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권 요구하며 총파업 경고…90% 비중 비노조 택배직원은 노조에 항의 집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택배노조가 지난 17일 서울 중구 서소문동 대한통운빌딩 앞에서 개최한 촛불연설회를 열고 있다. (사진=이재형 기자)
[주간한국 이재형 기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전국택배노조가 파업 52일째를 맞는 지난 17일, 서울시 중구 서소문동의 대한통운빌딩은 건물을 둘러싼 10여대의 택배차량으로 장사진을 이뤘다. CJ대한통운 본사가 소재한 이곳은 반경 20m 거리에 “이재현이 책임져라!”라고 적힌 조끼를 입은 수십여명의 CJ대한통운 택배기사들이 침낭을 깔고 노숙하거나 택배차에 난로를 피우고 쪼그려 앉아 언 몸을 녹이고 있었다. 본사 건물 1~3층과 도보에 늘어선 이들이 굳은 표정으로 지키는 현장에선 행인들 오가는 발소리만 들려 적막감이 멤돌았다.

노사정 ‘사회적 합의’ 이행과 생존권 보장 요구하는 택배노조

생존권을 호소하며 작년 12월 28일 CJ대한통운을 상대로 파업에 나선 택배노조는 지난 10일 대한통운 본사를 기습 점거했다. 현재 전국 각 지회에서 파견 온 50여명이 ‘상주조’를 구성하고 24시간씩 교대로 무기한 농성을 펼치고 있다.

이날 기온은 영하 4도였고 바깥 공기는 호주머니에서 손을 꺼내면 냉기에 손바닥이 굳어 쥐락펴락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싸늘했다. 대한통운빌딩 건너편 건물의 1층 커피숍 ‘블랙오래’에는 ‘민주노총’이라고 적힌 조끼를 입고 있는 30대 청년 2명이 종일 냉기를 맞아 파리한 얼굴로 엎드려 30분쯤 눈을 붙였다. 조합원 A씨는 “바람막이 자켓 위에 점퍼를 껴입고 주머니에 핫팩을 넣고 나왔지만 종일 맞는 냉기를 버티기에는 역부족이었다”라며 “지난주까지는 버틸만 했는데 이번주부터 기온이 많이 떨어져 일부 조합원들은 철야 후 쓰러졌다”고 했다.

이날 택배노조는 낮에 삼보일배를 마치고 오후 7시부터 촛불연설회를 진행하며 강행군 일정을 소화했다. 1시간 동안 진행된 행사에는 700여명의 조합원이 참석해 촛불을 들고 택배 노동자 처우 개선을 위해 지난해 노사정이 도출한 ‘사회적 합의’를 이행할 것을 촉구했다.

사회적 합의는 지난해 택배기사 22명이 과로로 잇달아 사망하자 정부·더불어민주당·택배사·택배노조·화주단체·소비자단체 등이 그해 6월 마련한 대책이다. 택배기사들의 노동 강도를 줄이고 택배요금을 올려 기사들을 위한 보험료와 분류비용으로 쓰자는 취지였다. 분류비용은 그동안 택배기사가 해온 대리점 택배 분류 업무를 대신할 인력에 필요한 인건비를 말한다.

하지만 이행 실태를 놓고 노사의 셈법이 서로 다른 게 문제다. 노조는 경쟁사들의 경우 택배 1건당 요금 인상분인 170원을 전액 기사들을 위해 쓴 반면 CJ대한통운은 51.9원만 쓰고 나머지 118.1원은 회사가 가져갔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조는 이를 통해 CJ대한통운이 지난해 얻은 초과 이윤이 1800억원에 달한다고 본다.

반면 회사측은 실제 인상 요금은 140원이었으며 이 중 50~55%는 택배기사의 몫으로, 나머지는 택배기사 수수료에 반영돼 있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현장에 택배 자동 분류기 '휠 소터' 등 첨단장비 투자 비용과 5500여명의 분류인력 고용 등 비용을 고려해야 한다고 맞섰다. 택배노조는 수익 구조를 구체적으로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나섰지만 CJ대한통운은 영업비밀이라며 거부하고 있다.

지난해 사회적 합의를 통해 도입한 표준계약서도 갈등을 빚고 있다.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생물법) 시행에 따라 택배사업자 등록시 표준계약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노조측은 경쟁사의 경우 정부에서 만든 원안을 따랐지만 CJ대한통운은 부속합의서로 ▲당일 배송 강요 ▲주 6일제 강제 등 독소조항을 포함시켜 주 70시간 이상 노동을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당일 배송 조항은 물품이 오후 늦게 터미널에 도착해도 당일 넘겨야 하다 보니 택배기사가 야근에 시달리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CJ대한통운측은 정부가 승인한 부속합의서는 법적 효력을 가지며 계약 내용은 대한통운이 아닌 대리점과 택배기사간 합의하에 맺어진 것이므로 자신들에게 따질 사항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총파업’ 카드 꺼냈지만 곱지 않은 안팎의 시선도 거세

한편 파업이 장기화하면서 택배노조는 CJ대한통운이 대화에 나서지 않을 경우 민주노총 산하 전 택배사 노조를 동원해 총파업에 나서겠다며 강수를 뒀다. 하지만 장시간 택배를 수령하지 못한 소비자들을 비롯해 노사 밖의 여론이 노조를 향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특히 지난 10일 기습 점거 과정에서 빚은 물리적 충돌로 본사 직원 20명이 부상을 입고 유리문이 깨지는 등 피해가 발생해 비판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한국경영자총연합회·대한상공회의소·한국무역협회·중소기업중앙회·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은 지난 17일 입장을 내고 “쟁의행위가 정당하기 위해서는 주체, 목적, 절차, 수단·방법이 모두 적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택배기사와 계약한 건 대리점인 만큼 CJ대한통운이 계약 '당사자'가 아닌 '제3자'에 불과한데도 택배노조가 CJ대한통운 본사를 무단으로 불법점거하고 있다”며 택배노조의 활동을 불법 쟁의 행위로 규정하고 당국의 엄벌을 촉구했다.

실제로 CJ대한통운은 택배노조를 주거침입과 재물손괴, 업무방해 혐의로 고발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대한통운 본사 내부에 진입한 노조원 8명에 대해 출석을 요구하며 수사에 착수했다.

2만명의 대한통운 택배기사 중 택배노조원은 1500여명으로 8%에 불과해 대표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비노조 택배기사들은 지난달 23일 택배노조 파업 중단 촉구 집회와 이달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2차 집회에서 택배노조의 점거 행위를 규탄했다. 김슬기 전국 비노조 택배기사연합 대표는 "현재 90%는 택배가 원활히 배송되고 있지만 노조원이 모여 있는 특정 터미널의 경우 물품 배송이 아예 안 된다"라며 "파업 이후 거래처들이 이탈해서 물량이 적게 잡아도 30% 이상 빠졌다"고 지적했다.

대리점주들도 파업에 따른 매출 손실을 호소했다. 김종철 CJ대한통운 대리점연합회장은 "통상 11월부터 1월까지 10~15% 정도 수입이 늘어나는데 파업이 시작된 작년 연말부터 마이너스 상태"라면서 "올 1월에만 해도 전년 대비 매출이 30% 이상 줄었다"고 말했다.

이재형 기자



이재형 기자 silentroc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