명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고령화율은 2020년 15.7%이나 2045년에는 37.0%에 달해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할 것이 확실하다. 이에 따라 노년부양비(생산가능인구 100명당 부양할 고령인구)는 2020년 21.8에서 2070년 100.6으로 증가한다. 청년 1명이 노인 1명 이상을 부양해야 하는 시대가 올 수 있다는 뜻이다.

이보다 낙관적인 전망을 토대로 정부가 2018년 내놓은 ‘제4차 국민연금 재정계산’에서도 국민연금이 2042년부터 적자로 전환해 2057년이 되면 기금이 모두 고갈될 것으로 예측했다. 좀 더 현실적으로 인구 및 경제를 전망할 경우 적자전환 및 기금고갈 시점은 모두 빨라질 것이다.

연금제도의 개혁이 불가피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현재 구조를 유지한다고 가정할 때 논의의 핵심은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이 된다. 보험료율을 얼마나 올릴 것이며 소득대체율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의 문제인 것이다.

현행 보험료율은 9%로 선진국과 비교해서 매우 낮은 수준이다. 독일(18.6%)과 일본(18.3%)은 모두 우리나라의 2배 이상 수준이다. 따라서 보험료율을 올리는 것은 불가피한데 다만 당장의 소득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 때문에 단계적으로 인상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소득대체율은 현재(40%)로도 표면적으로는 낮은 편이 아니다. 다만 40년 납입을 기준으로 해 계산한 것이며 평균 가입기간이 25년에 불과하므로 실질적인 소득대체율은 30%가 되지 않는다. 용돈 연금이라는 말이 나오는 원인이다. 현재 가입자당 평균 국민연금 수령액은 55만원에 불과하다. 또한 노인빈곤율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가장 높은 43.4%이다. 따라서 소득대체율을 낮추기는 어렵다.

그러나 소득대체율을 높이면 취약계층에게 불리하며, 보험료를 더 많이 내고 가입기간이 긴 사람들에게 유리하다. 이들은 이미 퇴직연금과 개인보험이라는 완충장치를 가지고 있다. 국민연금이 공적연금으로 기능하려면 취약계층에게 최소한의 안전망을 제공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결국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만을 조정하는 방식으로는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기초연금이라는 공적연금, 퇴직·개인연금과 같은 사적연금을 활용하면 개선의 여지가 없지 않다. 국민연금-기초연금-퇴직·개인연금의 다층보장체제를 갖추는 것이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지만 기초연금의 금액을 높이되 수급자를 저소득층으로 제한하는 것도 검토할 수 있다. 현재는 하위 70% 노인에게 월 30만원을 제공하고 있다. 상위 계층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으면서 하위 계층에게는 생계를 꾸려 나가기에 턱없이 부족한 금액인 셈이다.

중산층 이상에게는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을 강화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 특히 퇴직연금이 문제가 되는데, 현재 퇴직연금 수익률은 너무 낮다. 2020년 연간 수익률은 2.58%에 불과한데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원금만 지킨 셈이다. 더구나 중도에 인출하는 비율이 높아 정작 연금의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

퇴직연금은 법정제도로서 공적인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가입을 의무화하고 중도 인출을 제한해 연금 형태로 수령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운용주체도 국민연금 또는 제2의 연금관리공단으로 함으로써 수익률을 높여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퇴직 연령을 늦추고 이에 맞춰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늦추는 개혁도 필요하다. 인구구조 변화를 생각하면 이 정도로의 개혁만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일자리가 가장 확실한 복지대책이기도 하다.

이미 일본에서는 법을 개정해 2025년 4월까지 모든 사업장에서 65세 고용을 의무화했다. 이를 달성하는 수단으로 기업에게 정년 연장, 퇴직 뒤 재계약, 정년제 폐지의 옵션 중 선택해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지난해 65세까지 고용확보 조치가 있는 기업은 거의 100%에 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연금 수급 개시 연령도 2025년 60세에서 65세로 늦출 수 있었다.

출산율, 평균 수명, 경제성장률 등 주요 변수에 맞춰 주기적으로 연금제도를 개편하는 자동안정장치를 도입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렇게 함으로써 거론할 때마다 불거지는 갈등을 줄이고 정치적인 이유로 개혁이 연기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연금 고갈은 천천히 오지만 확실하게 오는 미래다. 개편방향은 대체로 공감을 얻고 있다. 문제는 결단과 행동이다. 그것을 빨리 할수록 고통은 작고 효과는 클 것이다. 모처럼 관심을 얻고 있는 연금개혁 문제가 결실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정인호 객원기자

● 정인호 객원기자 프로필

▲캘리포니아 주립대 데이비스 캠퍼스 경제학 박사 ▲KT경제경영연구소 IT정책연구담당(상무보) ▲KT그룹컨설팅지원실 이사 ▲건국대 경제학과 겸임교수 등을 지낸 경제 및 IT정책 전문가



정인호 객원기자 yourinh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