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제공)
“끝날 때 까지 끝난 게 아니다.” 미국 프로야구 뉴욕 양키스의 명 포수 요기 베라가 남긴 명언은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미·러 갈등 상황을 정확히 표현하고 있다.

러시아의 목표가 우크라이나 외에 자국을 압박하는 주변국에 배치된 미국 군사 자산으로 향하고 있는 상황은 이번 미·러 갈등이 쉽게 해소되기 어려울 것임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러시아 침공 예고한 美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당초 러시아가 이달 16일(현지시간)에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것이라고 주장했었다. 이를 계기로 우크라이나 발 전쟁 위기 공포가 전 세계를 위협했다. 러시아는 미국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전 세계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경계하던 상황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오히려 병력 철수로 응수했다.

일촉즉발의 위기가 사라지며 각국 금융시장도 안도했지만 미국은 바로 러시아에 대한 압박을 재개했다. 푸틴 대통령의 치고 빠지기 전술에 대한 대응인 셈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러시아가 철수가 아니라 더 많은 군 병력을 우크라이나 국경 근처에 보내고 있다”며 “수일 내에 침공이 가능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가 연막작전을 펴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에 이어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은 당초 예정에 없던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 참석해 대러 압박을 시도했다. 블링컨 장관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위한 구실을 만들려고 화학 무기를 활용할 수도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날 미국의 행보는 안보리 의장국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전쟁범죄 의혹을 제기하려 한 데 대한 대응으로 풀이된다. 러시아의 의도대로 안보리가 운영되는 것을 막기 위한 대응책이었던 셈이다.

블링컨 장관은 지난 17일 안보리 회의 참석 후 독일에서 열리는 뮌헨 안보회의 참석을 위해 유럽으로 향했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도 함께 참석하는 이번 회의에서도 미국은 유럽 동맹국과 함께 대러 압박을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연합(EU) 회원국 정상들도 비슷한 행보를 보였다. EU 27개 회원국 정상들은 17일 EU·아프리카연합(AU) 정상회의에 앞서 비공식 회의를 열었다. EU 정상들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국경 주변에서 병력 철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집행위원장은 러시아의 병력 증강이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압박이 재개되며 우크라이나 위기에 대한 우려도 재차 증폭됐다. 러시아의 병력 철수에 힘입어 크게 반등했던 전 세계 금융시장은 또다시 시계 제로의 상황으로 빠져들었다.

러시아의 침공 일정을 예상하며 압박하는 미국과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의 후퇴를 주장하는 러시아의 갈등은 쉽게 풀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진단이 지배적이다. 그만큼 장기적인 사태 악화 가능성을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사태 해결을 위해 가장 먼저 선결해야 할 조건은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 추진 중단이다. 이미 그 가능성이 제기됐었고 그에 대한 가능성도 예상된다. 우크라이나 스스로 전쟁을 피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지만 헌법에 NATO 가입을 규정한 것이 걸림돌이다. 이 때문에 전쟁을 피하기 위한 방안으로 국민투표를 통해 NATO가입이 철회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충분히 성사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다.

미·러 갈등 해소 산 넘어 산

우크라이나가 NATO가입을 철회해도 여전히 난제가 남는다. 러시아는 미국이 러시아 인근 국가에 배치한 군사 자산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다. 대표 적인 예가 폴란드에서 가동 예정인 ‘이지스어쇼어’(Aegis Ashore) 미사일 방어체계다. 이지스어쇼어는 적의 미사일을 추적하는 레이더와 요격 로켓 포대로 구성된다.

미국은 북한과 중국의 미사일 방어를 위해 일본에 육상 미사일 방어체계인 이지스어쇼어 배치를 추진했었지만 일본 정부가 이를 취소했다.

유럽에 대한 이지스어쇼어 배치는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다. 미국은 2015년 루마니아에 이어 올해 폴란드에 이지스어쇼어를 배치, 운영할 예정이다. 특히 폴란드에 배치할 이지스어쇼어는 러시아의 심기를 자극할 여지가 충분하다는 게 뉴욕타임스의 평가다. 뉴욕타임스는 폴란드 이지스어쇼어 기지가 러시아 국경에서 불과 160km,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까지는 1300km거리에 떨어져 있다고 전했다.

이지스어쇼어는 강력한 레이더를 기반으로 한다. 러시아 국경 인근에 배치된 이지스어쇼어는 러시아 영공을 고스란히 들여다볼 수 있다는 의미이다. 러시아는 미국이 이지스어쇼어 요격 미사일 발사대를 순항미사일 발사대로 변경해 러시아에 대한 공격용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의심도 제기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도 이미 강한 불만을 제기한 바 있다. 푸틴은 지난해 12월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미국 국경 근처에 미사일을 배치하고 있지 않지만 미국은 러시아의 현관문 앞에 미사일을 가지고 서 있다”고 비판했다.

미국은 루마니아와 폴란드에 배치된 이지스어쇼어가 이란의 미사일 방어 차원이며 러시아와는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지만 러시아는 미국의 주장을 신뢰하지 않는다. 뉴욕타임스도 폴란드의 미국 이지스어쇼어 기지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결정할 중요한 배경이라고 판단했다.

유럽의 이지스어쇼어 배치를 둘러싼 러시아의 반발은 주한미군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입장과 맞물린다. 미국은 사드 배치가 북한 미사일 위협에 대한 대응이라고 강조했지만 중국은 오히려 한국에 대한 압박을 통해 사드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을 드러냈다.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계 확대가 지속될수록 러시아와 중국의 반발이 거세질 것임을 보여주는 예다. 그만큼 갈등의 폭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

백종민 아시아경제 오피니언 부장



백종민 아시아경제 오피니언 부장 cinqange@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