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훈련을 이유로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에 배치했던 군대들을 잇달아 철수하기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지난 16일 오전(현지시간) 크림반도에서 훈련을 마친 러시아군 부대들이 원주둔지로 복귀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주간한국 이재형 기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것으로 점쳐졌던 ‘운명의 날’ 16일(현지시간)은 무사히 넘겼지만 동유럽의 신경전은 계속되고 있다. 미국 등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들은 우크라이나 국경과 대치했던 병력 일부를 철군시켰다는 러시아의 주장을 묵살하고 동유럽에 전투단을 설치하겠다며 압박을 가했다. 양측의 수싸움이 치열한 가운데 현지의 한국 기업들은 혹시 모를 우발적 충돌에 대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현지 12개 기업들, 한국인은 빠르게 대피

기업분석전문 한국CXO연구소에 따르면 현재 우크라이나에 법인 또는 지사를 둔 국내 대기업 해외계열사는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종합상사, 포스코인터내셔널, 한국타이어, 에코비스, 오스템임플란트 등 총 12곳이 있다. 외교부가 우크라이나 전역에 여행경보 4단계인 ‘여행 금지’를 발령한 지난 14일부터 현지의 한국 기업들은 주재원들을 발 빠르게 대피시켰다.

삼성전자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운영 중인 인공지능연구소의 한국인 직원들을 전원 폴란드 등 인근 국가로 이동시키거나 한국으로 귀국하도록 조치했다. LG전자도 현지 판매법인 주재원과 가족들을 모두 귀국시켰다. 한국타이어는 우크라이나 대사관 안내에 따라 조만간 현지 직원들을 철수시킬 예정이다.

외교부에 따르면 현재 우크라이나에 남아있던 한국인 107명 중 50여명이 이번 주 중 한국으로 이송될 전망이다. 남아있는 국민 50여명은 현지 생활 기반을 가진 영주권자 등 잔류를 희망한 인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우크라이나 동쪽 지역은 정부군과 친러시아 반군이 8년간 이어온 분쟁 지역이다. 지난 17일에는 우크라이나 동부 루간스크주에서 교전으로 다시 시비가 붙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선공했다고 주장한 반면 미국은 침공 명분이 필요한 러시아의 자작극이라고 서로 다투고 있다.

전쟁의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현지에서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시민들이 직접 총을 들고 사격, 소총 조립 해체, 탄알 장전 등 민방위 전투 훈련에 참여하고 있다. 영국 ITV 뉴스에 따르면 발렌티나 콘스탄티놉스카(79세)의 경우 노령의 여성이지만 전투 프로그램에 참여해 소총을 쥔 모습이 알려지면서 화제가 됐다. 그는 “나는 총을 쏠 준비가 됐다. 무슨 일이 생기면 집과 도시, 아이들을 지키겠다. 터전을 잃고 싶지 않기 때문에 최악의 상황에도 기꺼이 나서겠다”고 말했다. “아이가 모든 일을 어떻게 하는지 알았으면 한다”며 민간 전투 프로그램에 어린아이를 데려온 부모들도 있었다.

GS건설, 포스코인터내셔널 등은 현지 사업 정상 가동

하지만 이 같은 위기감은 주로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동부 지역에서 고조됐을 뿐, 그 외 지역에선 여느 때와 다르지 않다는 보도도 나온다.

지난 15일 영국 가디언지는 ‘수도 키예프의 우크라이나인들이 러시아 침공의 위험을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가디언지는 “수천명이 우크라이나 국기를 흔들며 ‘우리는 저항할 것이며 친입자는 죽을 것이다’라고 외쳤지만 이는 도시 전체에 비하면 적었다”라며 “대다수는 반복된 전쟁의 위협에 지루함을 느꼈으며 금요일 저녁 키예프의 술집과 식당에서는 여느 때처럼 즐거운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현지의 한국 기업들도 교전 지역에서 멀찍이 떨어진 지역은 별다른 타격 없이 위기를 지나가고 있다. GS건설이 설립한 GS E&C 우크라이나 법인은 현지 사업을 정상 진행 중이다. 해당 법인은 지난 2019년 6월 태양광 발전소를 설계ㆍ조달ㆍ시공(EPC)하는 민자발전사업(IPP)을 위해 설립됐다. 총 사업비 2400만달러를 들여 우크라이나 서부 자카르파티아 지역에 태양광 발전소를 2개 개발하고 2020년부터 가동했다. 해당 사업 이외에 법인이 맡은 사업은 없고 한국인 직원은 현재 상주하지 않고 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우크라이나에서 하역서비업을 전문으로 하는 '유즈나야 스티브더링 컴퍼니'와 곡물터미널 사업을 하는 '미콜라이브 밀링 웍스'를 보유하고 있다. 250만톤 규모의 곡물 수출 터미널을 인수해 지난해 우크라이나 남부 곡창지대에서 생산되는 사료용 밀 6만8000톤을 국내에 공급했다. 이곳 역시 법인장과 주재원 포함 한국인 직원들은 귀국시키고 현지인들이 영업 중이라 타격은 거의 없다.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댄 인접 국가에 사무소를 둔 국내 은행들은 일단 주재원을 섣불리 이동시키지 않고 사태를 지켜보고 있다. 헝가리는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이, 폴란드에는 우리은행이 사무소를 갖고 있다. 두 국가는 자동차와 2차 전지 등 유망 산업이 발달한 동유럽권에 위치하면서 비교적 인건비가 저렴해 이곳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금융서비스 요충지로 손꼽혔다.

에너지硏 “러시아 침공하면 유가는 배럴당 150달러 예상”

한편 국제유가는 가파르게 오르면서 전쟁 분위기가 초래한 타격이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 16일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 따르면 4월 인도분 브렌트유 종가는 전거래일보다 1.64% 오른 94.81달러를 기록했으며, 장중 한 때 100달러를 돌파했다. 같은 날 서부텍사스유는 93.66달러, 두바이유는 91.56달러로 마감해 전 거래일 대비 1.72%, 0.76%씩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지난 15일 ‘우크라이나 정세에 따른 에너지 수급전망’ 보고서에서 우크라이나 사태가 외교적으로 조기 해결될 경우 국제유가는 배럴당 70~75달러로 하향 안정화하고 불안 상태가 지속될 경우 배럴당 75~85달러 수준으로 소폭 하락할 것으로 봤다.

반면 러시아의 군사 개입이 이뤄지고 주요 7개국(G7)이 러시아에 고강도 금융·경제 제재를 부과할 경우 배럴당 100~125달러로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러시아산 석유·가스의 대규모 공급중단 등 최악의 상황에는 배럴당 150달러까지도 치솟을 것으로 분석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러시아의 대(對) 유럽 석유·가스공급 차질이 일어나면 국제 에너지시장 불안, 가스대체 석유 수요 증가로 유가 폭등이 예상된다”며 “유가(두바이유)는 배럴당 최대 150달러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재형 기자



이재형 기자 silentroc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