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여파로 지난 15일 국내 주유소 휘발유 평균 판매 가격이 리터당 2000원을 넘어섰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브라질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텍사스에서 토네이도를 불러올 수 있는가?” 이는 나비효과를 한마디로 응축한 표현으로 미국의 기상학자 로렌츠가 사용하면서 유행하기 시작했다. 초기 조건의 사소한 변화가 전체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국지적인 분쟁에서 시작됐으나 전 세계적인 연결망을 타고 충격을 세계 방방곡곡에 전달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시간이 갈수록 진폭이 커지고 있고 예상치 않은 분야에까지 파장을 미치고 있다.

러시아는 세계 2위 석유 수출국으로 전 세계 석유 수출량의 11%를 차지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두 나라의 밀과 보리 수출량은 전 세계 수출 시장의 3분의 1에 이른다. 석유와 곡물 같은 필수적인 원자재 상당 부분이 국제 시장에서 사라지니 가격이 폭등하는 것은 불문가지다.

지난 8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4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배럴당 123.70달러에 거래를 마쳤는데 이는 2008년 8월 이후 최고치다. 9일 시카고상품거래소에서 밀 선물은 연초보다 50% 오른 부셸당 11달러 수준에서 거래됐다.

이것은 그렇지 않아도 두통거리이던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를 높이고 있다. 이미 미국의 2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대비 7.9% 올라, 1982년 1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1월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도 전년 대비 5.1%로 역대 최고 상승폭을 보였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 이 수치가 어디까지 올라갈지 가늠하기 어렵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걱정은 선진국의 통화정책 긴축으로 나타났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지난 15∼16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0∼0.25%에서 0.25%포인트 올릴 예정인데, 이는 3년만의 일이다.

통상 양적완화를 중단한 다음 기준금리를 올리는 것이 순서인데도 불구하고 상황이 워낙 다급했던 것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의 경우에는 지난 10일 기준금리를 0%로 동결하면서 자산매입프로그램(APP)을 통한 채권매입 종료 시기를 앞당긴다고 발표했다.

아직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한창 진행 중이고 경제가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지금 이 소식은 전 세계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금리가 올라가고 통화량이 줄어들면 경제가 타격을 받는 것은 자명하다.

그뿐 아니라 전 세계에 풀린 달러가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각국의 주가와 통화가치를 떨어뜨리는 고약한 사태도 벌어진다. 그렇다고 인플레이션 압력이 크게 줄어들 것 같지도 않다. 어른거리던 스태그플레이션의 그림자가 확실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것은 당장에 나타나는 단기적인 효과이지만 보다 심원하고 광범위한 파급력을 가진 사태도 벌어지고 있다. 바로 러시아를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결제망에서 배제한 미국의 제재 조치다.

이는 달러화를 기반으로, 200개국 1만1500여개 은행이 가입해 있는 글로벌 금융결제망이다. 여기서 배제된다는 것은 더 이상 외국과의 금융거래도 하지 못하고 무역도 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사실상 러시아를 세계 경제 시스템에서 추방해 고립시키는 것이다.

석유와 천연가스 수출이 재정수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러시아에게 큰 타격이 아닐 수 없다. 에너지를 수출해도 돈을 받을 길이 사라진 것이다. 6430억달러에 달하는 러시아 외환보유고도 사용하기 어렵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제재 조치는 또 다른 나비효과를 불러온다. 러시아로서는 대안을 찾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자체적인 국제결제시스템, SPFS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자국 은행은 물론이고 독일과 벨라루스, 아르메니아 등의 금융기관도 연결돼 있다.

러시아와 동맹 수준의 관계를 맺고 있는 중국에 대한 의존도도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중국도 2015년부터 위안화 결제청산시스템(CIPS)을 운영하고 있다. 양국 무역량이 크게 늘어나면서 CIPS에서 거래량도 증폭될 것이 분명하다. 에너지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는 유럽 국가 입장에서 러시아와의 경제 관계를 완전히 끊기 어렵기 때문에 스위프트에 대한 우회로를 찾아야 하는 형편이다.

러시아는 오래 전부터 외환보유고에서 차지하는 달러 비중을 낮춤으로써 이러한 사태에 대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외환보유고의 6.6%만 달러이고, 13.8%는 중국 위안화 자산이다. 이미 2020년 러시아와 중국은 ‘스위프트를 대체하는 러·중 협력 게이트웨이’라는 이름의 자국 통화 상호 결제 협정을 체결했다.

장기적으로 달러를 중심으로 하는 스위프트와 경합하는 새로운 결제 시스템이 세계 경제의 한 축을 차지할 가능성이 엿보이는 것이다. 이는 달러의 지배력 약화를 불러오고 따라서 세계 경제가 몇 개의 블록으로 분화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우리나라 역시 우크라이나 사태의 나비효과에서 벗어날 수 없다. 석유와 곡물가격의 상승은 당장 수입물가의 인상으로 이어질 것이다. 달러의 강세는 그러한 추세를 더욱 강화시킬 것이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대비 3.7%에 이르렀는데 이것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춤출 수 있다.

달러 강세와 국제정세 불안정은 외환시장의 변동성도 키울 수 있다. 환차손을 우려한 외국인 자금의 급작스러운 유출이 원화 약세를 가속화하고 이것이 다시 자금 유출을 유도하는 악순환이 자리 잡을 수 있는 것이다. 바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일이다.

현재 한미 통화스와프 협정이 종료되고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무역수지가 적자를 보이는 등 흐름도 좋지 않다. 우리나라의 외환보유고는 4617억달러에 달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28%이지만 충분하다고 볼 수 없다. 한 번 나쁜 흐름이 나타나면 전혀 생각지 못했던 사태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구 먼 곳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파장이 아시아 대륙을 타고 우리나라로 다가오고 있다. 설령 경착륙을 면한다고 하더라도 금리 인상과 인플레이션 가속화에 따라 스태그플레이션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투구 끈을 단단히 매고 만전의 대책을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정인호 객원기자

정인호 객원기자 프로필

▲캘리포니아 주립대 데이비스 캠퍼스 경제학 박사 ▲KT경제경영연구소 IT정책연구담당(상무보) ▲KT그룹컨설팅지원실 이사 ▲건국대 경제학과 겸임교수 등을 지낸 경제 및 IT정책 전문가



정인호 객원기자 yourinho@naver.com